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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스 실점 속출, 그 치명적이고 위험한 유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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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패스 실점 속출, 그 치명적이고 위험한 유혹은?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6.04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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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거스] 상대 압박 받으면 '이보 전진 위한 일보 후퇴'…자칫 실수하면 치명적인 실점 이어져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옛날 우리가 축구할 때는 백패스라는 것을 몰랐어. 정말 백패스하는 선수한테는 파울이라도 주고 싶다니까."

2008년 당시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한국 축구대표팀의 경기를 보고 백패스를 하는 것에 대해 일침을 놓은 말이다. 사실 대표팀은 물론이고 K리그를 보면 경기가 잘 풀리지 않거나 상대 압박을 받으면 종종 백패스하는 장면을 흔히 보게 된다.

3일 현대오일뱅크 2015 K리그 클래식 14라운드 경기에서도 백패스 실수로 인한 실점이 두 차례나 나왔고 이는 모두 팀의 패배와 직결됐다.

인천 수비수 김진환은 FC서울과 원정경기에서 백패스 실수를 하면서 정조국에게 1-0 결승골을 내주는 빌미를 제공했고 울산 현대 역시 백패스 실수로 위기를 맞은 뒤 웨슬리에게 실점하며 부산에 0-1로 지고 말았다.

▲ 서울 정조국(왼쪽)이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인천과 2015 K리그 클래식 경기에서 김진환의 백패스 실수로 잡은 기회에서 골키퍼 유현(오른쪽)을 제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백패스 실수로 인한 실점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터키와 2002 한일 월드컵 3·4위전에서 시작하자마자 골을 허용한 것도 홍명보의 백패스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지난 3월 10일 아스널과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8강전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백패스 실수에 결승골을 내줬다.

◆ 우리 팀 골문 향한 '역주행', 실수 하나에 무너질 수 있는 위험성 존재

이처럼 백패스는 조그만 실수 하나에 승패가 가려지는 매우 치명적인 행위다. 축구라는 종목이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팀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백패스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백패스는 모험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의 심리에서 비롯된다. 상대 압박에 막히게 되면 이를 뚫고 나가기보다 뒤로 돌려 공을 뺏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 백패스가 자칫 실수로 이어지면 호시탐탐 공을 노리는 상대 선수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 것이 문제다. 김진환의 예처럼 공이 약하게 맞으면 순식간에 상대에게 공을 뺏겨 골키퍼가 일대일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

백패스의 폐단은 비단 실점 위험만이 아니다. 앞으로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백패스는 자기편 골문을 향해서 차는 것이기 때문에 역주행과도 같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적으로 백패스 반대론자다. 아시안컵이 끝난 지난 2월 백패스에 대해 '질색'을 하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호주와 아시안컵 결승전 첫 골 실점 장면은 우리가 공을 따내고도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했고 차낸 공이 나가면서 호주의 공이 된 이후 실점했다"며 "11명 가운데 발 기술이 가장 떨어지는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일침을 놨다.

▲ 인천 김진환(왼쪽)이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2015 K리그 클래식 경기에서 자신의 백패스 실수로 결승골을 내줘 0-1로 지자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세르히오 파리아스 전 포항 감독도 백패스 무용론자다. 파리아스 감독은 "골키퍼나 수비수에게 백패스를 하는 것은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골키퍼가 실수라도 하면 바로 실점하게 된다"며 "차라리 그럴 바엔 사이드라인으로 걷어내라고 한다"고 강조했다.

2008년 당시 이누카이 모토아키 일본축구협회 회장 역시 유소년 선수들에게 '백패스 금지령'을 내리며 "백패스 장점은 하나도 없다. 10~15세 유소년 선수들이 공을 가진 순간 앞에 있는 선수나 상대 골대를 보고 경기하는 버릇을 몸에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무의미한 백패스는 절대 금지

경기를 하면서 백패스를 제로로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저 볼을 오래 갖기 위한 무의미한 백패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용론자인 파리아스 감독도 "그렇다고 무조건 백패스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전방에 줄 곳이 없다면 무작정 전진패스를 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전방에 동료들이 움직이고 있고 충분히 패스할 공간과 타이밍이 있는데 백패스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의미한 백패스를 없애려면 역시 전방에서 부지런히 선수들이 움직여 패스할 곳을 만들어줘야 한다. 상대 압박에 걸려 갈팡질팡하다보면 의미 없는 백패스나 횡패스를 하게 되고 이것이 끊기게 되면 곧바로 실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서울 정조국(오른쪽)이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인천과 2015 K리그 클래식 경기에서 김진환의 백패스 실수로 잡은 기회에서 골키퍼 유현(가운데)을 제치고 슛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또 축구 경기를 풀어가는 방법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축구는 의외로 단순하다. 공을 몰고 빨리 상대편 진영으로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공을 지키려는 생각 때문에 백패스와 횡패스를 자주 시도하게 된다.

구자철(26·마인츠)은 2013년 한 잡지와 인터뷰에서 "축구는 골을 넣는 경기이기 때문에 공을 잘 차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 진영으로 얼마만큼 패스를 하고 얼마만큼 침투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며 "공을 몰고 빨리 가면 되는데 굳이 상대 선수를 제치려고 해 오히려 경기를 어렵게 풀어간다. 그러다보니 많은 선수들이 백패스와 횡패스를 남발하게 된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백패스 금지령을 내리면서도 무리한 드리블로 공을 뺏기기보다 경기 템포를 조절하고 새로운 플레이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낫다고 어느 정도 용인했다. 백패스에도 의미가 있고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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