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6 (금)
[인터뷰] 예술과 삶의 2중주 '박용우의 봄'
상태바
[인터뷰] 예술과 삶의 2중주 '박용우의 봄'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1.24 1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예민했던 배우 박용우가 달라졌다.

해외영화제 수상 소식을 연일 전해온 ‘봄’(11월20일 개봉)에서 조각가에게는 치명적인 수족이 마비되는 병에 걸린 뒤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준구로 돌아온 그는 과거와 달리 자유로워졌고, 삶과 예술을 통찰하는 ‘봄’마냥 관조의 시선을 꽂을 줄 아는 남자로 변해 있었다.

 

◆ 희망을 잃어버린 조각가 준구...허탈의 늪에 빠진 배우 박용우

영화는 별반 희망이 보이지 않던 1969년을 배경으로 요양 차 고향으로 낙향한 40대 유명 조각가 준구, 그의 병수발을 드는 헌신적인 아내 정숙(김서형),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준구의 누드모델이 되는 민경(이유영)의 이야기를 고요하게 찍어간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보통 섹시한 여자에 반하는데 오히려 순수해서 끌리는 여자의 느낌이었다. 음식으로 치자면 심심한데도 맛있고 계속 손이 가게 되는.”

캐릭터로의 몰입은 자연스러웠다. 예술과 삶에 대한 준구와 박용우의 고민이 동일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허망함에 고민했던 시기라 감독 역시 “용우씨 그대로 연기하면 (감정적으로) 공감이 잘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설상가상 피부 컨디션까지 좋지 않았던 상태라 병에 걸려 까칠까칠해진 준구 표현은 더욱 자연스러웠다.

조근현 감독과는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 때 주연배우와 미술감독으로 인연을 맺었던 바 있어 믿음이 있었다.

“살을 많이 빼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한 것과 그림 연습도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다. 그래도 극중 데생 장면은 전문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했다. 감독도 놀라더라.(웃음) 고작 몇 개월 배운 뒤 자기 색깔을 내서 그리는 사람은 드물다며. 요즘은 그림보다 음악에 관심이 많아져서 예전부터 해왔던 드럼 연주에 몰입해 있다.”

 

◆ 20년 연기인생, 유약한 남자부터 광기 어린 캐릭터까지 극단 넘나들어

유약한 남편 동우(올가미), 강압적 포스의 김인권(혈의누), 소심한 모태솔로 대학강사 황대우(달콤 살벌한 그녀), 강형사와 김형사(뷰티풀 선데이, 조용한 세상), 다정다감한 호텔리어 민재(지금 사랑하는...), 조선 최초의 외과의사 황정(제중원), 소름 돋는 익명의 남자(핸드폰), 특종에 집착하는 다큐멘터리 PD(아이들), 까칠한 백마 탄 기사 이우재(내사랑 나비부인).

20년에 걸친 그의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두운 스릴러부터 밝은 로맨틱 코미디, 유약한 남자부터 광기어린 캐릭터까지 극단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던 배우였다. 적절한 시기에 유효타를 척척 쳐내는 연기자였다. 그런데 허탈함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고, 1년 전 촬영한 ‘봄’은 그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란다.

“난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보다 뒤지지 않게 해왔다고도 자평했다. 몇 년 전까진 이렇게 저렇게 돼야지 되뇌었고, 크게 되고 싶었다. 그런데 행동은 했으나 나태함, 게으름에 많이 졌다. 예전엔 일만 생각해서 다른 것들에 대해선 ‘바쁜데 언제 해’로 일관했다. 행동하는 게 중요한데. 삶과 연기, 일과 사생활은 모두 연결돼 있는 거였는데 그걸 분리해서 생각하다보니 조바심이 폭발했다. 이젠 조바심을 다른 걸로 채우는 방법을 알게 됐다.”

◆ “게으름, 조바심 거둬내고 실천의지 정립...건강한 작품활동 기대”

준구의 내면으로 들어가 남도의 초록색 들판이 펼쳐진 뚝방길을 호젓하게 거닐며, 예술의 완성도에 집착해 빚어낸 무결점 전신상을 일거에 부순 뒤 조각상에 희로애락이 깃든 인간의 얼굴을 아로새기면서 그 역시 변화했다.

 

“요즘은 준구의 심리를 더 이해하게 된다. 눈과 귀, 머리로만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 실천을 해야 함을 준구가 깨달으면서 삶 속에서 예술을 하게 되지 않나. 두렵고 불안했으나 결국은 이를 깨달으며 변화를 겪는다. 실천하는 순간, 많은 게 바뀜을 이 영화를 통해 확인했다.”

아내로 깊은 호흡을 일궈낸 김서형, 모델로 내밀한 교감을 이룬 이유영을 언급하며 “두 여배우를 선택한 감독의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며 극찬했다.

“강한 여자, 어둠보다 빛을 생각하는 인물인 정숙을 연기한 김서형은 이 영화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줬다. 판타지가 존재하는 건 이뤄지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그래서 판타지에 열광하는데 이를 잘 살려냈다. 서형씨는 납득이 되지 않으면 움직여지지 않는 자기 가치관이 뚜렷한 배우인데 딱 내려놓고 촬영에 임했다. 신인 이유영 역시 감독을 밑고 모든 걸 맡긴 채 연기했다. 두 사람을 보며 이 영화가 참 좋겠다 싶었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작품상, 촬영상, 여우주연상을 줄줄이 수상한 ‘봄’의 성과는 최고의 스태프가 모였기 때문이다. 미술을 전공한 감독은 단순히 아름다운 색감과 질감을 추구한 게 아니라 캐릭터의 심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뇌하는 감독임이 이 영화를 통해 증명될 것이라 단언했다. 7~9월의 힘겨울 법한 한여름 촬영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도 프로페셔널들이 의기투합했기 때문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 2부작 드라마 ‘이놈’에서 산재노무사 역 맡아 반전매력 발산

‘봄’ 이후 박용우는 다음달 SBS 2부작 드라마 ‘이놈’을 통해 시청자를 만난다. 산업재해 전문 생계형 노무사 이재구가 한 남자의 죽음에 얽힌 사건을 해결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한 노무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사법고시에 실패한 응어리를 마음에 품은 별거남 재구는 게으른 속물에서 열정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반전의 캐릭터다.

“고민의 과정을 거치며 유연해졌다. 두려움도 많이 없어졌다. 성숙한 연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난 아직 100분의1도 보여주지 않았고 배가 매우 고프다. 드라마, 장편·중편·단편영화 가리지 않고 좋은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 앞으로 굉장히 다양하고 건강하게 작품을 할 거다.”

[취재후기] 이 델리케이트한 감수성의 배우는 한때 ‘뇌가 없는 배우나 운동을 한다’고 여겼을 정도였다. 건강한 몸, 성숙한 연기, 눈빛, 이 모든 게 모여서 좋은 배우가 됨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하며 즐거워한다면 연기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어제보다 오늘의 연기가 더 나아지고, 어제보다 오늘 최선을 다 했으면 하는 게 배우 박용우의 바람이다.

 

goolis@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