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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개훔방' 강혜정이 행복을 훔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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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개훔방' 강혜정이 행복을 훔치는 방법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4.12.30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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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배우 강혜정(32)이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훔방')'으로 오랜만에 국내 관객을 만난다. 2009년 개봉한 '걸프렌즈' 이후 약 5년만이다. '올드보이', '웰컴 투 동막골'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는 강혜정은 요즘은 육아 예능 출연으로 '하루 엄마'로도 알려져 있다. 강혜정과 타블로의 딸 하루는 어린 나이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았고, 이따금 던지는 순수한 말들은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강혜정은 "내가 한 건 없다. 하루는 처음부터 감동이 있는 아이였던 것 같다"고 말하지만 분명 여기에는 엄마 강혜정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개를 훔치는 방법'에서 강혜정이 연기하는 '정현' 또한 엄마다. 정현은 생활이 어려워져 떠난 남편 대신 홀로 지소(이레 분), 지석(홍은택 분)을 키운다. 아이들의 짜증에 지지 않고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철없는 모습도 있지만, 결국은 아이들을 따뜻하게 끌어안는다.

[스포츠Q 글 오소영 · 사진 최대성 기자] 과거의 소녀를 넘어, 이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한 발을 내딛은 강혜정. 그녀는 스크린으로의 복귀, 연극에의 도전, 그리고 결혼 생활로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때문에 인터뷰 제목도 강혜정이 전하는 '행복을 훔치는 방법'이다.

 

행복 하나, '동막골'과 '개훔방'

'개훔방'을 본 기분?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웰컴 투 동막골'을 봤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는데. 가족들도 같이 봤는데, 하루는 내가 안 나오는 장면에는 몰입해서 잘 봤지만, 내가 나오면 워낙 말하기 바쁘셔서. 다른 관객들을 위해 조용히 데리고 나왔다. 주변 지인들이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얘기해줘서 고마웠다. 들어보니 에픽하이 미쓰라 씨가 보고 울었다고 하던데.(웃음)

행복 둘, '아줌마 기질' 통하는 제작진

내 캐스팅은 김혜자 선생님이 추천하셨다고 했다. 감독님도 좋다고 하셨고. 사실 감독님은 반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서 의외였다.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동안이니까. - 근데, 뭐, 사실 30대 넘어가면 다 동안이다.(웃음) - 감독님과 미팅을 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아줌마적 기질과 감독님이 가진 아줌마적 기질이 잘 맞는 것 같았다. 감독님도 7세, 10세 두 아이의 아빠라서. 오랜만에 영화 현장에 왔다보니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과 떨림이 있었다. 감독님에게도 굉장히 확인을 많이 받았고. '솔직하게 말씀해 달라', '조금이라도 의도에 벗어나면 잡아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연기의 톤을 잘 잡아주셨다.

 

행복 셋, '적은 분량' 

'개훔방'에 내 분량은 많은 편은 아니다. 이 영화에는 아이들의 비중이 80~90%다. 그런데 난 어른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 점이 가장 기분 좋았다. '사이즈가 큰' 배우들인데도, 감독님이 그런 '비중 싸움'에 대해 눈치를 보지 않으신 분이었다. 영화에서 타이밍이 맞게 어른들이 등장했어야 했는데 그 타이밍이 정말 정확했고. 물론 소위 '우리 편'들은 아쉬워하지만 양보다는 어떤 질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니까. 감독님께서 이 디렉터의 기질과 뛰어난 판단력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조금 나오기 때문에 칭찬받는 것 같다.

아, 극중 채랑이 엄마로 나오는 배우 조은지 씨는 내 베스트 프렌드다. 실제 가장 친한 친구와 나란히 엄마 연기를 하다니 참 신기했다.

행복 넷, '개훔방' 현장의 순수함

아이들은 어른들과의 의사소통과는 다르다보니 좀 더 조심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어른들은 들을 것만 듣고 버릴 건 버리는데, 아이들은 순수해서 다 받아들이니까. 어떤 디렉션을 주느냐에 따라 결과가 굉장히 달라진다. 그래서 감독님이 매사에 조심스러우셨을 거다.

아이들 연기는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이들이 메소드 연기를 하는지, 영화에서 거의 유일한 악역으로 나오는 이천희 씨에게만 말을 안 걸었다.(웃음) 아이들이 다행히(?) 마음을 열어줘서 '정현 엄마'라고 불러줬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상에 많이 접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개훔방'의 아이들은 자신의 자아가 정말 분명해서 어른들과 함께 일을 하지만 순수함이 퇴색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행복 다섯, 딸 하루

이레와 하루와의 비교? 이레는 9살이고 하루는 5살이니 이레는 지식인이다. 열일곱과 스물의 차이처럼 이레는 하루에게 굉장한 인생 선배다. 하루는 이제 글씨를 깨우치려는 단계다. 얼마 전에 하루가 처음으로 '아빠 엄마 이하루' 이렇게 글씨를 써 줬다. 아이들마다 시기가 있는 것 같은데, 내 경우는 오빠는 3살에 한글을 깨우쳐서 내게도 기대가 있었는데, 나는 아니었다. 바보였다.(웃음) 어, 나중에 하루가 이 인터뷰를 보고 엄마도 그랬잖아,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공부나 어떤 연예 활동에 대한 욕심은 없고, 하루는 평범하고 건강하게, 천진하게 컸으면 좋겠다. 방송에서 하루가 카메라에 익숙한 것처럼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카메라 삼촌들이 하루를 예뻐해줘서였다. 카메라가 삼촌의 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행복 여섯, 결혼

