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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서영희, 낮은 채도의 연기주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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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서영희, 낮은 채도의 연기주술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6.27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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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좀 더 노력해서 ‘칸의 여왕’이 돼야 관객과 관계자들이 저를 보고 극장에 찾아오지 않을까요?”

시원한 웃음이 카페 안을 메웠다. 두 번째 칸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온 여배우 서영희(36)를 25일 오후 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10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섬마을 사람 7명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순박한 복남의 핏빛 복수를 신들린 듯 연기해 비평가 주간에 초청받았다. 올해 주목할만한 시선에 진출한 ‘마돈나’(7월2일 개봉)에선 위험한 제안을 받고 마돈나라는 별명을 가진 의식불명 환자 미나의 과거를 추적하는 간호조무사 해림을 낮은 채도의 연기로 그려냈다.

 

서영희는 세상사에 무관심한 텅 빈 눈빛으로 시작해 미나의 충격적 비밀과 하나씩 마주하며 연민, 절망, 후회, 분노의 감정을 채워간다.

“시나리오를 읽고는 마돈나의 삶이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누구의 잘못으로 저렇게 된 걸까, 화도 치밀었고. 나 역시 저렇게 될 수 있을 거란 공감대가 형성됐죠. 해림의 아픈 과거도 겹치면서 해림의 시선에 이 친구를 담아서 표현하면 어떨까.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비루한 행색의 여성 노숙자를 본 뒤 영감을 얻어 시나리오를 집필, 연출한 신수원 감독은 서영희를 캐스팅한 뒤 “잘 하니까 믿는다”란 부담 백배의 말을 툭 던졌다. “머리를 자르는 게 해림 캐릭터에 어울릴 거다”란 주문과 함께 전체적인 영화 컬러, 해림의 톤이 이 정도였으면 한다는 대화만 나눴다.

“배경과 분위기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지 연기상 디테일한 부분은 말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저 역시 촬영 전부터 틀에 가둬지는 걸 걱정스러워 해요. 그런 디렉션이 편안함을 빼앗기도 하고요. 신 감독님을 100% 믿었어요. 직접 쓰고 연출하는 거니까 그의 조언에서 해답을 찾으며 표현을 잘 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죠. 또 촬영 당시 여유가 별로 없어서 별다른 얘기를 나눌 틈도 없었고요.”

 

‘마돈나’는 배우 서영희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대사가 적은 영화다. 또 대사가 굉장히 시적이라 어색했다. 극중 냉혹한 재벌2세 상우(김영민)는 “해림씨 눈을 믿죠. 안에 빈방이 있어. 텅 빈 방. 배고프고 외로워서 그래. 뭘로든 채워” “당신 같은 눈을 갖게 될까봐 두려워”라고 말한다. 그런 눈빛을 살려내야 했고, 눈빛에 의지해 연기해야 했다.

“도전이었고 욕심이었어요. 맞는 욕심인지는 관객이 평가해주시겠죠. 어려울 거라 예상은 했으나 진짜 어렵더라고요. 감정선을 이어가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너무 보여줘서도 안 되고, 너무 감춰서도 안 되고...너무 다가가면 ‘왜 이렇게 까지 할까?’ 의문이 생길 테니까 그 폭을 잡는 게 힘들었어요. 다음에 비슷한 역할이 주어진다면 좀 더 고민해서, 숨소리 하나에도 감정을 담아가는 배우가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추격자’의 미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복남, ‘마돈나’의 해림. 극한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마다 평단은 환호했고,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대한민국 영화대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이 품으로 쏟아졌다. 반면 어떻게 저토록 정서적으로 힘든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심리치료가 필요하진 않을까란 우려가 고개를 내민다.

 

“맥주 한 잔이면 괜찮아져요. 우려하는 건 근육통 정도?(웃음) 촬영장에서만 힘들고 끝나면 털어버려요. 그 감정을 일상으로 끌고 오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지잖아요. 기억해야 할 많은 것들을 쉽게 잊어버리는 편이에요. 잊어버리려 많이 노력한 거죠.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많이 사긴 하나 배우로서 잘 활용하는 거죠. 대처 방법이기도 하고요.”

이제까진 촬영하면서 버거운 감정을 해소했는데 ‘마돈나’는 감정을 계속 누르며 연기하다보니 풀 시간이 없어서 힘들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있는 문제의 장면은 집에 온 뒤에도 감정이 남아 악몽까지 꿨다.

“다행스러웠던 건 출연 배우들이 너무 뛰어나 연기하는데 불안함이 없었다는 거예요. 더욱이 극중 해림은 사람들을 다 만나거나 쫓아가야 하는 역할이잖아요. 저도 불안한데 상대까지 불안하면 주저앉게 되거든요. 불편함이나 불안함이 없었기에 모두에게 감사드려요. 특히 미나 역 (권)소현이는 첫 영화인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엄청 자극을 얻었어요. 생활에, 현재에,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저 자신을 향해 ”정신이 썩었구나‘라고 채찍질을 했죠.“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서영희는 1999년 연극 ‘모스키토’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 꾸준히 출연해 왔으나 꽤 오랜 기간, 연기력에 걸맞은 인기나 지명도를 얻진 못했다.

 

“한때 힘들고, 연기하기 싫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꾸준히 계속 했기에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배우의 길을 운명처럼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아 신기해요. 시작부터 ‘19금’ 영화를 해서 보는 층만 보는 영화가 많아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남녀노소가 두루 좋아하는 친숙한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려고요. 아직도 극중 캐릭터와 저를 대입시키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서 일상 생활은 무지 편해요.”

희한하게 영화에서 어두운 캐릭터를 많이 맡는 반면, 드라마에선 ‘세결여’의 주하처럼 밝은 캐릭터가 주를 이룬다.

“이상하게 그렇게 됐어요. 드라마의 경우 이런 극단의 장르가 없는 이유도 있고요. 또 제 목소리 톤이 두꺼운 편이라 어둡고 센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도움을 많이 얻는 듯해요. 극과 극이긴 하나 배우에겐 득이 아닐까요? 선택의 폭이 넓고, 기회가 많은 거니까. 실제 성격은 딱 중간이에요. 긍정 마인드고 재밌는 일을 추구하는 사람이에요. 무거운 건 싫어해요. 20대엔 하늘을 날 것만 같은 밝음이었다면 30대는 차분한 밝음으로 바뀌었어요.”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마돈나’가 예술영화로 인식돼 대중이 회피할까봐 걱정스럽다”며 “결코 어렵거나 절망적인 영화가 아니다. 스펙터클하진 않으나 희망을 말하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에 공감이 이뤄져 귀가 길 내내 생각나는 영화이기를 바란다”고 소망을 전했다.

 

[취재후기] 서영희가 해림과 미나에 대해 무심한 듯 툭툭 내놓은 코멘트 가운데 곱씹어볼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스포일러 탓에 게재하질 못하게 된 점이 안타깝다. 풍부한 표정과 더불어 강인한 내면을 표현하는 내밀한 연기력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그가 ‘칸이 사랑한 여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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