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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락(樂) 개론] 스파이크의 시작은 언제 어디서, 배구의 기원과 발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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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락(樂) 개론] 스파이크의 시작은 언제 어디서, 배구의 기원과 발전사
  • 최문열
  • 승인 2016.06.16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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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최문열 대표 이세영 기자] 스포츠팬들에게 농구와 배구는 늘 비교 대상이다. 겨울철 실내 스포츠의 ‘라이벌’ 종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농구는 어떤데 배구는…”이라거나 반대로 “배구는 어떤데 농구는…”이라며 수시로 함께 도마 위에 오른다.

농구와 배구는 종목 특성이 다르지만 좁은 땅 덩어리에서 그 수가 많지 않은, 큰 신장의 유망주를 확보해야한다는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경쟁 관계일 수밖에 없는 종목이다.

농구와 배구의 경쟁 관계는 배구의 기원을 살펴보면 ‘태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배구는 4년 앞서 만들어진 농구로부터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어 고안된 스포츠 종목인 까닭이다.

Williams G. Morgan은 1895년에 배구를 처음 고안했다. 당시 미국 매사추세츠 주 홀리요크 시에 위치한 YMCA의 체육지도자였던 모건이 새로운 스포츠를 고안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농구를 지도했는데 수업 참관자 대다수인 중년 남성들이 치열한 몸싸움과 빠른 공수 전환에 쉽게 지쳐 나가 떨어졌다. 이 때문에 그는 격렬한 신체 접촉이 없으면서 운동량이 중년에게 적합한 새로운 스포츠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당시 유행했던 테니스 야구 농구 핸드볼의 특징을 그러모아 만든 것이 배구의 시초다.

농구와 배구, 두 종목의 아주 특별한 인연은 배구공을 농구에서 가져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배구의 경우 코트와 네트 등 경기장과 서브 규칙은 테니스, 이닝 제는 야구, 라켓 없이 손으로 공을 치는 것은 핸드볼로부터 아이디어를 갖고 왔다. 배구공의 경우 농구공은 무겁고 농구공 속 고무공은 가벼워 고무공 위에 가죽을 덧댄, 현재의 공 형태로 발전했다.

배구경기의 시초는 이랬다.

네트 높이는 6피트 6인치(약 198cm), 경기자 수는 제한 없이 양 팀 동수. 농구공 속에 들어 있는 가벼운 고무공을 손으로 쳐 상대 코트 바닥에 닿게 하면 서브권이나 득점 성공. 서브는 테니스처럼 첫 서브가 들어가지 않으면 두 번째 서브를 할 수 있고 서브가 네트에 맞으면 다시 시도했다. 코트 안 어디라도 서브 넣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은 테니스와는 다른 점이다. 드리블(한 번에 공을 두 번 이상 접촉하는 것)과 홀딩(공을 잡아 던지는 것)은 반칙. 다만 지금처럼 세 번 안에 넘기는 횟수 제한은 없었다. 한 경기는 9이닝. 한 이닝은 각 팀에 세 번의 서브가 주어진다. 참가자들의 포지션 이동은 없다.

배드민턴과 닮았다고 해 민토넷(Mintonette)이라고 불렸으나 시범 경기를 관전한 알프레드 T. 할스테드(Alfred T. Halstead) 박사가 공을 네트너머로 넘긴다는 의미에서 ‘발리 볼’(volley ball)로 제안하자 결국 그 이름을 갖게 됐다.

만일 모건이 현대의 엘리트 배구를 보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혹시 “내가 만든 배구는 어디로 갔어?”라고 의아해 하는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은 처음 고안했을 때의 초창기 배구와 현재의 그것은 달라도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생활스포츠에서 엘리트스포츠로 발전하면서 그리고 프로화 및 상업화의 길로 치달으면서 배구는 일반인이 몸소 하기에는 쉽지 않을 만큼 어렵고 힘든 종목이 되고 있다. 물론 6인제가 아닌 9인제 배구의 경우 아마추어 동호회들이 왕성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 배구 스파이크의 첫 등장은 언제 어디서?

중년 남성을 비롯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쉬운 스포츠’로 만들어진 배구는 세계로 퍼져나가고 1947년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과 프랑스, 브라질, 이탈리아, 구소련(러시아),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체코 등 14개국이 참가한 국제배구연맹(FIVB International Volley Ball Federation)이 창설되면서 성장 발전했다.

1916년 필리핀에서는 높게 볼을 띄워 강하게 스파이크 하는 공격기술이 처음 선보였다.

