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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335명 영웅들, 맞잡는 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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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335명 영웅들, 맞잡는 손이 없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0.24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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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현장 취재기] 한국 종합 2위, 구슬땀 흘린 일주 열전…무관심은 여전히 아쉬움

[인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열정의 물결, 이제 시작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일주일 동안 치열한 경쟁을 벌인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도 어느덧 마지막날까지 왔다.

사상 최초로 북한이 참가해 41개국 6000여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 역대 대회 최대 규모로 치러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은 슬로건의 취지에 맞게 뜨거운 열정과 구슬땀이 함께 했다.

양궁과 육상, 보치아, 사이클 등 패럴림픽에 포함되어 있는 19개 종목과 배드민턴, 론볼, 볼링, 휠체어댄스스포츠 등 비패럴림픽 종목 4개 종목 등 모두 23개 종목에 걸쳐 선의의 경쟁이 벌어졌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 선수 335명을 포함해 모두 486명의 선수단을 파견해 종합 2위를 달성했다.

일주일 동안 보여준 그들의 열정 뒤에는 장애인 선수이기에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속사정과 눈물도 있었다. 뜨거운 땀과 눈물이 한데 어우러지고 그 속에서 승리자가 된 그들의 모습은 충분히 가치받을만 하다.

▲ 이승미가 사이클 도로 여자 개인전 H 1-5 타임 트라이얼에서 은메달을 확정한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이들은 메달 색깔과 입상에 관계없이 모두가 승리자였고 영웅이었다. [사진=스포츠Q DB]

◆ 그들을 밖으로 나오게 한 스포츠, 스포츠가 만든 '335명의 승리자'

경기를 통해 보여준 그들의 열정에 쌀쌀한 늦가을 날씨가 무색했다면 경기 뒤에 숨겨진 열정은 용광로 수준이다. 무관심과 편견,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그들이 흘린 땀의 온도는 도저히 잴 수가 없다.

여자 육상의 에이스로 거듭난 전민재는 이번 대회를 통해 2관왕에 올랐다.

5세 때인 1982년 원인을 알 수 없는 뇌염으로 상반신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게 된 뇌성마비 장애인이 된 전민재는 학교 생활을 하지 못한 채 우울한 사춘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는 평소 스물살까지만 살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19세이던 1996년에 특수학교를 소개받은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19살이 되어서야 초등학생이 된 그는 중학교 2학년이던 2003년에 교사의 권유로 육상에 입문했다.

육상에 처음 입문했던 2003년 장애인체육대회에서는 메달을 따내지 못했지만 입문 3년째인 2006년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에서 100m과 2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단숨에 기대주가 됐다.

4년 뒤인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100m와 200m 은메달을 획득한 그는 2년 뒤 런던 패럴림픽 100m와 200m 은메달 등 기량이 쑥쑥 성장했다. 결국 인천 대회를 통해 100m와 200m 2관왕에 올랐다.

전민재는 200m 경기가 열린 19일 장문의 편지를 공개했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발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쓴 편지였다. 전민재는 "항상 긍정의 힘을 불어넣어주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박정호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 육상의 전민재는 100m와 200m 금메달을 따내며 종합대회 첫 정상에 올랐다.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과 런던 패럴림픽에서 은메달 2개를 따냈던 그는 이제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을 노린다. [사진=스포츠Q DB]

휠체어럭비 대표팀 선수인 황희철 역시 스포츠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켰다. 황희철은 "처음 사고로 장애인이 되고 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었다"며 "그러나 휠체어럭비를 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장애가 있다고 밖으로 나오기를 꺼려하기보다 주위 시선에 신경쓰지 말고 스포츠를 당당하게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위 시선에는 신경쓰지 말고 스포츠를 즐기기 시작한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얘기였다. 스포츠를 통해 성격도 긍정적이고 외향적으로 바뀌는 측면 역시 이들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사이클 여제'가 된 이도연 역시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된 뒤 운동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변혁시켰다. 건물에서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됐을 때가 1991년의 일이었다. 장애인이 됐다는 충격에 15년 넘게 칩거했던 그를 밖으로 나오게 만든 것은 바로 스포츠였다.

