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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리화가' 수지, "판소리, 제 연기니 당연히 제가 해야죠"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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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리화가' 수지, "판소리, 제 연기니 당연히 제가 해야죠" ①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5.11.2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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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원호성 기자] '판소리'하면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누가 뭐라고 해도 단연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일 것이다. 1993년 개봉해 단성사에서만 8개월 동안 상영하며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서울관객 100만 명을 돌파한 영화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판소리’라는 우리 고유의 문화에 얽힌 ‘한(恨)’의 정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득음(得音)을 하기 위해 목에서 피를 토하고 똥물을 마시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버지는 진정한 득음을 위해 결국 딸의 눈을 멀게 한다.

1993년 ‘서편제’ 이후 22년 만에 한국에서 ‘판소리’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영화가 등장했다. ‘전국노래자랑’을 연출했던 이종필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도리화가’가 그것이다. 하지만 ‘도리화가’는 ‘서편제’와는 결이 상당히 다른 영화다.

‘서편제’가 득음을 향해 딸의 눈을 멀게 하는 비정한 부정(父情)을 통해 소리예술의 궁극을 보여주려 한다면, ‘도리화가’는 여성이 판소리를 할 수 없던 시절, 여성의 몸으로 판소리에 도전한 조선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이다. 즉 ‘서편제’가 판소리라는 예술에 대한 지독한 탐미(耽美)를 그려낸다면, ‘도리화가’는 ‘진채선’이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며 성장하는 성장 드라마로 볼 수 있다.

영화 ‘도리화가’의 개봉을 앞두고, ‘도리화가’에서 조선 최초의 여류 명창(名唱) ‘진채선’을 연기한 배우 수지를 만났다. ‘건축학개론’에서 ‘국민 첫사랑’으로 불렸던 20대 초반의 풋풋한 아이돌 출신 신인배우였던 수지는 3년 7개월이 흘러 두 번째 영화 ‘도리화가’에서 한층 성숙해지고 진중해진 모습으로 스크린 앞에 섰다. ‘도리화가’에서 그저 판소리가 좋아 산과 들을 뛰놀며 소리를 연습하던 ‘진채선’이 스승 ‘신재효’(류승룡 분)를 만나고 판소리를 제대로 접하기 시작하며 변하던 그 모습처럼 말이다.

▲ 영화 '도리화가' 수지 [사진 = 퍼스트룩 제공]

◆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 판소리를 한다는 것은 생각도 안 했어요”

굳이 이 말을 설명할 필요가 있겠냐 싶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수지는 ‘건축학개론’과 ‘도리화가’에 출연한 배우인 동시에 인기 걸그룹 미쓰에이(missA)에 소속되어 있는 아이돌 가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수 출신이니 연기 외길만 걸어온 여타 배우들에 비해 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에 주인공으로 적합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 ‘판소리’라는 전통예술을 만만히 본 것일지도 모른다. ‘서편제’에서도 득음을 위해 아버지가 딸의 눈까지 멀게하는 모습이 등장하지 않나.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판소리’가 소재로 등장할 때는 전문 배우가 아닌 어린 시절부터 판소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국악인이 영화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편제’의 오정해도 초등학생 시절부터 판소리를 시작해 명창 만정 김소희 선생에게 직접 판소리를 배운 국악인이고, 판소리를 소재로 한 박찬욱 감독의 단편영화 ‘청출어람’에서 어린 나이로 뛰어난 판소리 연기를 소화한 전효정도 전문적으로 판소리를 배워온 국악인이었다. 그러나 수지는 가수 출신이라고 해도 판소리를 접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영화의 판소리 연기를 대신한다는 것은 생각도 안 했어요. 당연히 작품을 고를 때부터 판소리에 대한 부담도 있었고, 판소리를 배울 때도 내가 이걸 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았죠. 하지만 조선 최초 여류 명창 이야기라고는 해도 제가 연기할 것은 ‘진채선’이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나가는 것이기에 꼭 판소리가 완벽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소리에 진심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영화 '도리화가' 수지 [사진 = 퍼스트룩 제공]

