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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치유한 디스, 눈물 씻어낸 폭소' 여자월드컵 출정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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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치유한 디스, 눈물 씻어낸 폭소' 여자월드컵 출정식 현장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5.18 2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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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포즈와 댄스로 모처럼 긴장 풀어…각오 밝힐 땐 일순간 엄숙한 분위기도

[광화문=스포츠Q 박상현 기자] 처음으로 치러본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출정식은 폭소와 눈물이 한데 어우러진 하나의 축제였다. 선수들은 모처럼 긴장을 풀고 축구팬들과 취재진 앞에서 자신의 끼를 마음껏 선보였고 각오를 밝힐 때는 이내 엄숙한 분위기로 돌아와 선전을 다짐했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18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출정식을 갖고 16강 그리고 그 이상의 성적을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출정식은 한국 여자축구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축제였다. 한국의 남자축구는 1986년부터 지난해까지 8회 연속 및 통산 9차례 월드컵 본선에 오르며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고 있지만 여자축구는 2003년 월드컵에 나간 뒤 12년 만이다.

▲ [광화문=스포츠Q 이상민 기자]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18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월드컵 출정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경험이 부족했던 첫 번째 출전과 달리 한국 여자축구의 두 번째 도전은 야심으로 가득차 있다. 아직 프로가 아닌 실업이지만 WK리그가 생겼다. 여자 월드컵 출전 경험을 갖고 있는 골키퍼 김정미(31·인천 현대제철)와 박은선(29·로시얀카)이 있고 2010년 20세 이하 월드컵 3위를 이끈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이 있다.

여민지(22·대전 스포츠토토)가 왼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낙마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함께 17세 이하 월드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둔 이금민(21·서울시청), 이소담(21·스포츠토토), 신담영(22·수원FMC)이 일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날 출정식에는 여민지를 제외한 22명의 태극 여전사들이 참가했다.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한 박희영(22·스포츠토토)은 이날 소속팀의 WK리그 경기를 치르느라 참석하지 못했다. 박희영은 19일 경기도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 재입소한다.

◆ 여민지 잃은 슬픔 잊으려 더욱 코믹하게 재미있게

지소연 등 여자 선수들은 파주 NFC에 소집될 때부터 출정식을 한다는 얘기에 신이 났다. 지소연은 취재진 앞에서 "아싸, 우리도 출정식이라는 걸 해보네요"라고 방긋 웃었다. 박은선은 "출정식에서 재미있는 것 많이 보여드리겠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출정식 날 여민지가 부상으로 낙마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여민지가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됐지만 선수들은 아픔과 아쉬움을 딛고 열심히 해보자고 결의했다"고 말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팀 동료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다는데 평상심을 유지한다면 그것도 이상하다.

▲ [광화문=스포츠Q 이상민 기자] 지소연이 18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월드컵 출정식에서 유니폼을 입고 하늘을 찌를듯한 포즈를 취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슬픔을 잊으려는 듯 선수들은 더욱 환하게 웃었다, 아니 웃으려 애썼다. 오후 5시로 예정된 출정식에 앞서 선수들은 일찌감치 광화문 KT 올레스퀘어 앞에 모여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어진 출정식에서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태극낭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포즈를 선보였다. 밋밋하게(?) 파이팅을 선보인 선수도 있었지만 손으로 하트를 만드는 선수도 있었다. 권하늘(27·부산 상무)은 군인 신분이어서 거수 경례로 대신했다.

그러나 어린 선수들은 역시 끼가 충만했다. 이금민은 갑자기 바닥에 앉아 요염한(?) 포즈를 취했고 지소연은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포스터에 나오는 것과 같은 자세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소담은 마치 학권법을 하는 듯한 포즈로 팬들을 배꼽잡게 했다.

생머리를 노란색으로 탈색해 겨울왕국의 주인공인 '엘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주장 조소현(27·현대제철)은 대표로 나서 "출정식에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많이 떨린다"며 "여기까지 온 것은 그동안 선배 언니들이 한국 여자축구를 일궈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준비 많이 했으니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해달라"고 밝혔다.

