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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순간을 잡는 배우, 하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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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순간을 잡는 배우, 하은설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4.12.08 11: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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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2014년 최고의 드라마", "따스한 시선으로 인간사를 그려낸 요즘 흔치 않은 수작". 지난달 종영한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여운을 주고 있다. '유나의 거리'는 다세대주택을 배경으로 소매치기 출신의 강유나(김옥빈 분)와 김창만(이희준 분),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모여 사는 모습을 담아냈다.

이중 배우 하은설(25·본명 하유미)은 소매치기 '윤지' 역으로 출연했다. 아직 대중에게 이름과 얼굴이 널리 알려진 상태는 아니지만, 알고보면 2002년 연기를 시작한 오랜 경력의 소유자다. 하은설과 '유나의 거리' 촬영담부터 지난 12년간의 짧지 않은 '연기 인생'을 짤막하게 돌아보기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스포츠Q 글 오소영·사진 최대성 기자] '유나의 거리'의 윤지는 '사랑스러운' 도둑이다. 유나와 반대파 소속의 소매치기로 등장했다가, 유나를 친언니처럼 믿고 따르게 된다. 이후로는 유나와 따르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이들에게 '맛깔나는' 욕설을 하며 위협하고, 동료 남수(강신효 분)와 풋풋한 애정 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살벌한 욕설과 액션에도, 윤지에겐 사랑스러움이 있다. '사랑스러운 연기의 비결'을 묻자 하은설은 소리내 웃었다.

"제가 체구가 작으니까 '조그만 게 무서워봤자겠지' 하고 귀엽게 봐 주신 것 같아요. 아기 호랑이가 으르렁대봤자 안 무서운 것처럼요. 거칠게 한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귀엽게 봐 주셨어요. 하하하."

 

◆ "'유나의 거리' 윤지는 내 성격과 많이 닮은 캐릭터"

'유나의 거리'는 두 세명의 주인공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대부분의 드라마들과 달리, 여러 주조연의 이야기를 폭넓게 다뤘다는 점에서 모두가 주인공인 드라마였다. 쉬는 날에는 선배 출연진을 따라 연극을 보는 등 우정을 다지기도 해 종영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촬영 끝나는 날 서로 부둥켜안고 울 정도"였다고 하니 서로에 대한 애정이 짐작이 간다.

"김옥빈(강유나 역) 언니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평소 툭툭 던지듯 해 주시는 말씀들에서 힘을 얻었죠. 지금 제가 소속사 없이 활동하고 있는데, 서유정(미선 역) 언니는 같은 경험을 하셨다면서 힘든 것에 공감해 주셨고요. 다들 가족같은 분위기여서 정이 많이 들었어요."

하은설에게 '유나의 거리'는 여러 이유에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맡은 역인 윤지의 솔직함과 엉뚱함이 실제 하은설의 성격과 비슷하기도 하고, 고소공포증이 있음에도 와이어 액션을 감행하는 등 새로운 노력도 있었기 때문이다.

"제 성격과 정말 잘 맞는 역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연기하며 즐거웠어요. 와이어 액션은 참 무서웠어요. 하지만 늦게 합류해 무서운 티도 못 내고 참았죠.(웃음)"

"극 초반의 윤지에게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요. 소매치기 역이니 '윤지는 형편이 좋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고, 어두운 구석이 많은 캐릭터일 것'이라고 생각해 했던 실수였죠. 그런데 감독님께서 '이들에겐 이미 소매치기가 일상이기 때문에 좀더 가벼운 느낌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이후로는 힘을 쫙 뺐어요."

때문에 윤지는 통통 튀는 캐릭터로 극을 더욱 경쾌하게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 낼 수 있었다.

▲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에서 윤지 역을 맡은 하은설.[사진=하은설 트위터]

◆ 순간을 잡는 배우…'닥터', '유나의 거리'에서 보여준 존재감

하은설은 순간을 기회로 만드는 배우다. 대본 몇 줄이 그녀를 거치면 오롯한 존재감을 가진다. '유나의 거리'에서 본래 극중 윤지의 분량은 3~4회분 정도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제작진의 결정으로 윤지는 중반 투입된 후 50회까지 쭉 등장했고 김남수(강신효 분)와의 풋풋한 애정 신까지 첨가됐다.

"'유나의 거리'같은 훌륭한 드라마에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제가 언제 이런 작품을 만나 보겠어요. 그런데 분량까지 늘려 주셨으니 작가님께 감사함이 커요. 직접적으로 만나뵌 적은 없지만 대본에 '요즘 연기에 물이 오른 윤지'라는 식으로 이름을 넣어주셨어요. 그러면 다른 분들이 '너 작가님 딸이지?' 하시고.(웃음)"

하은설의 존재감은 2013년 개봉한 영화 '닥터'에서도 발휘됐다. '닥터'에는 가슴성형 상담을 받으러 온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는 전신 성형을 공짜로 해주겠다는 의사(김창완 분)의 말에 예정에 없던 수술을 감행했다가 죽음을 맞는다.

