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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그것이 알고 싶다 '인분교수' 편, 악마를 만드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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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그것이 알고 싶다 '인분교수' 편, 악마를 만드는 사회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5.08.10 0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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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류수근 기자] ‘인두겁을 쓰다’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만 사람의 형상을 하였다는 뜻으로, 행실이나 바탕이 사람답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최근 들려오는 이런 저런 범죄 소식들을 접하다 보면 이 세상에 ‘인두겁을 쓰지 않은 사람’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8일 밤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인분교수의 아주 특별한 수업'이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이날 방송 내용이 사실이라면 사건의 가해교수도 인두겁을 썼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인분교수’ 사건은 한 디자인 관련 협의회 회장직에 있던 교수와 사무국 직원 세 명이 2년여 간 한 남자를 사무실에 감금한 채 상습적인 폭행을 해온 충격적인 사건을 다뤘다.

피해자 A씨가 그간 가해교수에게 당했던 악몽을 털어놓고 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이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사건 피해자인 A씨의 인터뷰가 방송됐다. 피해자 A씨는 가해 교수에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상습적인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가해교수는 폭행만이 아니라 A씨에게 인분을 강제로 먹이고 매운 ‘가스’가 든 비닐봉지를 얼굴에 씌우는 등 비인간적인 일을 당했다.

상상하기도 힘든 ‘인분교수’ 사건은 깊은 산속이나 세상과 격리된 공간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더 충격적이다. 우리가 오가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때문에 사건내용을 뉴스를 통해 처음 접했을 때부터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 수 있나’라는 의아심이 들었다.

안면부에 2도 화상, 왼쪽 다리의 염중부터 어깨뼈 골절까지... 평범한 사무실에서, 고학력의 피해자인 제자가, 세상으로부터 존경받는 교수와 그 제자 직원으로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날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에 대한 궁금증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언뜻 생각하면 30세 청년 A씨는 이 지옥과도 같은 ‘인분교수’ 사무실에서 도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온몸에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떠안은 뒤에야 ‘인분교수’와 그 직원들의 악행을 고발할 수 있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인분교수’편이 던진 의문을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피해자 A씨는 왜 사무실에서 뛰쳐나오지 못하고 당하고만 지냈을까?', 둘째는 '가해 교수가 대외적 평판과는 정반대로 상상하기도 힘든 악행을 저지른 이유는 뭘까?', 셋째는 '가담한 세 제자 직원은 왜 교수의 악행을 고발하지 않고 공범자가 됐을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피해자 A씨가 그동안 ‘인분교수’로부터 탈출을 감행하지 못한 이유를, 고문에 버금가는 학대를 받으며 “무기력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학습된 두려움에 자아 의지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양상은 다르지만 ‘세모자’ 사건 때 세뇌의 공포를 떠올린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가해교수는 "미안하다"면서도 "제자가 잘 되기 위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그것이 알고 싶다’는 두 번째 의문의 답을, 가해교수가 쥐고 있는 ‘권력’에서 찾았다. 교수사회의 폐쇄성도 지적됐다. ‘인분교수’는 해당 분야의 학회에서 전설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국가로부터 포상도 받았고, TV프로그램 심사위원을 맡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 회장으로 있는 협의회는 그에게 인맥 관리의 어장같은 역할을 했다.

한마디로 그에게 밉보이면 같은 바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면 교수가 될 수 있다고 틈만 나면 강조하고, 이미 교수를 시킨 사례를 자랑처럼 얘기하곤 했다고 한다. 사법당국도 자유스럽지 못해 보인다. 그의 횡령사건이 터졌지만 그간의 공로를 참작해 벌금형이라는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는 것이다.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법’이 무력화될 때 어떤 악영항이 빚어지는지는 역사가 잘 말해준다.

‘인분교수’ 사건과 관련한 세 번째 의문에 다다르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피해자를 괴롭히는데 가담한 세 제자들은 가해교수의 악행을 알면서도 제지하기는 커녕 지시에 따랐다. 방송에 따르면 가해교수의 말에 따라야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교수의 악행이 나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가해교수의 명을 거역하면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과 이기심이 공범의 굴레에 빠뜨렸다고 볼 수 있다.

‘인분교수’의 악명과는 달리 가해교수는 대외적으로는 인품 있고 학식있고 존경받는 교수였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유형 무형의 ‘권력’은 그를 점점 더 악인의 길로 인도했다. 악행을 저질러도 가로막을 사람이나 수단이 없는 현실에서 죄의식은 점차 무뎌져 갔다고 볼 수 있다.

가해교수는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제자 잘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진심어린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인분교수’ 측과 그의 측근들에게 다각도로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대부분 피하는 모습이 나왔다. 측근들로서는 해당 분야에 미칠 영향은 물론, 향후 가해교수가 풀려났을 때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칫 가해교수의 범죄를 두둔하고 방조하는 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새겼으면 한다. 악의 고리를 끊을 때 비로소 해당 분야도 정화될 수 있을 터다.

‘인분교수’는 한 제자를 노예로 만들고 다른 제자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노예처럼 갖은 학대를 당해온 피해자는 육체적인 상처는 물론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인간의 비뚫어진 언행이 평범한 인간의 꿈과 정신을 어떻게 무참히 짓밟을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인분교수’ 사건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관행으로 남아 있는 비정상적인 악습들이 응축돼 나타난 가슴 아픈 사건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다.

악의 씨앗은 어쩌면 작은 방심과 무관심에서 시작된다.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누구든 공범자가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자신과 이웃, 사회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나는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이나 영향력을 손에 쥐려고 하지는 않는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의 무시로 말미암아 누군가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방송에 따르면 가해교수는 제자들간의 철저한 계급화, 인민재판식의 처분이라는 ‘특별한 수업’을 통해 제자들에게 공포심을 극대화하고 충성을 유도했다. 이를 통해 ‘인분교수’는 자신을 무소불위의 존재로 만들었다.

피해자 A씨는 이번 사건으로 모든 꿈을 잃어버렸다고 밝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사건의 전말은 사법당국의 수사와 판단에 의해 철저히 가려져야 하겠지만 거기에서 사건이 마무리되면 안된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발생시킨 사회적 ‘불량 토양’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힘과 관력, 부정 앞에 관대하고 의지하려는 풍토가 남아 있으면 언제든지 유사한 사건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의사에 따라 범죄를 실제로 저지른 사람을 '정범(正犯)', 방조한 사람을 '종범(從犯)'이라고 한다. 죄질의 차이는 있더라도 ‘정범‘이든 ’종범’이든 한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데 영향을 미쳤다면 용서받기 어렵다. 악을 방치하고 눈감다 보면 너와 나 할 것 없이 부지불식간에 공범자가 될 수 있다.

“20대 꿈밖에 없었다. 99%가 다 꿈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꿈을 잃어버렸다“는 피해자 A씨의 말이 가슴을 울렸다. ‘인분교수’를 감옥에 보낸다고 피해자의 꿈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인분교수’ 사건은 우리 사회에 진지한 자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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