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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락(樂) 개론] 달달함 혹은 오싹함, 배구기자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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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락(樂) 개론] 달달함 혹은 오싹함, 배구기자로 산다는 것은?
  • 최문열
  • 승인 2016.07.0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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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최문열 대표] “대감님들, 식사는 하셨습니까?”

“우리 대감님들, 멋진 글 부탁드립니다.”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프로배구 V리그가 출범하기 훨씬 전인 과거 슈퍼리그 시절에 몇몇 배구인은 기자들을 ‘대감’이라고 불렀다. 배구 판에 처음 나오게 된 기자의 경우 그 융숭한 존칭에 조금 어리둥절해하기도 했지만 이내 익숙해지곤 했다.

폴란드 문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미콜라이 레이는 "말은 마음의 초상"이라고 했다. 몇몇 배구인이 기자를 대감으로 부르는 높임에는 그들의 속마음이 담겨있기라도 한 것일까?

▲ 지난 봄 V리그 배구 시상식에서 화려하게 변신한 여자선수들. 배구 선수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예의 바르기로 정평이 나 있다. [사진 = 스포츠Q DB]

◇ 친해지기는 어려워도 한번 친해지면?

기자를 대하는 배구인의 자세는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깍듯하고 정중하다. 배구를 담당하는 기자도 배구를 사랑하고 배구 발전에 이바지하는 만큼 배구인으로 대접한다. 이 같은 분위기를 아는 다른 종목의 스포츠기자들은 배구 담당기자를 부러워하곤 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깍듯한 것과 친밀한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배구인과 친해지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기자는 정말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감이 쌓여 내 편으로 인정될 경우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럴 경우 한 팀처럼 단단한 결속력을 갖고 마음씀씀이나 태도가 후해지고 속에 있는 말을 끄집어낸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속마음을 터놓을 만큼 친해지기는 어려워도 한번 친해지면 그 정과 의리는 쉽게 변치 않는다. 깍듯하면서 낯 가리 되 속정이 무척 깊다고나 할까.

오래전 여자배구단을 맡았던 한 감독은 총각 기자가 성실하고 똘똘한 데 사귀는 여자가 없다 싶으면 신붓감으로 여자배구선수가 최고라며 짝 지어주려고 팔을 걷어붙였다.

장신의 여자배구선수와 결혼했다가 술 먹고 늦게 들어가 부부 싸움을 하게 될 경우 강 스파이크를 날리던 큰 손으로 남편 얼굴을 후려갈기면 골로 가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스갯소리에 여자배구선수의 장점을 구구절절 설명하던 그 감독의 말이 아직 귓가에 쟁쟁하다.

감독 왈, 여자배구선수들은 희생적이고 헌신적이어서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키 크고 날씬해 티 하나만 걸쳐도 모델처럼 멋져, 몸 튼튼해 걱정 없어. 거기다가 희생적이고 책임감도 강하고 마음씨도 착해, 또 머리도 좋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사실 배구기자를 오래 하다 보면 그 감독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알 수 있듯 배구 선수이니 큰 신장에 건강한 몸은 당연하다. 마음씨 착한 것도 운동선수면 거의 공통적이다. 배구선수가 희생적이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은 배구종목의 특성과 상통한다.

배구에서 플레이가 이뤄지려면 누군가의 강한 책임과 희생이 필요하다. 서브리시브나 리시브를 몸을 숙이거나 날려 세터가 토스하기 가장 좋은 코스로 패스해 줘야 하고 그 공을 받은 세터는 공격수가 스파이크 날리기 좋은, 최적의 위치로 볼을 띄워줘야 한다. 자신에게 온 공이 설령 나쁘더라도 동료에게만은 좋은 볼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리시브-토스-스파이크 3박자 중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무너질 수 있다. 그렇다보니 그 책임감은 막중하다. 배구경기 자체가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희생과 협력의 스포츠이므로 배구선수의 인성과 품성도 남다르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상대 블로커를 속이려고 속공과 시간차, 이동공격 등 온갖 세트 플레이를 펼쳐야하므로 빠른 두뇌와 센스는 기본 사양이라는 것.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감독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총각 배구기자가 여자선수를 아무리 좋아하면 뭣 하는가? 여자선수들이 허약한 ‘책상물림’을 마다하면 끝인 것을-.

