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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프종 이긴 인교돈-맥도웰, 몸소 보인 '올림픽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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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프종 이긴 인교돈-맥도웰, 몸소 보인 '올림픽 정신'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1.07.28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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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아무래도 인간 승리라는 단어가 잘 맞는 거 같다."

혈액암 일종인 림프종을 이겨낸 인교돈(29·한국가스공사)이 조금 늦게 올림픽에 데뷔해 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스스로도 '인간 승리'라고 표현할 만큼 다사다난한 시간을 견딘 끝에 값진 결실을 맺었다. 올림픽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인교돈은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태권도 남자 80㎏ 초과급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세계랭킹 2위인 그는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하며 꿈에 그리던 올림픽 포디엄에 섰다.

이번 대회 인교돈은 참가만으로도 큰 관심을 모았다. 스물두 살이던 지난 2014년 8월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그해 12월까지 5개월 동안 운동은 커녕 도복을 입을 수도 없었다.

[사진=연합뉴스]
인교돈이 림프종을 이겨내고 참가한 올림픽에서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연합뉴스]

경기를 마치고 인교돈은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도 '올림픽'이란 단어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시간이 흘러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 나 자신에게도 그렇고, (나처럼) 투병하시는 분들이 나란 선수로 인해 좀 더 힘내셔서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인교돈은 항암과 훈련을 병행하면서 태권도를 놓지 않았다. 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은메달을 따며 재기에 성공한 뒤 국내 중량급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그렇게 꿋꿋이 병마와 싸운 그는 2019년 여름 마침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 완치 판정을 받은 뒤 문을 닫고 나왔을 때 간호사님이 '축하한다'고 하자 주변에서 박수를 쳐주셨다"면서 "이제 어디를 가도 '중증 암 환자'라는 딱지에서 벗어나 '일반 사람'이 됐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7년이 흘러 늦깎이로 올림픽에 데뷔했다. 대표팀 간판인 동갑내기 이대훈(68㎏급)이 이번 도쿄 대회까지 3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걸 감안하면 인교돈이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인교돈은 "금메달은 아니지만, 메달을 따서 너무 기쁘다. 비록 준결승에서 졌지만 내가 준비한 걸 쏟아내고 져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며 다음 올림픽 참가 여부를 묻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말 간절히 준비했고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트라이애슬론 케빈 맥도웰(오른쪽) 역시 림프종과 싸워 완치 판정을 받고, 올림픽에 참가하더니 미국 신기록까지 세웠다. [사진=연합뉴스]

전날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에서도 인교돈처럼 인간 드라마를 쓴 인물이 있다. 역시 림프종 진단을 받고 좌절에 빠졌던 트라이애슬론 유망주 케빈 맥도웰(28·미국)이 10년 만에 올림픽에 출전, 미국 신기록을 세운 것.

맥도웰은 26일 도쿄 오다이바 해상공원에서 열린 트라이애슬론 남자 개인전에서 1시간45분54초로 6위에 올랐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트라이애슬론이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미국선수가 수립한 최고 기록.

맥도웰은 첫 수영 구간에서 51명 가운데 47위에 그쳤다. 사이클 구간에서 전력 질주하며 선두권에 합류했고, 마지막 달리기 구간에서 뉴질랜드, 벨기에, 영국 대표와 접전을 펼쳤다. 이 와중에 사이드라인 음료수 공급대에서 물병 하나를 집어 든 맥도웰은 바로 옆에서 달리던 벨기에 선수가 물병을 짚는 데 실패하자 선뜻 자신의 것을 건네 감동을 자아내기까지 했다.

미국 NBC스포츠는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준 스포츠맨십"이라고 극찬했다. 수영 1.5㎞, 사이클 40㎞, 달리기 10㎞로 구성된 트라이애슬론은 올림픽 종목 중에서도 '철인'들만 참여하는 스포츠로 통한다. 림프종을 이겨내고 올림픽에 참가한 것도 대단한데,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믿기 힘든 배려로 올림픽 정신을 보여줬다.

트라이애슬론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3위를 차지한 기대주였던 맥도웰은 2011년 3월 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그는 "마치 온 세상이 뒤집힌 것 같았다. 세계대회 우승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암과 싸워야 했다"며 "6개월 항암치료를 견디고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다시 치열한 경쟁에 나설 마음을 먹기까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돌아봤다.

맥도웰은 2014년 FISU(국제대학스포츠연맹) 세계 대학 트라이애슬론 챔피언십 금메달, 2015 토론토 팬아메리칸 게임 은메달로 부활했지만 2018년에는 극도의 슬럼프에 빠져 선수생활을 포기하려 했다. 마지막으로 도전한 선발전에서 국가대표가 됐고, 첫 올림픽에서 자국 기록을 경신하며 경쟁력을 보여줬다.

그의 질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는 31일 혼성 릴레이에 도전한다. 맥도웰은 "지금 나는, 내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다"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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