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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4) ‘영도’ 손승웅 감독, "영도 이미지 실추시키는 영화? 저도 영도구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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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4) ‘영도’ 손승웅 감독, "영도 이미지 실추시키는 영화? 저도 영도구민입니다“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5.09.26 0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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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원호성 기자·사진 최대성 기자] 강력범죄가 발생해도 언론에서는 가급적 피의자의 신분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피의자가 설령 죄를 자백했다고 해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최종 재판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그를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으며, 피의자 뿐 아니라 피의자와 관련된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원칙이 너무도 당연하게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연쇄살인마의 경우다. 연쇄살인마가 검거되면 언론은 그 진위를 가리기 이전에 연쇄살인마의 신상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며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버린다. 그리고 평소에는 ‘인권’을 외치던 사람들 역시 연쇄살인마의 천인공노할 범죄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손가락질을 하며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손승웅 감독의 첫 장편영화 ‘영도’는 바로 이 지점에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연쇄살인마의 죄는 물론 비난받고 처벌돼도 물론 마땅하다고 하지만, 연쇄살인마의 가족들에게도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는 질문이다. 1981년생. 이제 30대 중반의 나이에 첫 장편영화를 내놓은 신인감독치고는 상당히 묵직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 ‘연쇄살인마도 한 명의 인간이었다’ 손승웅 감독의 다르게 보기

▲ '영도' 손승웅 감독

손승웅 감독의 ‘영도’에 ‘유영철’이라는 인물이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영도’는 2003년부터 2004년에 걸쳐 2년 동안 무려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유영철 이야기가 근간에 깔려 있다.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라고 한다면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 ‘추격자’가 잘 알려져 있지만, ‘영도’는 ‘추격자’처럼 유영철 사건 그 자체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연쇄살인마 유영철’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평생 죄인처럼 숨어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든다.

물론 ‘영도’는 처음부터 ‘유영철 사건’을 그린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은 아니었다.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하던 시절부터 사회성 짙은 단편영화를 만들어오던 손승웅 감독은 첫 장편영화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이미 구상하고 있었고, 이 이야기의 풀이가 막힌 지점에서 ‘유영철’이라는 연쇄살인마의 이야기와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에 초고만 나온 시나리오에서도 인물의 성격이 지금의 ‘영도’와 크게 다르진 않았어요. 그런데 뭔가 이야기도 비현실적이고, 이 작품이 영화화가 된다고 할 때 관객들이 공감을 느낄 부분이 없어 지지부진한 상태였죠. 그 즈음 우연히 TV에서 유영철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습니다. 다른 부분보다도 당시 형사가 유영철과 나눈 대화를 이야기하는데 그 부분이 강하게 인상에 남더라고요. 유영철에게도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유영철이라는 잔인한 연쇄살인마도 ‘아들’이라는 단어에는 많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그 역시 사람이었다는 말이었죠. 이 방송을 보고 쓰고 있던 시나리오에서 주인공의 과거사로 대입해보니 그때부터 이야기가 술술 풀리더라고요.”

‘영도’의 주인공 영도(태인호 분)는 연쇄살인마 그 자신이 아닌 아버지가 연쇄살인마라는 이유로 결국 사회의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진 사람이다. 영도는 자신의 운명을 바꿔버린 아버지의 존재를 지우려하지만, 그럴수록 사회는 더욱 강하게 영도를 향해 ‘연쇄살인마의 아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마치 영도의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기듯 말이다.

“유영철 사건을 영화의 모티브로 하게 됐지만 이것을 자극적인 소재로 이용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유영철과 그 아들이 가진 사연들을 사회적으로 한 번 고민해볼 여지가 있도록 쓰려고 노력했죠.”

‘영도’의 결말은 우울하다. 영도가 ‘연쇄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결국 자신이 그토록 저주하고 증오하던 아버지의 핏줄, 그리고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손승웅 감독은 이런 영도의 비참한 운명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두 명의 너무나 비교되는 인물을 꺼내든다. 영도와 달리 아버지의 존재를 지우고 자신의 존재도 지운 채 살아가는 형 일도와 마지막에 등장하는 어린 시절의 영도를 닮은 소년이 그들이다.

“처음에는 영도 한 사람의 이야기였지만,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변에 물어보니 ‘그렇게 어떻게 사냐? 나 같으면 이름을 바꿔서라도 숨어 살겠다’는 말들을 많이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영도에게 선택지를 주고 싶었어요. 아버지의 존재를 지우고 숨어서 사는 ‘일도’라는 사람과 아버지의 존재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그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영도’, 그리고 마지막은 환경이 원인이든 본성이 원인이든 자신의 핏줄에 잠재된 본능을 일깨운 아이. 제 욕심일지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한 인물에게 세 가지의 인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주고 싶었어요.”

◆ ‘영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영화라고요?’ 손승웅 감독의 깊이 바라보기

▲ '영도' 손승웅 감독

‘영도’가 개봉하는 9월 10일 오전, 손승웅 감독은 예상치 못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영화 ‘영도’의 배경이기도 한 부산 영도구 구의회 의장의 전화였다.

“구의회 의장님이 저에게 전화를 주셔서 영도구민들이 항의전화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안 그래도 살기 힘든 동네인데, 영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영화가 나오는데 구 차원에서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사실 손승웅 감독은 부산 영도 토박이다. 태어난 곳도 부산 영도였고, 대학도 부산에 있는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계속 영도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렇기에 손승웅 감독도 영도구민들이 ‘영도’라는 영화에 대해 왜 걱정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대놓고 ‘영도’라고 제목을 달고 나오는 영화가 하필이면 연쇄살인마와 그 아들에 대한 이야기라니.

