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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대에서 '노는' 배우 정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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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대에서 '노는' 배우 정영주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2.04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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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뮤지컬배우 정영주(43)는 우스갯소리로 흑인 전문 배우로 불린다. ‘헤어스프레이’의 뮤지컬계 여왕 모터마우스, ‘고스트’의 영매 모다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유모 마마 등 흑인 특유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화술과 몸놀림, 시원시원하고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삭발 투혼까지 보이며 드 라쎄와 마담 프랑켄슈타인 1인2역을 열연한 연극 ‘프랑켄슈타인’을 최근 마쳤다. 곧장 마가렛 미첼 원작의 소설로,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영화로 유명한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내년 1월9일부터·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연습에 돌입했다. 당당하게 민머리를 드러낸 그의 육중한 목소리가 카페 안에 울려 퍼졌다.

 

◆ ‘흑인 전문 배우’ 타이틀...‘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유모 마마 캐스팅

“‘고스트’에 출연하던 중 유희성 연출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또 흑인이야?’ ‘새삼스럽게 뭘!’이란 대화가 오갔죠. 하하. 스칼렛 오하라의 유모 마마라면 흑인이든 뭐든 고민의 여지가 없었어요. 일곱 살 무렵 눈 뜨면 아버지가 전축에 LP판을 걸어 놓으셨어요. 그때 들었던 게 흑인 솔 가수들인 제임스 브라운, 아레사 프랭클린의 음악이었고요. 음악은 이런 거구나 했던 거죠. 라이선스 뮤지컬을 하면서 누군가는 유색 인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오디션만 보면 합격을 했으니 자연스럽게 캐스팅되고 연기해온 거죠.”

사냥개처럼 스칼렛을 지키는 마마 역으로 여배우 헤이티 맥다니엘은 흑인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상(여우조연상)을 품에 안게 됐다. 공연에서 마마는 정영주와 박준면이 번갈아 가며 맡는다. 정영주의 마마는 어떤 색을 만들어낼까.

“마마는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이지 않아요.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인물이죠. 노예제 시절이라는 처절한 배경임에도 인종과 계급을 떠나 스칼렛을 자식 이상으로 돌보는 게 삶의 목표예요. 그만큼 스칼렛을 사랑하죠. 친구, 모녀, 부부 느낌으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 웃음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원작 영화에선 노예의 삶에 대한 표현이 없었는데 뮤지컬에선 단지 얼굴이 검은 이유만으로 편견과 힘든 삶을 사는 내용의 ‘검다는 것’이란 노래도 들어갔어요. 뿌듯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작발표회에서 “우리 작품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해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개념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 “스칼렛 역 바다 에너지 넘친다면 서현은 내면 뜨거워”

“제가 인권운동가처럼 생겼나 봐요.(웃음) 제 캐릭터로 그런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어요. 내가 하는 일에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갖게 거겠죠. 모든 일의 시작은 인권으로부터 시작되잖아요. 인간에 대한 존엄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 사회적 문제들이 쉽게 일어나진 않았을 테니까요. 하물며 어린 목숨이라면 더더욱. 자기 것만 챙기고 남의 걸 버리는 세태가 너무 팽배해졌어요. 같은 피부색깔 안에서도 인종차별이 수시로 일어나고요.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어서 일어나는 막돼먹은 행동이죠.”

불굴의 의지를 장착한 남부 미녀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는 가수 겸 뮤지컬배우 바다와 서현이 캐스팅됐다. 무대에서 시종일관 그와 호흡을 맞출 대상이다. 일단 둘 다 예뻐 죽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바다가 뜨겁다면 서현은 고요하지만 내면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바다의 넘치는 에너지와 풍부한 아이디어가 예쁘다면 서현은 작품에 대한 준비가 철저해서 예쁘다. 두 여배우 모두와 “언젠가 같은 무대에 서자”고 약속했는데 이번에 기회를 맞게 됐다.

