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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원팀’ 한국축구가 춤춘다, 그 숨은 동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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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원팀’ 한국축구가 춤춘다, 그 숨은 동력은 무엇일까?
  • 김한석
  • 승인 2015.10.26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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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김한석 스포츠국장] “믿음은 산도 옮길 수 있다(Faith can move mountains).”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 선전하는 리틀 태극전사들에게 보낸 축전입니다.

2015 칠레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 첫 결전에서 우승 후보 브라질을 꺾자 현지에 가 있는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를 통해 전한 이 문자메시지에 담겨진 의미는 뭘까요.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착실히 준비해 굳은 믿음을 갖고 전진해 나간다면 못 이룰 게 없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FIFA 주관 남자대회에서 한국이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삼바축구를 상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냐’는 비관을 시원스레 날려버린 완벽한 승리. 다들 기적이라고 말하는 그런 쟁취는 믿음의 힘에서 나온 것임을 확신시켜주는 것도 같았지요.

▲ 지난 17일 U-17 월드컵 브라질과 1차전에서 후반 34분 장재원이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자 최진철호 선수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기니마저 꺾어 한국 축구 최초로 FIFA 주관대회 1,2차전을 연승으로 장식하며 조별리그를 거뜬히 통과한 뒤엔 “잘 싸웠다. 첫 번째 단계를 완성했다”고 격려했지요. 이걸 보면 슈틸리케의 축원에는 U-17 대표팀 최진철 감독의 목표의식을 굳게 믿고 있음이 묻어납니다.

#01 이승우, ‘원팀의 원맨’이 되다

‘최진철의 아이들’을 보면 슈틸리케가 화두로 던진 믿음, 그것은 ‘원팀’의 다른 이름입니다.

17세 이하 어린 태극전사들이 U-17 월드컵에서 의연하게 그 ‘원팀’을 완성해나가며 약진하고 있습니다. 교체멤버로 들어간 선수들이 연달아 투입 1분 만에 일을 크게 쳤지요. 브라질전에서 이상헌이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더니 기니전에서는 오세훈이 전광판이 멎은 뒤 결승골을 직접 꽂아 넣은 것에서 ‘하나된 팀’ 최진철호를 읽을 수 있습니다.

벤치에서 대기하던 멤버들이 주전에서 배제됐다는 생각만으로 준비를 제대로 안했더라면 그런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될 수 있었을까요.

전임지도자 최진철 감독은 U-17 월드컵 잉글랜드와 3차전에서는 그동안 뛰지 못했던 선수들과 교체멤버들을 골고루 출전시켰습니다. 브라질전 승인을 “선수들의 헌신 덕이었다”고 말한 그로서는 체력 안배와 플랜B 점검의 목적도 있었지만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희생과 헌신에 대한 보상과 배려 차원의 결정이었지요. 그 결과 잉글랜드의 공세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한국 축구 FIFA 주관대회 통산 45번째 출전 만에 조별리그 첫 무실점 통과라는 기록마저 썼습니다. 비주전, 백업으로 불리는 그 선수들이 세 번째 클린시트 경기를 스스로 완성했으니 그 자긍심은 얼마나 컸을까요.

그렇다면 U-17 월드컵 전부터 ‘원맨팀’의 우려를 낳게 했던 에이스 이승우는 어떨까요. 한마디로 확 달라졌습니다. 상대 수비를 2~3명 달고 뛰고, 수비에도 적극 가담했습니다. 자기 한 명이 동료 10명에게 맞추는 희생과 헌신을 보여줬지요. 기니전에서는 종료 직전 자신과 교체돼 들어간 오세훈이 바로 ‘극장골’을 터뜨리자 누구보다도 큰 환호성을 내질렀던 이승우입니다. 자기감정을 못 이기고 광고판, 물병을 걷어차던 독불장군 이승우는 이제 없습니다. 패스할 때나 슛을 노릴 때 먼저 동료들을 살피는 조연으로 빛나는 이승우가 있을 뿐입니다.

