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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꾼 '버럭' 일침, 윤덕여 16강 리더십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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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꾼 '버럭' 일침, 윤덕여 16강 리더십의 재발견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6.25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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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소통…스페인전 전반 뒤 유일한 일침 "국민에게 이런 모습 보일 거냐", 선수들 각성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유능극강(柔能克强). '부드러움이 능히 감함을 이긴다'는 뜻이다. 윤덕여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은 이 말의 힘을 직접 보여줬다. 여자월드컵 16강 영광을 이끈 그의 리더십이 개선 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 16강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쓴 것에 대해 태극낭자들은 24일 귀국한 인천국제공항 현장에서 윤덕여 감독이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여 대표팀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입을 모았다.

윤덕여 감독은 여자축구 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여자축구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1984년부터 한일은행~현대~포철을 거치며 1992년까지 K리그에서 현역으로 뛴 윤 감독은 1993년 포항제철중 지휘봉을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대초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지만 나머지는 주로 코치로만 활동했다.

◆ 윤덕여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이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이런 그에게 여자대표팀 사령탑이라는 중대한 책임이 맡겨진 것은 2012년 12월. 인천 아시안게임과 여자월드컵 아시아예선 통과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여자선수들을 단 한 번도 지도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 인자함으로 다가가는 '소통 리더십', 선수들을 일깨우다

전가을(28·인천 현대제철)은 여자월드컵 코스타리카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 헤딩 역전골을 넣은 뒤 곧바로 윤덕여 감독에게 달려갔다.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는 모습과 똑같은 세리머니를 연출했다.

전가을은 당시 상황에 대해 "감독님은 아버지와 같은 분이다. 결코 화를 내신 적이 없을 만큼 우리들을 잘 다독여줬다"며 "특히 나같은 경우는 부상을 입고 계속 힘들어하는 상황 속에서도 믿고 경기에 출전시켜줬다. 기쁨을 함께 즐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가을의 말이 아니더라도 윤덕여 감독은 평소 인자한 지도자로 통한다. 훈련장에서는 엄하지만 평소에는 선수들을 다독이고 추슬리며 친근하게 다가갔다. 선수들은 이런 감독의 모습을 신뢰했다. 자연스럽게 감독과 선수 사이에 소통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런 윤덕여 감독도 딱 한 번 큰소리를 낸 적이 있다. 바로 스페인전이었다. 평소 보여주지 않았던 윤덕여 감독의 버럭하는 모습은 선수들에게 큰 울림이 됐다.

▲ 전가을이 지난 14일 열린 코스타리카전에서 역전골을 넣은 뒤 윤덕여 감독에게 달려가 안기고 있다. 전가을은 당시 상황에 대해 평소 인자하고 자신을 신뢰하는 감독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전가을은 "스페인전 전반은 이상하게도 힘이 없었다. 자연히 경기력도 최악이었다"며 "그러나 전반이 끝난 뒤 라커룸에서 평소 화를 내지 않던 감독님께서 '국민들에게 고작 이런 모습을 보여줄 거냐'고 일침을 놓으시더라. 이 때 정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회고했다.

만약 평소 윤덕여 감독이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고 혼을 내는 성격이었다면 선수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선수들의 적절한 동기 부여, 최고의 리더십과 만나다

여자축구 선수들은 여자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동기 부여가 상당히 컸다. 한국 여자축구의 환경이 개선되기 위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이미 이러한 사명감은 인천 아시안게임 이전부터 있었다. 국내에서 12년 만에 열리는 아시안게임이기 때문에 반드시 처음으로 결승에 올라 내심 금메달까지 따내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이에 앞서서는 2013년 동아시안컵에서 북한, 중국, 일본과 맞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이 사명감은 여자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촉매제가 됐다. 동아시안컵에서는 일본에 승리를 거뒀다. 비록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2012 런던 올림픽 은메달과 2011년 월드컵 우승팀인 일본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 윤덕여 감독이 지난달 경기도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박희영의 훈련을 지켜보며 지시를 내리고 있다. 윤 감독은 훈련 때는 엄하지만 평소에는 자상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선수들과 신뢰를 쌓았다. [사진=스포츠Q DB]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비록 결승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뤄내지 못했지만 북한과 4강전에서 투혼을 발휘,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사명감은 여자월드컵까지 이어졌다.

윤덕여 감독은 바로 이런 선수들의 모습에 감사했다. 윤 감독은 "선수들이 힘들어서 얼굴을 찌푸린 것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내 말을 거역하지 않고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일 없이 잘 따라줬다"며 "지도자 입장에서는 이런 선수들이 예쁘지 않을 수 없다. 선수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애썼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선수들이 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윤 감독은 부상으로 여자월드컵에 함께 하지 못한 여민지(22·대전 스포츠토토)와 신담영(22·수원FMC)을 끝까지 잊지 않았다. 윤 감독은 환영식 인사말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대표팀과 마음 속으로 함께 하고 뛰었던 여민지와 신담영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다. 평소 인자하기로 소문난 윤 감독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선수들의 동기부여는 강한 정신력으로 승화됐다. 그리고 윤덕여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십으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윤덕여 감독의 인자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은 곧 소통이었고 신뢰였다. 무조건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치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윤덕여 감독이 제대로 보여줬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제대로 된 리더라는 것을 윤덕여 감독이 몸소 실천했다.

▲ 윤덕여 감독이 2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16강 진출 환영식에서 답사를 하고 있다. 윤덕여 감독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자신을 잘 따라와준 선수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사진=스포츠Q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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