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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9) 힘들수록 웃는다! 최고 류한수를 만든 '무한긍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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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9) 힘들수록 웃는다! 최고 류한수를 만든 '무한긍정의 힘'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02.23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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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무명 그늘·두차례 수술 이겨내고 세계·아시아 제패…'할 수 있다' 자신감으로 일군 레슬링 인생역전

[300자 Tip!] 스포츠 선수들은 매 경기마다 자신의 최고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기량을 갈고 닦아야 한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신력도 지녀야 한다. 복잡한 도로에서 교통순경이 차량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처럼 정신력은 선수들이 쏟아낸 노력이 조화로우면서도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세계랭킹 4위 류한수(27·삼성생명). 그레코로만형 66㎏급 선수들 중에서도 세계 최정상급에 속하는 레슬러다. 누구보다 시련의 시간이 길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를 바탕으로 한 정신력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태릉=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2013년 9월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류한수는 안한봉(47) 그레코로만형대표팀 감독과 한바탕 춤사위를 벌였다. 경기장을 가득 울리는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춰 이 사제는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주최 측에서 금메달을 딴 나라의 음악을 틀어주기로 돼 있었는데 제가 결승에서 이기니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어요. 감독님께서 먼저 단상에 올라오시기에 저도 따라 춤을 췄지요. 안 출 수가 없었어요. 사전에 이야기가 되지 않았던 거라 끝나고 나서 조금 민망했어요.(웃음)”

▲ 류한수가 태릉선수촌 다목적체육관에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세리머니를 펼친 류한수의 말이다. 이 말만 들어서는 수줍음이 많은 선수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평소에도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흥이 많았다.

긍정적인 성격은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훈련을 할 때 가장 앞에 있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그는 안한봉 감독의 100여 가지 ‘사점 훈련(Dead point Training)’에서 솔선수범했다.

‘사점’이란 격한 운동을 할 때 죽음에 이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기를 말한다. 류한수가 이를 견디며 맨 앞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그는 “호흡이 가빠지면서 근육 경련이 오는 것은 기본”이라며 “판단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진다. 시야가 흐릿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기분 좋게 훈련을 소화한다. 자신이 똑바로 하지 않으면 후배들이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류한수는 소속팀에서 두 번째, 대표팀에서 세 번째 서열이다.

◆ '정해진 룰 안에서 마음껏 놀자'

매사에 긍정적인 류한수는 모험이라 여길만한 일을 할 때도 거침없었다.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 체급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무려 6㎏이나 올렸다.

류한수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국가대표 2진을 면치 못했다. 정지현(32·울산 남구청)과 우승재(29·한국조폐공사)가 버티고 있던 그레코로만형 60㎏급에서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흔히 살기 위해 체급을 바꾼다고 하지만 레슬링에서 체중을 올리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체급 간 힘의 격차가 크기 때문. 그럼에도 2011년 상무 입대를 앞둔 류한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체급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어요. ‘체급만 올린다면 난 무조건 된다. 다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이었지요. 강훈련으로 그 자신감까지 만든 것 같습니다. 제 자신에게 돌파구가 필요하기도 했고요.”

▲ 훈련 파트너 생활을 5년이나 했지만 목표가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은 류한수는 체급을 바꾼 뒤 마침내 세계 무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체급을 올리고 치른 2013년 국가대표 선발전 66㎏급에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김민철(32)과 함께 체급을 올린 정지현도 있었지만, 류한수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국가대표에 선발된 뒤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제패했다. 이후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류한수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은 체급을 조정한 뒤 불필요한 불안함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그의 좌우명은 ‘정해진 룰 안에서 마음껏 놀자’다. 대책은 없었지만 일단 올리고 생각해보자는 생각이 앞섰다. 자신감이 뒷받침됐다.