▲ [광화문=스포츠Q 이상민 기자] 이금민이 18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월드컵 출정식에서 유니폼을 입고 나와 코믹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아팠던 과거를 치유하는 유쾌한 디스

출정식 사회를 본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유쾌한 디스로 2003년을 회상했다. 박 위원이 "12년 전에 왜 그렇게 못했느냐"고 묻자 골키퍼 김정미는 "그때는 내가 너무 부족했다"고 짧게 답했다.

박문성 위원은 "이러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느냐"고 투덜거리면서도 디스를 이어갔다. 그 다음은 김정미와 함께 월드컵 경험을 갖고 있는 선수인 박은선. "왜 그 때 골을 넣지 못했느냐"는 짖궂은 질문에 박은선은 "이번에 많이 넣으려고 2003년에 아껴뒀다"는 우문현답으로 팬들의 박수잘채를 받았다.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된 출정식에서 사회자의 디스는 다른 선수에게도 이어졌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북한과 4강전에서 뼈아픈 수비 실수를 범한 것에 대해 임선주(25·현대제철)는 "계속 박문성 위원께서 나를 디스하더라"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당시에 지옥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광화문=스포츠Q 이상민 기자] 골키퍼 김정미가 18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월드컵 출정식 토크쇼에서 월드컵 각오를 밝히고 있다.

디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각오를 묻는 질문도 있었고 선수들의 답변이 이어졌다.

정설빈(25·현대제철)은 "아시안게임 당시 무회전 프리킥을 준비할 때마다 맞는 느낌이 좋았고 북한전에서 중요한 골을 넣었다"며 "첫 경기 브라질전에서 기회가 된다면 프리킥으로 득점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소연은 "나는 한 골만 넣겠다"고 말해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에 지소연은 "내 포지션은 골을 넣는 것이 아니라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며 "모든 선수들이 한 골씩 넣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박은선은 닮고 싶은 선수를 묻는 질문에 "박주영을 가장 닮고 싶다. 나하고 상당히 비슷한 것 같다"며 "여자 선수 가운데에서는 닮고 싶은 선수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끼를 발산하는 댄스, 그리고 진한 여자의 눈물

박문성 해설위원은 권하늘에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출 것을 권했다. 권하늘은 처음에는 쭈뼛했다가 EXID의 '위 아래'에 맞춰 끼를 마음껏 발산했다. 권하늘은 후배 이금민까지 데리고 나와 흥겨운 댄스로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 [광화문=스포츠Q 이상민 기자] 이금민(왼쪽)과 권하늘이 18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월드컵 출정식에서 EXID의 '위아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이내 분위기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전가을(27·현대제철)은 "한국의 여자축구 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당히 외롭다. 이런 위치에 오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며 "월드컵에서 어떤 경기력을 보여줘야 할지를 잘 알고 있다. 지금 모든 선수들이 흘리는 눈물이 헛되지 않게 감동을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밝히면서 구슬 같은 눈물을 흘렸다.

지소연도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된 여민지를 생각하며 눈가를 적셨다. 지소연은 "그동안 오랜 기간 동고동락하면서 뛰었던 동료가 부상으로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큰 아픔"이라며 "민지가 오늘 아침에도 펑펑 울었다. 어떤 말로도 민지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민지를 위해 더 뛰겠다. 민지를 위한 세리머니도 생각해놨다"고 밝혔다.

출정식을 마친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2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 뉴저지로 날아간다. 대표팀은 오는 31일 미국 여자대표팀과 평가전을 가진 뒤 다음달 4일 캐나다에 입성한다.

브라질, 코스타리카, 스페인과 벌이는 조별리그 결전은 한국시간으로 다음달 10, 14, 18일 오전 8시에 벌어진다.

▲ [광화문=스포츠Q 이상민 기자] 하얀 단복을 입은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8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월드컵 출정식에서 손으로 하트를 그려보이며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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