그 이승우는 ‘한 팀’이라고 표현합니다. ‘코리안 메시’로 대회 전부터 주목받았던 바르셀로나 B팀의 재능 이승우는 “모든 선수가 한 팀이 돼 잘 준비했다”고 말합니다. 지난달 수원컵에서 ‘이승우 원맨팀’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 나왔지요. 최진철 감독은 당시 브라질전에서 완패한 뒤 이승우가 단독 플레이가 아니라 팀에 녹아들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 '최진철의 아이들'은 '이승우 원맨팀'의 우려를 씻고 서로 희생과 헌신으로 뭉쳐 U-17 월드컵에서 '원팀의 진격'을 이어갔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이승우의 변신에 대해 굳은 믿음을 갖고 기다려주면서 끝내 ‘원팀의 원맨’으로 융화시킨 최진철 감독의 포용력도 큰 힘이었습니다. 최 감독은 U-17 월드컵 B조 1위를 확정지은 뒤 "목표는 4강이다. 그것을 위해 선수들과 한 팀이 되어 준비하겠다"고 말해 ‘원팀의 진격’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02 구두선이 된 ‘원팀’ 홍명보호의 몰락

이렇듯 ‘원팀’으로 뭉쳐질 때 산도 옮길 만큼 그 힘은 위대합니다. 원팀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든 구성원이 힘을 합쳐 단순한 합이 아니라 합의 제곱이라는 힘을 발휘하는 조직을 뜻합니다. 멤버들의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서로 믿음을 공유해야 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팀이기도 하지요.

스포츠에서는 ‘팀워크’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듯합니다. 축구에서는 1990년대 신문선 해설위원이 중계 때 자주 쓰던 ‘팀 스피리트’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단결력 같은 정신무장에 치우친 면이 크죠. 강한 압박과 유기적인 플레이로 시간과 공간의 싸움으로 세계축구가 진화되면서 팀 내 소통을 통한 결속이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FIFA는 월드컵 등의 기술보고서에서 ‘케미스트리(chemistry)’란 단어를 써가며 팀을 정성 평가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람 사이의 화학반응, 특히 남녀 간에 서로 강하게 끌리는 감정이나 궁합이란 뜻으로 흔히 쓰는 ‘케미’의 어원이기도 하죠.

비록 특출한 스타들은 많지 않지만 결속과 융화로 케미스트리를 높일수록 원팀으로서 그 힘은 커지게 됩니다. 마라도나가 지휘하던 아르헨티나, 에우제비오가 이끌던 포르투갈은 월드컵 역사에 책갈피 돼 있을 뿐입니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원맨팀’과 ‘원팀’이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FIFA-발롱도르를 양분해온 불세출의 스타 메시의 아르헨티나나 호날두의 포르투갈이나 모두 ‘원맨팀’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승팀 독일이나 언더독 8강 돌풍을 일으킨 코스타리카같은 ‘원팀’은 더 크게 부각됐습니다.

독일의 우승 시상식 때 펼침막에 자리잡은 등번호 21번의 유니폼이 원팀을 상징했습니다. 예선서 5골을 넣으며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었지만 출정 직전 발목인대 파열로 브라질에 오지 못한 마르코 로이스의 저지가 내걸린 거지요. 포돌스키는 “우리는 한 명의 스타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모든 선수가 승리를 위해 기여하는 하나된 팀”이라며 “로이스를 잊지 않고 뛰었다”고 했습니다.

그 브라질 월드컵에서 ‘원팀 원스피릿 원골’을 내세운 홍명보호가 몰락했기에 우리 축구팬들에게는 ‘원팀’이라는 말은 익숙하기는 하지만 한동안 입에 올리기가 꺼려지는 금어(禁語)가 되다시피 했지요. 홍명보 감독이 스스로의 선발 원칙을 깨고 ‘의리축구’ 논란을 부른데다 변화에도 뒤처져 잇단 참패를 자초했던 것에 대한 반발심리이지 않았을까요.