◆ 시련의 연속, 받아들였기에 버틸 수 있었다

대구 경구중학교 1학년 때 레슬링을 시작한 류한수는 오랜 시간을 무명으로 보냈다. 뛰어난 기량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체급에 국가대표 선수들이 많아 그들의 훈련 파트너가 돼야 했다. 그에게 2008년부터 2012년은 인고의 세월이었다.

“그때는 선수촌에 있기 싫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형들 기술 연습 상대나 돼주고 인형처럼 있나’ 생각했지요. 주말에 밖에서 스트레스를 푼 뒤 ‘가서 열심히 해야지’ 다짐하지만 반복되는 생활 때문인지 현실에 안주하게 되더라고요.”

훈련 파트너 생활에 익숙해진 류한수를 깨운 사건이 있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경기나 훈련을 갈 때 선수촌에 남는 파트너들이 배웅해주는데, 이때 마음이 아렸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그냥 ‘가는구나’라는 생각만 했는데, 점점 ‘나도 가고 싶다. 저 자리가 내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더 하면 저기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욕심이 나를 깨웠다”고 말했다.

▲ 대학 재학시절 류한수에게 또 한 번 시련이 찾아왔다. 팔 수술을 두 번이나 하게 된 것. 하지만 류한수는 좌절하지 않고 재활에만 몰두, 다시 매트 위에 섰다.

하지만 시련은 또 다른 방법으로 류한수를 찾아왔다. 경성대 3학년과 4학년 재학시절 팔 골절상을 당해 두 차례나 수술대에 오른 것. 남들은 다 안 된다고, 운동 그만 두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재활에만 몰두했다. 급한 마음을 버리고 하루하루 주어진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한편으로는 지옥훈련을 쉰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했어요. 재활을 하면서 좌절하거나 초조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던 게 운동을 포기하지 않은 원동력이었습니다. 당시 군대 문제도 있었고 복잡한 일이 많았는데, 현실을 받아들이고 재활만 했어요. 좋은 생각만 하려 했습니다.”

◆ "예능 프로그램 출연해 끼 살리고파"

요즘 들어 운동선수나 선수 출신 방송인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평소 끼가 많은 류한수는 TV 출연을 통해 자신과 레슬링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 그는 “‘무한도전’이나 ‘라디오스타’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며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MC들과 운동 대결을 하면 방송을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최근 고정 출연 프로그램 출연을 늘리고 있는 전 농구스타 서장훈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그의 겸손한 면모가 보기 좋단다.

“만약 서장훈 선수가 방송에 나와서 이유 없이 거들먹거린다면 보기 불편했을 텐데, 말과 행동에서 겸손이 묻어나오더라고요. 어떤 프로그램에서든 자신을 낮추는 면모를 보고 시청자들이 좋아해주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 요청이 들어온다면 무조건 나갈 의향이 있지만, 단 조건이 따른다. 방송 출연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로 고려하고 있단다. 올림픽 첫 금메달을 목에 걸고 방송에 나가는 것이 꿈이다.

▲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MC들과 운동 대결을 펼치고 싶다는 류한수. 서장훈을 잇는 선수 출신 예능인이 탄생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저는 밑바닥이었어요. 운동하면서 한쪽 팔을 두 번이나 다쳐 두 차례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잘난 선수가 아니었는데, 목표가 생겨서 노력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 자신이 변할 만큼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꽤 오랜 시간 시련을 맞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또 다른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겠지만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버티고 일어날 것이다.

류한수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큰 무대인 올림픽. 대회 개막 500여일 앞둔 그는 오는 9월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참이다. 긍정의 기운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류한수가 올림픽 무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취재후기] 류한수의 자신감은 비디오를 분석하는 것에서도 나왔다. 코칭스태프와 함께 분석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 그는 다른 선수들의 경기는 잘 보지 않았다. 자신이 잘했던 경기만 몇 번이고 돌려봤다. 이 역시 자신감을 키워주는 수단이란다. 비디오 분석을 통해서도 자기암시를 한 류한수. 무한긍정의 힘으로 도약한 그의 멘탈 훈련법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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