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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48) 걸그룹 모르는 '유도바보' 안바울, 인생 역전극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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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48) 걸그룹 모르는 '유도바보' 안바울, 인생 역전극은 시작됐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9.29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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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5끼' 프로젝트, 야식 먹고 체급 이동...아시안게임 훈련파트너서 1년 만에 세계선수권 데뷔 금메달 도약

[200자 Tip!] 한국의 올림픽 효자 종목하면 많은 이들이 양궁, 태권도, 레슬링 등을 떠올릴 것이다. 유도도 빼놓아서는 안된다. 금메달 11개와 은메달 14개, 동메달 15개 등 총 40개의 메달을 안겨 역대 올림픽 종목별 메달 순위에서 쇼트트랙(42개)에 이어 2위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3년 전 런던 올림픽에서 두 차례(김재범, 송대남) 금빛 낭보를 전했던 한국 유도는 내년 리우 올림픽에서도 애국가를 울리기 위해 태릉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안바울(21·용인대)이 있다.

[태릉=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안녕하세요.”

이렇게 선할 수가. 영상과 사진으로 접한 안바울은 분명 상대를 잡아먹을 것 같았는데 소년 같은 이가 태릉선수촌을 찾은 기자를 맞는다. 이 선수가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쑥스러운 미소를 지은채 몸을 배배 꼰다. 이렇게 마주앉아 하는 인터뷰는 처음이란다.

▲ 안바울은 지난달 세계유도선수권 남자 66kg급에서 세계랭킹 2위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안바울은 지난달 25일(한국시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알라우 아이스 아레나에서 벌어진 2015 세계유도선수권 남자 66kg급 결승전에서 세계랭킹 2위 미하일 풀리예프(러시아)에 지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우승으로 20위이던 랭킹을 단숨에 세계 4위로 끌어올렸다.

초대 그리스도교 최대 전도자 바울에서 따온 이름처럼 안바울은 내년 리우데자이네루에서 유도 전도자가 될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다. 지난 3월 유로피언 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5월 아시아선수권 준우승, 7월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우승에 이어 세계챔피언 등극까지. 탄탄대로다.

◆ 걸그룹도 여자친구도 모르는 '유도 바보'

“자신감보다는 음... 후회없이 한다고 마음 먹고 했어요. 질 것 같단 생각은 안 들던데요.”

대형사고다. 세계선수권은 처음이었다. 첫 시니어 데뷔전이던 지난 5월 쿠웨이트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다카조 도모후미(일본)에 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만 했던 아쉬움도 훌훌 날려버렸다. 이젠 세계 유도계의 경계대상 1호가 됐다.

안바울은 그래서 더 도복끈을 조여맨다. “아시아쪽 선수들이나 나를 알았지 상대가 나를 잘 몰라서 우승했을 뿐”이라며 “처음부터 내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다. 아직도 부족한 것 투성이다. 많이 메워야 한다”고 눈빛을 반짝인다.

▲ 안바울은 여자친구를 만드는데도 걸그룹에도 돈에도 관심이 없다. 오직 유도만을 생각한다.

여자친구를 만들 때가 아니란다. 그 나이라면 응당 열광해야 할 걸그룹도 구분하지 못한다. 돈에 대한 관심도 없다. 태릉선수촌에 있는 시간이 소중할 뿐. ‘국가대표의 낙’인 외박을 받더라도 친구들을 만나 영화 한편 보고 낮잠을 자는 정도다. 안바울의 삶은 오로지 유도다.

“올해 목표인 세계선수권 금메달은 이뤘네요. 지금은 오로지 올림픽만 바라봐요. 유도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제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었어요. 절대 여기서 안주하지 않아요. 게을러지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 전성기인 걸요. 다른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 '2진' 안바울, 태극마크를 위해 피자, 치킨을 달고 살다

‘피겨여왕’ 김연아는 2010년 토크쇼에 출연해 “야식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운동선수의 삶은 이토록 고난의 연속이다. 그런데 ‘빨래판 복근’의 안바울은 불과 1년 전 라면과 치킨과 피자를 달고 살았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은 안바울에게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다. 당시만 해도 안바울은 국가대표들의 훈련 파트너였다. 그는 “같이 들어와 있어도 대우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며 “자극이 많이 됐다.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되돌아봤다.

▲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은 안바울에게 아픔이었다. 1년 전 이맘 때 안바울은 국가대표들의 훈련 파트너였다.

