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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17) '앞은 안보여도 심장으로 메친다' 이민재의 설욕, 그리고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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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17) '앞은 안보여도 심장으로 메친다' 이민재의 설욕, 그리고 도약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4.03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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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장애인AG 유도 동메달리스트, 패배 안긴 선수들 향한 설욕의 2015년...'리우서 꼭대기에 선다'

[300자 Tip!] 소치 동계올림픽과 브라질 월드컵, 인천 아시안게임의 여운도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 같은데 내년에 벌써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열린다. 아직 500일 정도가 남긴 했지만 내년 벌어질 대표 선발전과 올림픽을 앞두고 선수들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이는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도 같다.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의 기쁨과 아쉬움을 곱씹을 사이도 없이 리우 패럴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2015년은 바로 내년을 위한 준비의 해다.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남자 유도 60kg급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이민재(24·양평군청)도 패럴림픽을 앞두고 벌어지는 마지막 세계대회 출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세계대회에서 확실한 성적을 거둬 내년 패럴림픽에서 상승세를 타기 위한 추진력을 얻겠다는 의지다.

▲ 이민재의 왼쪽 눈은 아예 보이지 않고 오른쪽은 형체만을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목표만큼은 분명하다. 바로 내년 리우 패럴림픽이다.

[양평=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이민재는 시각장애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뇌수막염을 앓았다. 하지만 앞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왼쪽 눈으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지만 오른쪽 눈이 남아 있다. 오른쪽 눈을 통해 형체 정도를 알아볼 수 있다. 형체와 목소리를 듣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금방 알아챈다. 장애 등급으로는 2등급(B2)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유도를 할 수 있느냐고 의아할 수도 있다. 장애인 유도는 서로 도복을 잡은 상태에서 경기가 시작된다. 보통 유도가 도복을 잡히지 않기 위한 치열한 경쟁부터 시작하는 반면 장애인 유도는 도복을 잡고 시작한다. 장애인 유도에는 시각장애인 말고도 청각장애인이 출전하는 종목도 있지만 패럴림픽에서는 시각장애인 유도만을 정식 종목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민재가 처음 도복을 입기 시작한 것은 2010년의 일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씨름을 했던 그는 주위의 권유를 받고 유도로 전향했다. 이민재는 경운대학교에 재학중이던 2010년 터키 세계장애인선수권과 함께 2012년 런던 패럴림픽 남자 유도 대표로 참가했다.

◆ "2015년은 설욕의 해, 내년 패럴림픽 정상에 오른다"

그러나 매트 위에 설 때마다 늘 그의 앞을 가로 막은 선수들이 있었다. 런던 패럴림픽 당시 라민 이브라히모프(아제르바이잔)에게 1라운드에서 패해 패자부활전으로 밀렸던 이민재는 패자부활 결승까지 올라 메달을 노렸지만 모울루드 노우라(알제리)에 한판을 내줘 5위에 만족해야 했다.

이민재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벌어졌던 세계장애인선수권에서는 저스틴 칸(캐나다)와 1회전에서 굳히기로 지는 바람에 메달권에도 들지 못했다.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노렸지만 세예드 메이삼 바니티바 코람(이란)에 한판으로 져 결승에 나가지 못했다.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는 만족할 수가 없다.

▲ 이민재는 여러 국제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던 강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꺾었던 강자들에게 하나씩 설욕해나가고 있다.

이처럼 자신이 속한 남자 60kg급에는 너무나 많은 강적이 있다. 내년 패럴림픽을 앞두고 이민재는 올해를 이들을 향한 설욕의 해로 삼았다. 이들을 넘지 않고서는 리우 패럴림픽에서 자신이 목표로 하는 금메달을 따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민재는 장애인아시안게임이 끝난 뒤에도 훈련에만 매진했다. 지난달 헝가리 에게르에서 열린 장애인유도월드컵까지 4개월 동안 동계훈련에만 매달렸다.

"아직 허벅다리 걸기밖에 없어서 경쟁 선수들에게 많이 기술이 많이 노출됐거든요. 업어치기를 연마하고 상대의 굳히기 기술에 대비하는 훈련을 많이 했습니다. 또 체력 위주로 훈련했기 때문에 체력에 자신감이 많이 붙었죠."

◆ 한 명 물리쳤더니 또 다른 강적 "다음 대회서 설욕해야죠"

이민재는 장애인유도월드컵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웠다. 특히 지난해 9월 세계선수권 1회전에서 자신을 울렸던 칸을 밭다리 걸기 한판으로 이기고 결승까지 올라 제대로 복수했다.

물론 또 다른 경쟁자가 생겼다. 결승전에서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셔르조드 나모조프(우즈베키스탄)에 져 준우승에 그친 것. 칸은 물리쳤지만 나모조프라는 새로운 설욕 상대가 생겼다.

