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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 세심한 배우 이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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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 세심한 배우 이희준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4.12.01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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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배우 이희준(35)이 연기한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의 김창만은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착하디 착한' 남자다. 자신도 넉넉지 않은 처지면서, 주변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돕는다. 이희준은 '유나의 거리'를 마치며 "창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니 좀더 뜨거운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희준은 창만이 자신을 변화시켰다고 말했지만, 이는 본래 따뜻한 눈길과 마음을 가진 배우이기에 가능한 감상일 것이다. 이희준과 '유나의 거리', 영화 '해무', 세월호 이야기, 그가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스포츠Q 오소영 기자] '유나의 거리'는 화려하고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세대 주택에 사는 건달, 소매치기, 콜라텍 주인 등의 삶을 50부 동안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드라마다. 때문에 시청자들로부터 요즘 보기 드문 '착한 드라마'라는 칭찬도 들었다. 이희준 또한 "'유나의 거리'는 소소한 수필같은 드라마"라고 표현했다.

 

◆ 이희준 이해시킨 김운경 작가의 한 마디, "창만은 희망이다"
 
이희준이 연기한 김창만은 주변 사람들이 차갑게 그를 내치고, 그를 외면해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을 돕는 인물이다. 소매치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랑하는 여자 유나(김옥빈 분)가 좀더 떳떳한 방법으로 일을 하도록 설득하고, 더 나아가 돕는다. 평소 이해심 많기로 소문난 이희준조차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다.
 
"작가님께 '이렇게까지 착한 사람이 어딨냐'고 하소연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작가님이 짧게 답하시더군요. '창만은 희망이다'라고. 그 말씀 한 마디로 정리가 됐어요."
 
이희준은 김운경 작가가 말한 '희망'을, 오월의 어느날 더욱 직접적으로 깨달았다. 세월호 희생자에게 조문하는 행렬을 보면서였다. 비 오는 날, 연극 공연을 하러 버스를 타고 명동 예술극장에 가던 중이었다. 광화문쯤 왔을 때, 어린아이, 엄마 등 여러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조문하는 풍경을 보게 됐다.

"저도 아프다는 '핑계'로 아직 조문을 못 갔던 때였어요. 그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좀 나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라 경제가 어려울 땐 금모으기 운동으로 힘을 모으고, 슬픈 일엔 줄을 서서 조의를 표해요. 작가님이 말씀한 희망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 이후로는 연기가 훨씬 편해졌어요."

 

◆ 세상 보는 눈까지 바꿔준 착한 남자 '창만'

유나를 연기한 이희준의 상대 배우 김옥빈은 "'유나의 거리'는 내 삶의 멘토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이희준 역시 창만을 연기하며 실제의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는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 등에서 90년대에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김운경 작가의 필력과 취재가 있었다.

"김운경 작가님은 제가 만난 작가님들 중 최고인 것 같아요. 정말 조사를 많이 하시고, 사회의 외로운 사람들, 슬픔을 안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인터뷰하세요. '유나의 거리'에서 불법 비아그라를 팔다가 경찰에 발각되는 부분이 나오죠. 할아버님들 지갑 속에 비아그라가 하나씩 들어있는 걸 이런 취재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작가님은 인터뷰를 위해 콜라텍을 한참 다니셨다고 해요."
 
"장노인 선생님(정종준 분)이 콜라텍에서 마지막으로 춤추는 장면을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가벼운 트로트 음악과 반짝이 조명을 배경으로 할아버지와 주방 아주머니가 추는 춤인데, 그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작가님이 보여주셨어요. 영화 '여인의 향기'같은 느낌이었죠."

김운경 작가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세심한 표현력을 이희준 역시 갖고 있었다. 이희준은 "'유나의 거리' 이후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풍경에 시선을 한 번 더 주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창만의 성품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배웠다.

"제가 평소처럼 유나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유나가 아주 완강하게 '더 이상 내게 신경쓰지 말고 꺼져라'라고 하는 부분이 있어요. 너무 서운하더라고요. 실제의 저였다면 거기서 끝냈을 거예요. '그래, 네 마음대로 해' 했겠죠. 그런데 창만이는 '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 라고 유나의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어줘요. 제가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창만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 본인은 '소심함'이라고 말하는 '세심한' 배우 이희준

창만은 착하고 헌신적인 인물이기에 오히려 주목을 끌기는 힘든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희준을 만나 창만은 밋밋하기보다 은은한 느낌으로 극의 중심을 지키는 인물이 됐다. 여기에는 이희준의 관찰과 고민, 표현이 있었다.

