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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27) '내 마음의 꽃비' 정희태, 배우에게 악역을 연기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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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27) '내 마음의 꽃비' 정희태, 배우에게 악역을 연기한다는 것은…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10.20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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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대부분의 아침드라마가 그렇듯이 지난 9월 막을 내린 KBS TV소설 '내 마음의 꽃비' 역시 착하고 올바른 주인공과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들이 사방에 포진한 평범한 '막장드라마'의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는 드라마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여타의 '막장드라마'와 비슷해 보이면서도 또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주인공보다 악역을 연기한 배우들이 더 주인공처럼 느껴질 정도로 악역 캐릭터의 비중이 강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는 바로 '이수창'이라는 악역을 연기한 정희태 배우가 있었다.

[스포츠Q 글 원호성·사진 최대성 기자] 정희태 배우는 최근 TV 드라마에서 악역 캐릭터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콕 짚어 악역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하지만, 드라마 초반 안영이(강소라 분)를 괴롭히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던 '미생'의 '정과장'을 시작으로, '어셈블리'의 국민당 사무총장 '임규태', '내 마음의 꽃비'의 '이수창'까지 선 굵은 악역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내 마음의 꽃비' 정희태 [사진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 정희태에게 '이수창'은? "뒤 없는 악역"

9월에 종영한 TV소설 '내 마음의 꽃비'는 그야말로 '이수창'을 위한 드라마였다. 드라마 초반 '이수창'의 역할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천일란(임지은 분)을 발로 걷어차며 내다버리는 바람둥이 역할로 끝일 줄 알았다. 하지만 훗날 천일란이 이수창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이를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 맞아 죽은 민승재(박형준 분)의 아이라고 속이고 미성제과의 며느리가 된 사실을 알자, 이수창은 다시 등장해 천일란에게 빌붙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마지막회까지 제대로 악역 연기의 진수를 선보인다.

'내 마음의 꽃비'에서 정희태가 연기한 '이수창'이라는 배역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악의 결정체'라고 할 정도로 악한 마음으로 똘똘 뭉친 그의 캐릭터 때문이었다. 최근 드라마들은 어린시절의 가난이나 고통, 상처 등 트라우마나 특정 사건을 통해 악인이 결국 악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며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수창'은 악인이지만 거대한 야욕을 드러내며 음모를 꾸미거나 계획적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스케일이 큰 악인은 또 아니다. 그저 지금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이왕이면 돈도 풍족하게 살 수 있다면 남들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소시민적인 악인이랄까? 그런데 소박한 스케일의 악인인데도 동정의 여지 같은 것이 전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 아는 타고난 악인이라는 점 역시 더욱 독특하다.

"'내 마음의 꽃비'에 나오기 6개월 전에 같은 감독님이 연출한 TV소설 '그래도 푸르른 날에'에 출연했고, 거기서도 악역을 연기했거든요. 그래서 걱정이 많았어요. 나오는 사람 또 나온다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서 이번에는 캐릭터적인 면에서 사전에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어요. '그래도 푸르른 날에'의 '정만수'는 나쁜 짓을 해도 누나를 위해서 했다는 동기가 있었는데, '내 마음의 꽃비'의 '이수창'은 뒤없이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이죠."

정희태가 말하는 "뒤없이"라는 표현은 바로 악인에게 일종의 '면죄부'가 될 수 있는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지는 지점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처럼 '내 마음의 꽃비'에서 '이수창'은 엄마가 죽을 것 같다며 도박장으로 달려온 아들에게 손찌검을 하며 "너 때문에 재수 옴붙었다"고 여전히 화투패를 들고 있는 그런 궁상맞은데 독한 악인의 이미지를 완성해냈다.

'내 마음의 꽃비' 정희태 [사진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 정희태에게 일일드라마란? "내가 가진 것들을 빼내는 느낌"

김기덕 감독의 영화 '해안선'에서 해병대 대원 중 한 명으로 출연하며 데뷔한 이후 그동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 왔지만, 최근 들어서 일일드라마인 TV소설에 연이어 비중 있게 출연하며 정희태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났다. 그 뿐 아니라 '미생' 이후 부쩍 드라마 출연이 늘어나며 식당 같은 곳에서도 드라마를 잘 봤다며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배우의 입장에서 일일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6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120부작이라는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데다, '내 마음의 꽃비'처럼 출연 분량이 많아지면 그 기간 동안은 다른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전력투구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 마음의 꽃비'가 끝난 지금 후유증이 좀 있어요. 6개월짜리 긴 드라마잖아요. 일주일에 실내 세트촬영은 5회분을 하루에 다 몰아서 촬영하고, 야외촬영은 2회 정도에 다 몰아서 찍어요. 6개월 동안 일주일에 3일에서 4일 정도를 드라마 한 편에 매달리는 거죠. 그래서 '내 마음의 꽃비'가 끝나고 한 보름 정도는 갑자기 목적 없는 생활이 생기면서 갑자기 공허함이 밀려오기도 했죠."

"연극 같은 경우는 작품 하나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2개월 정도의 연습과정을 거쳐요. 그러면서 배우는 작품과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구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자신에게 다시 체화시키며 좋은 에너지로 돌려받아요. 영화도 연극보다는 시간이 촉박하지만 그래도 감독님과 연기에 대해 상의를 할 시간이 있고 그러면서 캐릭터를 다듬어나갈 여유가 있어요. 그런데 드라마, 그 중에서도 일일드라마는 대본을 받고나면 감독님과 상의할 시간도 없어요. 그러니 영화나 연극처럼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에너지를 쌓을 여유도 없이, 내 안에 있는 내가 가진 것들을 내뱉고 뽑아내는 기분이라 쉽지가 않아요."