‘2진’. 안바울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는 늘 최고였다. 석수초등학교 5학년 때 이모부의 권유로 유도와 연을 맺은 이후 탄탄대로를 달렸다. 금곡고 시절에는 나가는 대회를 모조리 휩쓸며 ‘제2의 최민호’라는 극찬을 받았다. 대학생들도 줄줄이 넘어뜨렸다.

2013년 세계주니어유도선수권대회 60kg급에서 시상대 맨위에 올라섰다. ‘경량급 미래는 걱정 없다’는 찬사 속에 최고 명문 용인대로 진학했다. 그런데 성인 무대, 보다 정확히는 대학 선배 김원진(양주시청)을 넘어서지 못했다. 태릉이 그렇게 멀게 느껴졌다.

설상가상. 왼쪽 무릎을 다치면서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결국 2013년 겨울 체급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66㎏급에 맞는 몸을 만들기 위해 '1일 5끼'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 안바울은 “체중이 안 나가면 근력이 달리니까 싫어도 억지로 먹고 또 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인생을 건 결정은 곧 성과로 나타났다. 1년이 지나 태극마크를 달았고 11월 제주 그랑프리 은메달을 시작으로 국제대회에서 연달아 메달을 수집하고 있다. 국가대표 1차, 2차, 최종 선발전까지 모두 정상에 올랐고 지난 7월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국가대표 사명감-악바리 근성, 리우를 기대해도 좋은 이유

타고난 태릉인이자 유도인이다. 안바울은 “나는 국가대표다. 힘든 훈련은 당연히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며 “단 한 번도 유도한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생각한 기술이 들어가 상대를 넘길 때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유도 아닌 다른 삶은 사실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안바울의 주위에는 ‘레전드’들이 가득하다. 남자 대표팀 코치는 각각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민호, 송대남이다. 지도교수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한국인 최초로 국제유도연맹(IJ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기영이다.

안바울은 “최민호 코치님의 기술, 자세 등 모든 것을 닮고 싶다. 은퇴 후에도 자기관리가 철저하신 송대남 코치님을 보면서도 배우는 점이 많다”면서 “전기영 교수님은 영상으로만 접했다. 그런 대단하신 분 밑에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눈을 반짝였다.

▲ 안바울은 한국 남자 유도 경랑급의 간판이다. 롤모델 최민호 대표팀 코치처럼 내년 올림픽에서 애국가를 울리는 것이 꿈이다.

한국 유도는 유니버시아드대회서 8개의 금메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종합 3위에 오르며 세대 교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안바울과 김원진, 곽동한(하이원), 안창림(용인대) 등이 선두주자다.

안바울은 “훈련을 힘들게 하니까 지면 같이 슬프고 이기면 함께 기뻐하는 동료들”이라며 국민들의 성원을 당부했다.

하형주, 안병근, 김재엽, 이경근, 이원희, 최민호, 김재범, 송대남에 이르기까지 한국 남자 유도는 4년마다 한 번씩 명장면을 연출하며 국민들에게 크나큰 기쁨을 선사해 왔다. 안바울은 그 바통을 이어받기 위해 단점을 보완하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하체 근력이 좋아서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다고 칭찬은 듣는데 순발력이 많이 부족해요. 웨이트트레이닝할 때 제자리 점프처럼 순간적으로 힘쓰는 운동들을 주로 하고 있어요. 큰 대회에 나가면 부담돼서 긴장도 많이 하고요. 어우, 보완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한국 유도의 미래, 안바울같은 악바리가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 안바울 프로필

△ 생년월일 = 1994년 3월 25일
△ 출생지 = 경기 안양
△ 출신학교 = 석수초-범계중-금곡고-용인대
△ 수상 경력
  - 2009 제90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고등부 개인전 55kg급 금메달
  - 2011 제92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고등부 개인전 60kg급 은메달
  - 2012 제93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대학부 개인전 60kg급 금메달
  - 2013 세계주니어유도선수권대회 남자 60kg급 금메달
  - 2015 쿠웨이트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 66kg급 은메달
  - 2015 제28회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도 남자 66kg급 금메달
  - 2015 세계선수권 66㎏급 금메달

[취재 후기] 송대남 코치는 “유도 선수들 대부분이 대개 어렵게 컸다”며 “악착같은 근성 하나로 오로지 올림픽을 보고 운동하는 선수들”이라고 했다. 안바울에게는 한 분야 최고봉에게서 뿜어 나오는 특유의 기가 있었다. 수줍은 말투 속에 또렷한 의지가 묻어 나왔다. 덧붙이는 한마디. 안바울의 프로필을 보고 놀랐다. 기자의 신체 조건과 어쩜 그리 흡사한지. 불룩 솟은 배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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