처음 어머니의 권유로 탁구를 시작한 그는 육상을 거쳐 사이클에 입문했다. 6년 동안 했던 탁구는 자신이 국가대표가 되기에 모자라다고 생각해 육상으로 전향했고 육상에서는 국내 1인자였지만 세계무대 기준기록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탁구와 육상으로 단련된 그는 손으로 페달을 돌리는 핸드사이클 1인자가 되는 밑바탕이 됐다. 불과 입문 1년도 안돼 이탈리아 월드컵과 스페인 월드컵, 미국 세계선수권을 석권했다. 현재 그는 세계 랭킹 2위로 이번 대회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2관왕에 올랐다. 그의 다음 목표는 2년 뒤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서 2관왕에 서는 것이다.

▲ '사이클 여제'가 된 이도연은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된 뒤 15년 동안 칩거했다가 스포츠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탁구와 육상을 거쳐 사이클에 입문한지 불과 1년만에 세계 정상급 선수가 됐다. [사진=스포츠Q DB]

이번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335명의 전민재'와 '335명의 황희철', '335명의 이도연'이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동정의 시선과 편견은 그들을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고 자신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게 만들었지만 스포츠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켰다. 스포츠를 통해 바깥 세상으로 나오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회와 융화됐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즐기고 땀을 흘리면서 지금의 대표 선수가 됐다.

각자의 종목에서 맹활약한 이들은 메달 색깔이나 입상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가 승리자였다. 우리는 335명의 영웅 탄생을 인천에서 지켜봤다.

◆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특수교육학 용어 사전에서 장애라는 말을 찾아보면 '질병이나 사고 등에 의해 지적, 정신적, 청각, 시각, 내장, 골격, 기형적인 면에 결함이 생겨 정상적인 생활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한 상태'라고 나온다.

그러나 장애인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이런 사전적인 의미를 바꿔야함을 느낀다. 곤란하거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

휠체어댄스스포츠에서 이재우와 함께 호흡을 맞춰 스탠다드 콤비 클래스1에서 금메달을 따낸 장혜정은 자신은 비장애인과 다르게 살 뿐이라고 말한다.

동갑내기 최문정의 연기 모습에 반해 휠체어댄스스포츠에 입문한 장혜정은 3년 전부터 이재우와 호흡을 맞추면서 단숨에 휠체어댄스스포츠 세계 강호 대열에 들어섰다.

▲ 휠체어댄스스포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대일로 파트너로 만나 경기를 치른다. 비장애인 선수가 장애인 선수를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팀 동료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구슬땀을 흘렸다. 사진은 휠체어댄스스포츠 연기를 하고 있는 최문정. [사진=스포츠Q DB]

무려 19년의 나이차가 나는 이들이 환상의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이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서 만났기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동료로서 만나는 장애인댄스스포츠 콤비는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이상을 가장 잘 구현한 종목으로 평가받는다.

장혜정은 "비장애인 선수가 파트너가 아니라 보조자의 역할인 종목이라면 절대 휠체어댄스스포츠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나는 휠체어라는 큰 신발을 신고 있다고 생각한다. 휠체어라는 큰 신발만 신고 있을 뿐 다른 선수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장애라는 불편함이라는 것이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단순히 다른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들 역시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배드민턴 WH1(휠체어)에서 금메달을 따낸 최정만도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받기를 원한다. 장애인 선수들을 스포츠를 배우기 위해서는 비장애인 출신 지도자에게 훈련을 받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선수의 숫자가 적어 지도자 역시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비장애인 출신 지도자 가운데에는 장애인들의 다름을 인식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지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최정만은 "휠체어를 타고 배드민턴을 치는 것을 이해하려면 직접 비장애인 출신 지도자들도 휠체어를 타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비장애인 선수들이 스텝을 밟으면서 경기를 하듯 휠체어를 움직이는 것 역시 일종의 스텝이다. 이런 스텝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장애인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 한국은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 선수 335명 등 모두 486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이번 대회에서 구슬땀을 흘린 335명의 선수는 모두 승리자였다. 사진은 여자 에페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이 끝난 뒤 상대팀인 태국 선수와 인사하는 김정아. [사진=스포츠Q DB]

◆ 각자의 사연 속에 숨겨진 눈물과 희열

각자 개인의 사연 속에 숨겨진 눈물이 있고 희열도 있다.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23일 열린 육상 남자 1600m 계주 T53/T54 결승에서 유병훈, 정동호, 이기학과 함께 호흡을 맞춰 3위에 오른 홍석만은 아버지의 영전에 자신의 동메달을 바쳤다.

