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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카트' 부지영 감독 "투쟁 안에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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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카트' 부지영 감독 "투쟁 안에는 사람이 있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1.14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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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 사진 노민규기자] ‘카트’(11월13일 개봉)는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다뤄 눈길을 끈다.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개론’ 등을 만든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기획하고, 부지영 감독이 연출을 맡는 등 여성 영화인들의 파워가 녹아든 영화다.

대형마트의 계약직 계산원 선희(염정아)와 싱글맘 혜미(문정희), 청소원 순례(김영애) 등은 하루 아침에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자 용기를 내 노조를 결성, 힘겨운 해고 무효 투쟁을 벌여 나간다. 영화는 실제 발생했던 홈플러스, 연세대와 홍익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을 모티프 삼아 생생한 감동을 전달한다. 개봉을 앞두고 삼청동 카페에서 또릿또릿한 눈망울의 40대 부지영 감독을 만났다.

 

-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상업영화의 경계에서 작품을 ‘요리’하는 게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 상업영화 틀 안에서 관객에게 다가가게 하기 위한 장치가 스토리였다. 평범했던 두 아이의 엄마 선희가 변화하는 과정, 사춘기 아들과의 갈등은 ‘카트’가 성장영화이자 가족영화임을 보여준다. 재밌는 시도라고 여겼고, 낯선 소재가 낯설지 않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익숙한 배우들이 출연해 쉽게 잘 받아들여질 거라고도 판단했다. 다큐멘터리 느낌이 극영화로 녹아들며 충분히 가능할 거라 확신했다. 주변에서도 어느 누구 하나 말리지 않고 전폭적으로 지지해줬다.

- 관객의 감정선이나 눈물샘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는 장면들이 존재함에도 담담하게 넘어가곤 한다.

▲ 내가 감정 표현에 있어서 지르는 타이프가 못된다. 슬프거나 격한 장면에서 우는 모습뿐만 아니라 영화는 많은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 이를 동원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연기, 카메라 앵글, 블로킹이 그런 느낌을 더 잘 표현해주길 원하나보다. 힘들고 아픈 장면에서 직설적으로 가는 것보다 덤덤한 표현을 하는 건 내 방식이다. (감정을)들이댄다고 해서 관객이 잘 받아주는 건 아니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감정이)점차 올라가야 한다.

▲ 영화 '카트'의 한 장면

- 공효진 신민아 주연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2009)는 자매의 내밀한 여행담이고, 단편 ‘니마’와 다큐멘터리 ‘나 나 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 그리고 ‘카트’ 모두 여성들에게 시선을 향한다.

▲ 여자 이야기에 늘 관심이 많다. 내 DNA가 좀 그런가 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여자들이 많았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15년을 살았다. 씩씩한 제주 여성의 영향이 있었을 테고, 여대(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를 다녔다. 결혼 후 출산해보니 여성이 여전히 약자임을 절실히 느꼈다. 경력이 단절되는 사회의 높은 벽을 많이 경험했다. 자연스레 같은 처지의 여자들에게 관심이 많이 가서 영화작업을 해왔다.  특히 차별받는 존재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는 모습에 경외심을 가진다. 그들이 연대해서 고난을 극복해가는 게 너무 좋다. 요즘은 매력적인 남자 캐릭터도 연구한다. 여자들만의 세상은 아니지 않나. 이번에 이승준, 김강우, 도경수와 작업해보니 아주 좋았다. 하하.

- 요즘 사회성 짙은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되고 있다. ‘카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지 싶다.

▲ 우리 사회가 팍팍하고 결핍이 많지 않나. 기획자들은 현실의 이슈와 트렌드에 민감하고 창작자들은 사회적 문제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 제작자와 감독들은 공감 능력이나 열려있는 면에서 강하고 크다. 임순례 감독님의 ‘제보자’에서도 드러나듯.

- 배우 캐스팅도 이채로웠다. 도시적이고 강한 이미지의 염정아가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 역을 맡아 순종적인 면모를 이질감 없이 연기했다. 문정희의 안정감 있는 연기도 좋더라.

