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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영화관]① '한국영화계 작은 거인' 김태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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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영화관]① '한국영화계 작은 거인' 김태용 감독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1.15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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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불과 28세. 작은 키에 동안이라 ‘학생’ 느낌이다. 젊은 독립영화 감독 김태용을 국내외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다.

2010년 ‘국내 최연소 칸영화제 진출 감독’ 타이틀을 달고 단편 ‘얼어붙은 땅’으로 칸 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에 초청받았다. 어린 밀입국 브로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에 대해 해외 평단은 “욕망과 윤리의 경계에 선 소년의 갈등이 날 것 그대로 살아난 작품”이라는 찬사를 안겨줬다.

 

◆ 단편 ‘얼어붙은 땅’ 칸영화제 진출…장편 데뷔작 ‘거인’ 개봉

같은 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대상 수상에 이어 이듬해 ‘복무태만’으로 제10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2012년 ‘밤벌레’ ‘도시의 밤’ 역시 관심의 과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장편 데뷔작 ‘거인’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돼 강력한 화제를 뿌리며 시민평론가상과 올해의 배우상(최우식)을 수상했다.

영민한 이야기꾼이자 청춘의 예리한 통찰력을 스크린에 투영시키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 온 김 감독은 신작 ‘거인’(11월13일 개봉)에서 자신의 상처 가득했던 청소년기를 커밍아웃한다. 대단한 용기이자 뚝심이다. 한 시대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는 절박한 몸부림일 수도 있겠다.

무책임한 부모의 품을 벗어나 보호시설인 그룹홈에서 자란 열일곱 고교생 영재는 시설을 나갈 나이가 되자 초조한 나날을 보낸다. 신부가 되기를 꿈꾸는 모범생처럼 굴지만 남몰래 후원물품을 훔쳐 팔고, 거짓말로 친구를 배신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찾아와 남동생마저 자신에게 떠맡기려 하자 절망과 분노에 폭발하고 만다.

주인공 영재처럼 김 감독은 13세부터 부산의 한 그룹홈에서 성장했다. 안정적 수입이 보장되는 신부를 꿈꾸다가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부산의 부모와는 1년에 한 차례 생사를 확인하는 정도로 지낸다.

 

◆ 가족 떠나 그룹홈에서 지낸 어두운 청소년 시절 투영

“자전적 이야기에 관객은 쇼크를 받더라고요. 보편적 가족관계, 우리가 생각하는 영화적 그림을 배신하니 ‘나만 모르는 거냐’ ‘우리 사회의 현실이냐’라고 묻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상처가 있던 관객들은 호응을 해주세요. 감동과 신파로 포장하지 않고 날카롭게 드러내니까 호응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놀랐던 건 10대들이 같이 울어준 점이에요. 영화가 거칠고 어려워서 쉽게 볼 수 있을까 우려했는데...정말 어려운 애들이 많나 봐요.”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할 때 자신의 과거를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 영화와 나는 별개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히려 인생의 숙제 같은 느낌이라 수월하게 풀렸다. 하지만 부산영화제 전후로 영화가 공개되면서 사적인 고백담이 화제의 중심에 오르자 많은 용기가 필요해졌다. 어느 순간부턴 혼자서만 이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들며 굉장히 외로워졌다.

영화 속 어른과 소년의 경계에 선 영재는 입지만큼이나 이중적이다. 착한가 하면 교활하고, 배짱 두둑한가 하면 늘 눈치를 보며 불안에 허덕인다. 관객 입장에선 마냥 미워할 수도, 동정할 수도 없다.

“영재의 감정 흐름에 의해 시나리오가 쓰여졌어요. 이제까지의 10대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이 환경에 순응하거나 수동적인데 그건 10대의 모습이 아니라 10대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자격지심이겠죠. 그들이 가진 다양한 감정의 기복에 신경을 많이 썼고, 그건 영재가 사건에 대응하는 리액션으로 나타나죠. 순응 대신 맞서 싸우고 자기 의지로 바꾸려하지만 힘없는 10대라 금방 들통 날 일들이잖아요. 자기한텐 정말 진지한 어마무시한 일들일 테고.”

 

◆ 캐나다 교포 출신 배우 최우식, 영재 캐릭터 진심 다한 연기로 소화

그의 말대로 ‘거인’이 '영화적'으로 소재를 다루진 않았지만 10대의 솔직한 감정을 다룬 게 ‘영화적' 미덕이 되지 않을까. 특히 영재가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담담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배우 최우식의 개성이 캐릭터에 잘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에튀드 솔로’에 나왔는데 말갛고 순하게 생겼는데 눈이 거칠었어요. 부잣집 애 같았는데 눈에서 10대들 특유의 뾰루퉁함이 인상적이었죠. 시나리오 쓰면서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영재를 맡을 배우의 역량이 100% 발휘될 영화였고요. 처음엔 성장환경이 너무 달라 공감이 안 된다며 많이 거절했어요. 감독 앞에서 감독의 인생을 연기하는 것도 부담이었겠죠.(웃음)”

드라마와 영화에서 까불까불한 역할을 주로 하던 최우식 역시 배우로서 정체성을 찾는데 목말랐던 시기라 결국은 합류하게 됐다. 20대 젊은 배우들은 할 수 있는 역할이 적어서 연기들이 급한데 최우식은 연기를 배우지 않아서인지 여유로웠다. 짜 맞추는 연기를 하지 않아서 신선했다. 무엇보다 1개월 동안 영재라는 인물로 살면서 감정을 만들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느끼면서 진심으로 연기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그로 인해 ‘김태용의 영재’가 아닌 ‘최우식의 영재’가 탄생했다.

