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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에 재회한 맞수 김재범-왕기춘, 동반 재기 구슬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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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에 재회한 맞수 김재범-왕기춘, 동반 재기 구슬땀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5.08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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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기춘도 체급 올려 81kg급서 격돌…신예 이재형과 3파전

[300자 Tip!] 라이벌, 맞수는 언제나 넘어서야 하는 대상이다. 서로가 서로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스포츠에서 맞수에게 진다는 것은 패배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맞수는 서로 꺾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벤치마킹 또는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한 동기부여의 대상이기도 하다. 맞수가 성장하거나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 역시 게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맞수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여기 6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맞수가 있다. 두 선수 모두 재기를 해야 하는 '동병상련'의 상황이다. 과연 두 선수는 서로를 지켜보며 동반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 김재범(오른쪽)이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진행한 유도대표팀 훈련에서 기술을 시도하고 있다.

[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김재범(29·한국마사회)과 왕기춘(26·양주시청)은 오래된 맞수다. 두 선수의 관계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년 전, 한국 유도는 새로운 스타 탄생에 열광했다.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33·여자유도 대표팀 코치)와 김재범이 주름잡던 남자 유도 73kg급에서 일대 파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용인대에 입학한, 아직 10대에 불과한 왕기춘이 준결승전에서 이원희, 결승전에서 김재범을 잇따라 물리치고 국가대표 2차 선발전 및 회장기 전국유도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던 것.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원희와 '이원희 킬러' 김재범을 잇따라 물리친 것은 당연히 화제가 됐다. 왕기춘은 2007년 9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에 출전하는 대표선수가 됐고 금메달까지 따냈다.

◆ 김재범 체급 올린 후 각자 다른 길

이후 73kg급에서 '트로이카 체제'는 급격하게 붕괴됐다. 이원희는 부상에 시달리면서 급격하게 하락세를 걷다가 결국 왕기춘에게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내주면서 올림픽 2연패의 꿈이 무산됐다.

그렇지 않아도 키가 자라 체중 감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김재범은 2007년 10월 81kg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당연히 73kg급은 왕기춘의 차지가 됐다.

서로 체급이 달라지면서 두 선수가 맞붙는 일은 없어졌고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길을 걸었다.

일단 체급이 달라졌으니 베이징 올림픽과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거쳐 런던 올림픽까지 함께 출전할 수 있었다. 김재범은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런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고 왕기춘 역시 베이징 올림픽과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은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두 선수의 희비가 런던 올림픽에서 엇갈렸다. 김재범은 금메달을 따내 숙원을 이뤘지만 왕기춘은 계속된 연장전을 치르느라 체력이 고갈돼 만수르 이사에프(러시아)에 유효패,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져 메달을 따내는데 실패했다.

▲ 왕기춘(왼쪽)이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진행한 유도대표팀 훈련에서 대표팀 동료 선수를 붙잡고 기술을 시도하고 있다.

◆ 6년만에 같은 체급에서 만난 두 맞수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지 못한 후 왕기춘도 체급 조정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평소 몸무게가 85kg 정도였던 왕기춘에게 체중 감량은 경기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회 전 공식 계체를 앞두고 10~12kg를 줄여야했기에 대회를 앞두고는 식사량까지 줄였을 정도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왕기춘은 지난해 11월 전격적으로 81kg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체급을 올리는 것은 일종의 모험과 같다고는 하지만 선배들이 성공을 거둔 예가 있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더구나 옆에는 81kg급에서 90kg급으로 체급을 올린지 1년만에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송대남 남자유도 대표팀 코치가 있었다.

그러나 왕기춘에게 81kg급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두 맞수의 대결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열린 1차 선발전에서는 왕기춘이 16강에서 탈락한 반면 김재범은 우승을 차지했다. 3월에 열린 2차 선발전에서는 왕기춘과 김재범이 모두 준결승에서 져 결승 대결이 성사되지 않았다.