당시 한국에 2-4 충격패를 안긴 알제리의 경우 언론과 할릴호지치 감독 간의 갈등 속에 선수들이 원팀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감독에게 한국전에서 강한 공세를 펴자는 의지도 전달했지요. 한국전이 시작되기 전 터치라인에서 기념촬영을 한 베스트11은 벤치로 달려가 23명 엔트리 전원이 한 번 더 찰칵 찍었습니다. 눈빛을 번득이며 달려드는 사막의 여우들은 끝내 16강 진출로 원팀의 작은 성공을 이룬 반면 원팀의 도전이 구두선에 그친 홍명보호는 귀국길에 엿사탕 세례를 받아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03 드레스룸을 뛰어나온 태극전사들의 ‘소통’

그렇지만 그날 이후 한국축구는 달라졌습니다. ‘원팀’이 살아난 겁니다. 아시안게임 우승, 아시안컵 준우승, 동아시안컵 남자우승, 여자월드컵 16강, U-17 월드컵 16강 진출 등 각종 국제무대에서 원팀으로 똘똘 뭉친 선전이 이어졌지요. 한마디로 한국축구에 ‘원팀’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 요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우선 선수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면서 소통을 넓힌 게 나비효과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특히 함께 땀 흘렸던 동료가 불의의 부상을 당해 중요한 대회나 결전에 어깨동무하지 못할 때 뜨거운 동료애를 나누며 뭉친 게 가장 인상적입니다.

캐나다 여자월드컵 출국 직전 여민지가 부상으로 낙마하자 출정식 때부터 “여민지를 위해 뛰겠다”는 약속이 이어졌고 여민지를 위한 세리머니도 준비했었지요. 사상 첫 16강에 오른 뒤 출전한 동아시안컵에서는 ‘심서연 유니폼 세리머니’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한일전에서 골을 넣은 조소현이 첫 경기에서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중도 귀국한 심서연의 4번 저지를 치켜들고 동료들과 '심쿵' 골 뒤풀이를 펼친 것입니다.

호주 아시안컵에서는 이청용과 구자철이 투혼을 불사르다 부상을 당해 중도 귀국했지만 오히려 선수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지요. 당시 중국과 호주가 한국을 무시하는 듯한 보도가 나간 뒤 투쟁심으로 뭉쳤습니다. 한교원 남태희 등 대체요원들이 더욱 투혼을 불살라 27년 만의 준우승을 일궈냈습니다.

이번 최진철호도 닮은꼴입니다. 마지막까지 부상 회복을 기대했던 장결희가 마지막 전훈지인 미국에서 발길을 돌렸고 최재영도 중도 하차했지만 리틀 태극전사들은 이들 몫까지 뛰자고 손을 맞잡은 뒤 승전고를 전했지요.

이 과정에서 선수들은 동료들을 위로하며 그 아픔을 나누는 아이디어를 스스로 내고 SNS에도 적극적으로 표출함으로써 공감대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진지한 고민들은 남녀, 선후배 대표선수들이 SNS 상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하는 공감의 소통을 불렀습니다. 예전에는 쑥스러워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못하던 남녀 태극전사들의 달라진 면이라고 볼 수 있죠.

여자국가대표 전가을은 12년 만에 여자월드컵 본선에 나서는 출정식에서 “대한민국에서 여자축구선수로 산다는 것은 너무도 외로워요”라고 고백해 축구팬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습니다. 또한 여자대표들이 월드컵 기간 내내 ‘우리가 잘 해야 여자축구 환경이 나아질 수 있다’는 성취동기를 가슴에 품고 뛰게 한 화두이기도 했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손흥민은 아시안컵 때 직접 캠코더를 들고 일일기자로 나서는 도전을 했지요. 회복훈련을 할 때 동료들에게 캠코더를 들이대고 팬들이 궁금해할만한 질문을 던지고 인터뷰하는 그런 시도들이 신선했습니다. 드레스룸을 벗어나 스스로도 미디어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아닐는지요. PC통신 축구동호회 출신 대한축구협회 송기룡 홍보실장은 “손흥민이 일일기자로 인터뷰한 동영상이 협회 SNS를 통해 팬들에게 전해진 것은 한국축구 문화 변화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지소연도 그렇게 해서 인상적이었다”며 태극전사들의 열린 사고와 도전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04 감독들도 깨우다!