긴 기간과 촬영도 문제지만 일일드라마가 더욱 배우를 지치게 하는 것은 감정연기였다. 한 편의 길이가 30분 이내로 짧다보니 한 번 일어난 사건은 기본적으로 2주에서 3주 정도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고, 배우는 그 긴 기간 동안 계속 같은 감정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

"일일드라마에서는 연기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반복되는 것이 많아요. 예를 들어 화를 내는 장면 같은 경우 몇 회를 연속으로 그 감정을 가지고 화를 내거나 긴장된 상태로 연기를 해야하거든요. 임채원씨 같은 경우는 딸이 죽은 장면에서 그 슬픈 감정을 몇 주 동안이나 이어갔어요. 그렇게 감정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나중에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헷갈릴 때도 있어요. 시간적 여유가 촉박하다 보니 내 안에 있는 것을 계속 빼내서 쓰는 거죠."

'내 마음의 꽃비' 정희태 [사진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 대학 연극동아리에서 '10분'으로, 그리고 다시 '미생'으로

많은 배우들이 그런 것처럼 정희태 배우 역시 어린 시절 TV에서 영화들을 보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정희태가 '배우'라는 직업을 하게 된 것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실로 적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영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해주셨어요. 어떻게 아버지가 그렇게 영화에 대해 잘 아는지 계속 궁금했는데, 나중에야 아버지가 젊은 시절 진주의 한 극장에서 간판을 그리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그렇게 아버지를 통해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 자연스럽게 배우라는 직업을 꿈꾸게 됐죠."

배우를 꿈꿨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 정희태는 연극영화과에 입학하는 대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 평범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아니,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곳에는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연극반인 '또아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기에 대한 꿈이 있었기에 연극반에 들어가 1학년부터 배우로 활동했어요. 그러다 1998년에 전국대학 창작연극제에서 우리가 공연한 작품이 대상과 희곡상, 연기상을 타게 됐고 그것이 저에게는 큰 전환점이 됐죠. 그러다 보니 마지막에는 우리끼리 졸업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고, 그렇게 배우의 길에 접어들게 된 거죠."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으로 데뷔한 이후 정희태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 왔지만, 그 중 정희태라는 배우에게 특별한 인연으로 다가온 작품은 이용승 감독이 연출한 '10분'이라는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정희태는 인턴사원인 호찬(백종환 분)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다 마지막에 결국 모든 사고의 책임을 힘없는 인턴사원인 호찬에게 전가시키는 노조지부장을 연기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10분'에서 정희태가 보여준 노조지부장 연기는 그대로 tvN 드라마 '미생'의 '정과장'으로 이어지게 됐다. 

'내 마음의 꽃비' 정희태 [사진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미생'에서 감독님이 캐스팅을 진행하면서 얼굴이 익숙한 유명한 배우를 쓰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가급적 신선한 얼굴을 찾으려고 하셨대요. 마침 그때 제가 출연한 영화 '10분'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돼서 상영이 됐죠. 그래서 '10분'하고 비슷한 이미지로 '미생'에 출연하게 됐어요."

'10분'에서 정희태가 연기한 노조지부장이 겉으로는 호인(好人)을 연기하지만 뒤로는 자기 이득을 챙기는 영악한 직장인이라면, '미생'에서 정희태가 연기한 '정과장'은 신입사원 안영이(강소라 분)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부하직원을 갈구는 악독한 상사의 모습이 비춰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부하직원을 감싸며 상사에게 대드는 모습으로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 결과적으로 '10분'에서는 악역을, '미생'에서는 선역을 연기한 셈이지만, '미생'에서 초반에 보여준 이미지가 너무 강해 이후 드라마에서 악역 전문배우처럼 캐스팅되게 된 것이다.

"약간 낯 뜨거운 말이기도 한데, 제가 예전에는 미소가 좋다고 광고도 찍고 그랬어요. 제 이미지가 자수성가한 중소기업 사장님 같은 이미지인데, 이런 편안한 이미지가 우리나라에서는 의외로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자꾸 악역을 해서 그런지, 내가 봐도 내 웃음이 미워보이고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하하."

"'내 마음의 꽃비'에서 '이수창'은 비중이 제법 큰 역할이었지만, 아직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렇게 극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을 연기하기는 쉽지 않아요. 배우가 악역을 연기한다고 해서 진짜 현실에서 그런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배우로서 내가 가진 상상이나 내 내면의 자아를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런 연기를 할 때마다 저는 제 알몸을 보여주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배우로서 제가 가진 원칙은 있어요. 아무리 제가 짧게 출연하더라도 기계적으로 연기를 하지 않고 그 장면을 어떻게 표현하냐는 본질적인 문제를 항상 고민하려고 해요."

[취재후기] 정희태의 다음 작품은 2017년에 JTBC에서 방송될 '더 패키지'다. 이번에는 제약회사 직원인 주인공 정용화를 끊임없이 갈구는 직장상사로 '미생'의 '정과장'과 비슷한 역할을 연기한다. 하지만 정희태라는 배우는 비슷한 듯 보여도 매번 조금씩 다른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이기에 이번에도 '미생'의 '정과장'하고는 또 다른, 물론 '내 마음의 꽃비'의 '이수창'하고도 다른 현실적인 악역 직장상사의 얄미운 모습을 연기해낼 예정이다. 벌써부터 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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