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1-12 13:13 (화)
[열정 2016] (23) 8년만의 패럴림픽 ‘금빛 총성’ 조준 이윤리, 가족의 힘으로!
상태바
[열정 2016] (23) 8년만의 패럴림픽 ‘금빛 총성’ 조준 이윤리, 가족의 힘으로!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8.05 10: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사격 간판 이윤리, 3회 연속 패럴림픽 출전…효심에서 시작한 스포츠, 8년만에 메달 회복 도전

[200자 Tip!] 한국 남자축구가 피지를 상대로 기분좋은 첫 승리를 거둔 것을 신호탄으로 남미 최초의 올림픽이 열전에 들어갔다. 오는 22일까지 지구 반대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하계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인 다음달 7일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장애인 스포츠의 대제전인 하계패럴림픽이 열린다. 올림픽 개막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이제 패럴림픽에 출정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들의 마음도 더욱 바빠졌다. 8년 전 베이징 패럴림픽 사격에서 금빛 총성을 울렸던 이윤리(42·전남일반)도 런던 대회 2개 종목 '4위 연발탄'의 아쉬움을 씻고 메달 타깃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천=스포츠Q(큐)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전남 완도군청에서 일하던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이윤리의 인생은 1996년 7월 4일 퇴근길 교통사고로 바뀌었다. 흉추 4, 5번이 완전 마비되면서 하반신 지체장애인이 된 것. 23세의 꿈많은 아가씨였던 이윤리는 지체 1급 장애인이 됐다.

▲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스포츠에 입문한 이윤리는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사격에서 금메달을 명중시키면서 그 뜻을 이뤘다. 리우 패럴림픽에서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위해 메달을 정조준한다.

'금이야 옥이야'하며 이윤리를 키웠던 부모가 실의와 절망에 빠져들 수도 있었지만 이윤리는 야무지고 당찼다. 어떻게 해야 부모를 기쁘게 해드릴까를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던 이윤리는 스포츠를 통해 즐거움을 선사해드리기로 마음을 잡고 본격적인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이윤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격선수가 됐다. 벌써 패럴림픽 3번째 출전이다. 부모를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평범한 생각에서 선수의 길에 나섰던 이윤리는 이제는 착하기만 한 열살 아들 준서를 비롯해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자 엄마, 아내이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 탁구로 시작한 스포츠, 우연찮게 찾아온 사격

"대한민국을 빛내는 일을 해내면 제가 장애인이 돼 실의에 빠진 부모님을 웃게 해드릴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스포츠를 선택했고 탁구로 시작했어요."

이윤리는 라켓을 잡으면서 전국체육대회에서 2위에 입상하는 등 재능을 보였지만 세계무대에서는 달랐다. 코리아오픈에서 세계 1위 선수와 맞붙었지만 3-0으로 완패했다. 당시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했고 고심 끝에 탁구를 그만두는 결정을 내렸다.

"제가 다른 것은 괜찮은데 스피드가 남들보다 떨어지더라구요. 탁구처럼 빠른 몸놀림이 필요한 종목은 안되겠다 싶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순발력은 선천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거든요. 그러던 중 2006년 대전보은병원에서 탁구를 하다가 말도 느리고 성격도 차분하니 사격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어요. 테스트를 통해 사격으로 종목을 바꾸게 됐죠."

당시 이윤리를 사대로 이끈 은인은 1988년 서울 패럴림픽 혼성 공기소총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유병준 전 대한장애인사격연맹 이사였다. 이윤리는 권총과 소총에 걸쳐 테스트를 받았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유병준 전 이사는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 코치로 활약하며 이윤리의 금메달을 이끄는 등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 이윤리는 처음 탁구로 시작했지만 지금의 남편과 유병준 전 대한장애인사격연맹 이사의 권유를 받고 사격으로 전향했다. 침착한 성격과 열정이 어우러져 이윤리는 입문 2년 만에 패럴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이윤리의 사격 전향은 불과 2년 만에 패럴림픽 금메달이라는 영광으로 열매 맺었다. 유병준 전 이사의 보는 눈과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이윤리의 효심이 열정으로 이어져 빚어낸 결실이었다. 여자 소총 3자세에서 정상에 오르며 장애 판정을 받은지 12년 만에 부모님에게 환한 웃음을 선사할 수 있었다.

"정말 준비를 잘했었어요. 훈련을 그대로 따라가면 금메달을 딸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죠. 실제로는 점수가 평소보다 1, 2점 정도 낮게 나왔지만 세계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어요."

이때부터 사격선수 이윤리라는 이름 석자가 각인됐다. '미녀 총잡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고 일약 스타가 됐다.

"미녀 총잡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정말 민망했어요(웃음). 저보다 더 예쁜 선수들도 많은데. 하지만 확실히 금메달을 따니까 대접이 달라지더라고요. 주위에서 사인해달라, 사진 같이 찍어달라는 등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때만큼 기분이 좋았던 때도 없었던 것 같아요."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때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이윤리는 런던 패럴림픽을 통해 2연패를 노렸지만 2개 종목에서 모두 4위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공기소총에서는 본선 6위로 오른 결선에서 나탈리 스미스(호주)에게 0.1점이 뒤져 동메달을 놓쳤고, 소총 3자세에서 역시 베로니카 바도비코바(슬로바키아)에게 1.0점이 뒤져 포디엄에 서지 못했다.