홍석만은 경기 당일 아침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멍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빈소로 달려가지 않고 경기장에 남았다. 계주 경기는 자신 혼자만의 경기가 아니라 단체 경기였기 때문이다.

동료들을 등질 수 없었던 그는 오후 7시에 벌어진 계주경기에 참가했다. 혹시라도 동료들의 마음에 동요가 일까봐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전에 열렸던 남자 800m T54 결승에서 타이 선수와 부딪히면서 팔에 부상을 당해 완주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빈소에 가지 않고 치른 경기였다.

팔을 다쳤지만 그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계주를 포기할 수 없었다. 아픔을 잊고 1번 주자로 나서 부지런히 휠체어 바퀴를 돌려 2번 주자인 유병훈에게 바통을 넘겼고 값진 동메달을 따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육상 종목에 출전한 홍석만은 남자 800m에서 팔을 다친 상태에서 1600m 계주 종목에 출전했다. 특히 홍석만은 23일 오전 아버지의 별세 소식을 듣고도 경기에 출전하는 투혼을 보였다. [사진=스포츠Q DB]

스탠다드 콤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재우-장혜정 커플은 갑작스럽게 라틴 콤비 종목에 참가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경기가 성립이 되려면 최소 5개조가 참가해야 하는데 일본 조가 갑작스러운 사정 때문에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재우와 장혜정은 스탠다드 종목만 해봤을 뿐 라틴은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스탠다드 금메달 듀오의 명예를 걸고 라틴 댄스 5개를 불과 5시간만에 익혔다.

장혜정은 "단 한번도 라틴을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최하위를 할 줄 알았다"고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5개 조 가운데 4위를 차지했다. 메달을 따내지 못했지만 겨우 5시간만 준비하고 나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지 않을까.

◆ 뜨거운 열정을 유지하게 만드는 환경 조성이 필요

장애인 선수들이 일주일 동안 굵은 구슬땀을 흘렸지만 과연 이들의 열정을 뜨겁게 맞이했는지는 다시 생각해봐야할 대목이다.

아시안게임이 치러진 뒤에 열린 장애인아시안게임은 부쩍 서늘해진 날씨와 함께 대회 기간 초반 비가 내렸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하루하루 몸 상태가 다른 장애인 선수들은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었다. 조금이라도 더 따뜻했을 때 경기가 열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 장애인아시안게임을 아시안게임처럼 지켜볼 수 없었던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장애인아시안게임은 개회식을 TV를 통해 지켜보기 힘들었음은 물론이고 대부분 종목 역시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도 볼 수 없었다.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가 일부 인터넷 채널을 통해 경기를 중계하긴 했지만 많은 종목을 모두 소화하기란 무리였다.

이에 대해 유병훈은 "TV를 통해 장애인아시안게임이 중계되지 않은 것은 너무나 아쉽다"며 "특히 내가 뛰고 있는 육상 종목은 거의 중계되지 않았다. 우리 가족조차도 내가 어떻게 뛰는지 지켜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 한국 선수단은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종합 2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실업팀 창단 등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지원 확대 등 각종 숙제를 남겼다. 사진은 펜싱 남자 에페 중국과의 단체전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는 장동신. [사진=스포츠Q DB]

장애인아시안게임에 대한 차가운 무관심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조직위원회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아시안게임의 열정을 느낄 수 있도록 모든 경기를 무료로 개방했지만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부 경기장에서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찾아 응원을 보내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견학도 한계가 있었다. 대표적인 비인기종목인 육상 같은 경우는 거의 관람석이 텅 비다시피 해 대회 관계자와 선수단 관계자의 함성만이 울려퍼졌다.

한국의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지원 방안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장애인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선수들에게 앞으로의 바람을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실업팀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경제 걱정 없이 자신들이 훈련에만 열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대회 종합 2위를 달성하긴 했지만 이 자리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종합 2위라는 달콤한 수확물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종합 2위를 통해 가능성을 봤으니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지원과 활성화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선수들의 열정은 뜨거웠지만 그 열정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야 할 일,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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