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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역사의식 논쟁 일으킨 '국제시장' 윤제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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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역사의식 논쟁 일으킨 '국제시장' 윤제균감독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2.11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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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윤제균(45) 감독은 기획력이 뛰어난 감독이자 제작자(JK필름)다. 2009년 ‘해운대’로 1000만 클럽에 가입한 그가 ‘국제시장’(12월17일 개봉)으로 돌아왔다. 1950년 한국전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60년 격동의 현대사를,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인 덕수(황정민)에 집약시킨 점은 그다운 접근법이다. 최초로 두 번째 1000만 관객 감독이 되느냐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중이다. 언론시사 이후 평단 일부에서는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이래저래 화제의 중심에 선 그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일부 평론가들은 영화 속 한국전쟁, 파독 광부·간호사, 월남전 참전, 이산가족찾기 등이 소재로만 차용될 뿐 역사의식이 부재하다고 질타한다. 기성세대를 미화하며 과오마저 합리화했다는 지적이다.

▲ ‘정치성을 거세해버린, 아무 생각 없이 만든 영화 아니냐?’는 비판글을 읽었다. 부탁드리고 싶은 건 정치적 시선, 역사의식으로 이 영화를 보면 하나도 보이는 게 없을 거다. 그런 얘기를 하려고 했으면 ‘국제시장’을 다른 스타일로 만들었을 거다. 내 의도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 평생 고생하고 사신 아버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만들었다. 그들은 그 시대를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 살았다. 그런 의도를 이해한다면 영화를 통해 많은 걸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치적이거나 사회 비판의 시선이 깃든 거창한 영화로 보시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 '국제시장'이 노골적인 신파라는 비판도 있다.

▲ 보는 사람이 그렇게 받아들이면 신파다. 만약 의도적으로 신파로 만들려 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노’다. 계산해서 관객을 정확하게 울린다면 그 감독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오로지 가족을 위해 일생을 살아온 덕수의 삶이 ‘한’을 신파라고 한다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이상한 게 외국인들은 ‘신파’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그런 평가를 하지 않더라. ‘잘 만든 드라마’라고 드라마만 본다. 울지도 않는다. ‘감동적이다’라는 말로 정리해버린다.

- '해운대’에 이은 두 번째 1000만 관객 영화 탄생 여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솔직히 달관했다. 흥행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영화가 잘 되면 기쁘겠지만, 교만하지 않을 것이며 안 되더라도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들었다. 왜 지금이 된 건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으나 '인터스텔라' '나의 독재자' 등 요즘 아버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 ‘아버지의 일대기, 시대극, 100억 이상의 제작비’는 투자받기가 만만치 않다. 잘 됐을 때 하자고 늘 생각했다. ‘해운대’가 흥행에 성공하고 나서 ‘이제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시작했고 무려 5년이 걸렸다. ‘국제시장’이 올해 개봉할지 몰랐다. 우연의 일치로 요즘 아버지 소재 영화들이 많은데 이 시대의 가장, 아버지들이 그만큼 힘들어서가 아닐까 싶다.

- 15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했고, 체코와 태국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워낙 방대한 시대를 다루다보니 당시의 시대상을 재현하는데 고충이 많았을 것 같다.

▲ ‘해운대’는 부산을 덮친 쓰나미라는 소재라 상상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국제시장’은 그 시절을 사신 분들이 생존해 계시니까 훨씬 많은 부담이 됐다. 실망시키기 실었다. 그 시대를 100% 재현하는 게 우리의 미션이었다. 가장 난관은 공간이 모두 사라져버린 거다. 흥남부두는 가서 찍을 수가 없고, 이산가족찾기가 이뤄졌던 여의도 광장은 공원으로 바뀌었고, 독일 함보른 탄광도 폐쇄된 상황이었다. 사진과 영상물만 가지고, CG와 특수촬영을 총동원해 재현해야 해서 강박이 심했다. 결과적으로 테크놀로지 면에서 ‘해운대’ 이상으로 많은 걸 실험했고 경험했다. 이외 젊은 정주영, 앙드레김, 남진 등 카메오 출연자를 캐스팅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 철수장면은 스펙터클하다. 무려 20분 분량이더라.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 여기가 제대로 안 나오면 이 영화가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전쟁영화 한 편을 찍는 각오로 임했다. 초수까지 정확히 맞춰 동영상을 만드는 프리 비주얼을 완벽하게 기획해 촬영을 진행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인물이 안보이면 죽는 신이라 공을 들였는데 덕수와 막내 여동생의 이별이 드라마적으로 와 닿아서 다행이다. 함보른 탄광신은 불가피하게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 20대 시절 파독 간호사와 광부로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 영자(김윤진)와 덕수(황정민)

- 황정민, 오달수, 김윤진 등 주인공들의 파릇파릇한 20대 시절 모습과 70대 노역 분장이 자연스러워 화제가 됐다.

