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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반전매력 '서울대 출신' 여배우 이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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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반전매력 '서울대 출신' 여배우 이시원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5.01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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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신의 선물', 독립영화 '들개' '10분' 전천후 활약

[300자 Tip!] 여배우 이시원이 드라마 ‘신의 선물’, 독립영화 ‘들개’ ‘10분’에 연이어 출연하며 각기 다른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 대학원에서 진화심리를 전공한 재원이다. 뒤늦은 나이에 연기열정 하나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불안함보다 “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서 신명난다”고 말한다. 올 여름에는 공포영화 ‘터널’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공신’의 비결이었던 인내로 배우생활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그는 예쁘고 여린 역할보다 자신의 실제 모습인 에너지 넘치는 열정적인 캐릭터를 소망한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조막만한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의 이시원(27). 대중에게는 낯설지도 모르겠다. 스포츠Q가 이 여배우를 주목하는 이유는 ‘서울대 출신 재원’이라는 레테르 때문은 아니다.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개성보다 어디든 스며들어 ‘그 자체’가 돼버리는 능력 때문이다. 영리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넉넉하게 미래를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한 ‘여우’를 28일 삼청동 카페 ‘스미스가 좋아하는 한옥’에서 만났다.

◆ 드라마 ‘신의 선물’, 독립영화 ‘들개’ ‘10분’ 전방위 활약

SBS 월화극 ‘신의 선물-14일’에서 기동찬(조승우)의 첫사랑 이수정 역을 맡아 짧지만 굵은 인상을 남겼다. 무진으로 여행 온 대통령의 아들이 마약에 취한 모습을 목격한 뒤 약기운에 취한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비운의 여자다. 극중 해맑은 시골여자로 나와 동찬과 달콤한 키스신을 나누며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개봉한 두 편의 독립영화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사제폭탄을 만드는 두 남자를 통해 청춘의 억눌린 분노를 표출한 ‘들개’에서는 주인공 정구(변요한)의 대학원 경영학과 연구소 조교 시원으로,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직장 초년생의 초상을 그린 ‘10분’에서는 호찬(백종환)의 정규직 자리를 가로채는 낙하산 신입사원 송은혜로 분한다.

 

“‘신의 선물’은 재밌고 인상적이었어요. 데뷔를 사극 ‘대왕의 꿈’으로 해서 첫 현대물이었거든요. 엄청난 데다 독보적이기까지 한 배우 조승우 선배님과 공연해서 영광이었죠. 영화 ‘클래식’ 때부터 팬이었거든요. 후후. 독립영화 출연은 자연스럽게 이뤄졌고요. 제 취향이 원래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들개’의 김정훈 감독과는 서울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다. 7년 전 동아리방에서 처음 만난 뒤 두어 차례 만났는데 ‘특이한 후배’라는 생각을 갖게 된 김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시원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교수님을 정점으로 한 대학원 연구실이 일반 직장 이상으로 숨막히고 치열해요. 소수의 사람들이 협업하면서 지내는 체제니까요. 익숙한 공간이라 무리 없이 시원 캐릭터에 녹아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10분’ 낙하산으로 정규직 꿰차는 여우같은 송은혜로 주목

‘10분’은 오디션을 통해 합류했다. 엄친딸 은혜는 입사 이후 무서운 친화력을 발휘해 사무실의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간다. 이후 프레젠테이션에서 문제를 일으키자 책임을 호찬에게 슬쩍 전가한 뒤 사표를 집어던지고 홀연 사라진다.

“은혜는 쿨해요. 나쁜 애는 아니죠. 그렇게 만들어졌고 살아왔던 애일뿐이죠. 감독님이 자유롭게 해주셔서 직접 만든 대사와 상황이 꽤 있었어요. 호찬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좌절을 안겨주는 인물로 캐릭터를 잡은 뒤 ‘값싼 동정과 자비’에 포인트를 줬죠. 상대방을 비참하게 만드니까. 영화를 보면 은혜는 호찬에게 계속 뭔가를 줘요. ‘파이팅!’ 하며 응원하고, 사탕과 컵케이크를 주고, 그런 행동이 종찬을 비참하게 만들죠.”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지진대피 훈련신을 거론한다. “지진발생 시 당황하지 마시고 낙하물에 대비하여~~다시 업무로 돌아가셔서 수고하십시오”라는 안내방송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송은혜 캐릭터 자체가 갑작스레 찾아온 지진같은 존재인 데다 훈련에 임하는 직원들의 표정과 행동을 먼발치서 지켜보는 호찬의 시선이 이 영화에서 무척이나 중요해서다.

