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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16) 눈물로 달려온 김성은, 남은 21.195㎞는 행복을 향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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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16) 눈물로 달려온 김성은, 남은 21.195㎞는 행복을 향해 뛴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03.24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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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자 마라토너 랭킹 1위 김성은의 무한도전...한국신기록 압박 벗고 "직전 대회보다 나아지는" 경쟁력 선택

[300자 Tip!] 한국 여자마라톤이 가장 찬란했던 순간은 1997년에서 멈춰있다. 권은주(38)가 세운 최고기록이 18년째 깨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시간26분12초. 그동안 많은 여자 마라토너가 이 기록을 넘기 위해 분투했지만 누구도 근접하지 못했다. 김성은(26·삼성전자육상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국내 1인자로 입지를 다져왔지만 기록 경신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여러 차례 좌절을 맛본 뒤 내린 결론은 ‘중심을 잃지 말자’는 것이었다. 신기록보다는 꾸준히 기량을 끌어올려 세계 톱랭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그의 목표다.

[화성=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노민규 기자] 4년 연속 국내 여자부 1위 자리를 지켰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처음부터 순위를 염두에 두고 뛴 건 아니기 때문에 전체 2위를 차지한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 저조한 기록을 낸 자책감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 김성은이 화성 삼성전자 육상 훈련장에서 트랙을 달리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열린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전체 2위를 차지했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동계훈련 때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이번 대회를 순조롭게 준비했는데 도와주신 것만큼 기록이 안 나와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지난 15일 열린 2015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김성은은 2시간28분20초에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그는 당초 2시간26분대 기록에 도전했지만 페이스 조절에 실패, 자신의 최고기록인 2시간27분20초보다 1분 늦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보내주는 기대 때문에 신기록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김성은은 이제 그것에 끌려 다니지 않기로 했다. 그는 “직전 대회에서 뛴 것보다 좋은 기록을 내는 게 내 목표다. 기록을 단축시키면 해외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달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선수로서 발전에 긍정적인 요소다”라고 더 이상 한국신기록에 집착하지 않고 있음을 알렸다.

◆ 10㎞ - 중거리 뛰던 소녀, 마라톤에 연착륙하다

김성은이 처음부터 마라톤을 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중장거리 트랙을 뛰며 기본기를 다졌다. 충북 괴산 장연중학교 3학년 때 소년체전에서 처음으로 800m와 1500m를 석권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충북체고 2학년 때 전국체전 5000m 금메달을 따며 본격적으로 장거리에 뛰어들었다.

“마라톤을 하는 육상부 언니들이 피니시라인을 끊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짜릿한 기분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마라톤 훈련을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언니들의 페이스를 따라잡는 게 쉽지 않았지만 피나는 훈련으로 이를 극복했다. 10㎞ 달리기에서 하프 마라톤으로, 하프에서 풀코스 마라톤으로 진일보한 김성은은 중거리에서 장거리로 성공적인 연착륙을 알렸다.

그는 “훈련을 어느 정도 소화하면 힘만 빠지고 기량이 늘지 않는 시점이 온다. 그 시기를 슬기롭게 넘겨야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김성은은 피니시 라인을 끊을 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마라톤에 입문했다.

◆ 20㎞ - 국내최강, 하지만 아직 높은 세계의 벽

김성은은 한국 여자 마라톤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 서울국제마라톤에서 국내선수 여자부 4연패를 달성했고 역대 10위 기록 중 4개(3·5·6·10위)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무대에서는 경쟁자가 없다.

그는 2013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우승할 당시 세운 자신의 최고기록(2시간27분20초)을 머릿 속에 넣고 이 기록에 도전하기로 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위권을 차지하면 이 기록을 충분히 깰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직 세계적인 선수들과는 격차가 있지만 오는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가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전초전인 만큼 신경 써서 준비할 생각입니다. 지금보다 기량을 끌어올려서 제 기록부터 갈아치우고 싶습니다.”

김성은을 지도하고 있는 황규훈(62) 감독은 “스피드와 지구력은 아시아 정상 수준이다. 그러나 달릴 때 체공시간이 다소 길다. 지금보다 빨리 발을 디뎌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은은 마라톤 풀코스를 선수생활에 비교했을 때 현재 절반인 21㎞를 달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웃음보다 눈물로 채운 시간이 많기에 앞으로 남은 21.195㎞가 행복한 순간들로만 가득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참이다.

▲ 김성은은 아직 세계적인 선수들과는 격차가 있지만 세계선수권대회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전초전인 만큼 신경써서 준비할 생각이다.

◆ 30㎞ - 부상도 막지 못한 김성은의 남다른 열정

마라톤에서 30~35㎞ 지점은 ‘마의 구간’이라고도 불린다.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필요하다.

이는 김성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이번 서울국제마라톤 30㎞ 지점 이후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고 이것이 기록이 밀리는 원인이 됐다.

그는 “30㎞ 지점을 통과하고 다리가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난 뒤 그 느낌은 사라졌지만 페이스를 당기려 해도 몸이 당겨지지 않더라. 이때 페이스를 끌어올리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한숨을 쉬었다.

30㎞ 지점처럼 지금까지 마라톤 인생에서 큰 위기에 봉착한 순간도 있었다.

마라톤으로 전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상으로 시련을 겪었다. 2010년 불의의 발바닥 부상을 당한 그는 이듬해 훈련 중 골반 부위를 다치며 7개월 가량 쉬었다.

하지만 김성은은 보란 듯이 다시 일어났다.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2시간37분05초로 뒷걸음질쳤지만 이듬해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29분53초를 기록, 런던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재활 중에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부상도 김성은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한 차례 고비를 넘긴 그는 지금까지 별다른 부상 없이 선수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 김성은의 고글 안에 긴 트랙이 펼쳐져 있다. 마라톤 선수 인생의 절반을 소화한 그는 앞으로 펼쳐질 나머지 절반을 알차게 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 40㎞ ~ 끝 - "즐기면서 하다보면 롱런도 가능"

이제 절반 정도 달려온 김성은은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을까.

아직 한창 현역으로 뛰고 있기 때문에 지도자와 다른 일을 하는 것을 놓고 고민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성은은 “운동 말고 다른 쪽으로도 해보고 싶은 게 많다. 일단 현역 생활은 몸이 따라준다면 30대 중반 이후에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몸 상태는 1년 1년이 다르다. 정확하게 몇 살까지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며 “즐기면서 하다보면 몸에 오는 회복능력이 좋아진다. 또 좋은 호르몬이 나오니 그것만 잘 유지되면 롱런도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피니시라인을 끊을 때 관중의 환호가 나를 짜릿하게 하는 쾌감으로 지금까지 마라톤을 하고 있습니다. 이걸 하면서 응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체험하고 있지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 기대해 주신 분들에게 보답하겠습니다.”

[취재후기] 김성은은 한국 여자마라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자신은 좋은 환경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도 많다고 말했다. 능력만 된다면 자기 팀으로 데려와 같이 훈련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국내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지만 늘 옆을 볼 줄 아는 그의 넓은 마음 씀씀이도 읽을 수 있었다.

▲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 김성은은 오는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기록을 단축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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