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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봄' 김서형에게서 장만옥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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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봄' 김서형에게서 장만옥이 보였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1.20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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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김서형(41)이 조근현 감독의 ‘봄’(11월20일 개봉)으로 지난 7월 마드리드 국제영화제 외국어영화 부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개봉을 앞둔 만추의 어느 날, 삼청동 카페에서 달라진 여배우와 마주 앉았다. 그는 현재 배우 인생의 봄을 맞았을까. 궁금증이 너울졌다.

 

 

#나 인생과 예술, 사랑을 통찰한 영화 ‘봄’은 희망이 보이지 않던 1969년 여름의 이야기다. 유명 조각가 준구(박용우)는 수족이 마비되는 병에 걸린 뒤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채 지낸다. 안타까워하던 아내 정숙(김서형)은 남편을 위해 이상적인 신체비율을 지닌 민경(이유영)을 모델로 데려온다. 준구는 다시금 예술혼을 불태우며 작업에 몰두한다.

영화의 처음과 끝은 김서형이 장식한다. 연두색 논밭이 양옆으로 펼쳐진 전남 보성의 뚝방길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말을 걸어온다. 현숙한 아내이자 자애로운 여자 정숙은 겉으론 부족함 없이 완벽한 여성상이다. 하지만 예술의 성채에 파묻혀 살아가는 남편으로 인해 점점 지쳐가고 고독의 늪에 빠져든다. 그에게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는 두려움과 절박함을 안겨준다. 남편과 내밀한 교감을 쌓아가는 젊고 매력적인 민경을 바라보는 시선도 복잡하기만 하다.

별반 대사도, 드라마틱한 액션도 없는 가운데 김서형은 이런 정숙의 천갈래 만갈래 심리를 나지막한 목소리와 눈빛, 뒷모습만으로도 눈부시게 표현해낸다. “김서형이 저런 배우였어?”란 탄식이 흘러나올 만큼.

# 그녀 시나리오를 보고 제작자인 신양중 대표님께 먼저 전화를 걸었다. “제가 할 수 있나요?” “관심 가질 수 있겠어?” “너무 아름답네요”.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히 보였고,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그동안 있었을까 싶었다. 이런 게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함께 하고팠다.

 

미술감독이었던 조근현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라든가, 저예산 예술영화라 배급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든가 하는 건 개의치 않았다. 내가 전작들로 인해 편견을 떠안고 살았던 배우인데 그런 편견을 갖는다는 건 모순이다. 해보지도 않고 고개를 돌리는 건 온당치 않다.

난 모험심과 도전정신이 충만한 사람이다. 확 오는 영화는 늘 뛰어들었다. 그동안 해왔던 배역들 모두 힘들었다. 고뇌해야만 연기로 잘 표현된다. 정숙도 그런 고민으로 시작했다. 솔직히 남편에게 아름다운 모델을 소개해주고, 의연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부분은 이해되지 않았다.

남편이 민경을 온전히 피사체로만 볼 수 있을까, 의구심이 일었다. 하지만 감독님은 예술가의 아내들 가운데는 정숙과 같은 여자들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당신의 어머니도 그랬다며. 감독님의 생각이 저리 확고하다면 내가 할 일은 어떻게 잘 따라가는가이다. 촬영장을 거닐며 여유를 찾았고, 그동안 켜켜이 쌓여져온 익숙함을 툭툭 털어냈다.

정숙은 남편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간직한 여자였다. 극중 준구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내 부모님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수발을 들던 엄마를 기억해내며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의 살리고자 하는 심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 나 미스 코리아 강원 출신으로 연기자로 데뷔했을 때 관록의 여배우 이혜영을 연상케 하는 마스크와 보이시한 분위기가 눈길을 붙들었다. 지적이면서 천박한 느낌도 풍겨나는 양면성이 특이했다.

전성기를 열어준 2008년 드라마 ‘아내의 유혹’으로 인해 최근까지도 김서형의 이미지 한복판엔 목이 쉬어라 소리 지르던 악녀 신애리가 어른거렸다. 그런데 ‘봄’ 속 그의 모습에선 ‘화양연화’에서 우수와 허무로 가득 찬 걸출한 홍콩 여배우 장만옥이 포개진다.

