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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남 1970' 유하 감독 "일그러진 자본주의 얼굴 말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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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남 1970' 유하 감독 "일그러진 자본주의 얼굴 말하고파"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1.29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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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유하(52) 감독이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에 이어 ‘강남 1970’으로 마침내 ‘거리’ 3부작에 마침표를 찍었다. 10년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임에도 지난 21일 개봉 이후 128만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강남 1970’은 강남 땅개발이 시작되던 1970년 초를 배경으로 땅과 돈을 좇는 두 남자의 욕망과 우정, 배신을 잔혹하게 그려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한 카페에서 유하 감독을 만났다.

 

- '말죽거리 잔혹사’가 1978년 고교에까지 파고든 독재권력의 폭력상을 묘파했다면 ‘비열한 거리’는 2000년대 조폭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타락상을 그려냈다. ‘강남 1970’은 땅을 둘러싼 이권에 개입하는 두 청춘 종대와 용기를 통해 정치권력의 대리인 역할을 조폭의 민낯을 드러낸다. 3부작을 끝낸 소감이 궁금하다.

▲ ‘강남 1970’은 ‘비열한 거리’의 확장판 같은 영화다. 그래서 만드는 부담이 컸다. 넝마주이 스토리와 강남 개발을 배경으로 해서 한번 더 이야기해봐야겠다 싶었다. 비슷한 패턴이 아닐까 하는 후회도 들었으나 이 영화와 3부작을 끝내고나니 다른 톤 앤 매너의 작품에 대한 의욕이 생긴다.

- '비열한 거리’ 이후 8년만이다. 물론 중간에 ‘쌍화점’ ‘하울링’을 연출했으나 작품 구상에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다.

▲ 말죽거리 신화 탄생의 배경을 다루고 싶었다. 도시계획 이야기가 있는. 시간차가 그리 나지 않는 시기에 교실 밖으로 나와 공간 전체를 이야기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시간이 늦어진 것 같다.

- '강남 1970’은 할리우드의 클래식한 갱스터 필름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작들에서도 그런 느낌은 강하게 묻어난다.

▲ 자본주의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가 갱스터 무비다. 인간군상은 지갑 앞에 줄을 선다. ‘비열한 거리’를 취재할 당시 만난 조폭들이 “의리의 시대는 갔다. 당신도 돈만 내면 조직의 보스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 조폭만 그러겠는가? 물질적 욕망이나 자본의 힘에 의해 의리와 우정, 가족애가 어떻게 훼손되는가를 다루고 싶었다. 이렇듯 일그러지고 뒤틀린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 당신에 대해 ‘한국의 마틴 스콜시지’란 이야기도 한다. 사회성 짙으며 누아르를 솜씨 좋게 다루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마틴 스콜시지 감독의 영화들을 워낙 좋아한다. 그의 ‘좋은 친구들’을 내 영화에서 오마주하기도 했다. ‘강남 1970’에 대해 난 ‘논두렁 누아르’라고 부른다. 하하.

-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부터 시작해 거리 3부작 등에 이르기까지 공간적 배경이 대부분 강남이다. 강남에 천착하는 이유가 있나?

▲ 특정 지역으로서 강남이라기보다 후기 산업사회의 현실을 논할 때 강남을 빼놓을 수가 없다. 양극화 현실의 표상이다. 우리 사회의 초상화이자 단면이다. 창작자로서 이야기할 만한 장소다.

- 70년대 초반을 다루다보니 영화에는 복고 분위기가 물씬 흐른다. 요즘 한국영화들을 보면 ‘국제시장’ ‘허삼관’ ‘쎄시봉’ 등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는 게 트렌드가 된 듯싶기도 하다.

▲ 70년대는 따뜻한 밥 한끼, 입을 옷, 지상의 방 한 칸조차 마련하기 힘들었던 시기다. 물신주의가 심화하고 풍요로운 사회로 진입하며 인간의 기본적 요소들이 지닌 소중함이 변질되는 추세다. 그 소중한 가치가 변질되는 것 같아서 원초적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소환했다. 배고픔이 잊혀졌다고 해서 진실이 왜곡돼선 안 된다. 빈곤국가로 알려진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는 오히려 높다고 나온다. 삶의 질과 내용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정신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니지 반문하고 싶다.

- 복고가 ‘추억의 일회성 소비’로만 그칠 위험성도 있다.

▲ 요즘 과거를 회고하는 작품들이 많은데 과거의 이야기로만 그치면 안 된다. 현실과 대화해야만 만들 가치가 있다. 그런데 관객은 거짓말이라도 희망과 판타지를 접하면서 힘든 현실을 잊는 걸 원하는 추세인 듯하다. 그런 게 안타깝다. 창작물을 공급하는 사람으로서 고민이 깊어진다.

