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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저항의 '카트'에 희망 실은 비정규직 '여사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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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저항의 '카트'에 희망 실은 비정규직 '여사님'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0.2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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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해고와 이직이 일상화된 사회, 아무리 노력해도 삶의 질은 개선되지 않는 일터,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낙인처럼 새겨진 현실에서 ‘카트’는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다뤘다.

두 아이를 둔 계약직 계산원 선희(염정아)는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꿈에 부풀어 있다. 5년 동안 벌점 하나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결과다. 전 직장에서 해고됐던 싱글맘 혜미(문정희), 60대 청소원 순례(김영애), 기업 면접만 50번 넘게 본 대졸자 계산원 미진(천우희) 등과 함께 대형마트 ‘더 원’에서 근무한다. 어느 날, 회사 측은 경영 효율성 제고란 명분을 앞세워 용역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방침을 세운다. 일방적인 해고 통지를 받게 된 마트 직원들은 부당해고 철회를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 사측과의 기나 긴 싸움에 나선다.

 

2007년 이랜드 홈에버(현 홈플러스데스코) 노조원들의 파업을 비롯해 홍익대·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등을 모티프 삼아 만들어진 영화는 마트라는 공간 안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이들 대부분은 감정 노동자들이기도 하다)들의 버거운 현실과 인간답게 살고 싶은 꿈을 펼쳐 놓는다.

특히 편의점 알바생인 10대 청소년 수경(지우)과 태영(도경수), 88만원 세대인 20대 미진, 30~40대 주부 계산원, 50~60대 청소원 캐릭터를 통해 세대를 관통하는 차별과 흔들리는 삶을 보여준다. 영화는 부도덕한 자본과 기업만을 정조준하진 않는다. 자신의 이해에 따라 등을 돌린 정규직, ‘노동조합’ ‘파업’을 불편한 단어로 치부하는 일반 대중 역시 이런 상황에 가세하고 있음을 말한다.

부지영 감독은 다양한 각도의 시선과 절제된 화법으로 ‘센’ 소재를 대중영화의 품에 끌어안는다. “저 생활비 벌러 나와요, 반찬값 아니고” “립스틱 색깔 정해주는 회사는 첨 봤어요” “누가 그래요? 일수 채우지 않으면 월급 안줘도 된다고”와 같은 대사, 진상 고객 앞에 무릎 꿇은 채 사과하고 복도 한가운데 책상에서 반성문을 작성하는 계산원 ‘여사님’(사내 호칭이다)들, 지하 보일러실 옆에 얼기설기 지어진 휴게실의 살풍경함은 감정을 강요하는 법 없이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화장을 지운 뒤 캐셔 복장으로 갈아입은 여배우 염정아 문정희의 진심을 담은 호연과 젊은 배우들인 도경수 지우 천우희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나이브 해보이기까지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라든가 사측과 노동자를 선명한 선악구도로 몰고 가지 않은 설정, 감정을 증폭하는 묘사를 배제한 점으로 인해 치열한 현실보다 온도가 낮은 게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들은 평범한 아줌마들이었다. 영화는 소박했던 인물들이 왜 노조원이 되는지, 흔들리는 삶이 어떻게 파업으로 점화하는지, 이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무엇인지에 집중한다.

우리나라의 임시직과 일용직 등 비정규직 규모는 823만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에 이른다. 이 중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443만명에 달해 정규직 노동자(354만명)보다 많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OECD 국가 중 고용 불안정성이 가장 심한 대한민국, 사회의 최약자층인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과 초단기 근속에 기반해 '노동의 유연성' '복지'를 운운하는 나라에서 이런 문제에 주목한 상업영화가 그동안 나오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아이러니하다. 11월13일 개봉.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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