"베이징에서는 정말 완벽했죠. 베이징 때 제 자신에게 100점을 매긴다면 런던 때는 70점밖에 되지 않았어요. 사격 자세와 점수 관리를 잘하지 못했고 경기 운영도 잘 되지 않았던 대회였죠. 당시 왜 메달권에 들지 못했는지 이유를 알았으니 리우에서는 다시 100점 경기를 펼쳐야죠."

▲ 이윤리는 베이징 패럴림픽 금메달 이후 대한민국체육상 극복상을 받고 국립재활원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등 모든 장애인들의 아이돌과 같은 선수가 됐다. 그러나 이윤리가 이뤄낸 모든 것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효심이 씨앗이 됐다.

◆ 이윤리에게 사격은 '가족 사랑', 패럴림픽 메달은 그 결실

이윤리는 2008년 대한민국체육상 극복상을 수상했다. 또 2년 동안 등록금 전액 면제 혜택을 약속받고 광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부 3학년으로 편입해 운동과 학업을 병행했다. 또 2009년에는 가수 강원래와 함께 국립재활원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등 모든 장애인들의 '아이돌'과 같은 선수가 됐다. 모두가 부모님을 웃게 해드리고 싶다는 순수하면서도 단순한 목표에서 시작된 것이다.

"20년 전 사고를 당했을 때는 부모님이 많이 슬퍼하시지만 지금은 자랑스러워 하시죠. 세 번째 패럴림픽에 참가하는만큼 이번에는 최선을 다해서 색깔 상관하지 않고 메달을 따내고 싶어요."

이윤리가 성공적인 사격 인생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 외에도 동갑내기 남편 이춘희 씨와 아들 준서가 있기 때문이다. 특전사 저격수 출신인 이춘희 씨는 대전보훈병원에서 이윤리를 만나 사격으로 이끈 또 다른 주역이다. 지금도 이윤리의 개인 코치로 도움을 주고 있다.

"사격을 시작하면서 기본부터 섬세한 기술까지 이론적으로 잘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남편이에요. 내 성격을 잘 아니까 기분 상하지 않게 잘 가르쳐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죠. 남편 덕분에 사격 선수로서 오랫동안 활약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아직도 잘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전화로 친절하게 조언해줘요."

또 아들 준서도 이윤리의 힘이다. 국가대표로 오랫동안 생활하느라 아들을 볼 시간이 많지 않다. 씩씩하고 착하게 자라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리우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이윤리가 이천장애인훈련원에서 사격 훈련을 마치고 물을 마시고 있다. 이윤리는 2024년 패럴림픽까지 다섯 차례 대회에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윤리의 욕심은 한국 사격에 길이 남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사격을 벌써 10년 가까이 했지만 아직까지도 총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 부족한 것 같아요. 사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일관된 자세인데 여기서 안정감이 부족하죠. 계속 반복 훈련하고 있어요. 이것만 잘 된다면 충분히 메달권에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느덧 40대 초반의 나이지만 이윤리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뿐이다. 욕심도 많다. 이번 대회를 제외하고도 앞으로 두 번 더 패럴림픽을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나이가 마흔을 넘어가면서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있지만(웃음). 제 목표는 패럴림픽에 5번 나가는 거예요. 리우 패럴림픽은 과정일 뿐이죠. 물론 딱 5번 나가는 것이 아니라 2024년 이후에도 나갈 수 있다면 더 좋죠. 그리고 2년 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내서 한국 사격에 길이 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부모님에 대한 효심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가족 사랑을 위해 총을 잡는 이윤리에게 어쩌면 패럴림픽 메달은 '사랑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한달 여 앞으로 다가온 패럴림픽에서 그 사랑의 결실을 이루기 위해 이윤리의 과녁을 바라보는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난다.

▲ 한국 장애인사격의 에이스가 된 이윤리는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서 강력한 메달 후보다. 그런만큼 이윤리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런던 대회에서 4위에 그쳤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메달을 가족들에게 바치겠다는 각오로 가득하다.

■ 이윤리 프로필
△ 생년월일 = 1974년 10월 24일
△ 체격 = 160cm, 55kg
△ 출신학교 = 광주대 레저스포츠학과
△ 주요 경력
-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여자 사격 국가대표
- 2009년 국립재활원 홍보대사
-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국가대표
- 2012년 런던 패럴림픽 국가대표
-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국가대표
-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국가대표
△ 수상 경력
- 2007년 독일 오픈 세계선수권 R2 여자 공기소총 2위
- 2008년 서울컵 R8 50m 소총 3자세 1위
-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50m 소총 3자세 금메달
- 2008년 대한민국체육상 극복상
- 2009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R2, R8 금메달
- 2009년 경호처장기 R2, R3 금메달
- 2009년 경찰청장기 전국사격대회 R8 금메달
- 2010년 IPC 세계장애인사격선수권 R2 공기소총 개인전, 단체전 금메달
- 2010년 체육훈장 맹호장
-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R8 50m 소총 3자세 금메달
- 2012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50m 소총 3자세 개인전 R8, 공기소총 입사 개인전 R2, 혼성 50m 소총 복사 개인전 R6 금메달
- 2014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R2 공기소총 입사, R8 50m 소총 3자세 금메달
-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R3 공기소총 복사 금메달

[취재후기] 이윤리에게 패럴림픽 메달은 그 어떤 것보다 가치가 있다. 혹자는 '메달지상주의'라고 하겠지만 스포츠를 시작한 동기도 우리나라를 빛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순수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메달을 따내 태극기가 리우 하늘에서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윤리에게 가족은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고 희망이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