그렇게 선수들이 달라지니 지도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선수들을 더욱 믿었고 저마다 특유의 포용과 배려의 리더십을 보여주며 공감을 나눴습니다. 선수들이 공감하고 느끼게 하는 새로운 시도는 여자월드컵이 대표적이었지요. 윤덕여 감독은 현장까지 대동한 스포츠심리학자 윤영길 한체대 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면서 숙소에 A4 메모를 경기마다 붙였습니다.

3차전을 앞두고 '왜 그래? 월드컵 끝났어? 스페인 이기면 조 2위다!', 프랑스와 16강전을 앞두고는 “침착하게 만들고 악착같이 서로 돕고 견뎌. 우리는 생각보다 강해져 있어”라는 격려 문구는 태극낭자들의 혼을 깨웠습니다. 선수들 저마다 좌절, 실망, 희망으로 엇갈릴 수 있는 혼란의 시간에 팀을 뭉치게 하는 힘이 됐지요. 4년 뒤 프랑스 여자월드컵을 기약하며 숙소로 돌아온 뒤에는 ‘그래, 아쉬워 그렇지만 도전은 충분히 아름다웠어, 2019......’라는 메시지가 내년 사상 첫 올림픽 본선에 도전하는 새로운 힘을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위기와 환희, 실망과 자만 사이에 미묘하게 번민하는 선수들에게 ‘맞아 그래’하고 무릎을 탁 치고 깨어날 수 있도록 하는 촌철살인의 한마디. 말하되 말하지 않는 그 울림에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원팀으로 뭉치게 됐습니다.

넛지효과라고 할까요. 슬그머니 옆구리를 쿡 찔러서 성취동기를 불러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서로들의 도전의지를 한데 모으는 효과도 당연히 컸습니다.

그 넛지 문구는 칠레까지 퍼졌습니다. 브라질과 첫 결전을 앞두고 ‘월드컵 긴장돼? 축구 왜 시작했어? 결과는 나중이야! 그냥 한번 즐겨봐’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었지요. 브라질을 꺾은 들뜬 분위기에서는 ‘기니? 쉽지 않아! 이번에는 정말 신중하게 즐겨야 돼!’라고 했습니다. 최진철 감독과 축구협회 홍보국 이재철 과장이 연구해낸 합작품. 이 문구에 사춘기 선수들은 냉정을 찾아 한데 힘을 모을 수 있었던 겁니다.

이광종 감독은 스스로를 버리고 백의종군해 대업을 이뤘습니다. 임창우 등 K리그 2부로 임대 간 선수들까지 마이너리거들을 끌어 모아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28년 만의 금메달을 따냈지요. 전임지도자 1기로 U-17 월드컵 8강, U-20 월드컵 16강과 8강 등 단계별로 지도력을 보여줬지만 리우 올림픽까지 보장받지 못하자 아시안게임으로 자신을 평가받겠다고 했습니다. 역대 최약체라는 우려에도 23세 이하 태극전사들은 그 지도자를 믿고 결집했습니다. 부상자가 속출하는 악전고투에도 끝내 무실점 전승으로 우승하는 ‘무명의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선수단 미팅에서는 예전에 분란의 씨앗이 됐던 병역특례의 ‘병’자도 안 나올 정도로 원팀으로 뭉쳤지요.

