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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코파 첫 우승, 그리고 '승부차기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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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코파 첫 우승, 그리고 '승부차기의 심리학'
  • 김한석 기자
  • 승인 2015.07.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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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김한석 기자] 11m의 잔인한 룰렛. 그야말로 킥 하나로 한 순간에 누구는 영웅이 되고, 누구는 역적이 되기에 승부차기를 그렇게 부른다. 제 아무리 세계적인 골잡이도 11m를 두고 골키퍼와 마주서면 냉정함을 찾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더욱이 메이저 대회 결승전에서라면 그 긴장감을 극에 달한다. 여기에 우승에 대한 강박 관념까지 더해지면 킥 잘 하던 키커들도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로베르토 바조가 1994 미국월드컵 월드컵 결승서 브라질과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섰다가 내지른 ‘허공 킥’이 가장 대표적인 악몽사례다.

5일 칠레가 아르헨티나를 꺾고 코파 아메리카 99년 사상 실로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연장까지도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1로 희비가 엇갈린 요인은 무엇일까. 흔히 먼저 차는 팀이 유리하다, 방향을 미리 정하고 거침없이 차라, 강하게 차라, 골키퍼의 눈을 보지 마라 등 승부차기 승리법칙은 늘 통하는 게 아닐진대. 이번 코파 아메리카의 독특한 방식과 심리적인 압박감이 승부차기의 희비를 가른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코파 아메리카는 조별리그를 거쳐 8강 녹다운 토너먼트에서 전,후반 승부를 가리지 못할 경우 연장전 없이 승부차기에 들어간다. 결승만 연장을 거쳐 승부차기를 할 뿐이다. 아르헨티나는 이미 8강에서 콜롬비아와 90분 동안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로 5-4 승리를 거둔 뒤 상승세를 탔다. 4년 전 우루과이와 8강전에서 킥에 실패한 테베스도 징크스를 털어내며 자신감을 찾았다.

결승전에서는 달랐다. 90분과 120분의 차이다. 후반 종료 직전 메시~라베치로 이어진 마지막 골찬스에서 이과인이 넘어지면서 날린 결정적인 땅볼슛이 골포스트를 살짝 빗나간 잔상이 짙어 보였다. 연장에서 그 악몽을 씻지 못했는지 이과인은 승부차기에서 두 번째 키커로 나서더니 그만 킥을 허공에 내지르고 말았다. 90분에 끝났으면 무산된 골찬스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가 남을 시간이 없었지만 30분을 더 뛰면서는 그 잔상이 남았을 수 있다.

여기에 아르헨티나는 22년 만에 꼭 우승을 이루겠다는 압박감이 강해 보였다. 개최국으로서 사상 최초의 우승을 이뤄내야 한다는 칠레의 중압감도 만만치 않았지만 아르헨티나에는 또 하나의 부담감이 더해졌다. 클럽 바르셀로나에서는 이룰 것 다 이뤄본 메시를 위해 대표팀 메이저 대회 무관 징크스를 털어내야 한다는 부담이 선수들 킥에 힘이 들어가게 하지 않았을까.

반면 칠레는 개최국 프리미엄 논란 속에서도 조별리그에서 두 번이나 페널티킥을 얻어낸 경험에다 전력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부담이 적었다. 잇딴 선방을 펼친 수문장 브라보를 믿고 승부차기를 즐기는 표정들이었다. 마지막 키커 산체스가 수문장 로메로를 농락하는 파넨카킥을 감행할 정도로 담대하게 나섰던 것이 그를 증명하는 듯했다.

코파 아메리카 결승에서는 1995년부터 모두 세 번 승부차기로 남미 챔피언이 가려졌다. 그중 2004년 브라질, 2015년 칠레에 연속 11m 잔인한 룰렛에 희생양이 된 비운의 아르헨티나다. 이쯤되면 아르헨티나는 또 하나의 트라우마만 가지고 돌아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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