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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타의 그림자 "내 이름은 앙상블 배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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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타의 그림자 "내 이름은 앙상블 배우"①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7.25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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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우리들끼린 소통이 이렇게 잘 되는데 윗분들은 지들끼리 왜 소통이 안 되나 모르겠어~.”

187cm 장신의 여장남자가 요란한 메이크업과 가발, 섹슈얼한 의상을 착용한 채 걸쭉한 입담을 쏟아낼 때마다 LG아트센터 객석에선 폭소가 터진다.

세 드랙 퀸(여장남자 쇼인 드랙쇼를 하는 배우)의 희망 찾기 여행을 다룬 뮤지컬 ‘프리실라’ 한국어 공연에서 드랙쇼 클럽 호스트인 미스 언더스탠딩과 앙상블을 겸하고 있는 우찬(30)은 10년 경력의 앙상블이다. 주연배우보다 더 리얼한 드랙퀸 자태로 객석의 이목을 사로잡는 중이다. 세상의 차별과 편견을 해학과 웃음으로 당당하게 되받아치는 미스 언더스탠딩의 모습이 앙상블 배우 우찬과 닮았다.

▲ '프리실라'의 드랙퀸 미스 언더스탠딩(왼쪽)을 연기한 앙상블 배우 우찬

◆ 코러스와 안무로 무대에 생동감 불어넣는 숨은 조력자 '앙상블'

앙상블의 사전적 의미는 ‘통일적인 효과나 조화’다. 뮤지컬 공연에서는 주조연 배우들이 노래를 부를 때 코러스를 넣어주거나 다양한 안무로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배우들을 뜻한다. 보통 앙상블 배우는 한 작품에서 여러 역할을 소화하며 극이 매끄럽게 흘러가도록 한다.

우찬은 이 작품에서 총 13벌의 의상을 '퀵 체인징(빨리 갈아입기)'하고 머리 장신구를 쓴다. 20cm에 이르는 아찔한 하이힐에 속눈썹과 메이크업이 장착된 특수제작 마스크를 얼굴에 붙이고 등장하기도 한다. 다른 앙상블 배우들 역시 12~13벌의 의상을 30초 만에 갈아입고 무대에 나와 노래하고 춤을 춘다.

비록 공연 도입부와 마지막에 잠깐 등장하는 미스 언더스탠딩이지만 이 캐릭터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흑인 팝 여가수 티나 터너를 따라하는 배역이라 그녀의 공연 영성을 섭렵하며 특유의 동작을 과장되게 살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클럽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드랙퀸들의 립싱크 입모양과 손동작, 율동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 '프리실라'의 아담 역 조권(가운데)과 남자 앙상블 배우들

‘소통’ 운운하는 대사는 오리지널 공연에는 없던 대사였으나 이태원 클럽 마담의 멘트를 주의 깊게 들은 그의 아이디어로 이용하게 됐다. 내한한 ‘프리실라’ 연출가와 안무가는 “당신이 공연을 정말 잘 열어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간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

우찬은 공연 중간에 앙상블로 출연한다. 다른 남자 앙상블 배우들은 여장남자와 남자 캐릭터를 번갈아 연기하지만 우찬의 경우 드랙퀸 캐릭터를 워낙 훌륭하게 소화해 미스 파세트 등 죄다 여자 배역이다.

“캐릭터에 젖어있다 보니 평소에도 여성스러운 말투와 나긋나긋한 행동이 나오게 되더라고요. 공연을 위해서 손톱에 매니큐어를 늘 바르고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지하철을 탈 경우 뜨악한 시선을 받을 때가 많아요. 동성애자로 오해를 많이 사기도 하고요. 실제 섬세한 성격이지만 전 여자를 좋아하는 건강한 남자거든요.(웃음)”

◆ 10대1 경쟁률 뚫고 3개월 동안 주6회 '텐 투 텐' 연습

뮤지컬시장 규모는 지난 10년 동안 1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커졌다. 작품 수는 연간 400편가량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무서운 속도로 외연을 확대하며 성장하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무대의 주인공을 꿈꾸는 앙상블 배우들 역시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

▲ '브로드웨이 42번가'(사진 위)와 '캣츠'의 앙상블 군무[사진=설앤컴퍼니 제공]

영국 웨스트엔드로 진출한 톱배우 홍광호는 2002년 뮤지컬 ‘명성황후’ 앙상블로 데뷔했고 이외 주원, 조정석, 박은태, 성두섭, 정원영, 최우리, 이정미, 오나라 등도 앙상블의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정상의 뮤지컬 스타로 도약했다. 앙상블, 그들의 삶은 어떨까.