◇ 빨래 달라는 여자선수, 컵라면 챙겨주는 여자선수

배구기자를 부러워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다른 종목에 비해 월드리그와 그랑프리, 월드컵 등 국제대회가 잦아 해외 출장의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국제배구연맹(FIVB)은 개최국이 참가국 기자 한명 또는 두 명을 선수단과 함께 동행 취재하도록 각종 편의를 제공토록 했는데 국제대회가 많은 해에는 배구기자단에 속한 기자는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해외출장의 기회가 주어졌다.

선수단 일원으로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숙식뿐만 아니라 경기장 이동 등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코칭스태프와 선수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몇 차례 선수단과 함께 해외 취재를 경험한 기자들은 처음 다녀온 기자가 “배구 선수들은 정말 인사성이 밝다” “배구 선수들은 정말 반듯하다”고 칭찬하면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다. 그것은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현역시절 한 기자는 여자대표팀과 함께 국제대회 출장 갔다가 숙소에서 저녁 먹고 쉬고 있는데 막내 뻘 되는 선수들이 방문을 두들기고 “빨래할 것 있으면 주세요.”라고 했다는 일화를 털어놓아 흥미를 돋웠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일이어서 단박에 손사래를 쳤으나 빨래를 달라는 말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랐다며 당시 난감함을 표정에 그대로 담아 재미를 더했다.

사실 필자 또한 지금으로부터 십 수 년 전 여자대표팀을 따라 해외 출장을 갔다가 야식으로 컵라면을 얻어먹은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대회 막바지에 여자선수 두엇이 숙소에서 출출하지 않느냐며 컵라면을 챙겨줬다. “김치 없을 때에는 컵라면에 깻잎이 최고예요.”라며 곁들여 먹으라고 통조림 깻잎도 함께였다. 그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별미로 남아 있다. 그 뒤 컵라면과 깻잎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국제 종합 대회에 특별취재단을 구성해 해외 출장을 갈 때 마다 챙기는 품목이 됐다.

▲ 사진은 V리그 지난시즌 챔피언인 현대 여자배구단의 모습. 배구는 자신에게 나쁜 공이 오더라도 동료에게는 좋은 공을 만들어줘야 하는 희생과 책임의 스포츠다. [사진 = 스포츠Q DB]

◇ 한번 배구기자는 영원한 배구기자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그대로 배구기자에게도 적용된다.

다만 여기서 배구기자는 잠깐 맡았다가 금세 사라지는 그런 기자가 아니라 오랜 세월 현장을 누비며 배구인과 정을 쌓고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배구기자를 뜻한다.

사실 배구기자가 좋다고 해도 계속 할 수는 없다.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의 사정에 따라 수시로 종목이 바뀌기도 하고 아예 부서 이동도 있기 마련이다. 또 기자가 나이가 들어 진급을 하게 되면 데스크(부서 관리자)를 보게 돼 현장을 아예 떠나기도 한다.

배구기자로 취재 현장 곳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경기인과 미운 정과 고운 정을 켜켜이 쌓아왔다면 설령 사정이 있어 떠났더라도 쉽게 잊지 않는 곳이 배구계라는 곳이다.

배구 종목을 처음 맡아 배구인과 인사를 나누면 “OOO 기자는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며 소속 언론사의 전임 기자 안부를 묻는 이들이 더러 있다. 또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전임 기자의 근황을 묻고 또 묻는다.

기자로 일하다보면 취재원이 전임 기자 또는 자신보다 훨씬 직급이 높은 선배 기자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 가운데에는 “내가 당신 선배들과 다 알고 지내는 친한 관계이니 알아서 잘 대우하라”는 자기 과시의 성격이 짙기도 하다.

하지만 전임 기자에 대한 배구인의 안부 인사는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한때 배구를 담당했던 그 기자가 정말 궁금하고 그리운 것으로 보인다. 때만 되면 다시 묻는 것도 그랬다.

이런 이유로 전임 기자가 어떻게 활약했느냐 여부에 따라 후임 기자의 대우도 달라진다. 전임 기자들이 기자로서 책임을 다하고 출중했다면 후임 기자는 그만큼 이롭다는 얘기다.

배구인은 그 기자가 담당할 당시 어떤 시각으로 얼마나 열성적으로 취재하고 다녔는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한번 배구기자는 영원한 배구기자다.

그 얼마나 달달하면서 동시에 ‘오싹한’ 일인가?

 

‘배구락(樂) 개론’ 다음 편에서는 ‘D퀵은 뭐고, E퀵은 뭐야? 나라마다 제각각인 배구의 공격 용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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