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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힐링캠프' 서장훈,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주는 '짠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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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힐링캠프' 서장훈,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주는 '짠한 울림'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5.09.22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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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류수근 기자] “국가가 내게 해준 게 뭐 있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개그 콘서트’의 화제 코너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에서 술주정꾼 박성광이 조서를 꾸미려는 경찰을 향해 횡설수설, 그러나 뚜렷하게 내뱉던 말이다. 벌써 끝난 지 5년도 넘은 코너의 유행어지만 지금도 심심찮게 회자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세상살이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유행어의 생명력을 유지시키고 있다.

21일 밤 방송된 SBS ‘힐링캠프’를 보면서 문득 이 유행어가 떠올랐다. 이날 주인공은 한국 농구의 레전드인 ‘괴물센터’ 서장훈이었다.

▲ 김제동이 진행하는 SBS ‘힐링캠프’는 지친 마음을 힐링시켜 준다는 취지아래 방송되고 있는 토크쇼다. 하지만 1대 500이라는 관객과의 소통방식으로 프로그램의 형식을 바꾼 이후 예상만큼 두드러진 반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21일 방송된 ‘힐링캠프’에서 밝힌 서장훈의 인생고백 한마디 한마디는 절실하게 다가왔다. 현역시절 한국 프로농구에서 전설을 썼던 ‘큰 선수’의 삶과 고뇌가 고스란히 전달된 시간이었다. 이날 서장훈 편은 ‘힐링캠프’ 본연의 기획의도가 충분히 살아난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진=SBS '힐링캠프' 방송 화면 캡처]

“즐겨라”는 말이 제일 싫었다는 서장훈, 그는 1등을 위해 올인하면서 결벽증에 가까운 징크스도 생겼다. 그의 입에서는 ‘전쟁’처럼 싸웠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저렇게 살지?” “정말 주변에서 불편했겠다!” 서장훈이 처음 자신의 징크스를 여과없이 소개할 때는 “세상에 저럴수가”라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서장훈만의 룰’들. 하지만 그 징크스들이 생긴 배경을 전해 들으면서 차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진한 감동을 넘어 소름이 돋을 만큼 공감이 갔다.

서장훈은 강해지기 위해, 더 강하게 보이기 위해, 즐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문 노력의 대가가 누군가에게 저지를 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는 강하게 어필했다. 그래서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정식경기에서 운좋게 첫 골을 넣은 후 느꼈던 ‘두근거림’, 그러나 그것이 ‘즐김’의 마지막이었다.

생경한 서장훈의 고백이었지만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건 왜일까?

‘힐링캠프’를 이끄는 김제동은 그 공감을 “짠하다”는 말로 표현했다. 필자는 “안쓰럽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필자를 포함해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이들의 ‘자소서’같은 느낌을 받았다.

좁은 땅에 자원과 인구에 비례해 먹을 것과 양질의 일자리는 절대 부족하다.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압축성장 과정에서 뒤돌아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내달렸다. 현대 젊은이들은 ‘3포’ ‘5포’를 넘어 ‘7포’ 세대에 살며 ‘낙(樂)’을 잃었다.

‘즐기면서 하라’는 말은 참 좋은 얘기다. 하지만 여유있는 사람들의 ‘사치어’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우리는 오늘도 ‘전쟁’ 속에 살고 있다. 오늘 이 땅에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 ‘두근거림’과 ‘설렘’을 오감으로 느끼며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프로그램 말미에 서장훈은 새로운 영역에서 대중들의 사랑을 느끼는 요즘에 대한 즐거움을 표했다. 뒤늦게나마 ‘즐기는 삶’을 깨달은 그의 모습이 다행스러워 보였다.

우리는 무엇이든 ‘최고’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노력의 과정'에 더 방점을 두고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최선’을 다했다고 만족할 수 없는 ‘전쟁’같은 현실이다. 1등이 아니면 대우받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자신만의 룰’로 행운을 기원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힐링캠프’에서 털어놓은 ‘서장훈만의 룰’이 우리 모두의 되뇌임같은 측은지심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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