▲ 무명의 선수들을 끌어모아 28년 만에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무명 반란'을 일으킨 이광종 감독과 이종호의 깊은 포옹에서 '원팀'의 뜨거운 케미스트리가 느껴진다. [사진=스포츠Q DB]

무엇보다 감독이 국가대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아닌 비주류여서 겪어야 했던 홀대를 역시 무관심에 익숙해져온 무명의 선수들이 후련히 씻어주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의미 있는 원팀의 성공사례로 주저없이 꼽고 싶은 이유입니다.

마침내 올림픽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이광종 감독은 지난 1월 킹스컵 도중 급성백혈병이 발견돼 암투병중이지요. 지난 스승의 날 아시안게임, 킹스컵 멤버들이 스승의 쾌유를 빌며 성금을 모아 전달하는 가슴 뭉클한 보은도 잊혀지지 않는군요.

#05 슈틸리케 ‘원팀’, 믿음과 공정성이 공통분모

이렇듯 감독과 선수들이 공감하는 시대입니다. 공감이 곧 경쟁력입니다. 원팀에는 그것이 공통분모라 할 수 있습니다. 원칙을 지키는 실천으로 그 공감을 끌어내는 지도자가 울리 슈틸리케 국가대표팀(A대표팀) 감독입니다. 슈틸리케의 원팀은 믿음과 공정성에 기반을 둡니다.

액션부터 볼까요. 어느 경기든 선발 멤버들이 피치로 나서는 길목에 자리 잡은 슈틸리케는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굳게 맞잡은 손에서 확고한 믿음을 공유하는 겁니다.

선수 선발은 어떻고요. 직접 보지 않은 것은 믿지 않고, 믿었으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실험합니다. 도전하다가 실패해도 다시 기회를 줍니다. 그래서 한 번 대표팀에서 빠졌다가도 다시 돌아오면 새 기분으로 더욱 집중하게 되지요. 노력하고 늘 준비돼 있으면 누구든 대표팀에 올 수 있다고 선언하고 현장을 돌며 직접 확인합니다. 그렇게 뽑은 선수들이기에 무한신뢰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존중해주고 자부심을 갖게 하니 믿음이 커질 수밖에요. 10월 다시 발탁된 지동원은 “선수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고 했지요. 동아시안컵에서는 한일전이라는 중대한 일전에도 선수들에게 약속한대로 8명이나 대거 선발멤버를 바꿔 선수들의 신뢰를 얻은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취임 1주년을 기념하는 ‘돌잔치 평가전’에서 자메이카를 꺾은 뒤 슈틸리케는 “11명의 선수가 아니라 팀에 축하를 보내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A, B, C팀을 나누지 않았다. 다 중요하다. 항상 선수들을 존중하고 대우하기에 오랜만에 대표팀에 합류하더라도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는 그의 자평에 원팀의 조건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슈틸리케 감독은 취임 이후 1년 동안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경기장은 물론 각종 세미나, 이벤트 등 현장을 찾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세미나에서 감독의 핵심역량에 대해 연령대별 각급 대표팀 코칭스태프 등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부임 1년 동안 22경기를 치르면서 소집된 대표선수가 모두 60명. 그렇게 많은 선수들이 들락날락하면서도 한 번의 잡음도 없이 16승3무3패로 기록한 80%의 높은 A매치 승률은 그런 공감의 전리품이 아닐까 합니다.

#06 슈틸리케가 ‘빅 원팀’ 만든다면?

