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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① 월드스타 박미현의 황금스틱 12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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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① 월드스타 박미현의 황금스틱 12년 꿈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7.29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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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세계올스타 선정에 큰 주목 받지 못해... 아시아 정상 굳은 결의

[300자 Tip!] 만약 한국의 축구선수가 세계올스타에 선정됐다면 스포츠매체뿐 아니라 프라임 뉴스에서도 이를 헤드라인으로 전할 것이다. 한국 여자 하키의 에이스 박미현(28·KT)은 2007년 국제하키연맹이 뽑은 18인의 세계올스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여느 비활성화 종목 선수들이 그렇듯 박미현도 언론의 무관심에 무뎌졌다. 그는 묵묵히 선수생활의 마지막이 되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향해 땀을 흘릴뿐이다. 서른을 앞둔 맏언니. 이제는 어느 경기가 마지막이 될 줄 모른다며 테스트 매치에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를 태릉에서 만났다.

[태릉=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2007년 11월28일. 한국 여자 하키는 세계올스타를 배출했다.

박미현. 국제하키연맹(FIH)이 발표한 2007 세계 여자올스타명단 18명에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오른 이름 세글자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하키계만의 축제로 끝났을 뿐이었다. 언론은 단신으로 이 소식을 처리했다. 그의 사진조차 없었다. 한국 스포츠계의 국제적인 경사는 그대로 묻혀버렸다.

▲ 2003년 대표팀에 발탁됐던 박미현은 이제 맏언니가 되어 후배들을 다독이고 있다. 인천 아시안게임은 그가 12년째 땀이 밴 스틱으로 첫 우승타를 날려야 하는 무대다.

세계적인 선수 박미현은 7년이 지난 지금도 대표팀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어느덧 맏언니가 되어 자신의 하키 인생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메이저 대회 인천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한줌의 후회도 남기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훈련에 땀을 쏟고 있다.

◆ 슈퍼스타, 대표팀 터줏대감 박미현

"하다보니 벌써 최고참이 됐네요. 이제는 친선경기마저도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박미현은 2003년 17세 나이로 대표팀에 발탁됐다. 대표팀 생활만 12년째다. 그는 세계올스타에 선정되기 1년 전에도 FIH가 선정한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을만큼 세계가 주목하는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160cm, 60kg으로 크지는 않지만 빠른 발로 상대 수비진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악착같이 공을 따라다니는 근성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탁월한 위치 선정과 동물적인 감각으로 골을 뽑아낸다. 200여 차례의 국가대항전에 출전했을만큼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박미현은 2006, 2007년 연속 IHR 영플레이어상을 받았고 2008년과 2010년에는 아시아하키연맹(AHF)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다른 인기 종목이었다면 박미현은 스포츠지 1면을 수차례 장식했을 ‘슈퍼스타’다.

▲ 박미현은 세계올스타에도 선정됐을만큼 월드클래스의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

2012년 1월 아르헨티나에서 펼쳐진 4개국 친선대회에서는 득점왕(5골)과 MVP를 석권했다. 당시 세계랭킹 8위였던 한국은 박미현의 원맨쇼에 힘입어 2위 아르헨티나, 4위 영국, 6위 뉴질랜드를 물리치고 우승컵을 안았다.

◆ 시상대 꼭대기, 아시아 정상은 나의 꿈 

“리우 올림픽까지도 생각해보긴 했죠. 일단 아시안게임은 선수 인생의 마지막일테니 꼭 한번 우승해보고 싶습니다. 한국 특유의 빠른 역습을 잘 살려야겠죠.”

박미현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까지 세 차례 올림픽에 나섰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2010년 광저우를 거쳐 오는 9월 열리는 아시안게임까지 나선다. 한국 여자하키의 역사에 늘 그가 있었다.

그러나 메이저 대회에서는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보지 못했다. 올림픽에서는 2004년 7위, 2008년 9위, 2012년 8위에 그쳤고 아시안게임에서도 중국의 벽에 막히며 2006년 4위, 2010년 은메달을 딴 것이 전부다. 월드컵에서도 최고 성적은 7위에 불과하다.

그는 “어렸을 때는 골 욕심을 많이 내기도 했지만 고참이 되보니 팀이 승리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각오”라며 “골보다는 도움이 좋다. 이제는 공간이 생기지 않게 자주 수비까지 내려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중국·일본과 금메달을 두고 치열한 혈투를 벌인다. 그는 “실력은 종이 한 장차다. 어느 팀이 남은 기간 더욱 철저히 준비하느냐에 달렸다”며 “우리 분위기는 최고다. 힘든 훈련을 이겨내자는 긍정적인 생각들이 대표팀 전체에 퍼져 있다”고 강조했다.

▲ 대표팀의 야간 훈련. 박미현은 앞장서서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

한국 여자하키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이후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30대를 바라보는 ‘에이스’ 박미현의 기량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한국 여자하키는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는 게 지상과제이고 그 선봉에 박미현이 있다.

◆ 무관심에 무뎌진 박미현 

면동초등학교 6학년 때 언니 박나현(은퇴)을 따라 하키를 시작해 하키 명문 송곡여중고를 거치며 ‘괴물’ 소리를 들었고 세계올스타에도 올랐다. 그러나 언론은 올림픽 때만 반짝 그에게 눈을 돌렸을 뿐이다.

“이제는 하키 소식이 다뤄지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아요. 국민들이 모르시는구나 생각하고 말죠. 제일 아쉬운 건 죽도록 열심히 노력했는데 성적으로 보답받지 못했을 때입니다.”

박미현이 하키 선수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는 가끔 인터넷 기사에 단신으로 소식이 다뤄지더라도 “우리 나왔네 정도”라며 미디어의 무관심에 무뎌졌음을 고백했다.

그래도 하키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공격과 수비가 오가는 것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되는 경기”라며 “유럽처럼 플로어볼(실내 하키)로 저변을 확대시킨다면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하키가 인기스포츠가 될 날이 올 것”이라고 활짝 웃어보였다. 

[취재 후기] 비활성화 종목이라 많이 다뤄지지 않았을 뿐, 우리나라에는 박태환·김연아·장미란 등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다. 박미현도 그중 하나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목표, 운동선수로서의 자세 등을 듣고 있으니 간절함이 느껴졌다. 박미현이 이끄는 여자하키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한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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