"나모조프는 용인대에서 훈련하면서 종종 봤던 선수예요. 대련도 물론 해봤죠. 하지만 훈련 때 맞붙어보는 것과 실전에서 하는 것은 많이 달라요. 기술이 제대로 걸리지 않더라구요."

▲ 이민재의 당장 목표는 리우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또 이민재는 3년 뒤 자카르타 장애인아시안게임까지 바라보고 있다.

이민재가 설욕전으로 삼는 무대는 오는 5월 8일부터 18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다. 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는 단일 종목이 아닌 육상, 축구, 골볼, 유도, 역도, 수영, 볼링, 체스 등에 걸쳐 벌어지는 종합대회다.

"이번 대회에 나모조프를 비롯해서 이브라히모프와 노우라, 코람이 모두 출전할 예정이예요. 코람의 경우 개인 문제가 있어서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는 내년 패럴림픽 출전 쿼터가 걸려있기 때문에 출전한다고 해요. 저를 이겼던 상대에게 두 번 질 수는 없죠."

이민재는 한 번 졌던 상대에게 또 지는 것은 너무나도 싫다고 한다. 이미 지난달 월드컵 당시 칸과 4강전에서 절대는 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라. 지면 다시 처음부터 힘든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더니 밭다리 걸기 한판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한 달 정도만 남았기 때문에 기술을 새로 만들거나 바꾸기엔 시간이 너무 짧고요. 갖고 있는 기술을 연속 동작으로 연결하는 것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또 헝가리 월드컵에 다녀오느라 약간 지친 피로도 풀어야죠. 이번 대회가 패럴림픽을 앞둔 마지막 세계대회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강호가 모두 나오니까 제대로 붙어봐야죠. 그래야 제 실력을 제대로 알 수 있잖아요."

◆ 다음달 서울 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가 리우 전초전

양평군에서 체력 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용인대에서 대련 훈련을 하는 바쁜 일상이지만 그에게 유도는 삶의 방향을 바꿔놓은 소중한 '보물 1호'다.

▲ 오전 체력훈련과 오후 대련훈련을 한 뒤 저녁에는 양평군의 한 체육관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저녁 훈련에 가면 자신과 동명이인인 학생 선수(왼쪽)를 만난다. 학생 선수들의 기합소리에 더욱 힘을 낸다.

"런던 패럴림픽 준비했을 때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유도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고 노력한만큼 실력이 오르지 않아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하지만 유도는 내 삶의 일부가 됐을 정도가 됐어요. 앞은 보이지 않지만 제가 보는 목표만큼은 확실하죠. 내년 리우 패럴림픽뿐 아니라 3년 뒤 자카르타 장애인아시안게임까지 한 바퀴 더 돌아야죠. 아직 도쿄 패럴림픽까지는 생각하지는 않고요. 내년 패럴림픽에 모든 것을 쏟고 싶습니다."

이민재는 양평군에서 인근 용문중·고교 학생선수들과도 훈련을 한다. 그들은 이민재에게 '코치님'이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한다. 지난해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때도 단체로 응원을 왔을 정도다. 이 가운데에는 '중학생 이민재'도 있다. 동명이인이라 그런지 더욱 살갑단다. 유도 꿈나무가 외치는 기합 소리에 더욱 허리띠를 조여맨다.

"앞으로 대학원 특수체육학과에 진학해 공부를 하고 싶은 목표도 있어요. 나중에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다고 하더라도 장애인 스포츠 분야에서 행정 등의 일도 함께 해보고 싶어요."

이민재는 마음이 바쁘다. 5월 세계대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오전오후 훈련에 하루가 짧지만 자신의 목표가 분명하기에 게을리할 수는 없다. 세계를 향해 힘찬 기합소리를 지르기 위해 다시 한번 도복과 띠를 고쳐맨다.

[취재 후기] 이민재의 소속팀인 양평군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장애인과 비장애인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는 실업팀이다. 지난해까지 이민재와 함께 최광근(28)도 양평군청에서 땀을 흘렸다가 수원시청으로 이적했다. 양평군청은 이미 장애인과 비장애인 선수가 함께 훈련한 경험이 풍부해서인지 서로가 서로의 훈련을 많이 도와준다고 한다. 양평군청의 '함께 어울리는 스포츠' 정책이 이민재의 실력을 키워준 원동력인 셈이다. 국내 실업팀에 양평군청과 같은 팀이 많아진다면 다른 종목에서도 이민재와 같은 선수가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 이민재(윗줄 왼쪽에서 8번째)가 양평군의 한 체육관에서 다문초등학교와 용문중·고등학교 등 양평군내 학생선수들과 합동훈련을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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