 

- 고아출신 넝마주이에서 자신의 꿈과 욕망을 이루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는 ‘미생’ ‘3포세대’로 불리는 요즘 청춘과도 맞닿아 있다. 명확히 틀린 지점도 보이고.

▲ 당시는 금지와 제한이 많았던 사회지만 청춘의 가능성은 오히려 많았다고 본다. 열심히 하면 쟁취할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뜻을 펼치기엔 너무나 계급화돼버렸다. 사용되고 버려지는 척박함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 '강남 1970’의 폭력 수위가 꽤 높다. 섹스신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 ‘19금 영화’라 ‘15세 관람가’와는 변별성이 필요했다. 폭력신은 당대의 폭력성에 수반되는 허무함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지옥도와 카오스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카오스 속에서 모든 게 탄생하니까 수위가 세진 것 같다. 섹스신도 필요해서 찍었다. 그런데 ‘19금’은 그만 하고 싶다. 너무 힘들다.(웃음)

- 권상우, 조인성에 이어 이번엔 이민호다. '남자배우 연금술사'로 불릴 만큼 잠재된 역량을 잘 뽑아낸다. 한류스타 이민호는 어떤 이유로 캐스팅하게 됐나.

▲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 ‘공공의 적2’를 보고 그의 굶주린 야수의 눈빛을 눈여겨봤다. 선악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캐릭터가 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다. 트렌디한 강남 스타일 배우를 투박한 강남 스타일로 가져가는 아이러니도 재밌었다.(웃음) 드라마 호흡에 길들여져 있어서 쉽진 않았으나 후반부엔 ‘배우’ 타이틀에 어울릴 만큼 영화로 들어와 줬다. 이민호는 알랑 들롱이나 신성일처럼 시류를 타지 않는 명품 얼굴을 지녔다. 내가 남자배우 연금술사라기보다 그동안 한쪽 면에 비춰졌던 조명을 다른 쪽으로 이동시켰을 뿐이다.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한 거다. 자질 있는 배우들은 목적성, 캐릭터의 내면을 전달해주면 정확히 이해하고 연기한다.

- 마초 이미지가 강한 김래원의 이미지 변신도 흥미로웠다.

▲ 처음에 용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먼저 말했다. 종대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었는데도. 그동안 좋은 역할만 해서 의외였는데 마음 속의 악을 끄집어낼 수 있는 도전적 캐릭터라 재미날 것 같았다.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그와 나 모두 들었다.

 

- 영화 후반부를 장식하는 대규모 인원의 진흙탕 격투신이 화제가 되고 있다.

▲ 다시 찍으라고 한다면 못 찍을 거다. 제작비, 비가 오는 날씨 등 촬영 당일까지 가능할까 싶었다. 미니멀하게 촬영할까도 했는데 원안대로 갔다. 그 장면을 통해 농경문화의 원초적 에너지와 용광로 같은 에너지를 최대한 발휘하고 싶었다.

- 1월임에도 국내외 화제작들이 대거 개봉되고 ‘19금 영화’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몰리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 오롯이 배우들의 힘이다. 그와 더불어 강남개발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고, 현시대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시선도 필요하니까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싶다.

- 중견감독으로써 쉬지 않고 작품을 각본·연출해오고 있다. 한국영화 실정에서 럭키한 것 아닌가.

▲ 직접 각본을 쓰니까 이번에 3년이 걸렸다. 앞으로 영화를 더 많이 해보고 싶다. ‘3진 아웃을 당하더라도 타석에 나가자!’가 목표다. 내 취향이 강하니까 상업적 미덕이 있는 영화도, 소신 있게 찍을 수 있는 작은 영화도 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각본과 연출을 공동으로 맡는 데서도 벗어나야지 싶다. 싱어송라이터 식으로 활동하니 너무 지친다. 감독은 매개자 역할을 잘 하면 된다. 앞으로 유쾌한 코미디, 휴먼드라마나 멜로 장르를 해보고 싶다.

- 감독 유하 외에 88년 등단해 김수영문학상 등을 수상한 ‘시인 유하’의 모습을 보고 싶은 독자들도 꽤 많다.

▲ 시상이나 문학적 감수성을 어느 순간부터 영화적 아이템으로만 바라보게 되더라. 후후. 조금 더 충만해지게끔 만든 뒤에나 시집 발표가 가능할 것 같다.

 

[취재후기] 짙은 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고독한 문인의 외양이다. 의외로 위트 있는 비유와 정선한 언어로 대화의 성찬을 차려놓는다. 70년대 이야기를 나누며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의 다양성 확보가 가능했는데 요즘은 자기 목소리를 다양하게 내는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아서 안타깝다”는 얘기를 토로했다. 되돌아보니 그는 액션 누아르 뿐만 아니라 멜로, 로맨스, 사극 등 변주에 능한 연주자였다. 사회성이라는 코어는 포기하지 않은 채. 유하 감독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데 앞장 서주기를 기대한다는 말과 함께 담배 토크를 마감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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