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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프로배구 V리그 10년, 한국 배구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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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프로배구 V리그 10년, 한국 배구의 역설?
  • 최문열
  • 승인 2015.11.25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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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최문열 대표] ‘인기는 높아졌지만 국제 경쟁력은 더 낮아졌다.

팀 수는 늘었지만 대형 스타는 더 줄어들었다.

파이는 커졌지만 꿈나무를 키우는 배구인의 열망은 더 작아졌다….’

인터넷에서 나돌고 있는 ‘우리시대의 역설’(The paradox of our time)이라는 시를 패러디해 ‘프로배구의 역설’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로 시작되는 ‘우리 시대의 역설’은 성장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전 세계 누리꾼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는 시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시에 호응하는 것은 이 시대의 현실과 사뭇 맞아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프로배구의 역설은 어떨까요? 현역 시절 그 누구보다 프로화에 목소리를 높였던 배구기자로서 이 패러디 시가 ‘생뚱맞은 소리’이길 진정 바라는 바입니다.

지난 2일 한국 프로스포츠협회가 출범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국내 5대 프로스포츠(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의 7개 경기단체가 사단법인을 출범시키며 ‘한국 프로스포츠 수준 향상과 저변 확대’ 및 ‘프로스포츠를 통한 국민의 건전한 여가 도모’를 목표로 공동보조를 맞추기로 해 자못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프로스포츠가 점점 외연을 확대하고 있는 시점에 가슴 한편에선 “후발 주자인 프로배구는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하는 궁금증을 품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배구 프로화를 크게 외쳤던 1990년 대 말과 2000년 대 초 당시 상황을 되짚어 봤습니다.

사실 일부 기득권 세력을 제외하곤 실업팀은 물론 배구인과 팬, 그리고 언론이 한국배구의 살길은 프로화라며 한 목소리를 내던 시기였습니다. 그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실업팀입니다. 그때만 해도 우수선수를 거느리고 있는 대학팀 감독이 갑인 시대였습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대학팀 감독은 좋은 선수를 놓고 실업팀 간의 경쟁을 붙여 몸값을 올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실업팀 감독은 우수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대학팀 감독의 온갖 요구나 비위를 맞춰야 했습니다. 물밑으로 들어가는 스카우트 비용이 여느 프로스포츠 못지않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우수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즉시 전력감이 아닌 후보 선수를 받아들이는 것도 관행이던 시절이었지요. 결국 엄청난 스카우트 비용은 실업팀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번에는 팬들입니다. 한 팀의 우수선수 싹쓸이 스카우트로 승패가 너무 뻔해 재미없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스카우트 비를 쏟아 붓는 실업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전력 격차는 심각해 드라마틱한 승부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외면하게 했습니다.

그 시절 선수들은 어땠을까요? 최선을 다해도 그에 상응한 대우를 받지 못하다보니 부상당하면 조기 은퇴해 일반 직원으로 근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또 세대교체로 주전 자리에서 밀리게 되면 다른 팀에서 더 뛸 수 있는 데도 소속팀이 “행여 팀에 해가 될 수 있다”며 이적 동의를 해주지 않아 은퇴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배구인 생각입니다. 그들은 배구 판이 더 커지길 바랐습니다. 겨울철 실내 스포츠 라이벌로 꼽히는 농구가 1997년 2월 프로리그 출범으로 인기가도로 질주하던 터여서 그 열망은 더 컸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배구경기를 보기 위해 팬들이 찾아오고 그 열기로 팀이 더 창단돼 전체 파이가 커지면 일자리도 더 창출될 것으로 내심 기대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배구 프로화를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작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배구가 오히려 죽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이도 있었습니다. 프로 도입으로 외국인 선수가 들어오면 그 포지션에 국내 스타 육성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목청을 돋웠습니다.

