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4-20 03:03 (화)
[SQ인터뷰] '저니맨' 최익성, 야구육성사관학교로 못다 이룬 꿈 실현하다
상태바
[SQ인터뷰] '저니맨' 최익성, 야구육성사관학교로 못다 이룬 꿈 실현하다
  • 신석주 기자
  • 승인 2014.04.09 1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익성 대표 "절박함을 품은 선수를 다시 뛰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일"

[300자 Tip!] 프로야구에서 6차례나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저니맨으로 통했던 선수, 바로 최익성(42)이다. 중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프로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그는 끊임없는 도전과 모험으로 스스로를 단련했다. 야생마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하던 그가 이번에는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를 창설해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선수육성에서 재활, 총괄적인 매니지먼트까지 아우르는 한국 최초의 야구매니지먼트 시스템을 표방한 사관학교는 최익성의 야구인생을 고스란히 담은 곳이다. 야구선수로서의 파란만장했던 경험을 살려 야구의 꿈이 꺾인 선수들이 다시 그라운드로 향할 수 있도록 멘토를 자처한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 최익성은 "SM, JYP 엔터테인먼트처럼 스포츠엔터테인먼트로 성장시켜 야구 인재를 육성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스포츠Q 글 신석주·사진 이상민 기자] 2012년 야구 선수를 육성하고 재활을 담당하는 전문기관이 생겼다. 바로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다. 이 학교는 프로야구에서 ‘저니맨’으로 불리던 최익성이 설립해 주목받았다.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를 찾았을 때는 4명의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묵묵히 훈련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전부터 캐치볼, 배팅, 밸런스 훈련 등 다양하게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한국에 없었던 야구육성사관학교를 처음 시작할 때 ‘무모한 도전’이라는 평가도 받을 만큼 인식이 부족했지만 1년 동안 차곡차곡 노하우를 쌓으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 1년이 흐른 야구육성사관학교, 시스템을 갖췄다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는 2012년 9월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뜻을 같이 한 2~3명의 선수들과 무작정 시작했다. 최익성은 야구를 통해 겪었던 그동안의 경험과 선수 시절 쌓았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재활 육성시스템을 적용하며 학교를 이끌었다.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 최익성 대표는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체계적인 프로 선수 육성 프로그램도 없었고 시설도 변변치 않았다. 아무 것도 모르니까 부딪혀 보자라는 심정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야구를 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을 찾아온 선수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다시 가질 수 있도록 진심으로 격려하고 가르쳤다.

최 대표는 “한국 야구는 기술을 강조한다. 야구를 시작하면 선수들은 기술을 익히는 데만 치중한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찾은 선수들에게 배트와 글러브를 놓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고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면 기술은 자연스럽게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는 선수들이 스스로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팀 중심으로 운영되는 한국 야구 현실에서 구단이나 학교가 선수 개개인의 상황을 점검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낙오하는 선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최익성 대표는 개인육성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내가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을 적용해 야구의 꿈을 포기했던 능력 있는 선수들이 다시 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곳에서 훈련받은 선수들은 야구를 대하는 자세와 야구를 정립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고 지난 1년을 평가했다.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뛰어든 1년 동안 그는 많은 의미를 발견했다. 1년 동안 4명의 선수를 프로에 보냈다. SK 와이번스에 민경수를, kt 위즈에는 윤동건과 이원재를 보냈다. 그리고 올해 한화에서 임의탈퇴됐던 최우석을 다시 한화 구단에 돌려보냈다.

이러한 성과로 얻으면서 최 대표는 자신의 꿈꿨던 목표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게 됐다. 1년 동안 야구육성사관학교의 틀을 확실히 정립하는 동력이 됐다.

올해부터는 선수 육성반을 더욱 강화했다. 프로 팀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야구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는 선수들의 재활을 돕고 육성해 다시 프로 무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힘을 쏟을 예정이다. 또한 어린이들이 야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리틀야구반도 창설했고 엘리트, 엘리트A 반 등 더욱 구체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 최익성은 프로에서 11년 동안 6개 구단을 돌아다니며 저니맨으로 통했다. 야구육성사관학교 그의 사무실에는 자신이 현역시절 6개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뛴 사진과 기사가 걸려 있다.

◆ 모험을 즐기는 절박한 사나이

경주중학교 재학 시절에 야구를 시작한 최익성에게 가장 친숙해진 단어는 바로 ‘모험’이다. 뒤늦게 야구를 시작한 그가 또래친구들보다 실력이 뒤처진 것은 당연한 일. 그들을 따라가기조차 버거웠다.

특히 기본기가 부족해 훈련을 할수록 자신감이 떨어졌고 피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부족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며 프로까지 진출했다.

프로에 가면 조금은 안정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그는 삼성, 한화, LG, 해태(KIA),  현대, 삼성, SK까지 프로에서 6번이나 팀을 옮겨 다니는 떠돌이 인생을 겪었다. 최익성은 프로야구 역대 최다 이적 기록을 갖고 있다.

2005년 SK를 끝으로 한국 프로무대를 떠난 그는 미국과 멕시코에서 자신의 야구 열정을 모두 불태운 뒤에야 파란만장한 선수생활을 끝냈다.