"창만이도 분명 피곤했을 거예요. 그래서 창만이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준 후에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장면에서는 한 번도 씩씩하게 들어온 적이 없어요. 피곤함과 노곤함에 한숨을 쉬고 축 처진 어깨로 들어오죠. 그 외로움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런 세심한 관찰과 표현은 그동안 연극 무대에서 쌓아온 경험은 물론, 자신의 실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희준 또한 창만처럼 잘 곳이 없어 카페 부엌에서 자 보기도 했고 생활비를 위해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20여가지의 파트타임을 해 보며 누우면 머리부터 발 끝까지 벽에 닿아 움직일 수 없는 좁은 고시원에서도 생활했다.

이희준의 세심함은 올해 여름 개봉한 영화 '해무'의 창욱을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창욱은 여자에 대한 성욕을 참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희준은 그가 왜 이런 인물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유를 찾아 거슬러 올라갔다. 실제 어촌에 내려가 어부들을 만나 취재를 했다.

"악수를 나누다 깜짝 놀랐어요. 손가락 마디가 없는 분들이 적지 않았거든요. 알고 보니 작업장이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었어요. 저는 놀랐지만 그분들에게 그 정도의 부상은 특이한 모습이 아니었죠.

그런데 그중에 고급 외제차를 타는 분이 계셨어요. '(뱃일 중에) 언제 죽을 목숨일지 모르니 이렇게 돈을 써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창욱은 정상적으로 여자를 만나 사랑하기보다, 배를 한 번 타고 난 후에 번 돈으로 밤을 사는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요?"

르포 작가가 취재를 하듯 그 과정이 세세하고 정성스럽다. 이렇게 공을 들인 데는 그만의 '세심한'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과오를 저지르는 것 같아요. 어설프게 흉내냈다가 실제로 이 일을 하시는 분들이 연기를 보고 '나는 저렇지 않은데 왜 저렇게 연기하냐'고 생각하실 수 있을까봐요."
 
이런 '세심함'은 어디서 나올까. 궁금해 묻자 그는 수줍게 웃었다.

"제가 소심하거든요. 잘 삐치고. 어떤 말을 들으면 '왜 저렇게 내게 말할까' 생각해보고, 심할 때는 누군가 기침 세 번을 하면 '왜 기침 세번을 할까?' 까지 생각해보기도 해요. 사람에 대해 관찰하고 생각하는 걸 좋아해요. 이런 습관이 배우를 하는 덴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섬세한지는 모르겠지만….(웃음)"

 

◆ 이유모를 끌림에 시작한 연기, "배우가 된 건 '천운"
 
이렇듯 '천생 배우'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이희준은 연기를 좋아하고 정성을 들인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2012년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능글맞은 천재용 점장으로 출연하면서부터였다.

안정적인 취업을 생각하며 공대에 다니던 이희준은 우연한 기회로 연기를 시작했다. 군입대를 앞두고 환송회에서 술을 마셨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크게 다쳐 군 면제를 받게 됐고, 생각해뒀던 계획이 흐트러졌다. 방황을 시작하며 술을 마셨다. 어느날 술에 취해 길에서 구토를 하다가 길에 붙은 전단지를 보게 됐다. 아동극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극단의 광고지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흥미가 생긴 이희준은 극단에 찾아갔다. 아동극 '알라딘과 요술램프'로 작은 무대에 오른 그는 연기에서 큰 재미를 느꼈다.

이후 대학을 중퇴하고 극단 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웠다. 스물 다섯,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고 배우 이성민, 문성근 등이 속한 극단 '차이무'에 합류했다. 이희준은 연기를 하게 된 것을 '천운'이라고 표현했다.
 
"배우는 활자로 설명된 인물을 실제로 표현해야 하죠. 어떤 인물의 눈으로 사람을 보기 시작하면서 일상에서도 맡은 역에 대해 연구하고 그 역의 마음으로 살게 돼요. 사람을 이해하는 게 배우의 본 역할인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것에 감사해요."
 
여전히 그를 움직이는 것은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다.
 
"앞으로 꼭 어떤 역할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대본을 보고 심장이 뛴다면 해 보고 싶은 거죠."

 

[취재후기] 최근 이희준은 반지하가 아닌 햇빛이 잘 드는 집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집에는 나름대로 연기를 연습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간을 꾸몄다. 인터뷰가 이뤄진 가게에 있던 맥주는 이희준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맥주였다. 이희준은 거듭 말했다. "햇빛이 드는 집으로 이사해서 행복해요", "이 브랜드의 맥주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메뉴판의 가격을 보지 않고 음식을 시킬 수 있어서 좋아요." 이희준의 돈은 그렇게 소박한 소비에 쓰이고, 여전히 그는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하루를 산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애정으로 세상을 보는 따뜻한 배우. 이희준은 창만 덕에 스스로가 바뀌었다고 말했지만, 거꾸로 이희준이 아니었다면 창만은 아무도 연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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