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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실선' 그리는 배우 이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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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실선' 그리는 배우 이이경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5.21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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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신인 이이경은 89년생 동갑내기 스타 이종석 김우빈의 뒤를 이을 재목감으로 꼽힌다. 김기덕 감독의 신작 ‘일대일’에서 테러에 가담하는 10대 카페 종업원 역을 짧지만 굵게 소화했다. 가라데를 전공한 체대생에서 연기자의 세계로 전환한 뒤 퀴어영화 ‘백야’를 통해 대중과 처음 만났다. 이어 드라마 ‘학교 2013’ ‘나인’ ‘별에서 온 그대’에 연이어 출연하며 호기심을 증폭했다. 훈훈한 외모와 녹록치 않은 연기력을 갖춘 그는 올여름 해양 블록버스터 ‘해적’으로 다시금 스크린의 물살을 가른다. 비중 작더라도 다양한 캐릭터와 감정을 보여주며 점선의 연기세계를 실선으로 그리고 싶은 배우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김윤식(스튜디오 플로어1)] 김기덕 감독의 새 영화 ‘일대일’(22일 개봉)에는 상큼한 분위기의 뉴 페이스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훈훈한 외모임에도 날카로운 눈매를 간직한 이이경(25)이 성큼 다가왔다.

◆ 김기덕 감독 ‘일대일’에서 테러 가담하는 10대 카페 종업원 연기

한 여고생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뒤 살인 용의자 7인과 그들에게 테러를 감행하는 그림자 7인의 이야기를 다룬 ‘일대일’에서 그는 그림자팀의 수장(마동석)의 행동대장 격인 그림자1로 출연한다. 손님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주먹을 불끈 쥐는 카페 종업원이다. 연기의 결이 녹록치 않다.

▲ 영화 '일대일'

“감독님에 대한 느낌은 무서움? ‘피에타’와 ‘아리랑’을 본 뒤 궁금해졌어요. 물론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리라곤 꿈에도 몰랐죠. 이번에 작업해보니 감독님에 대한 편견과 달리 예의 바르고 유머러스하세요. 지금도 제게 존대말을 하세요. 현장에선 분위기 메이커였고. 말씀하실 때 툭툭 나오는 단어들(바다같은 사회, 평행사회, 수직사회)이 머리에 화살처럼 날아와 심장에 박혀요. 그분으로부터 영감을 많이 얻었죠.”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월 말, 고작 10여 일만에 영화 촬영을 마무리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이뤄지는 촬영이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감정선을 구축한 뒤 몰입하고, 모니터를 보며 자신의 연기를 체크하기란 불가능했다. 순간 집중력과 순발력이 관건이었다. 신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화적’ 세례가 이뤄졌다.

“제가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어도 대기 차량 안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다음 장면을 준비해야 하고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니까. 저희 그림자팀 전원이 늘 뭉쳐다녔죠. 마치 상황극을 하는 느낌이랄까. 심도 있게 천천히 영화를 찍었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지 궁금한 한편 아쉽기도 해요.(웃음)”

 

이이경은 그림자1을 10대 후반으로 설정했다. 부유한 집안의 아이였으나 10대의 일탈을 감행, 가출한 뒤 친구들과도 멀어지면서 카페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인물이다. 우연히 온라인을 통해 그림자7(마동석)을 만나게 된 후 복수를 위한 테러 프로젝트에 흥미를 느껴 가담한다. 친동생처럼 대해주는 그림자7을 따르고 의지한다.

“주먹 먼저 나가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10대라 여겼어요. 그림자7의 어린 시절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죠. 그래서 그림자7이 형같이 다가왔을 거고요. 그림자팀을 나와서는 박차고 나왔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저 혼자 추측해봤어요.”

이제는 다소 객관적이 돼 바라보는 ‘일대일’은 마지막 울림만큼은 확실한 작품이다. 조직으로 인해 피해자가 생기고, 피해자가 또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나는 누구인지’ ‘난 과연 14일 가운데 누구와 비슷할지’를 묻는 이 영화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관객들이 극장을 나설 때 가슴팍에 물음표 하나를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와 또래인 20대 청춘에게 이 영화는 ‘먹힐 수’ 있을까.

“아마 그들은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대신 물음표를 해석하려 노력할 것 같아요. ‘이런 것도 있었네?’ ‘이런 자극도 있네?’ ‘이런 느낌을 주는구나’ 식으로. 전 이 정도만 돼도 만족해요.”