그래서 슈틸리케를 통해 한국축구가 ‘빅 원팀’을 그려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납니다. 슈틸리케는 취임하면서 지도자 생활을 한국 대표팀에서 마감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한국 축구 전반에 걸쳐 기여하고 싶다고 했지요. 스스로 기술세미나를 통해 아시안컵에서 거둔 성과와 반성을 연령대별 각급 대표팀 지도자들 앞에서 기탄없이 쏟아냈습니다. 여자축구 평가전도 찾고 유,청소년 선수들도 현장에서 격려합니다. 무엇보다 슈틸리케 감독이 추구하는 신뢰와 존중, 그리고 공정 경쟁을 통해 '지속가능한 원팀’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각급 대표팀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신태용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A대표팀 코치로 겸직시켜 함께 호흡하며 자신의 원칙과 철학을 공유하고 있지요. 올림픽팀에도 핵심 전력인 권창훈이 10월 A매치에 뛸 때도 슈틸리케 감독은 A매치 우선 원칙만 고집하지 않았지요. 11월 A매치에는 권창훈을 부르지 않고 올림픽팀이 참가하는 친선대회에 보내주겠다고 양보를 한 겁니다. 예전에 A대표팀과 올림픽팀이 선수 중복차출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던 때와는 달라졌습니다. 신태용 감독도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무명의 선수와 황희찬 등 해외파를 발굴해 보석으로 다듬어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슈데렐라’를 탄생시켜온 슈틸리케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한국 축구는 ‘오렌지 커넥션’이라 불릴 정도로 네덜란드 출신 감독들에게 A대표팀을 맡겼지만 슈틸리케처럼 이렇게 빠르게 팀 체질을 바꾸고 원팀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보인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한국축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전방위로 현장을 찾는 감독도 물론 드물었지요. 히딩크 감독조차도 A대표팀만 집중했지요.

24년 전 대한축구협회는 1980년대 중반 ‘차붐’ 차범근과 레버쿠젠에서 사제로 인연을 맺기도 했던 독일의 명장 데트마르 크라머를 올림픽대표팀 총감독으로 선임해 ‘1호 외국인 사령탑’을 실험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생각하는 축구’보다는 체력 훈련에 치중하는 한국인 지도자들과 대립각이 너무도 커서 실패로 돌아갔지요. 1960년대 일본축구의 대부로 올림픽 동메달을 이끌었고 전방위로 일본축구의 개혁을 주도하며 리그제 도입 등 프레임을 바꿔놓아 일본에서 훈장까지 받았던 크라머였습니다. 히딩크가 한국축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처럼 크라머는 일본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지도자이지요. 하지만 그 경험과 노하우를 채 펼치지도 못하고 28년 만의 한국 올림픽 본선 자력 진출을 이루고도 부임 1년 만에 떠나야 했지요. “경기가 끝난 뒤에 다리보다 머리가 더 아파야 한다”는 철학을 아직도 새기고 있는 수제자가 서정원 수원삼성 감독이고 신태용 올림픽팀 감독입니다.

지난달 90세를 일기로 그가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는 슈틸리케의 작은 성공들이 오버랩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선수들의 가슴을 울리는 축구, 그래서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창의적인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다가갔던 ‘축구교수’ 크라머가 한국에서 제대로 실험도 못한 꿈이 슈틸리케에게서 살아나길 기대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 한국축구가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좌절 이후 각급 대표팀이 '원팀'으로 뭉쳐 약진하고 있다. 사진은 U-17 월드컵에서 태극기를 펼쳐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진철이 아이들'. [사진=이승우 트위터 캡처]

흔들림 없이 선수들을 믿고 끊임없이 공감을 나누려는 슈틸리케 감독이 A대표팀뿐만 아니라 연령대별 각급 대표팀과 지혜를 나누고 더 큰 그림을 그려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각급 대표팀과 머리를 맞대고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과 기회를 공식화하고 서로 운영철학의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더 큰 역할을 맡겨도 좋을 듯합니다.

‘원팀’ 바이러스가 전방위로 퍼져 한국 축구를 춤추게 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슈틸리케 감독이 더 큰 그림을 그리며 한국 축구를 상징할 ‘빅 원팀’을 이끌어낸다면 한국 축구의 경쟁력은 훨씬 탄탄해지지 않을까요. 산을 옮겨보려면 말입니다.

<편집자주> 필자는 1990년부터 스포츠서울 체육기자로 활동하며 잉글랜드 유로 96, 1998 프랑스 월드컵. 1999 미국 여자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 등을 현장 취재했다. 한국축구 명예의 전당 선정위원, K리그 30주년 레전드 선정위원을 맡았으며 FIFA-발롱도르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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