부산 영도구가 ‘구(區)’라고 부르기도 미안할 정도로 부산에서 유난히 낙후된 지역이다보니, 지역주민들 입장에서는 ‘영도’라는 영화가 안 그래도 낙후된 이미지의 영도를 더 안 좋은 이미지로 그려내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처음 전화를 받고 저도 내심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저도 영도구민이기에 충분히 공감 가는 이야기였어요. 영도가 오래전부터 재개발이 되니 안 되니 하면서 지역주민들의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는 곳이거든요. 남포동이라는 부산의 번화가가 눈앞에 있지만 영도대교 하나만 건너서 영도에 들어오면 여기가 부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풍경이 그려져요. 구의회 의장님도 지금도 인구가 많이 줄었는데, 영화가 개봉하면 인구가 더 빨리 주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시길래 저는 영화를 보시면 제가 영도를 비하하고자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거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부산 영도는 매우 특별한 장소다. 손승웅 감독의 말처럼 부산 최대의 번화가 중 하나인 남포동과 바로 인근에 있지만, 영도대교 하나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좁은 산복도로와 가파른 산기슭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영화 ‘영도’에서 주인공 영도의 집으로 나온 아파트 역시 처음 생겼을 때는 영도의 첫 번째 아파트로 대단한 관심을 모았지만, 지금은 재개발도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흉물처럼 버려진 공간일 뿐이었다.

“영화의 제목을 ‘영도’로 정하고 영화를 부산 영도에서 촬영한 것에는 물론 제가 살던 곳이기에 잘 안다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요. 영도(影島)라는 섬 이름 자체가 ‘그림자 섬’이라는 뜻이고, 주인공 영도도 연쇄살인마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또 도심에서 가깝지만 낙후된 영도라는 공간의 특성이 보통 사람들과 떨어진 채 살아가는 영도 같은 인물하고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 ‘그저 태인호 선배만 믿고 갔습니다’ 손승웅 감독의 가까이 보기

▲ '영도' 주인공 태인호와 연출을 맡은 손승웅 감독. 이들은 경성대학교 1년 선후배 사이다.

‘영도’라는 영화는 손승웅 감독이 연출을 맡았지만, 이 영화는 손승웅 감독의 경성대학교 1년 선배인 태인호라는 배우가 없었으면 완성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드라마 ‘미생’에서 한석률(변요한 분)을 괴롭히던 섬유팀 성대리를 연기한 태인호는 ‘영도’에서 연쇄살인마 아버지의 핏줄과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도를 그야말로 섬뜩할 정도로 처절하게 연기해낸다.

“학교 선배님이고 대학 단편영화부터 계속 작업을 같이 해와서 처음부터 태인호 선배를 영도 역할에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어요. 태인호 선배가 저렇게 겉모습은 착하고 순해 보여도 속은 완전히 부산 상남자거든요. 영도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제가 연출로서 손을 대기보다 전적으로 태인호 선배의 해석을 믿고 갔습니다. 영도라는 인물 자체가 허구의 인물이고 자칫 과장되게 연기하면 비현실적일 수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태인호 선배에게 시나리오를 툭 던져주고 오롯이 태인호 선배 혼자 영도라는 인물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태인호는 그런 손승웅 감독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쉬는 날 없이 26회차 동안 연속으로 진행된 촬영 강행군을 이어가며 태인호는 점점 영화 속 영도의 모습을 닮아가기 시작했고, 손승웅 감독은 정말 처음에 한 말처럼 태인호의 연기에 과도한 개입을 자제하며 그가 변해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대학 선후배 사이로 서로 두터운 신뢰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영도’를 좋게 봐주신 분들이 계셔서 지금 스릴러 영화 한 편의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사 쪽에서 저에게 먼저 ‘다음 영화에도 태인호 배우 당연히 출연하는 거지?’라고 물어보더군요. 사실 태인호 선배님이 요즘 부쩍 인기가 늘면서 같이 작업하고 싶어하는 감독님들이 많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다음에도 제 영화에 출연해 주실지는 모르겠어요. 저야 물론 태인호 선배가 제 페르소나가 돼 주시면 그보다 더한 영광이 없겠죠. 그렇게 된다면 다음에는 영도처럼 강한 역할말고 팬들이 원하는 예쁘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이미지로 함께 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영도’ 손승웅 감독은?

손승웅 감독은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영화를 배운 이후 부산에서 계속 단편영화 작업을 이어왔다. 2006년 연출한 단편영화 ‘시원하시죠’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초이스 단편부문에 초청됐고, 2009년 연출한 단편영화 ‘미싱’은 부산 메이드인 독립영화제 우수상과 한일해협권 영화제 장려상을 수상했다. 첫 장편영화 ‘영도’는 부산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을 받아 만들어졌으며,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되어 상영됐다.

[취재후기] 손승웅 감독은 부산 출신으로 부산 경성대학교에 진학해 부산에서 계속 영화작업을 해온 감독이다. 첫 장편영화 ‘영도’ 역시 부산에서 부산 영화인들의 힘을 모아서 만든 영화다. 그는 취재에서 서울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부산의 영화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 어떤 분야보다도 문화 분야에서 서울로의 지나친 편중현상이 심화되는 이 시대에, 부산이라는 지역에 특별한 애향심과 자부심을 가지는 손승웅 감독처럼 서울이 아닌 지방을 무대로 활동하는 영화인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그리고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지방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될 수 있기를 마음으로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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