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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예술](1)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바이올린과 함께한 50년 그리고 '아메리칸 커넥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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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예술](1)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바이올린과 함께한 50년 그리고 '아메리칸 커넥션' (인터뷰)
  • 김윤정 기자
  • 승인 2016.02.05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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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지난해 한 포털사이트 실시간검색어에는 ‘조성진’이라는 이름이 오르며 큰 화제를 모았다. 조성진은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최고 권위를 지닌 대회로 꼽히는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다. 이처럼 조성진의 화려한 성과는 한국 음악가들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됐고, 더불어 클래식이라는 분야를 대중들에게 더욱 잘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약 50년 전, 지금의 조성진처럼 한 가지 악기로 세계무대를 휘저었던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다.

[스포츠Q(큐) 글 김윤정 · 사진 최대성 기자] 우리나라가 외국으로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1970년대,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는 만 9세의 나이인 1964년에 ‘서울시향 소년소녀 협주곡의 밤’을 통해 데뷔 무대를 가졌다. 그리고 만 21세가 되던 해인 1976년엔 영 콘서트 아티스트 오디션에 선발되며 이듬해 1977년 뉴욕 카프만 홀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갖게 됐다. 이 무대를 통해 이성주는 ‘뉴욕타임즈’로부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평가를 받게 됐고, 이때부터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 및 동남아 등을 순회 연주하면서 본격적인 연주활동을 시작했다.

수많은 공연과 연주활동으로 솔리스트로서 뛰어난 음악성을 인정받으며 올해로 한국데뷔 52주년, 미국데뷔 39주년을 맞게 된 이성주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리고 현악앙상블 ‘(사)조이오브스트링스(Joy of Strings)’의 예술 감독으로서, 또 한국종합예술학교의 교수로서 지칠 줄 모르는 음악인생을 그려나가고 있다.

▲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 데뷔 52년차 이성주, “만 22세 때 가진 뉴욕데뷔 무대, 음악가로서의 시작은 그때가 포인트”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는 과거 뉴욕 비에냐프스키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시벨리우스콩쿠르/워싱턴콩쿠르(1975년), 차이콥스키콩쿠르(1978년), 퀸 엘리자베스콩쿠르(1980년), 나움버그콩쿠르(1981년) 등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입상하거나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평생을 음악과 함께 해온 이성주에게 데뷔 52주년을 맞는 감회를 물으니 오히려 “그렇네요?”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한 음악은 이성주에게 흘러가는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워낙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렇기에 “항상 하는 일이라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라는 답변은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함축적인 답변이었다.

그러나 만 9세에 가진 데뷔 무대는 역시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생생한 기억이다.

“정말 겁 없이 했죠. 그때부터 나의 음악생활은 벌써 시작된 거였어요. 생각해 보면 평생 악기와 함께 한 건데, 하루하루가 맨날 연습과의 싸움이었고 악기와의 싸움이었기에 기념일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항상 더 나은 연주, 더 나은 음악회, 그런 걸 생각하는 편이죠.”

▲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이성주는 이화여중 재학 중에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 예비학교와 음악대학,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을 거점으로 활동한 이성주에게 한국데뷔 만큼이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뉴욕데뷔 무대다.

“뉴욕데뷔는 당연히 잊지 못하죠. 왜냐하면 정식 음악가로서 뉴욕에서 데뷔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뉴욕타임즈’에서 신인의 평을 얻는 것은 더더욱 그래요. 그날 집근처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는 신문가판대에 가서 기사를 읽는데, 너무 떨려서 같이 간 친구가 읽어줬어요. 친구가 타이틀을 보더니 ‘됐다!’고 말하는데 그 이상 더 필요한 게 없었어요. 그전에 연주도 많이 하고, 콩쿠르에 나가서 입상도 많이 했지만, 음악가로서의 시작은 그때가 포인트였으니까 뉴욕 데뷔가 저한텐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죠.”

이후 이성주는 1984년과 1988년 두 차례에 걸쳐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서독,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태리 등 유럽 7개국을 헨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로 순회공연을 가지며 국제적인 연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수많은 독주회 및 협연으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자리를 잡은 이성주는 대학 재학 중 미국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당대 명조련사로 알려진 이반 갈라미언과 마가렛 파디, 그리고 줄리아드학교에서 50년 이상 재직하며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양성한 도로시 딜레이를 사사했다.

“제가 갔을 때만 해도 한국 학생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로 넘어가면서부터 한국 학생들이 훨씬 많아지기 시작했죠. 어떻게 보면 이런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아티스트들 모두에게서 공부한 케이스가 별로 없는데 그런 면에서 저는 운 좋은 음악가에 속해요.”