영화 ‘도리화가’에서 수지가 연기한 ‘진채선’의 판소리 실력은 사실 냉정하게 말해 ‘조선 최초 여류 명창’이라는 거창한 수식어에서 기대하게 만드는 수준급 실력과는 거리가 멀다. 류승룡이나 송새벽, 이동휘, 안재홍 등 다른 남자배우들에 비해 판소리를 하는 장면도 많고 소리의 수준도 높지만, 그래도 ‘서편제’의 오정해나 ‘청출어람’의 전효정 등 어린 시절부터 전문적으로 판소리를 배워온 다른 배우들과 비교하면 솔직히 많이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영화 ‘도리화가’가 한층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수지의 판소리가 이처럼 완벽하지 않고 오히려 부족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도리화가’에서 처음 ‘진채선’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흥얼거리던 소리는 ‘신재효’라는 스승을 만나 제대로 판소리를 배우며 단단하게 여물기 시작한다. 이에 맞춰 수지의 판소리 실력 역시 영화가 진행될수록 ‘진채선’처럼 점점 발전하며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판소리’라는 예술의 궁극을 보여주지는 못해도, ‘진채선’이라는 사람의 성장 드라마로는 그야말로 제격이다.

“어쩌면 제 소리가 아닌 전문적인 판소리를 입히는 편이 영화에는 더 좋은 결과였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감독님에게 제가 하는 연기니 판소리도 제가 직접 하는 것이 좋다고 끝까지 고집했어요. 그런데 고집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도 있었는지, 영화를 보니 감독님이 기술적으로 좀 만진 부분도 있더라고요.”

▲ 영화 '도리화가' 수지 [사진 = 퍼스트룩 제공]

◆ “판소리, 다시 한 번 배워보고 싶어요”

영화 ‘도리화가’에서 수지가 도전한 판소리라는 영역은 기존에 수지가 해왔던 가수 활동과는 너무나 다른 영역이었다. 일단 판소리와 대중가요는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만 존재할 뿐 소리를 내는 발성법이나 창법이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수지는 판소리의 기초부터 다시 하나씩 배워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수지는 영화 ‘도리화가’를 위해 1년 동안 판소리를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수지가 연기 활동 외에도 가수 활동으로 바쁘다 보니 매일 배우지는 못해도 한 번 선생님을 만나면 판소리를 배우고 그를 녹음한 뒤 주구장창 들으며 판소리에 익숙해지려 했다. 이종필 감독 역시 영화 속 ‘진채선’의 모습들을 시간 순서대로 찍으며 뒤로 갈수록 판소리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는 수지의 모습을 ‘진채선’의 모습 위에 입혀냈다.

“판소리를 배운 것이 제가 가수를 하는 것에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지금은 판소리를 안 배운지 조금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판소리를 배우는 동안에도 앨범 녹음을 하고 했는데 확실히 판소리를 배우는 동안에는 소리가 단단해진 기분이 들더라고요. 사실 판소리는 제가 평소 쓰는 발성하고는 완전히 달라요. 전 원래 반가성을 쓰는 편인데, 판소리는 소리가 단단해서 처음에 무척 고생을 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판소리를 배워서 득을 본 것이 많아요. 그래서 다시 판소리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수지는 진지하게 판소리를 다시 배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판소리를 배우고 영화를 촬영하는 기간 동안 ‘진채선’에 흠뻑 빠져 살았던 영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판소리만이 가지는 우리 민족 고유의 독특한 기쁨과 슬픔의 정서에 수지 본인이 취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미쓰에이의 다음 앨범에 수지가 녹음한 판소리 솔로곡이 실리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 영화 '도리화가' 수지 [사진 = 퍼스트룩 제공]

판소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흥이다. 무대 위에서 청중에게 일방적으로 나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청중들과 함께 웃고 울고 즐기며 같이 호흡하고 이야기에 소리를 내는 소리꾼 자신이 먼저 젖어들어야 한다. 그래서 영화 ‘도리화가’에서 신재효(류승룡 분)도 말하지 않는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먼저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영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소리는 ‘춘향가’ 중 ‘쑥대머리’예요. 배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쉽지 않은 노래여서 기억에 남는 것도 있지만, 가장 좋았던 소리이기도 해요. 소리 자체가 구슬프고, 듣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 느껴져요.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아요.”

“판소리를 후시녹음으로 했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영화를 촬영할 때는 항상 동시녹음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했고, 실제로 동시녹음을 그대로 사용한 부분도 많아요. 전 미리 연습을 마치고 현장에서는 집중해서 연기를 하는 편이라 사실 후시녹음이 더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현장에서 영화를 촬영할 때 내가 몰입해서 나오는 감정이 나중에 후시녹음에서 제대로 표현이 될까 걱정이 많았죠. 아무래도 야외에서 멀리 산을 바라보며 나오는 소리와 녹음실에서 벽보고 하는 소리는 정말 다르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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