두 선수는 2차 선발전 준결승에서 동반 탈락하면서 대표팀에도 뽑히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대한유도회는 강화위원회 회의를 통해 두 선수를 태릉선수촌에 입촌시켜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이제 다음달 24~25일, 경북 경산에서 열리는 KBS 전국체급별선수권에 출전한다. 국가대표 최종 평가전으로 인천 아시안게임에 나설 선수를 가리는 중요한 대회다.

▲ 김재범(오른쪽)이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진행한 유도대표팀 훈련에서 대표팀 동료 선수를 붙잡고 겨루기를 하고 있다.

◆ 오직 유도에만 집중, 또 집중

"인터뷰 안하면 안될까요? 제가 좋지 않은 일도 있고…. 저번에 한번 인터뷰를 했는데 좋지 않은 반응만 나오더라구요. 제가 좀 마음이 편해졌을 때, 그리고 제가 뭔가 제대로 보여줬을 때는 꼭 할게요."

유도대표팀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만난 왕기춘은 인터뷰 요청에 다소 당혹스러워했다. 조인철 대표팀 감독에게 얘기를 듣고 필승관에서 기자를 만났지만 다소 머뭇거리더니 '인터뷰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러갔다가 휴대전화 사용 적발로 퇴소조치를 받은 전력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벌써 5개월도 훨씬 지난 일이고 재입소해 군사기초교육을 마친 상황이었지만 좋지 않은 여론으로 후유증이 길어지고 있었던 탓이다. 인터뷰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김재범도 마찬가지였다. 김재범과 왕기춘 모두 랭킹포인트가 모자랐기 때문에 강화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다음달 최종 평가전에서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81kg급에는 이들 말고도 이재형(22·용인대)이라는 신예가 등장했다. 이재형은 준결승전에서 김재범을 상대로 종료 1분 29초를 남기고 발뒤축걸기 한판으로 이긴 뒤 우승까지 차지했다.

게다가 조인철 감독이 이끄는 유도대표팀은 세대교체가 진행중이다. 조 감독은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대표팀의 얼굴이 확 바뀔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다. 김재범과 왕기춘으로서는 더욱 분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 왕기춘이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진행한 유도대표팀 훈련에서 휴식 도중 자신의 손바닥을 살펴보고 있다.

◆ 조인철 감독 "그래도 김재범·왕기춘의 저력 믿는다"

세대교체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조인철 감독의 이들에 대한 신뢰는 대단하다. 김재범과 왕기춘이 최근 부진했지만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

조인철 감독의 김재범에 대한 평가는 풍부한 경험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다.

"김재범은 주특기가 없는 대신 경험이 풍부합니다. 한박자 빠른 잡기 기술은 그의 경쟁력이죠. 그리고 아직까지 지칠 줄 모르는 체력까지 있습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충분히 금메달을 따낼 수 있다고 봅니다."

왕기춘에 대한 평가는 당장보다는 미래를 보는 듯 하다. 최종 평가전에서 선발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선수권을 거쳐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왕기춘은 기술이 화려합니다. 아직 81kg급에서 뛰기에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지만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며칠만에 출전한 대회에서 3위까지 오를 정도로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 왕기춘이 81kg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체급을 올린만큼 근력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세계선수권에서 두차례나 우승한 기량이 있고 영리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길게 봐야 할 선수입니다."

이제 두 맞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달 반 정도다. 한달 반이 지나면 두 선수 가운데 최소 한 선수는 인천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따내지 못하게 된다. 이번 최종선발전에는 두 맞수가 맞붙는 광경이 연출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최종선발전을 준비하는 두 맞수는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고 경계하고 경쟁하며 자신을 채찍질하기에 오늘도 여념이 없다.

[취재후기] 곧 30대에 들어서는 김재범은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이 대표선수로서 마지막 대회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기량을 유지하며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유도대표팀이 세대교체를 진행하고 있는데다 신예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어 대표선수로 계속 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당장이 아닌 조금 더 뒤를 내다보는 왕기춘은 김재범에 비해 다소 느긋할지도 모르나 그 역시 경기 외적인 일로 홍역을 겪은터라 마음이 편치 않아 보였다. 이번 최종선발전이 김재범, 왕기춘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대회가 됐으면 좋겠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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