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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5) '춘희막이' 박혁지 감독, "한 지붕 두 엄마, 지구상 유일한 관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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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5) '춘희막이' 박혁지 감독, "한 지붕 두 엄마, 지구상 유일한 관계" [인터뷰]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5.10.07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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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오소영 기자] "우리 영감 세컨부(세컨드)요."

막이 할머니(최막이)는 춘희 할머니(김춘희)를 이렇게 소개한다. 태풍과 홍역으로 두 아들을 잃은 막이 할머니네는 대를 잇기 위해 8~9세의 정신연령을 지닌 스물 네 살의 춘희 할머니를 '작은댁'으로 들였다. 막이 할머니는 아들 출산 후에도 춘희 할머니를 내보내지 않고 46년을 함께 살았다. "양심상 그럴 수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소재만 보자면 충격적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춘희막이'(9월30일 개봉) 속 두 여인의 일상은 의외로 담담하고 가끔은 귀엽다. 두 여자의 질투어린 동거를 생각하고 갔던 관객에게는 반전일 법하다. '춘희막이'의 감독, 촬영, 편집을 맡은 박혁지 감독은 약 2년 동안 두 할머니 곁에 머물며 이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 '춘희막이'의 박혁지 감독 [사진=스포츠Q 이상민 기자]

◆ 내가 아는 엄마는 진짜 엄마일까… "우리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단 말이야?"

"중학생 딸에게 자막 없이 영상을 보여줬는데, 못 알아듣더라고요. 이해를 위해 자막을 넣었죠. 뜻 풀이에는 따님 윤숙씨가 크게 도움을 주셨어요. '이걸 왜 못 알아듣냐'고 혼내시기도 하면서.(웃음) 촬영 초반엔 저도 이해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대화 중 80% 정도는 알아듣게 됐어요."

두 여인의 센 사투리 억양(경북 영덕) 때문에 '춘희막이'의 대화는 자막 없이는 알아듣기 쉽지 않다. 박혁지 감독 또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오히려 그만큼 낯선 사람이었기에 담아낼 수 있었던 부분이 있었다.

"윤숙씨가 대화 뜻풀이를 위해 촬영 영상을 보시다가,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단 말이야?' 하고 놀라셨어요. 작은엄마(김춘희씨)는 평소 아이같지만 때로는 연배에 어울리는 현답도 하시는, 가족에게도 의외인 면을 보여주시거든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 사람은 이렇다'고 정해놓은 기준이 있고 그 이상 궁금해하지 않죠. 가족들은 두 어머님의 모습을 봐 왔으니 나름대로 그어둔 기준이 있었던 건데, 두 분을 찍어보자 생각했던 동기도 이런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과 비슷해요."

▲ '춘희막이' [사진=올댓시네마 제공]

언뜻 막이씨가 춘희씨를 '거둬' 보살펴준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박혁지 감독은 춘희씨도 막이씨를 위해 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찍어본 영상 속 두 엄마는 일방향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서로 1:1의 영향을 준다고 느꼈어요. '춘희막이'를 통해서 가족 분들이 엄마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내가 알던 것보다 조금은 다른 면이 있구나' 하는 거요."

특히 가족들이 놀랐던 부분은 춘희씨가 막이씨로부터 숫자를 배워 셌을 때였다. 3까지만 아는 줄 알았던 춘희씨가 10까지 세는 걸 보고 다들 크게 놀랐다.

◆ "지구상에 이런 관계는 유일"…46년의 한 지붕 정 

막이씨는 춘희씨와의 관계에 대해 주목받는 것을 '남사스럽게' 여기는 분이다. 이런 두 사람을 촬영해 영화로 내놓는 데 허락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을 듯 보였다. 다행히도 젊은 사람이 잘 없는 시골에 사는 두 할머니는 박 감독을 반갑게 맞아줬고, 몇 번의 부탁을 통해 허락을 받았다.

박혁지 감독은 2009년 TV다큐 '여보게 내 영감의 마누라'(OBS)로 두 할머니와 인연을 맺었다. 이번에 영화로 개봉한 '춘희막이'까지, 시간이 쌓이며 '박 기자'(할머니들은 박 감독을 기자라고 부른다)는 두 할머니와 돈독한 사이가 됐다.

한번 TV에 담아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영화의 소재로 택한 이유에 대해 박혁지 감독은 "지구상에 이런 관계는 또 없을 거다. 큰댁과 작은댁이 46년간 함께 살며 이뤄진 관계라니. 알면 알 수록 두 분의 삶에 숨겨진 이야기가 많았다"고 답했다. 두 할머니는 같은 집에서 살며, 때때로 막이씨가 춘희씨를 구박하기도 하고, 함께 웃고 감정을 나눈다. 소소한 일상 속 사건들은 크지 않지만 이들의 삶이다.

"두 분은 서로간 진심을 나누지만 대화는 수평보단 수직적이에요. 출발선이 달랐으니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모습은 유리창을 가운데 두고 집 안팎의 모습을 담는 식으로 표현했어요. 그럼에도 두 분의 관계는 뭐라고 정의하기 어렵죠.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말도 안되는 처사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분들이지만, 46년의 시간은 두 분 사이의 벽을 초월하게 만들으니까요."

▲ '춘희막이'의 박혁지 감독 [사진=스포츠Q 이상민 기자]

◆ '춘희막이'를 잘 보는 방법은 '표정' 집중 

박혁지 감독은 자막 외 외부의 개입은 최소화했다. 보는 사람의 생각을 막을까봐서다. '춘희막이'를 더욱 '잘' 볼 수 있는 방법을 물으니 '표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두 분 간에 대화가 많지 않고 정적인 순간이 많아요. 그 대신 말은 없지만 말을 하는 듯한 표정이 있죠. 특히 작은 할머니는 먹고 싶은 것이 있다거나 몸이 아파도 의사 표현을 잘 안 하시는 버릇이 있으신데, 표정으로 알 수 있죠. 컷의 호흡이 좀더 긴 감이 있는데, 그만큼 꼼꼼하게 봐 주신다면 보다 재밌을 거예요.

'춘희막이'의 관객분들은 영화를 보고 외할머니가 생각날 수도 있고, 두 어머님과 비슷한 경우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요. 자유로운 감상으로 이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가셨으면 좋겠어요."

촬영과 개봉에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 만큼 그동안 두 어머니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얼마 전에도 두 분을 찾아뵙고 인사드렸다는 박혁지 감독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큰어머니가 올해 농사를 안 지으셨어요. 매년 '내년엔 정말 농사 안 할거다' 하시면서도 늘 일을 하셨었거든요. 강한 의지와 성격에도 농사를 그만두신 건 정말 힘드셨단 거죠. 또, 담배도 끊으셨고요. 작은 어머니는 외출이나 밭일을 좋아하시는데 집에 계시는 일이 많아지니 무료해 하시고요. 영화요? 영화는 보고 '재밌다'고 큰어머니가 짧게 말씀하셨어요.(웃음)"

▲ '춘희막이' [사진=올댓시네마 제공]

'춘희막이'는 개봉 5일만에 전국 2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제58회 독일 국제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영화제 DOK 라이프치히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독자들에게 하고픈 말을 묻자 박혁지 감독은 "영화 보러 오세요"라며 밝게 웃었다.

"'춘희막이' 보러 오세요.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 좋고요. '워낭소리' 이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까지 다큐멘터리 흥행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다큐멘터리가 더욱 관심받고 잘 되기 위해서라도 '춘희막이'가 그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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