 

◆ 20년 베테랑, ‘고스트’ ‘빌리 엘리어트’ ‘뱃보이’로 여우조연상 4회 수상

에이콤의 배우학교 2기(1기는 서영주 임상아, 2기는 명경수 채국희 등이 있다)로 뮤지컬계에 발을 들여 1994년 뮤지컬 ‘나는 스타가 될거야’로 데뷔한 정영주는 스물다섯의 어린 나이에 ‘명성황후’ 초연에서 세자의 유모상궁인 박상궁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겨울나그네’에선 앙상블을 맡아 봉춤 추는 무희로 주조연 배우들을 뒷받침했다.

‘락햄릿’에선 신성우와 햄릿과 오필리어로 공연했다. ‘넌센스’ ‘루나틱’ ‘왕과 나’ ‘미녀와 야수’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서편제’ 등 숱한 창작과 라이선스 뮤지컬을 해오면서 늘 열정적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뱃보이’ ‘빌리 엘리어트’ ‘고스트’로 한국뮤지컬대상과 더뮤지컬어워즈 여우조연상 4회 수상이란 영광도 안았다. 그런 그에게 지침이란 없는 듯 보였다.

“‘고스트’ 땐 힘들었어요. 티내면 안 되니까 오히려 더 무대에서 방방 뛰었죠. 뮤지컬은 오늘만 관객에게 보여주는 공연이라 슬렁슬렁 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오히려 발산하니까 좋아요. 체력은 하느님이 주신 것 같아요.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의 재능을 알아보는 윌킨슨 선생을 맡았을 땐 저와 반대 성향을 연기하느라 고충이었죠. 사랑을 모르던 그가 빌리로 인해 그 감정을 담아가게 되는 캐릭터예요. 난 표현해야 하는 사람인데 안에서만 하라고 하니까 스트레스가 심했죠. 그때 처음으로 집에서 술까지 마셨어요.”

경력 20년의 중견 배우가 됐다. 스스로도 잘 버텨오고 있다는 생각이다.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최정원, 전수경, 서영주 등 선배들에게 감사한다. 엄청나게 늘어난 후배들로 인해 선배의 압박감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한 직업을 오래하다 보면 장인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무대를 지켜오고 있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것’과 ‘할 줄 아는 것’의 갭을 줄이라고 조언해요. 자기가 맡은 캐릭터를 즐기면서 독보적으로 해내는 게 중요하죠. 뮤지컬에 출연하는 아이돌 가수들한테도 말해요. ‘너에게 주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절대 잊지 말고 받아서 무대에서 버텨라’라고. 알아듣는 놈은 알아듣겠죠. 하하.”

◆ “문화 불모지 돌아다니며 아름답고 소박한 공연하고파”

배우 생활을 하던 중 1998년에 뒤늦게 서울예대 극작과에 입학했던 그는 지금도 뭔가를 쓰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대본을 끄적거린다. 언젠간 해보고 싶은 분야다. 더불어 도전해보고 싶은 건 캐스팅 디렉터다. 그 배우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까지 간파해 작품에 연결시켜주고 적절한 포지셔닝 등을 돕는 역할이다.

“그동안은 무대에 서기만도 바빠 외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드라마와 영화에도 출연해 보려고요. 제가 써먹을 데가 많은 배우거든요. 후후. 영향력을 갖춰서 문화 불모지를 돌아다니며 아름답고 소박한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뮤지컬이라는 게 평범한 누군가의 얘기에 음악을 입힌 거잖아요.”

그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취재후기] 센 인상과 달리 유머러스하고 푸근하다. 상대를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게 몸에 밴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애티튜드다. 그런데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정면승부를 펼친다고 한다. 우회로로 빠지거나 잠시 피하기보다 온몸으로 다 겪어버린다. 평소엔 싸움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나 작품에서만큼은 납득하기 힘든 상황에 부닥치면 비타협적으로 강력하게 어필한다. “내가 이해되게 설명해봐!”. 프로페셔널한 배우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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