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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② 5년째 쓰는 '비밀일지', 이미 출발한 주희정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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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② 5년째 쓰는 '비밀일지', 이미 출발한 주희정의 미래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2.13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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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준비 시작한 주희정 "아직 30분 이상 너끈, 팀을 장악할 수 있어야 최고 포인트가드"

[용인=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주희정의 '웨이트트레이닝 사랑'은 지금도 30분 이상 너끈히 뛸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벌써 어느새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체력만큼은 젊었을 때 버금간다고 자신하는 그다.

"최근 2, 3년 풀타임을 뛴 적은 없지만 그래도 오래 뛰기 시작하면 28분 정도는 했던 것 같아요. 30분 이상 뛰어도 그 다음 경기에 몸이 처지거나 힘들거나 하진 않아요. 아직도 25분에서 30분 정도를 54경기 모두 거뜬히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출전 시간이 줄어든 것은 역시 (김)선형이가 있기 때문이죠. 애런 헤인즈나 코트니 심스뿐 아니라 대부분 선수들이 선형이에게 많이 맞춰져 있거든요. 오히려 제가 오래 뛰기 시작하면 그 틀이 어긋날 수도 있고 이길 수 있는 경기도 내주게 됩니다. 제가 SK에서 하는 역할은 리드를 잡지 못하거나 경기가 안풀릴 때 이를 해결해주는 겁니다. 제가 욕심부리기 시작하면 오히려 더 어려워져요. 그래도 언제 선형이를 대신해서 뛸 수 있을지 모르니 25~30분 뛸 수 있는 체력은 꾸준히 유지해야죠."

▲ 용인 양지체육관에 있는 자유투 훈련 스코어보드. 20개씩 5차례를 던지는 자유투에서 주희정은 한두개 정도만 놓칠 정도로 백발백중이다. 맨 위에 있는 주희정의 점수 19-19-19-18-19가 유난히 돋보인다.

결국 그의 말은 뛸 수 있지만 팀의 정책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결코 허언이 아니다. 김선형이 부상을 당해 뛰지 못했던 지난달 29일 삼성전에서 풀타임에 가까운 37분55초를 소화했다. 3점슛 3개를 넣고 14득점을 올려 팀의 76-73 승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가 올 시즌 20분 이상 뛴 경기는 4차례에 불과하지만 김선형이 없을 때는 주전 포인트가드로 우선 기용된다.

또 피나는 노력과 훈련 때문인지 자유투 능력에서 그를 따라오는 선수가 드물다. 용인 양지체육관에는 자유투 훈련 스코어보드가 있다. 거의 백발백중이다. 다른 후배들을 압도한다.

◆ 이미 미래를 위한 준비 시작, 경기 끝난 뒤 적는 일지가 무기

주희정에게 언제가 끝이 될 것 같은지를 물었다. 이미 몇 시즌째 그에 대한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솔직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다음 시즌이 SK의 계약 마지막 시즌이니까 그때 끝날 수도 있는 것이죠. SK가 더 기회를 준다면 더 뛸 수 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제가 계약기간이 3~4년 더 남았다고 하더라도 체력이 안되거나 기량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만 그 순간 은퇴할 겁니다. 지금 생각과 마음이라면 2~3년도 충분히 뛸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그 중간에라도 체력과 기량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면 바로 그만둬야죠."

그렇다면 은퇴 뒤 그의 모습은 어떨까. 이미 그는 미래를 준비했다. 지도자 공부를 스스로 시작한 것이다.

▲ 주희정은 벌써 5년째 경기가 끝난 뒤 일지를 적고 있다. 경기에서 했던 패턴이나 상대방의 패턴 공략법 등을 상세하게 분석해놓았다. 그러나 공개는 커녕 표지도 보여주지 않는 철저한 비밀을 유지한다. 그의 보물 1호다.

"이미 5년째 경기가 끝나면 일지를 적고 있어요. 지도자 수업을 받아야겠지만 지금 제가 코트에서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도자 공부라고 생각해요.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는 어떤 패턴이 잘됐고 상대팀의 어떤 패턴을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고 있죠. 일지는 예전부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왜 못했는지에 대한 감정만 적었다면 지금은 분석까지 하고 있는거죠. 그러다보니 더욱 시야가 넓어지고 몰랐던 부분도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또 SK는 전력분석 체계도 잘 되어 있어서 후배들과 분석 리포트를 보면서 얘기도 나누고 연구도 하면서 그것도 함께 적고 있어요. 제 개인보물 1호죠."

일지를 보여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친다. 표지만이라도 사진을 찍으면 안되겠느냐고 물어도 곤란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적어도 주희정의 18년 프로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을 것이다.

◆ 상대하기 힘들었던 김승현, 그래도 가장 이상적인 가드는 강동희

18시즌을 보내면서 수많은 포인트 가드와 상대해야만 했다. 포인트 가드는 공격의 전위병이자 수비에서도 가장 먼저 상대를 막아야 하는 야전사령관이다. 그렇기에 주희정 역시 상대 포인트 가드와 자존심 대결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가장 일대일로 막기 힘들었던 선수는 아무래도 김승현이었던 것 같아요. 힘도 좋은데다 스피드가 뛰어나서 막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센스도 뛰어나니 타고난 포인트 가드였다고 해야겠죠. 막기도 어려울뿐더러 공격을 하면서 제끼기도 힘들었어요."