대작의 경우 개막을 앞두고 주조연 배우, 앙상블 오디션 공고가 뜬다. 앙상블 경쟁도 치열하다. 평균 10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한 작품에 서는 앙상블의 숫자는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30명에 육박한다. 일단 합격을 하면 2~3개월의 연습에 돌입한다. 무대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공연의 경우 그 이상이 된다. 난이도 높은 탭댄스 군무가 핵심인 ‘브로드웨이 42번가’는 6개월의 연습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이 기간 동안 주 6일을 ‘텐 투 텐(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으로 연습에 매진한다. 심야까지 개인적으로 추가 연습을 하기도 하지만 추가 근무수당은 없다. 라이선스 공연이 많아지는 요즘, 해외 크리에이티브팀의 연출가들은 한국 앙상블의 엄청난 노동 강도와 불평불만 없이 최선을 다하는 자세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외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이들의 성실함과 노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 '위키드'의 주연 김보경 조상웅과 앙상블 배우들[사진=설앤컴퍼니 제공]

연습에서는 노래(합창)와 안무를 중점적으로 한다. 최근 들어 주연 배우의 더블, 트리플 등 멀티 캐스팅이 유행이라 주연 배우별로 합을 맞춰봐야 하므로 연습강도는 배가됐다. 본 공연으로 들어가면 2~3개월 동안 공연이 없는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무대에 서야 한다. 주조연 배우들은 원 캐스팅이 아니기에 하루 공연하고, 하루(혹은 이틀) 쉬는 식으로 출연하지만 앙상블은 대타가 없기 때문이다.

또 공연(평일 오후 8시) 4시간 전까지 공연장 도착이 원칙이나 앙상블은 이보다 한두시간 일찍 도착, 스탠바이 상태에 들어간다. 1막과 인터미션(중간 휴식시간), 2막까지 총 2시간40분 여의 공연이 끝나면 오후 11시가 된다. 분장을 지우고 의상을 갈아입고 하면 훌쩍 자정이다.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끈채 내일의 공연을 위해 집으로 향한다.

◆ 회당 5만~15만원,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열악한 환경

수입은 회당 개런티가 보편적이다. 정상급 배우 개런티가 회당 800만~1000만원(매진 돌풍을 일으키는 모 특급스타의 개런티는 3000만원에 이른다는 말이 암암리에 떠돈다), 주연 바로 밑의 배우 개런티가 200만~300만원인데 비해 앙상블은 최저 5만원에서 최고 15만원에 불과하다. 연습기간 임금은 제작사마다 천차만별이다. 사정이 열악한 곳은 아예 노 개런티인가 하면 공연 임금의 80% 지급, 일당 혹은 월급, 작품당 지급 등 다양하다. 결론은 연간 최대치인 두 세편을 쉬지 않고 출연해도 최저생계비에 한참은 못 미친다.

▲ '프리실라'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앙상블[사진=설앤컴퍼니 제공]

연습과 공연 기간에는 정상적인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기에 1주 중 단 하루 쉬는 날을 이용, 결혼식이나 피로연 등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파트타임 알바를 한다. 가족의 도움으로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부지런히 차기작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

“육체적으로 고되고 수입 면에서 열악하지만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감사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여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고요. 배우는 꽃피는 시기가 다 다른 것 같아요.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고 있다고 여겨요. 앙상블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극 전체를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이에요. 앙상블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과연 내 목표를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 싶어요. 이 생활의 소중함을 알아야 나중에 더 높은 위치에 올랐을 때 그 자리를 지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을까요?”

우찬을 비롯한 앙상블 배우들과 뮤지컬 관계자들은 작품의 그림자이지만 없어선 안 될 소금 역할을 하는 앙상블의 열악한 환경 개선 및 표준 임금계약서 마련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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