“호찬이 정규직 입사를 할 것인지, 꿈을 쫓아 살 것인지 결정을 앞두고 벌어지는 상황이잖아요. 선택에 직면해 갈등하는 그에게 이런 풍경이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염두에 두고 촬영한 상징적인 장면이거든요. ‘10분’은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문제, 청춘의 불안정한 미래를 다루고 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대학 때까진 최고의 엘리트 대접을 받았지만 졸업 이후엔 싹 사라져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불안과 압박에 시달려야만 하죠.”

◆ 아웃사이더 서울대생...연극반 활동 이어 대학원서 진화심리학 전공

그의 표현에 따르면 현재가 ‘가장 밑바닥이자 불안한 시기’다. 그럼에도 너무 좋다고 한다. 뻔하게 살지 않아서다. 이시원은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대학원에서 진화심리학을 전공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목숨 걸고’ 영화관에 들락거렸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교내 연극과 단편영화의 주인공을 휩쓸었다.

 

사회현실 혹은 성취와 성공에 집중하는 전형적인 서울대생은 아니었다. 한량 스타일의 아웃사이더였다. 졸업 무렵 진화심리학에 꽂혀 진로를 대학원 입학으로 정했다. 존경하는 교수 밑에서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학업을 마쳤다. 졸업논문 주제는 루머와 평판으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의 심각성을 다룬 ‘평판’이었다. ‘피겨퀸’ 김연아 비난사건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교수의 길은 탄탄대로로 여겨졌다. 그런데 연기자로 터닝했다. 부모님보다 담당 교수님의 상실감이 더 컸다.

“연기에 천부적 재능을 지닌 사람은 아니지만 꽁꽁 눌러왔던 연기에 대한 갈망이 저를 끌어당겼죠.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가끔 ‘내가 뭐하고 있지?’란 고민에 빠지기도 해요. 그래도 한계단씩 의미 있는 발걸음을 하고 있구나, 위안하죠. 지금까지 제가 살아왔던 모습을 되돌아보면 적당한 긴장과 리스크를 즐겨요. 인생은 탐험하고 모험하면서 살아야 재미나고 나이 들어서도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요. 제가 호불호가 확실하거든요. 한번 결정하면 이름처럼 시원하게 나가요.(웃음)”

◆ 오는 8월 공포영화 ‘터널’의 착한 유경으로 관객에 인사

올여름 이시원은 공포영화 한 편으로 관객과 만난다. ‘터널 3D’는 폐탄광 지역에 조성된 고급 리조트로 여행을 간 20대 남녀들이 미스터리한 사건을 겪게 되는 내용의 영화로 정유미, 연우진, 송재림, 도희 등이 출연한다. 이시원은 6명의 20대 남녀무리 가운데 정 많고 착한 유경 역을 맡았다. 나머지 5명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인물이자 가장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고생 캐릭터’다.

 

“언니 오빠들 틈바구니에서 재밌게 작업했어요. 소리를 빽빽 지르다보니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호러가 저와 잘 맞는 장르임을 깨달았죠. 하하. 후시 녹음 때는 혼자 비명을 지르는데 음향기사님께서 ‘말 좀 하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알고보니 중얼거리는 웬 남자목소리가 삽입이 됐더라고요. 오싹한 공포체험까지 했다니까요.”

◆ 늦게 시작한 연기, ‘공신’의 비결이었던 인내로 개척

느즈막한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 부족함을 본인 스스로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배우고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곧추세운다.

“공부 잘하는 비결, 능력을 묻는 분들이 많은데 제 대답은 인내예요.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공부를 해왔듯이 그런 점이 배우로서도 장점일 거라 믿어요. 지금 뛰어난 배우들을 보더라도 그런 시기를 겪어온 분들이잖아요. 저도 끈기와 독함이 있거든요.”

‘프리다’의 셀마 헤이엑, ‘장밋빛 인생’의 마리옹 꼬띠아르, ‘가장 따듯한 색, 블루’의 레아 세이두를 좋아하는 여배우로 꼽는다. 열정적인 여성상을 강렬한 연기로 그려낸 공통점이 있다. 말간 이미지인데 의외다 싶게 에너지 넘치고 뜨거운 여우를 꿈꾼다.

“여리고 예쁜 이미지에서 벗어난 에너지 충만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요. 겉으로 보여지는 이면의 뭔가가 있는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반전 매력요. 하지만 남자친구는 무조건 착한 사람이어야 해요. 속이려 들거나 악의가 있는 건 질색이거든요.”

 

[취재후기] 연기 현장에서 과거 자신의 전공에 대한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한다. 배우들이 ‘딱딱한 게껍질’같은 존재라서다. 가장 ‘핫’하지만 평판과 루머에 가장 취약한 직업군이다. 배우로서 자리를 잡은 뒤 전공을 활용해 배우들을 위한 ‘일’을 해볼 생각이다. 루머와 비난에 직면했을 때의 대처법을 묻자, “키워드는 담대함과 외면”이라고 즉답했다. 시원시원하게.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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