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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박태환 논란, 가재는 게 편이라는데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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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박태환 논란, 가재는 게 편이라는데 어찌?
  • 최문열
  • 승인 2016.05.11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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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최문열 대표] ‘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내가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중략)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바로 여러분!’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윤복희의 ‘여러분’ 노랫말의 일부다.

최근 국내 체육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박태환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 노래가 절로 떠올랐다. 박태환(27)은 그동안 수영영웅으로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400m 자유형 금을 비롯해 빛나는 성적으로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큰 기쁨과 위로를 전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인생 최대의 난관에 봉착했다. 스포츠팬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도핑 징계로 인해 오는 8월 리우 올림픽 행이 좌절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가 무릎을 꿇고 큰 절을 하며 “올림픽에 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분’ 노랫말이 뇌리에 스쳤다면 너무나도 감성적인 접근인 것일까?

박태환 논란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갑론을박을 펼치는 양 측의 주장이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어 판단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먼저 저간의 사정을 들여다보자.

2014년 9월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양성반응을 보인 박태환은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 선수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 징계는 지난 3월 끝났지만 ‘약물 양성 반응 선수는 징계 만료 후 3년이 지나기 전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 발목이 잡혀 리우올림픽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박태환이 지난달 동아수영대회에서 남자부에선 유일하게 4개 종목 모두 올림픽 출전 기록을 통과했고 자유형 400m에서는 올 시즌 세계 4위 기록을 내며 4관왕 등 건재를 과시한데다 스승 노민상 감독이 무릎을 꿇고 읍소하면서 이 사안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리처드 파운드(캐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등 국내외 전문가들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면 이중처벌 조항이 부당해 리우 행이 가능하다고 밝혔는데 이는 2011년 IOC가 약물 징계가 종료된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금지하는 이중 처벌 규정을 없앴기 때문이다.

‘국민 70%가 박태환의 리우 행을 찬성 한다’는 한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유정복 인천시장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등 정, 재계 인사들이 ‘박태환 일병 구하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그 논란은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 때문일까? 스포츠문화연구소는 지난 10일 ‘박태환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박태환 논란의 근본 쟁점은 “이미 정해놓은 원칙을 고수할 것이냐? 아니면 박태환의 대표선발을 위해 원칙을 깨고 특혜를 줄 것이냐?”로 형평성 문제와도 궤를 같이 한다. 여기에 이중처벌의 해석과 국제적 합의의 국가 적용 여부 등도 논쟁거리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개인의 가치관과 성향 그리고 상황에 따라 박태환 논란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까닭이다.

하지만 박태환 논란을 향한 대한체육회의 기본적인 자세와 태도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대한체육회는 국내 스포츠의 성장, 발전과 함께 선수와 지도자 등 대한민국 체육인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가장 앞장서야할 체육기관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통합 대한체육회는 우리나라가 스포츠로 국민이 행복해지고, 사회가 건강해지는 스포츠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큰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 국가대표의 경기력을 강화하여 명실상부 스포츠강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하고 생활체육과 연계하여 은퇴한 전문선수들이 훌륭한 지도자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올림픽 등 국제종합대회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국격을 높이며 국민들에게 기쁨과 감동, 희망의 메시지를 선사하겠습니다.’

최근 엘리트와 생활체육을 통합한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에 나온 내용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팔은 안으로 굽어야 하고 가재는 게 편인 게 마땅하다. 국내 체육인이 의지할 곳은 대한체육회밖에 없다. 설령 대한민국 선수가 국제 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더라도 우리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줘야 하는 곳이 대한체육회다.

박태환 논란을 접한 국민 일부가 의아해 하는 것은 정작 박태환을 감싸주고 보듬어주어야 할 대한체육회가 도리어 족쇄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국제 규정에서 하등 문제가 없다는데 굳이 대한체육회가 국내 선수의 발목을 잡는 것이 옳은 일인가. 수영 등 스포츠 종목에 인생을 걸고 어려운 여건에도 피땀을 흘리고 있는 그들의 처절한 현주소를 누구보다 잘 아는 대한체육회가 이리도 모진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도핑 양성 반응이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나왔다면 영구 제명을 한다고 해도 그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박태환의 경우는 처음이며 고의적이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박태환이 누구인가? 그 누구도 세계 정복을 꿈꾸지 못했던 수영 종목에서 올림픽 금을 목에 걸었던 한국의 수영영웅이지 않는가? 그는 한국 스포츠의 위대한 자산이다. 그것은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의 나이 어느덧 스물일곱, 전성기를 지나가고 있는 나이다. 어쩌면 리우올림픽이 마지막 올림픽일 수 있다.

약물로 얼룩진 자신의 수영 인생사를 스스로 명예회복 하고자 그동안 여론의 뭇매에도 불구하고 와신상담하며 재기의 꿈을 불살랐던 박태환이다. 한데 무참히 그의 꿈을 짓밟는 것이 다른 곳도 아니고 ‘체육인의 비빌 언덕’인 대한체육회여서야 되겠는가?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괘씸죄, 미운털 등 별의별 뒷얘기가 나오고 있다. 대한체육회가 “도핑 징계 규정과 국가대표 선발 규정은 별개” “기록은 기록이고 규정은 규정”이라며 완강히 버티고 있고 대한수영연맹의 존재감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 가운데 체육계 외부에서 박태환 구하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주객전도’된 형국이어서 더 그렇다.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한체육회가 국제 기준과도 어긋나는 규정, 원칙만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매’를 든다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리우 행을 열어주는 대신 향후 일정기간 박태환이 꿈나무를 지도하게 하는 등 봉사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오는 7월 18일은 리우 올림픽 최종 엔트리 등록 마감일이다.

국민들이 힘겨울 때 미소를 짓게 하고 한국 스포츠의 위세를 전 세계에 떨쳐 스포츠 코리아의 위상을 크게 드높였던 박태환이 이제는 어려운 상황에서 괴로워하며 고군분투할 때 그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줘야 하는 ‘여러분’은 정녕 누구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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