김승현과 상대하면서 짜증이 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포인트 가드는 한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팀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꾹 참고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 주희정은 상대했던 선수 가운데 김승현이 가장 막기도, 뚫기도 어려웠다고 회상한다. 또 코트에서 동료들을 지휘하고 상대팀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닌 강동희를 가장 이상적인 포인트가드로 꼽았다.

"김동광 감독님께서 포인트 가드는 한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다른 동료도 흔들리기 때문에 항상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죠. 개인 기록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동료들을 조율해줘야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가장 이상적인 가드는 강동희 선배였던 것 같네요. 팀이 시소 경기를 벌일 때도 강 선배는 상대의 미스매치를 빨리 파악해서 공략할 수 있는 센스가 있었어요. 수비와 공격을 모두 장악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는 가드였죠."

◆ "다시 시작한다면 농구 안해, 해외진출 용이한 야구·축구로"

최근 같은 종목에서 뛰는 2세 선수들이 화제다. 차범근 전 감독의 대를 이은 차두리(FC 서울)도 있고 허재 전 KCC 감독의 아들인 허웅(동부)도 뛰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자녀에게는 절대로 농구를 시키지 않겠다고 한다.

"농구는 너무 힘들어요. 신체조건과 체력이 모두 갖춰져야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열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종목입니다. 절대로 농구 시킬 생각은 없어요. 열한 살 큰 애가 체격조건이 워낙 좋긴 하지만 적어도 여자농구 선수로는 키울 생각이 없어요. 수영에 관심있어 하더라구요."

농구에 그토록 열정이 있고 근성이 있으면서 아직까지 배고프다는 그이지만 자녀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해당 종목에서 최고 반열에 올랐어도 자녀에게 시키고 싶지 않다는 스타는 적지 않다. 전주원 춘천 우리은행 코치 역시 자신의 딸에게는 농구를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 주희정은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 농구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2세에게도 농구를 절대 시키지 않겠다는 그다. 농구라는 운동이 힘들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해외 진출이 가능한 야구나 축구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농구 사랑과 열정은 여전히 활활 타오른다.

그런데 또 하나 반전이 있었다. 자신도 다시 시작한다면 농구는 절대 하지 않겠단다.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아직까지 농구에 배가 고파 2, 3년 더 뛰겠다는 그가 하지 않겠다니.

"이왕이면 이 열정과 근성으로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종목을 하고 싶어요. (하)승진이도 미국에 잠시 다녀오긴 했지만 4대 프로 종목 가운데 농구가 유일하게 해외 진출이 어려운 스포츠잖아요. 다시 시작한다면 야구와 축구를 해봐야죠. 또 중학생 때 학교에 테니스부가 있어서 테니스를 잠시 배우기도 했었는데 테니스도 해외 진출이 비교적 쉬운 종목이구요. 공부도 잘하면 해외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따야하듯이 말이죠. 지금은 이미 농구를 시작했고 언제 은퇴할지 모르는 나이까지 왔기 때문에 농구에 대한 열정이 있지만 제가 원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스포츠를 해보고 싶어요."

어쩌면 주희정의 이 말은 한국 농구계에 던지는 '쓴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수많은 선수들이 해외 진출이 가능한 기량이라고 소개됐고 1960, 70년대에는 아시아를 주름잡는 스타 선수가 있었던 한국 농구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는 고사하고 아시아 정상에 도전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다. 주희정의 열정과 근성이라면 나이가 10년만 더 젊었어도 아시아 정복을 꿈꾸지 않았을까.

[취재후기] KBL에서 18년째 뛰면서도 챔피언 반지가 단 하나밖에 없는 그이지만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짐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정규리그 MVP를 받아봤고 포스트시즌 MVP의 영광도 누려봤기 때문만도 아니다. 스스로 지도자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나래 시절 최명룡 감독으로부터 발탁을 받았고 김동광 감독에게 포인트 가드로서 갖춰야 할 능력을 배웠으며 유도훈 감독의 밑에서 농구의 눈을 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성 시절 팀 선배였던 문경은 감독 밑에서 뛰고 있으니 행운이 아니냐고 말한다. 또 그는 선수생활을 오래 하고 싶다고 해서, 또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서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경기력이 뛰어나도 후배들이 계속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밀려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행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운도 모두 그의 노력 때문이 아닐까. 행운이라는 산물도 노력해야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에.

▲ 주희정은 자신을 행운아라고 말한다. 18시즌을 뛰면서 챔피언에 단 한번만 올랐지만 미완이었던 자신이 지금까지 발전하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지도자와 동료를 만난 행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행운도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SQ인터뷰] ① '코트의 철인' 주희정, "오기·투혼·배고픔이 나를 키운 8할" 을 다시 보시려면.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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