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15:53 (월)
드라마가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속으로 빠진 까닭은?
상태바
드라마가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속으로 빠진 까닭은?
  • 이예림 기자
  • 승인 2014.07.15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 이예림 기자] # 장면 = 재벌 남자가 한 여인을 숍에 데려가 전문가에게 치장을 부탁한다. 평범함을 벗고 화려하게 변신한 여인을 보고 마음이 동한 남자는 이내 별 일 아니라는 듯 여자와 함께 돈이 많은 손님들로 가득한 카지노장으로 간다.

할리우드 영화 ‘귀여운 여인’(1990)에서 배우 리차드 기어가 줄리아 로버츠를 고급 옷가게에 데려간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스토리는 지난 3일 방영된 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한 장면이다.

◆ 과거 유행이었던 로맨틱코미디물 장면들의 부활

과거 재벌 남자와 평범한 여자의 러브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들이 한창 유행했을 당시 이 장면은 여러 작품 속에서 패러디됐다. 그러나 드라마 시청자들의 높아진 수준과 연상연하 커플들이 트렌드가 된 요즘, 상당히 진부한 세팅이 아닐 수 없다.

지난 3일 방영된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는 과거 로맨스물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연출됐다. [사진=더틱톡 제공]

그러나 시청자들은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0일 방송된 ‘운명처럼 널 사랑해’ 4회는 9.0%(이하 전국기준)의 시청률을 기록, 3회 방송분(7.9%)보다 1.1%p 상승세를 드러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송계에서는 지난달 말 또는 이달 초 예상이 가능한 러브 라인의 전개, 진부한 캐릭터 설정, 유치한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KBS2 월화드라마 ‘트로트의 연인’, 케이블채널 tvN의 월화드라마 ‘고교처세왕’, 금토드라마 ‘연애 말고 결혼’이 그 예다.

지난 7일 전파를 탄 ‘트로트의 연인’에서는 준현(지현우)이 춘희(정은지)가 의자 위에 올라가 전등을 가는 동안 밑에서 의자를 잡아주다가 춘희의 다리를 보고 정신을 놓는 바람에 춘희가 중심을 잃고 준현의 몸 위로 떨어졌다. 여자 주인공이 중심을 잃고 남자 주인공 위로 넘어져 이후 관계의 흐름에 불을 지피는 전개는 과거 스토리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물에서 빈번하게 쓰였던 고전적인 장치다.

드라마 '트로트의 연인' 또한 고전적인 로맨스물의 전개를 따르고 있다. [사진=제이에스픽쳐스 제공]

‘고교처세왕’은 고등학생 이민석(서인국)이 형을 대신해 국내 굴지의 기업 본부장으로 입사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작품이나 극중 비정규직 여사원 정수영(이하나)과의 로맨스는 한때 불었던 ‘본부장님 열풍’을 연상케 한다.

또 ‘연애 말고 결혼’에서 연우진과 한그루는 방영 첫 주부터 계약 연애에 돌입한다. 서로 다른 이성을 바라보지만 계약 연애를 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예측 가능한 구조를 품고 있다.

◆ 침체된 사회 분위기, 상반기 장르물 범람과 맞물려 단순한 스토리 전개 인기

요즘 유치한 로맨틱 코미디물의 러시 등 드라마가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속으로 빠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드라마 홍보사 더틱톡의 권영주 대표는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와 한국축구대표팀의 브라질 월드컵의 조기 탈락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됐기 때문에 당분간 가벼운 드라마가 줄을 이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한국 경제를 이끄는 고급 관료들의 비리와 부정부패 때문에 가족을 잃은 한 남자의 복수극을 그린 드라마 ‘골든 크로스’의 주연 배우인 김강우는 “세월호 침몰 사고 때문에 작품이 스톱될 위기에 처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는 드라마가 그 시대 사회적 정서 또는 타이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울러 가벼운 로맨스물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중들이 본격 수사 드라마 등 장르물에 식상했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지난 3~5월 방영됐던 SBS 드라마 ‘신의 선물’ ‘쓰리데이즈’를 시작으로 최근 종영한 tvN 금토드라마 ‘갑동이’까지 올해 유난히 장르물들이 판을 친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시각이다.

침체된 사회 분위기와 장르물의 범람으로 인해 단순한 로맨스물이 인기를 끌 전망이다. [사진=CJ E&M 제공]

요즘 ‘고교처세왕’에 빠져 있는 직장인 이승미(26)씨는 “한동안 장르물이 많아 이제 범인 찾기는 그만하고 싶을 정도로 질렸다”고 말한다. 이씨는 “드라마를 보는 가장 큰 이유는 판타지 로맨스의 대리만족이다. 요즘 나오는 드라마들의 내용은 진부하지만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 제작사인 페이지원필름의 한 관계자는 “추천을 받아 대만 드라마 원작으로 봤다. 유치한 면도 있지만 내용 전개가 쉽고 재밌어 하루를 꼬박 밤을 새서 다 봤다. 다른 시청자들에게도 그렇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했다”며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귀띔했다.

드라마는 대중의 눈길을 붙잡아야 하는 특성상 현실과 떼어 두기는 어렵다. 어떻게 보면 현실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나누고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1997년은 쉬이 지나가지 않고 끝자락에 ‘IMF’라는 불행을 던져놓고 갔다. 실업과 자살이 비례 곡선을 그린 것으로 설명될 만큼 당시의 상황은 가혹하고 잔인했다. 어머니와 육남매가 가족애로 가난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육남매’는 1998년 2월부터 약 한 달 간 방송이 될 예정이었지만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총 1년10개월 동안 방영됐다.

이처럼 대중은 시대의 아픔을 드라마를 통해 위안 받고 치유 받기도 한다. 향후 드라마가 시대상과 맞물리며 어떤 진화를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press@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