▲ 노역 분장은 ‘007 스카이폴’을 작업한 스웨덴 특수분장팀과 협업했다. 보통은 통가면을 뒤집어쓰는데 그러면 얼굴에 희로애락이 드러나질 않는다. 특히 이 영화에선 덕수가 사진 속 아버지를 보고 “힘들었다”고 얘기할 때 70년 회한이 다 드러나야 하므로 얼굴에 8개의 피스를 붙이고 촬영했다. 찡그리는 미세한 표정까지 가능했다. 노인분장보다 더 신경을 썼던 게 20대였다. 전 세계 업체를 다 뒤지다가 젊어 보이는 효과의 ‘에이징 리덕션’ 기술을 보유한 일본 CF 전문 업체와 연락이 닿았다. 향후 이 기술로 아역을 투입하지 않고도 40대 배우가 10~20대 시절을 연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하.

- 20대부터 70대까지의 덕수를 연기한 황정민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단한 연기력이더라. 아내 영자 역의 김윤진 역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 황정민의 한계가 어딜까 궁금하다. 감독과 배우론 처음 만났는데 내가 생각했던 덕수보다 행동이나 감정, 코믹신에서 120% 해냈다. 감정연기에 능한 김윤진의 경우는 그의 새로운 면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캐릭터 상 무거움과 슬픔으로 일관하는 게 아니라 가볍고 코믹한 것도 해내야 하는데 로맨틱 코미디도 되는구나, 절감했다.(웃음)

- 보통 한국사회에서 부자관계는 드라이하다. 별반 대화도 없고, 충돌의 소지도 다분하다. 애증의 관계라고들 하는데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각별해진 시기는 언제인지 궁금하다.

▲ 2004년 가을에 첫째 아이를 낳고, 내가 아빠가 되고나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그동안 아버지가 하셨던 언행이 조금씩 이해가 되더라.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덕수와 똑같았다. 버럭하시고 앞뒤 꽉 막히시고. 정말 말이 안통한다고 여겼다. 밥톨 하나라도 남기면 혼내키셨다. 당시엔 이해가 안됐는데 아이가 커가고, 영화를 한 이후 부침을 겪으며 다 이해가 되더라. 요즘 부보-자식세대의 갈등이 많은데 소통과 대화가 안돼서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부모를 조금만 더 이해하려 노력하고, 부모도 자신의 어렸을 때를 되돌아본다면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청춘의 본질은 다 비슷하지 않나. 이 영화가 세대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 광고회사,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당신은 현재 감독과 제작자를 겸하고 있다. 요즘 감독들이 제작자를 겸하는 케이스가 늘고 있더라. 일장일단이 있을 것 같다.

▲ 제작을 하는 이유가 중요하다. 내 경우 JK필름에서 기획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감독만 하면 2년에 한 편 만들기에 급급하다. 제작사를 차린 이유는 하고 싶은 작품들을 많이 하고 싶어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이게 나한테 맞는 듯하다.

- 기획력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늘 듣는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디어가 고갈되거나 경직되기 쉬운데 그런 데서 자유로운 비결이 뭔지 궁금하다.

▲ 생각 날 때마다 심지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영화 소재, 대사, 지문, 에피소드. 사업 아이템 등을 스마트폰에 메모해 놓는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쓸 때 몽땅 투입한다. 내 스마트폰은 수십 억원의 가치가 있는 폰이다. 하하.

- '해운대’처럼 대박 영화를 만들기도, ‘낭만자객’과 같은 쪽박 영화를 내놓기도 했다. 극단의 경험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건 무언가.

▲ ‘관객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가 상업영화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마인드다. 관객은 영화 만드는 사람 머리 위에 있더라. 내가 하면 다 흥행이 될 거란 자신감을 가졌던 시절도 있었다. 관객을 무시하는 순간, 냉정하게 심판한다. 지금도 감독, 스태프들에게 제일 무서운 사람은 투자자도 제작자도 아닌 관객이라고 말한다. 조금의 자만심, 교만을 보이는 순간 그게 영화에 드러나는지 과감히 응징한다. 보면 간절할 때 영화가 잘 되더라. 진정성이 묻어나는 순간인가 보다. 절대 요행을 바라면 안될 것 같다.

 

- 아이디어가 풍부한 윤 감독의 차기작 구상을 들려달라.

▲ 1980~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원래 ‘국제시장’ 시나리오에는 이 시절에 대한 비중이 컸는데 선택과 집중을 위해 축소됐다. ‘국제시장’의 화두가 경제화와 생존이었다면 그 다음은 민주화이지 않나. 언젠간 꼭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라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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