◆ 체대생에서 연기지망생으로 ‘터닝’...범상치 않은 출연작으로 내공 다져

초등학생 시절부터 테니스, 수영, 스쿼시를 했던 만능 스포츠맨이다. 중학교 진학 이후 가라데를 했다. 체대에 진학했으나 무릎부상을 겪으며 그의 10대를 지배했던 운동과 인연을 끊었다. 군입대 후 미래와 일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끝에 연기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제대한 뒤 연기학원에 다니며 기초를 연마, 뒤늦게 서울예대 연기과에 입학했다. 학기마다 선택 장르가 있는데 이이경은 늘 연극을 했다. 은사가 연극배우 예수정 교수다. ‘주워들은 테크닉을 따라하지 말고 가슴 속 진실함을 끄집어내 연기하라‘는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가슴에 품고 살았다.

 

신인임에도 강단 있는 필모그래피로 자신만의 연기 영토를 구축하고 있다. 2012년 퀴어영화 ‘백야’의 퀵서비스 동성애자 태준으로 데뷔해 이종석, 김우빈 등의 청춘스타를 탄생시킨 드라마 ‘학교 2013’, 타임슬립을 소재로 빼어난 드라마 미학을 보여준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사극 ‘칼과 꽃’ 그리고 ‘별에서 온 그대’에서 이재경 상무(신성록)의 냉혹한 수행비서로 눈도장을 찍었다.

촬영 중단 상태인 ‘연평해전’에서는 자신을 던져 동료 병사들을 구하는 의무병 박동혁 상병을 연기했다. 올 여름 개봉될 해양 블록버스터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는 해적팀의 일원으로 여해적 여월(손예진) 바라기인 의리파 찬복으로 얼굴을 내민다.

“이송희일 감독님부터 김기덕 감독님까지 대단한 감독님과 배우들과 작업을 해왔으니 작품복이 있었던 거죠. 데뷔작 ‘백야’는 호모포비아로 인해 발생한 퍽치기 사건 실화를 소재로 한 퀴어영화였어요. 상상도 못해 본 관심 밖의 일이었는데 촬영을 하면서 성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한 게 아닌데도 왜 음지에서 살아가야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개봉 후 한 동성애자로부터 ‘비슷한 일을 당했는데 영화를 본 뒤 드디어 숨을 쉬고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쪽지를 받았어요. 연기하기를 잘했단 생각이 확 밀려들더라고요.”

◆ "다양한 감정과 캐릭터로 믿음 주고파…30~40대에 묵직한 한 방 선물할터"

연기자 윤시윤, 최다니엘, 이진욱의 특징이 오락가락하는 이이경의 얼굴엔 청춘의 뜨거운 열기보다는 차가움이, 깃털의 가벼움 대신 진중한 무게감이 고개를 내민다. 그래서 대부분의 배역이 누군가의 충성스러운 오른팔이다.

“하하.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음...제가 형들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친형이 없어서 그런지, 마음 맞는 형을 만나면 믿고 잘 따르죠. 의리 있단 말을 많이 듣죠. 형들한테 올인하는 통에 과거에 여자친구와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어요.”

 

많진 않지만 하나하나 소중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에 대해 드라마 ‘나인’의 한영훈을 들이밀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 외과의사다. 공부할 거 다 하면서 친구들을 좋아하고 많이 웃는 모습이 따로 디테일한 부분을 구상하지 않은 채 성격대로 자연스레 연기해도 됐기 때문이다.

“작은 배역? 상관 없어요. 제가 작아지지만 않으면 돼요. 작품의 감초, 행인이라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죠. 다양한 감정과 캐릭터로 관객에게 믿음을 주고 싶어요. 그래서 30~40대가 됐을 때 묵직한 ‘한 방’을 선물해주고 싶어요. 지금은 제가 돌아가거나 한 발 후퇴할 순 있겠지만 공백기를 최대한 줄여서 다양하게 인사드리고 싶은 게 소망이에요.”

 

[취재후기] 사고에 각이 잡힌 젊은 배우! 기사 작성을 위해 인터뷰 때 받아 적은 그의 멘트를 별다른 수정작업 없이 그대로 옮겨도 논리와 의미가 팔딱인다. 떡잎이 푸르러 기대하게끔 만드는 이이경의 부탁이다. “큰 역할, 필요 없어요. 연극과 독립영화에 출연하고픈 마음이 아주 강하다고 기사에 소개 좀 해주세요.”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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