▲ 정아씨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 연기처럼 하지 않고 캐릭터 전달력이나 캐릭터의 날 것을 잘 끄집어냈다. 그 나이대 아줌마들을 많이 봐왔을테고 주부라 생활인의 정서를 잘 알거라 여겨서 걱정 없이 선희를 맡겼다. 정희씨는 지적인 부분이 혜미 캐릭터에 필요했다. 그는 힘있는 배우다.

 

- 88만원 세대를 대변하는 계산원 미진 역의 천우희, 선희의 아들인 고교생 태영 역의 도경수의 호연도 예상을 뛰어 넘었다.

▲ 천우희는 '카트'를 촬영하고 나서 ‘한공주’로 떠서 그의 적은 출연 분량이 미안할 정도였다.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은 채 자기 자리를 잘 찾아가는 영리한 배우다. 힘을 빼고 일상적으로 표현해내는 귀한 배우더라. 도경수는 ‘아이돌’이 아닌 ‘신인배우’로 작업했다. 그 나이 또래의 밝고 평범한 친구다. 첫 연기임에도 리딩이 좋았고 감독의 디렉션에 순발력 있게 적응해서 가능성을 눈여겨봤다. 역시 ‘카트’ 이후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출연했는데 연기력이 많이 늘어서 놀랐다.

- 마트의 행동파 간부, 임원과 같은 경영진 캐릭터를 악하게 묘사해 극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것도 다소 의외였다.

▲ 사무실 직원들도 인간이고 그들 역시 각자의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나. 짠한 부분이 있다. 노조위워장 동준(김강우)이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 그를 향해 본사 직원이 사측을 대변해 나쁜 얘기를 하는데 ‘저들은 오너도 아닌데 왜 저럴까?’라는 물음표를 던지고 싶었다.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끼리 반목하는 가슴 아픈 현실을 구조적 문제로 바라봐주길 원했다.

- '카트’를 연출하며 난관이나 힘든 촬영이 많았을 것 같다.

▲ 영화의 주요 배경인 마트를 창조하는 게 가장 큰 난관이었다. 하루 매출이 어마어마한 마트를 섭외할 순 없기에 세트를 지어야만 했다. 2개월에 걸친 힘겨운 헌팅 끝에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700평 규모의 물류창고를 마트로 탈바꿈시켰다. 도시 분위기는 CG로 처리해야만 했다. 비정규직의 처지를 보여주는 탈의실과 휴게실이 미술감독과의 협업으로 사실감 넘치게 탄생해 너무 뿌듯했다. 현실의 디테일을 영화적으로 구현했다. 열악한 근로조건을 견디고 일해 온 사람들이 일방적 해고에 저항하는데 힘을 실어주는 곳이라, 이 공간이 말을 해야 한다고 여겼다.

 

-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 고객이 진상을 부리는 장면이 어려웠다. 고객은 곧 관객이고, 우리들이지 않나. 우리 역시 마트 노동자들한테 나쁜 행동을 할 수 있는데 관객이 잘 받아들이기 위해선 상황, 수위, 정서가 논리적으로 이해돼야 하므로 배우들의 연기 ‘정도’가 조율이 잘 돼야 했다. 원래는 진상 고객 에피소드가 더 많았는데 많이 쳐냈다.

- 부 감독도 영화 속 여성 노동자들과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나?

▲ 20대 시절, 학점이 나빠서 1차 서류전형이 있는 공채시험을 볼 수가 없었다. 김밥집 서빙, 논술채점, 텔레마케팅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취업하기 힘든 20대의 현실을 안타깝게 체험했다. 특히 여자들이 재취업할 땐 더더욱 어렵다. 대부분 식당이나 마트의 비정규직으로 간다. 가정에서도 돌봄노동을 하는데. 노동이 여자들의 감정을 소진하는 게 돼버렸다.

- 관객이 ‘카트’를 보고 마음에 담아갔으면 하는 게 있다면 무언가.

▲ 이런 싸움들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봐줬으면 한다. 매스컴을 통해서는 사건만 보인다. 하지만 안에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 안타까운 사정이 있음을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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