엘우드 S. 브라운(Elwood S. Brown)은 1910년 필리핀에 배구를 처음 소개했는데 1913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1회 극동아시아대회에 16인제 배구를 경기 종목으로 채택해 아시아 대륙의 배구 발전에 불을 댕겼다.

토스와 스파이크 기술이 활기를 띠자 1960년대에는 배구의 새 기술이 추가됐다. 가볍게 연타를 날리는 딩크(dink), 강한 스파이크를 수비하기 위한 언더핸드패스(forearm pass 또는 bump), 그리고 상대 스파이크를 네트를 사이에 두고 막는 블로킹 등이 그것이다.

세계선수권대회가 1949년 남자부, 그리고 3년 뒤인 1952년에 여자부 경기가 추가된데 이어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배구는 급속한 발전을 이룬다.

1964년 도쿄올림픽 여자부에서 아시아 구기 종목 사상 올림픽 첫 금, 1972년 뮌헨올림픽 남자부에서 사상 첫 금을 캔 일본은 1960,70년대 ‘기술배구’의 꽃을 피웠다. 그동안 세계 배구는 러시아의 강력한 ‘파워’를 앞세운 ‘힘의 배구’가 대세였다. 러시아는 체코와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과 함께 30여 년을 지배해왔다.

고 다이마쓰 히로부미 감독의 일본여자배구팀은 회전 수비(rolling dive)와 체인지업 서브(floating change-up service), 그리고 당시 일본남자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마쓰다이라 야스타카 감독은 다양한 속공 기술과 시간차 공격을 선보여 선풍을 몰고 왔다. 사실 배구 열풍은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일본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폴란드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남자부 결승에서 러시아(구소련)와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맛봤는데 당시 중앙 속공수인 토마스 오이토위츠(Tomasz Wojtowicz)는 처음으로 후위 공격을 선보여 감탄을 자아냈다.

쿠바의 ‘탄력배구’도 빼놓을 수 없다. 쿠바는 1976년 국제무대에 고무공처럼 통통 튀는 엄청난 점프 능력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더니 1978년 세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하는 등 기세를 올렸다.

◇ 공격과 수비의 조화로 랠리는 많고 박진감 넘치게!

120년에 걸쳐 수많은 경기 방식 변경과 규칙 개정으로 현재에 이른 배구는 1996년 7월 애틀랜타 FIVB 총회와 같은 해 10월 스위스 로잔 FIVB 월드리그 Council 회의 등에서 파격적인 안을 내놓으며 배구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그것은 축구 농구 테니스 등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스포츠종목들과 겨루기 위한 FIVB의 끊임없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랠리포인트제 도입으로 경기 시간을 예측할 수 없어 방송 중계하기에 쉽지 않았던 배구를 평균 2시간 안에 끝날 수 있게 했다. 선수들은 한 순간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됐으며 팬들 입장에서 드라마틱한 승부가 연출돼 더 박진감 넘치게 된 것은 물론이다.

종전과는 달리 서브한 공이 네트에 닿고 넘어가도 되게 해 스파이크서브를 권장했다.

상대방 서브나 스파이크에 대한 첫 번째 접촉에서 드리블과 홀딩 반칙을 완화하고 수비에서 공의 신체 접촉 부위를 ‘허리 위’에서 ‘몸 전체’, 즉 발을 포함한 신체의 모든 부위로 허용함으로써 ‘발로 하는 배구’를 선보이게 해 재미와 감동을 더했다.

점점 강해지는 공격력에 맞선 수비력 강화 및 균형 발전을 위해 전문수비수 ‘리베로’ 제도를 도입했다. 수비 강화 및 배구 저변 확대를 위한 조처였는데 신장이 작아도 배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여기에 남자 경기에 한해 배구공의 압력을 약 25% 줄여 스파이크 서브와 공격의 세기를 감소시켜 공격과 수비의 불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과거에는 네트에서 가상의 연장선을 그어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면 아웃으로 판정했으나 이제는 수비된 공이 상대 팀 코트 밖의 프리 존에 넘어가더라도 그 공을 자기 진영 코트로 패스하여 반격할 수 있도록 수비 범위를 확대하는 조치도 추가했다.

여기에는 8점과 16점에 테크니컬 타임아웃을 두는 등 광고와 중계권료 수입을 위해 지나치게 상업화한다는 일부 지적도 있지만 배구의 과감한 변신은 평균 경기 시간을 줄이고 더 박진감 넘치게 만들어 인기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배구의 무한 변신은 어디까지 일까?

 

‘배구락(樂) 개론’ 다음 편에는 ‘축구는 4-4-2, 그렇다면 배구의 기본 포메이션은?’이라는 주제를 갖고 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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