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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Q] '피고인'의 '고구마 전개'에 대한 작은 변론...한정된 공간 속 빛난 지성·엄기준의 큰 연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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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Q] '피고인'의 '고구마 전개'에 대한 작은 변론...한정된 공간 속 빛난 지성·엄기준의 큰 연기력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7.03.2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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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이은혜 기자] '권선징악'은 한국 고전소설에 나타나는 결말부의 주된 형식이다. '선행은 권장하고 악행은 징계한다'는 것으로, 유교 덕목인 삼강오륜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극중에서나 현실에서나 온갖 악행을 일삼던 인물이 벌을 받는 장면을 보면 우리 대부분은 통쾌함을 느낀다. 이럴 때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맹자의 '성선설'이 맞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21일 종영한 '피고인'도 결말은 권선징악이었다. 하지만 마지막회(18부작)에서도 죄를 지은 악인에 대한 응징이 생각만큼 박진감 넘치고 후련하게 전개되지는 않아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지난 1월 첫 방송을 시작한 SBS ‘피고인’(극본 최수진, 최창환·연출 조영광, 정동윤)은 총 16부작으로 시작했다. 방송 중간 ‘피고인’은 2부 연장한 18부작으로 작품을 마무리 하기로 결정하며 주목 받기도 했다.

SBS ‘피고인’ 지성 [사진= SBS ‘피고인’ 화면 캡처]

방송 초반 ‘피고인’은 박정우 역의 지성과 차민호와 차선호 두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한 엄기준의 완벽한 호흡과 연기력을 선보였다.

두 사람 뿐 아니라 ‘피고인’에 출연한 손여은(윤지수 역), 오창석(강준혁 역), 우현(밀양 역), 오대환(뭉치 역), 김민석(성규 역), 조재윤(신철식 역) 등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 뿐 아니라 박하연 역으로 등장한 아역배우 신린아,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유리(서은혜 역) 등 많은 배우들이 관심을 받았다.

‘피고인’은 극 전개 과정에서 지성이 계속해서 기억을 잃게 되고, 돈과 명예, 권력 등을 모두 가진 엄기준이 계속해서 악행을 저지르는 등 ‘고구마 전개’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쩌면 '피고인'은 태생부터 고구마 전개가 불가피했을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고도 오히려 살인범으로 몰렸던 주인공 박정우(지성)의 극단적인 사연부터 시청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더욱이 주인공이 활동하는 주무대가 몇 평 남짓한 넓이의 감옥 안이었다. 

지성은 좁고 어두운 감방 안에서 울부짖고 몸소리쳐야 했고, 작은 희망의 빛이라도 볼 듯하면 악인과 결탁한 교도소장(손광업 분)의 악행에 거듭 좌절을 겪어야 했다. 2~3시간짜리 영화에서 더 어울릴 만한 소재가 18부작 미니시리즈로 전개되다 보니 물도 없이 고구마만 계속 먹는 듯 답답한 심정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악인인 차민호(엄기준)가 징계를 받고, 선인인 박정우(지성)가 하루빨리 누명을 벗고 딸을 찾고 행복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박정우의 무죄를 시종일관 믿어주는 서은혜 변호사(권유리)와의 연결고리가 좀 더 사랑스럽게 전개되기를 기대한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고구마 전개’에도 시청자들이 '피고인'에 시선을 빼앗긴 이유는 무엇일까? 종종 전개되는 영화같은 서스펜스와 스릴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사이다’같은 배우들의 연기력이 극을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성은 극 중 딸로 등장하는 신린아를 향한 부성애를 섬세한 연기력으로 표현해 내며 주목 받았다. 감옥 바닥에 손톱으로 핏빛 스크래치를 내며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몰입연기는 고전의 명작에서 봄 직한 처절한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줬다. 

지난해 ‘딴따라’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며 아쉬움을 남겼던 지성은 이번 ‘피고인’을 통해 화제성과 시청률, 연기 등 모든 면에서 성공을 인정 받게 됐다.

SBS ‘피고인’ 엄기준 [사진= SBS ‘피고인’ 화면 캡처]

‘피고인’이 방송 되는 동안 지성 못지 앉게 관심을 받은 배우는 역시 엄기준이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1인 2역에 도전한 엄기준은 성향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해 내며 주목 받았다. 

임기준은 형만 아끼는 아버지 밑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삐뚫어진 세계관, 하루하루 점점 더 악의 터널로 빠져드는 사이코패스적 성격을 심도있게 표현했다. 사랑했지만 형에게 빼앗겼던 여인 나연희(엄현경)를 바라보는 눈빛은 여느 사랑하는 남자처럼 부드러웠지만, 악행을 저지를 때는 눈빛에 살기가 돌았고 입가의 미소는 싸늘하게 식었다.  

차선호가 죽고 난 뒤 살아 남은 차민호가 보여주는 악행들은 엄기준의 연기가 더해지며 극 전개에 확실한 긴장감을 더했다.

계속되는 악인의 악행과 주인공의 기억 상실, 마지막 회까지 이어진 엄기준의 악행 등은 ‘피고인’을 ‘고구마 드라마’라고 불리는데 일조했다. 그렇지만 시청자들은 끝내 '피고인'을 외면할 수 없었다. 

공간과 사건의 제한된 얼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피고인'을 볼 수밖에 없게 만든 대목은 '고구마 전개'라는 비판에도 제작진과 연기자 모두에게 후한 점수를 줘도 좋을 듯하다. 어쩌면 진짜 수훈갑은 OECD 가맹국들 중 부패지수 후진국을 면치 못하는 우리의 고구마같은 현실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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