▲ '거인'의 주인공 영재를 연기한 배우 최우식의 다양한 얼굴

“그룹홈에서 눈치 보며 밥 먹는 장면은 스스로 연출했고 칼부림 장면이나 우는 장면을 보면 놀라울 정도예요. 캐나다 교포 출신인 그가 여전히 서울을 낯설어 하며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점이 영재의 정서와 맞닿았나 봐요.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수치심, 죄책감을 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우식이가 많이 성장한 듯해요. 상처받거나 어두워지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잘 극복한 것 같고요.”

◆ “폭력보다 무능력, 무책임이 더 무섭고 사람들의 영혼 파괴”

영화 속 영재의 아버지는 무능력, 무책임하나 자식에게 무시로 폭력을 행사하는 무서운 아버지로 그려지진 않는다. 그런 면에선 결함은 있으나 포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느냐고 묻자 0.1초 만에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가부장적이거나 폭력적인 것보다 무능력과 나약함이 얼마나 무섭고 아래 사람들의 영혼을 파괴하는지는 우리의 현실이 극명하게 보여 주잖아요”라고 강조했다.

그룹홈에서 지낼 당시 자신을 소모할 수 있는 데가 없었다. 덩치가 있고 키도 컸다면 소위 논다는 애들이랑 어울렸을 텐데 그러질 않아 열심히 살려고 아등바등했다. 나를 책임져줄 수 있는 공간과 신이 필요했기에 어서 빨리 신학대에 입학해 신부가 돼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부산영화제에 갔다가 다르덴 형제 감독의 ‘아들’ 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이거였음을 전율과 함께 깨달았다. 동시대의 사회상을 기록하고, 인간을 극단으로 파헤쳐가는 가운데 공감을 일으키는 보편적 정서가 놀라웠다. 배우들이 그 인물로 살아가는 모습도 반짝반짝 빛났다. 감독이 만들어놓은 환상의 세계를 배우들이 살아가는 게 매력적이었다.

▲ '거인' 관객과의 대화에서 인사말을 하는 김태용 감독

◆ “사랑과 욕망 가득한 여교사와 제자 이야기 구상 중”

“최근 영화 ‘나를 찾아줘’를 매우 인상적으로 봤는데 배우들이 감독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모두 장악하고, 감독을 100% 믿고 연기하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도 그랬죠. 배우 위주의 영화들을 좋아하고 많이 만들려고 해요. 떨어지는 역할이 상대적으로 적은 20대 배우들이 가진 감정의 극한은 어디인가에 관심이 많아요.”

당분간은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병행할 계획이다. ‘거인’을 통해 확인된 상업영화의 가능성을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와 어떻게 접목할 지를 두고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캐릭터가 더 잘 보이고, 감정이 더 깊은 상업영화를 하고 싶어요. 20대 때 영화의 주제의식은 유럽의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듯 다르덴 형제나 켄 로치로 대표되는 유럽 리얼리즘 영화를 우리의 정서로 어떻게 변주해서 보여줄 것인가였어요. 이제 30대를 앞두고 있으니 대한민국 30대가 가진 고민들을 풀어내야죠. 특히 서구 치정 멜로영화를 보면 윤리와 도덕을 넘어서는 과감함이 있는데 우리는 유교의 잔재와 보수적 사고로 인해 한계가 있죠. 그걸 자유롭게 넘어서는 관계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차기작은 여교사와 제자의 이야기다. ‘거인’의 생존의 감정이 지배했다면 이 작품은 사랑과 욕망이 넘실댄다. 20대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감정이 필요하기에 좋은 재목을 찾기 위해 촉수를 슬슬 뻗치는 중이다.

[취재후기] ‘신이 내린 작물’ 감자를 특히 좋아한다는 이 B형 남자는 집에서 홀로 감자를 깎으며 김수현 작가의 홈드라마를 보는 게 재충전 비법이다. 요즘 ‘인생은 아름다워’를 몰아서 시청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들끼리 솔직하게 심중을 털어놓는 게 보기 좋단다. 가족에 대한 결핍을 노작가의 드라마를 보며 채우는 듯하다. 20대를 단단하게 보냈고, 옹골차게 30대를 맞이하려는 ‘작은 거인’ 김태용의 과감한 서정이 어떻게 스크린에 펼쳐질지 사뭇 궁금하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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