▲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이성주에게도 시련은 닥쳐 왔다. 그의 나이 30대 중반 즈음, 이어지는 연주투어와 여행으로 심신이 지쳐있을 때였다.

“지금은 사실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편해졌지만 30년, 40년 전만해도 동양인 여자가 혼자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런 게 많이 힘들어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연주를 해야 하나’, ‘그만둘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무대에서의 생활, 그리고 연주가로서의 생활을 없애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턴 더욱더 열심히 했고, 뒤돌아보는 일 없이 앞만 보고 달리게 됐어요.”

길지 않은 정체기를 마치고 다시 음악생활에 매진하게 된 이성주는 이후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오는’ 그만의 방법을 사용하며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길을 끊임없이 걸었다.

▲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의 바이올린

뉴욕과 한국서 열리는 ‘아메리칸 커넥션’ 리사이틀, 실제로 좋아하는 4명의 유럽 작곡가 곡들로 선곡

최근의 이성주는 연주회 준비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성주는 지난 1월28일 열린 현악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의 신년음악회를 기획하는 동시에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1번을 연주하는 협연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조이오브스트링스’의 공연 직전까지도 리허설 막바지 연습에 박차를 가했던 그는, 곧 있을 리사이틀 공연으로 또다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이성주의 이번 리사이틀은 오는 2월 11일과 18일, 각각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과 뉴욕 카네기홀 Weill Recitall Hall에서 ‘아메리칸 커넥션’이라는 주제로 개최된다.

이번 공연에서 이성주는 20세기를 대표하는 4명의 유럽 작곡가들인 드보르작(체코)과 크라이슬러(오스트리아), 스트라빈스키와 프로코피예프(러시아)의 곡들을 연주한다. 이 네 작곡가의 특징은 모두 자국에서의 이주나 망명을 경험해 미국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며 작곡 및 연주활동을 펼쳤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커넥션’을 주제로 선정한 이유 또한 바로 이것이었다.

“이 네 작곡가들을 선택한 이유는 ‘아메리칸 커넥션’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중요한 건 제가 이 작곡가들과 그들의 곡들을 좋아해서예요. 발레 음악과 관현악 음악, 그리고 현대작곡가로도 유명한 스트라빈스키의 곡은 이미 제가 CD로 녹음도 몇 번했을 정도고요. 또 프로코피예프의 곡은 연주가 굉장히 어렵지만 음악적으로 제가 존경하는 작곡가라서 사실 메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항상 밸런스 있게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쉽지 않지만, ‘뉴욕과 서울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커넥션을 만들어 볼까’ 하다가 여러 면을 고려하다 보니 이렇게 프로그램이 완성됐네요.”

▲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특히 이성주는 이번 서울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박종훈과 함께, 그리고 뉴욕 공연에서는 이성주의 뉴욕데뷔 무대 발판이 됐던 ‘영 콘서트 아티스트(Young Concert Artists; YCA)’ 출신의 신예 피아니스트와 호흡을 맞춘다. 줄리아드 후배이기도한 박종훈에 대해 이성주는 “음악가로서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라고 표현하며 이번 리사이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이성주는 관객들이 클래식을 좀 더 가깝고 즐겁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이에 집중도가 높은 프로그램 전반부에는 프로코피예프의 곡과 같은 비교적 무거운 곡들을, 그리고 대중들이 쉽게 즐기고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곡들을 후반부에 배치했다.

“음악적인 비중은 저한테 있고 오시는 분들이 모두 제 음악에 빠져주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음악회에 온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제가 선곡한 곡들을 좋아할 순 없어요. 그래서 클래식 중에서도 굉장히 대중적이면서도 한국 관객들이 특히 좋아하는 크라이슬러의 곡들을 넣은 이유도 여기에 있죠. 말하자면 디저트죠, 마지막에 달콤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아메리칸 커넥션' 리사이틀 포스터 [사진 = 'stageone(스테이지원)' 제공]

◆ “직접 창단한 앙상블 단체 ‘조이오브스트링스’, 성장하는 모습 보면 큰 보람 느껴”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이성주는 19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초청으로 귀국해 현재까지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또한 1997년에는 현악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를 창단하며 예술감독으로서 후학양성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이성주는 어릴 적 외국에서 공부했던 경험을 토대로 ‘조이오브스트링스’와 더 어린 학생들로 구성된 ‘영조이오브스트링스(Young-Joy of Strings)’를 이끌고 있다.