또 드래프트가 실시되면 대학은 물론 초 중 고교 등의 지원이 끊길 것이고 결국 유망주 발굴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당시에는 일부 대학팀이 실업팀에서 받은 스카우트 비용의 일정부분을 우수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고교로 내려 보내고 다시 이것이 중학교 초등학교로 전달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또 대어를 키우면 그 수혜도 만만찮아 유망주를 키우고자 하는 일선 지도자들의 욕망도 무척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2005년 2월 프로배구 V리그가 드디어 출범했고 올해로 만 10년째를 맞았습니다. 이제는 프로배구의 역설이 가당찮은 소리인지 엄연한 현실인지 냉정히 점검해야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배구 프로화 후 상황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프로구단 감독들은 이제 대학팀 감독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우수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대학팀 감독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시대는 갔습니다. 드래프트로 인해 스카우트 비용도 과도하게 지불하지 않습니다. 필요 없는 선수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참고로 2015-16시즌 남자부 신인드래프트에서는 36명 신청자 가운데 26명(수련선수 2명 포함), 지난 시즌에는 42명 중 28명(수련선수 7명 포함)이 프로선수가 됐습니다.

팬들도 팀 간 전력 평준화로 프로배구 경기에 흥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뻔한 승패라는 비아냥거림은 더 이상 난무하지 않습니다. 또 선수들은 자신이 활약한 만큼 대우를 받게 되면서 노장 투혼을 발휘했고 다른 팀으로 이적해 선수 생명을 연장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경기인은 배구 판이 커진 만큼 몇몇이긴 하나 새롭게 자리를 꿰찼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아쉽게도 그림자도 드리워졌습니다.

외국인 선수 공격에 의존하는 ‘몰빵 배구’로 인해 대형 공격수들을 키우지 못하면서 국내 선수보다는 외국 선수 이름을 더 기억하는 팬들이 많아졌습니다. 또 쉽게 이기기 위한 분업배구로 인해 국제배구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면서 남자배구의 경우 월드리그 18위, 아시아선수권대회 7위, 2000시드니올림픽 이후 4회 연속 올림픽 본선 행 좌절 등 국제대회에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예전에는 대학팀에서 중고 배구팀을 많이 지원했는데 지금은 전무한 실정이어서 각 학교가 선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수 발굴을 위해 노력하는 중고교 배구 지도자들의 고생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중고배구연맹 김광수 회장이 얼마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늘어놓은 하소연은 한국배구의 또 다른 이면을 말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프로배구의 역설은 한국배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모든 프로스포츠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기도 했고요.

이미 원인 진단과 함께 갖가지 처방도 쏟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공식 기구인 한국배구연맹(KOVO)과 대한배구협회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배구가 국제대회에서 추락하면 V리그 흥행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프로야구가 국제대회 호성적과 함께 가파른 상승세를 탄 것은 이를 잘 말해줍니다. 또 대형 스타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되지 않는다면 프로배구의 미래도 어둡다는 것을, 결국 공멸의 길로 갈 수 있음을.

지난 10여 년 간 프로배구는 프로스포츠 후발주자로서 괄목할만한 진전을 이뤘습니다. 모두 다 같이 힘을 모은 결과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다시 어려운 도전 앞에 섰습니다. 어렵다는 말을 붙인 이유는 어느 한쪽이 나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구단과 경기인, 그리고 연맹과 협회가 합심하고 협력해야 풀 수 있는 난제인 까닭입니다. 한쪽은 이기고 한쪽은 지는 스포츠경기도 아니고 양쪽 모두 이겨야 성공하는 ‘윈-윈 게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맹과 협회의 주도권 싸움, 밥그릇 싸움은 무의미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더 큰 목표를 위해 서로 양보하고 희생하고 도와야 합니다. 오직 한국배구의 미래 그림만을 놓고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또 다른 10년 뒤를 위해!

유수의 기업들이 프로 배구단을 창단하고 싶어 열심히 노크하고, 좋은 자질을 갖춘 청소년들이 배구를 하겠다고 나서는 가운데 일선 지도자들이 꿈나무를 키우기 위해 신명나게 매진하는 최적의 토양과 여건, 한국배구가 향후 사냥해야할 두 마리 토끼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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