하은설이 받은 대본에는 그녀가 맡은 인물의 나이도, 자세한 사항도 없이 그저 '성형수술을 받으러 온 여자'라는 설명뿐이었다. 그러나 하은설은 자칫 밋밋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인물을 특이한 목소리 톤과 표정 연기로 살려냈다. '닥터'에 하은설이 나온 장면은 몇 분 되지 않았으나 짧은 순간에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됐다.

"여자는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성형을 결정했지만 결국 죽게 되죠. 제가 연기하는 그 장면이 '닥터'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짧은 장면도 날카로운 존재감으로 살려내는 배우. 여기에는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있었다.

 
 

◆ 알고보면 데뷔 13년차, 원조 '국민 첫사랑'?

하은설과 연기와의 연은 아주 어릴 때 시작됐다. 일곱살 쯤 됐을 무렵,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아역배우 촬영장에 가게 됐다. 그러나 어린 그녀에게 촬영장은 낯설었고, 온통 검은색 옷을 입고 일하는 스태프들은 '무서운 사람들'로 보였다. 결국 촬영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하은설은 '드라마 놀이'를 시작했다. 텔레비전 속 드라마 장면을 따라하며 놀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이 흙으로 밥을 짓고 나뭇잎을 따다 소꿉놀이를 하듯, 어린 하은설은 이불과 베개를 쌓아올려 드라마 '장희빈' 속 왕비의 중궁전을 흉내냈다.

"드라마를 보면서 대사를 일일이 적어서 대본을 만들고, 그걸 외워서 따라하면서 놀았어요. 그때 저에게 그건 '놀이'였어요."

이후 연기자의 꿈을 가졌고, 2002년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의 재연 배우로 고정 출연을 하며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뭇 연예인들의 추억 속 첫사랑을 연기한, 알고 보면 '국민 첫사랑'이었던 셈이다. 이어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올드미스 다이어리', '귀엽거나 미치거나', '왕과 나', '대왕세종', '결혼 못하는 남자', '닥터 챔프'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탄탄대로로 가는 아역배우들이 있는 반면,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다. 하은설의 경우는 한 드라마의 주연으로 캐스팅됐지만, 이유도 모른 채 촬영 전날 취소 통보를 받은 것이 아픈 기억이다.

"엄마가 제 매니저 역할을 해 주셨던 때였어요. 취소 통보를 받고는 엄마와 부둥켜 안고 참 많이 울었어요. '왜 내겐 기회가 안 올까' 생각하며 속상했어요."

 

◆ 연기는 나의 즐거움, "아픈 것도 카메라 앞에 서면 모두 잊는다"

그러나 슬픔은 잠시, 하은설은 비관적인 생각에 빠지기보다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놀이'였던 연기는 그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연기 활동을 지속하며, 대학교 연극학과에 진학해 연기를 공부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연기가 아니면 제가 좋아하는 일이 없더라고요. 친구들은 어린 시절 여러 가지의 장래희망이 있었대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부터 되고 싶은 직업이 배우 하나밖에 없었어요. 배우는 하나의 직업으로도 여러 인물들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원하던 게 되지 않았을 때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제가 계속해서 연기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와 행복이 컸어요. 저는 카메라가 좋아요. 몸이 아플 때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다 사라져요."

시간과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기회는 올 거라고 믿었고", 기다림과 경험으로 단단해진 하은설은 그 기회들을 잡기 시작했다. 올해는 '유나의 거리' 외에도, 지난 9월 개봉한 영화 '좀비스쿨'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취재후기] 인터뷰 장소에 하은설은 직접 차를 운전해 왔다. 소속사 없이 홀로 활동한지 2년쯤 됐다. 드라마 '유나의 거리'를 촬영하면서도 스스로 스케줄 조정을 해야 했고, 촬영을 준비했다. 일주일 중 이틀 있는 휴일에도, 쉬기보다 윤지에게 어울리는 의상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윤지의 경우는 비싸지 않고, 활동성이 좋은 의상들을 입어서 그에 맞는 옷들을 찾아 구입했어요. 실제 제 취향과는 맞지 않지만, 윤지가 입을만한 옷들이에요.(웃음) 메이크업을 할 때는 화려하게 꾸미기보다는 수수한 화장을 했고요."

덕분에 '윤지'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막힘이 없다. 스스로 의상과 메이크업을 준비하며 하은설은 윤지 캐릭터를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구현할 수 있었다. 거쳐 온 시간만큼, 지금 이 순간도 하은설은 훗날 도움이 될 경험들을 차근히 쌓아가고 있다.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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