최익성은 선수 생활을 은퇴한 뒤에도 모험을 멈추지 않았다. 야구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것이다. 여러 가지 사업도 시도했고 탤런트에 도전하는 등 방송 출연도 했었다. 또한 ‘저니맨’이라는 책을 저술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모험을 통해 인생을 배워나갔다.

▲ 최익성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이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게 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 절박한 선수의 심정,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는 스포츠 심리에 대해 “같은 상황을 겪어본 사람만이 그들과 공감할 수 있고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삼성에서 트레이드됐을 당시를 회상했다.

“내가 삼성에서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됐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스트레스가 절정이었다. 그때가 5번째 트레이드였다. 너무 힘들어 정신과에서 심리치료를 받을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 심정을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설사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해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의사에게서 어떤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겨 상담 대신 훈련에 더 매진했다”고 회상했다.

늦은 시작으로 인해 겪었던 불안함, 프로에서 6번의 트레이드 등 선수로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경험한 장본인이다. 때문에 선수들의 심리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

최 대표는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다만 선수마다 자신을 방해하는 문제가 다를 뿐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선수들에게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기보다 자제할 수 있는 방법을 권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최근 자신을 찾아온 한 선수를 예로 들었다.

그는 “한화에서 활약하다 임의탈퇴가 된 최우석이 고심 끝에 나를 찾아왔다. 그는 임의탈퇴된 이후 많은 방황을 하다 다시 야구가 하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큰 문제가 없었다. 7개월 정도 함께 훈련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심리적인 안정감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고 무너진 몸의 밸런스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는 올해 다시 한화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 저니맨을 통해 인생을 배우다

저니맨은 그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선수 시절에는 ‘저니맨’이라는 타이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야구계에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붙은 별명이라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뒤집어 생각하니 오히려 좋은 의미가 더 컸다.

그는 여러 구단을 겪으면서 경험했던 다양한 문화와 이를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삶의 자양분이 됐다. '야구는 가르침이다'를 좌우명으로 삼는 그는 야구를 통해 야구가 아닌 또 다른 인생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제는 ‘저니맨’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을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야구를 잘 할 수 있지만 기회가 없었던 좋은 재목들을 다시 그라운드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 야구육성사관학교에서 투수 담당 관리를 맡고 있는 박태순 코치가 김태훈 선수의 투구 폼을 교정해 주고 있다.

그가 오랜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스스로 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수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모든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 때문에 스포츠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선수들은 원리를 깨닫고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 있다.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 대표는 야구육성사관학교를 대안학교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고민하는 선수들이 찾아와 부담 없이 훈련하고 스스로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꿈을 크게 잡는다. 선수로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노력하는 선수들이 다시 그라운드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현재의 업무를 보다 더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그는 야구 선수들이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야구 선수들도 선수로서만이 아니라 스포츠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다. SM, JYP 엔터테인먼트처럼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로 성장시켜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는 야구 인재들을 육성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 미니 인터뷰 =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 참가 김태훈

“야구를 향한 믿음이 더욱 절실해졌다”

훈련이 한창인 김태훈(25)은 한 달 전 군을 제대하자마자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를 찾아왔다. 다시 야구를 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최 대표와 상담한 뒤 이곳에서 훈련하며 야구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 가고 있다.

김태훈은 “전체적으로 신체능력이 많이 떨어져 있어 몸의 밸런스, 투구 자세 등 기본적인 부분을 갖춰가고 있는 중이다”고 설명했다.

한민대를 졸업한 그는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해 군입대를 선택했다. 한때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제대 후 야구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등산을 갔다가 우연히 LG 류택현을 만났다. 그리고 그와 야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 꿈을 되살렸다.

그때 류택현은 “마흔살이 된 나도 프로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데 아직 한창인 네가 못할게 뭐냐”고 말했다. 이 따끔한 조언은 김태훈에게 큰 힘이 됐다.

그는 올해 프로 팀에 입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다시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어 상당히 만족스럽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욱 생겼다”고 설명했다.

▲ 김태훈은 올해 프로 팀에 입단하는 것을 목표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야구육성사관학교에서 몸과 마음을 다시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는 선수육성에서 재활 및 매니지먼트까지 총괄하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다. 이곳에서는 루키(취미반)부터 엘리트, 엘리트A, 프로선수 육성반까지 4단계로 나눠 체계적인 관리를 진행한다. 프로 선수들이 차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수십여 가지 하위 프로그램들을 구성해 신체조건에 맞는 훈련을 실시한다. 또 재활전문가가 선수들의 몸에 맞는 프로그램을 적용해 완벽한 몸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취재후기] 야구육성사관학교 실내훈련장 곳곳에는 ‘괴로운 시기가 길면 길수록 성공은 가까운 곳에 있다. 포기하지 마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숱한 도전을 겪으면서 견고한 인생철학을 세운 최익성 대표의 의지가 묻어났다. 선수들의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 볼 때는 매의 눈 같았지만 그들의 사연을 말할 때는 친부모처럼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최익성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멘토이자 친구였다.

chic423@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