# 그녀 닮아가는 게 있나보다. 어렸을 때 난 이혜영이나 이미숙 선배님 같은 여배우가 되고 싶었다. 엄마와 이모 역을 맡아도 뭔가 다른 엄마, 이모가 나오지 않나. 매력적인 캐릭터의 여배우들이다. 장만옥은 정말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다. 그녀는 현장에서 감독이 시키는대로 연기가 줄줄 나온다고 하더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녀의 느낌이 났다면 영광이다. 나만의 힘은 아니었다. 유독 이 작품은 최고의 촬영, 조명, 의상, 미장센이 정숙의 그윽한 아름다움, 깊이 있는 표현을 살려줬다. 그래서 함께했던 그 시간이 기분 좋고 잊히질 않는다. 내면 연기는 신애리 때도, 황태후 때도 시도했던 거다. 캐릭터에 따라 절제하느냐 오버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배우는 누구나 대중에게 비슷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김서형을 보면서 대사 톤을 조금만 올리면 “신애리가 나오네”라고도 하시는데 다 다르게 탄생시켰다고 자부한다. 건방진 말씀이지만, 연기를 하면서도 내 자신이 궁금하고 신기하다. 너의 한계는 어느 선까지니? 하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배우는 주어진 걸 열심히 한다. 그래야 그 배우는 다음에도 잘 해낼 거라는 신뢰를 얻을 수 있지 않나. 신애리도 그랬다.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악역을 소름끼치게 잘해냈기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보다 “또 잘 해낼 거야”란 시선을 가져줬으면 한다.

# 나 ‘개과천선’의 검사, ‘자이언트’의 사교클럽 사장이자 사채업자, ‘샐러리맨 초한지’의 그룹 회장 비서실장, ‘기황후’의 권력자 황태후 등 드라마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쿨한 여성 혹은 카리스마 넘치는 여자 캐릭터를 줄곧 소화해 왔다. 예능프로에 출연했을 당시 드러났던 그의 성격은 막힘없이 시원시원, 화통하다. 자연스레 ‘센 여자’ 타이틀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 그녀 실제 난 가여운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 서울로 상경해 친척집에서 남의 집살이를 해봤어서 신애리를 연기할 때도 그가 가여웠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뭔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역만 해왔다. 그러다보니 숨 쉬고,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편견도 깨트리고파서 단편영화 ‘웨딩 세레모니’, 독립영화 ‘번개와 춤을’, 영화 ‘베를린’과 법정드라마 ‘개과천선’의 특별출연을 찾아다녔다. 정숙의 경우 그의 고독과 결핍에 끌렸다. 변신하려고 도전한 게 아니라 나의 가능성을 가늠해보고 싶어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연기의 답은 뭘까 하는. 그러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이 모든 게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 나 한 영화에서 2명의 여배우가 해외 영화제 수상(이유영은 밀라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이라는 보기 드문 일을 만들어냈다. 말간 얼굴의 신인 이유영은 전라노출을 불사하는 과감한 도전까지 감행했다. 여배우 김서형의 ‘봄’은 지금이 아닐까.

 

# 그녀 유영이가 밀라노에서 먼저 여우주연상을 수상해서 난 기대도 안했다. 마드리드영화제 소식을 듣고는 “장난하느냐”고 말했다. 조연상이거나 나중에 반납해야하는 줄 알았다. 후후. ‘아내의 유혹’으로 수상했을 때는 “이 상은 오로지 내 거야”란 욕심이 가득했다. 이젠 그런 생각이 파고들지 못하더라. 전체가 잘해서 받은 상이다. 국내에서 잘 돼야 해외 수상도 빛이 나는 거니까,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

배우 김서형에게 있어 ‘봄’은 작품을 하고 있을 때인 것 같다. 난 배우하려고 태어난 사람이다. 30대를 모험과 도전으로 잘 보내왔고, 이제 40대를 어떻게 걸어갈지가 궁금하다. 당장 다음엔 어떤 작품을 만날지가 너무 궁금하다.

[취재후기] 대중의 편견 어린 시선으로 상처를 많이 입었던 여배우는 주눅 들지 않은 채 몸을 던져가며 인생의 화양연화를 일궈냈다. 의외다 싶게 차분한 톤으로 말하지만 자신감 하나 만큼은 최고다. 나이 어린 후배의 노출과 관련, 질문을 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만 만약 현장에서 주저했다면 ‘벗는 게 어려워? 못 벗을 거면 왜 해? 머뭇거릴 거면 하지 마!’라고 일갈했을 거란다. 무.섭.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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