“악기는 사실 어릴수록 배우기가 쉽고, 어린 나이에 영재로서 키워야 한평생 편하게 악기를 다룰 수가 있어요. 특히 우리나라는 솔로 위주로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인데, 외국에서는 음악을 통해서 화합하고 그룹으로서의 사회생활을 배우는 것을 선호해요. 혼자 연습을 하면 악기 위주로 연습을 할 수 있지만 그룹으로 연습을 하다 보면 보통 때 느끼지 못했던 앙상블을 만드는 조합을 느낄 수 있어요. 어릴 때부터 이런 점들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음악과 예술적인 면에서도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가르쳐주는 거죠.”

▲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이성주는 제자들을 위한 무대를 지속적으로 마련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만큼 단체를 이끄는 어려운 점 역시 존재한다.

“단체 하나를 유지한다는 게 결국 혼자 힘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초청연주도 많이 하지만 자체적으로 기획도 해야 하고 기획에 걸맞은 여러 가지 지원도 필요하죠. 저는 음악만 하면 그만이지만, 감독으로서 해야 하는 음악 외적인 부분들이 사실 더 힘든 것 같아요. 연주가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단체를 위해서 힘을 써야하는 일이 생길 땐 ‘차라리 연주를 해서 설득을 하는 게 쉽지 않을까’란 생각도 하곤 해요(웃음).”

그러나 역시 이성주가 오랜 기간 ‘조이오브스트링스’를 놓지 않는 이유는 그에 따른 ‘보람’ 때문이다.

“음악회 때 그룹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껴요. 세계적인 자리에 나가도 손색없는 단체를 만들어 냈다는 건 단원들도 그렇고 저도 많은 행복을 느끼는 부분이에요.”

솔리스트로 몇 십년간 외국생활을 해온 이성주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런 후원 없이 음악을 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에 이성주가 음악 단체를 운영하는 일만으로도 한국에서 예술 교육을 받는 음악영재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됐다.

“제가 외국에서 활동했을 땐 아무런 도움도 없었어요. 외톨이가 돼서 혼자 힘으로 살아남아야만 했죠. 그래서 저는 옆에서 후원과 서포팅을 해주고, 정신적인 면에서의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기회를 자꾸 만들어서 무대를 마련해 줘야죠. ‘영조이오브스트링스’는 앞으로 더 키워서 ‘조이오브스트링스’나 저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운영해 나갈 생각이에요.”

▲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창단한 현악앙상블 '(사)조이오브스트링스' [사진 = 'stageone(스테이지원)' 제공]

◆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악기는 음악과 나의 연결고리”

바이올리니스트, 음악감독, 그리고 교수로서 활동하는 이성주에게 역시나 가장 애착이 가는 타이틀은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러나 세 가지 타이틀을 이어주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이성주는 제자들을 가르치면서도 음악적인 표현을 늘 강조한다. 이성주의 ‘음악적 표현’이란 자기 것으로 음악을 충분히 소화해 악보를 보지 않아도 저절로 나올 수 있을 정도를 뜻한다. 이는 제자뿐만이 아니라 본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성주만의 음악관이다.

“연주 무대에서 남은 모르지만 저는 알죠.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돼서 내가 연주하는 것조차 모를 때, 그냥 연주가 되는 때가 가끔씩 있거든요. 그런 걸 항상 추구해요. 그렇게 이루어지는 게 최고의 경험인 것 같고요.”

이성주는 요즘의 추세로 떠오른 작은 음악회부터 세계를 넘나드는 큰 공연까지 모든 계획된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게 올해의 바람이라고 전했다. 2016년을 맞아 이성주는 ‘조이오브스트링스’의 정기공연 4회와 올해 후반에 예정돼 있는 외국과 국내에서의 협연 계획들을 준비 중에 있다. 내년이면 미국데뷔 40주년을 맞는 이성주는 ‘조이오브스트링스’와 함께 뉴욕에 가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마지막으로 이성주는 음악가로서 살아온 50년의 인생이 녹아든 말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음악이라는 건 정해진 게 없잖아요. 노트는 있지만 자기가 만들어 내는 세상이 음악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외로워요. 그렇지만 그런 걸 극복하지 못하면 음악가가 되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여행을 가도 꼭 악기를 가져가요. 연습이 필요하다기보다 잠깐이라도 악기와 연결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악기가 없으면 늘 불안해요. 나와 음악의 연결고리가 악기니까요.”

▲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취재후기] 이성주는 이번 리사이틀에서의 의상에 대해 “아직 안 정했어요”라며 “독주회는 혼자니까 화려하면서도 편한 옷을 입어야겠죠?”라고 말했다. 이성주의 대답에서 ‘아차!’하며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간 것은 이성주가 바로 그 ‘화려하고 편안한 바이올리니스트다’란 생각이었다. 일상처럼 편안한 음악 속에서 가장 화려한 연주를 선보이는 ‘화려하지만 편안한 바이올리니스트’, 그게 바로 필자가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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