내 개인적으로, 그리고 배우로서 결혼생활이 행복하다. 모든 방면에서 지금이 내 자신에게는 '신세계'와 같다. 학창시절에는 언제고 이 안에서 벗어날 생각만 하잖나. 언제 졸업할지만 생각하고, 20대 때 뭘 할까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20대가 되면 그 꿈이 지속되는 기간이 굉장히 짧더라. 10대 때 꿨던 꿈은 25세 전후로 사라진다. 이후로는 서른을 두려워하면서 살게 된다. 나는 그 기간 동안 '내가 버려졌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섭섭한 기간이기도 했다. 평균 수명이 요즘은 80세라는데, 앞으로 50~60년을 걱정하면서 보낼 수도 있었던 거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내 자신, 아이, 가족에 대한 새로운 꿈이 생겼고 그로 인해 새롭게 태어난 듯한 경험을 하고 있다. 친구처럼 평생 함께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서 다시 꿈을 꾸고 있다. 나에 대한 꿈, 가정을 일궈내는 꿈을 꿀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가치를 선물받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 우울했던 기간마저도 지금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될 정도니까. 지금 난 결혼과 가족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해낸 것 같다!

 

행복 일곱, 국민 엄마로의 새로운 꿈?

예전 내 목표는 '늙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와 노는 게 너무 좋다. 나이 들어서도 나와 놀아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하루가 "내가 100살이 돼도 엄마랑 놀거야"라고 하는데, 지금은 5세니까 또 모를 일이다. 타블로 씨의 경우는 나에 대한 꿈이 있다. "연기는 정년퇴임이 없으니까 국민 엄마가 돼 달라"고 한다. 본인은 6,70대에 힙합을 못 하니까.(웃음)

'개훔방'에서 타블로 씨가 약간의 출연을 하는 건 감독님의 요청이었다. 굉장히 조심스럽게 '혹시 괜찮겠냐'고 물어보셨다. 타블로 씨는 정말 좋아했다. "그럼 나도 자기 영화에 얼굴 나오는 거야?" 하고. 영화에 '피처링'을 한 셈이다.

행복 여덟, 복귀로의 한 걸음

필모그래피는 내가 걸어온 역사다. 작품 선택을 두고 고민하고, 헷갈리게 되는 순간들이 굉장히 많다. 그런 점에서 좋은 작품의 기록은 내게 굉장히 의미깊고 큰 일이다. 케이트 윈슬렛도 상당히 필모가 좋았다.(웃음) 내 인생 중 커다란 전환기를 갖고, 다시금 영화계에 발을 디뎠을 때의 작품은 중요하다. 아이들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주는 작품에서 엄마 역을 소화해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을 것 같았다.

지금은 연극 '리타'도 함께 하고 있는데, 이러면 안되지만, 내게 공부가 된다. 무대 연기는 언젠가 베스트이고 워스트일지 모르니까. 내가 훈련이 충분히 돼 있는 상태도 아니고. 관객 호흡에 따라 느낌이 올 때가 있고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연극을 하면서 그 지점을 찾는 것에 대한 공부도 되고, 내가 어디에 흔들리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계기도 됐다.

복귀로 힘든 것은 아이와 놀아주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일종의 보상 심리로 작품을 끝내고 나면 아이와 함께 떠나버린다. 가족끼리 놀러가는 걸 워낙 좋아한다.

행복 아홉, 편안한 우리 집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집이란 내가 해제될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바깥에는 기쁜 일, 웃을 일, 감동도 많지만 그런 것들은 순간이고, 싸워야 할 일이 더 많지 않으니까. 경계하고 조심하고,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근데 집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택은 'TV 채널 선택권' 정도다. 그만큼 모두가 내 편이고 적이 없는, 내 마음이 완전 해제가 될 정도로 풀어져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집이다.

 

행복 열, 정리의 2014년

올해는 도약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 놓을 것은 놓고, 취할 것은 취하도록 내 자신이 정리하는 한 해였다. 이전에는 어떤 것도 놓고 싶지 않아서, 이걸 정하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각색하고 영화를 편집할 때도 버릴 것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듯이, 내 삶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욕심부리지 말아야 할 부분은 뭔지, 오랫동안 겨냥해야 할 목표는 뭔지.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 정하게 된 한 해였다.

[취재후기] 여전히 소녀의 순수를 간직하고 있지만 어른으로 큰 강혜정은 어느덧 자신이 걸어온 길을 지금 걷고 있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도 됐다. 결혼과 삶에 대한 코멘트에서 경험과 깊은 생각이 엿보였다. 여기에 대한 감상에 강혜정은 "라디오 DJ를 해볼까. 타블로 씨가 진행하는 '꿈꾸라' 대타로 나간 적도 있다"며 웃었다.

"물론 저는 부족하죠. 타블로씨는 말이 머릿속에서 편집돼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사람이래요. 우리 집에선 흔한 남편이니까 몰랐는데요.(웃음)"

강혜정은 '개훔방'을 더욱 재밌게 볼 수 있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에도 DJ처럼 명쾌한 답을 남겼다.

"기대하지 말고, 생각없이 보세요. 문화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내가 더욱 얻을 수 있는 것을 방해하는 게 '기대'라고 생각해요."

강혜정이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고 '개훔방'의 감상 소감을 말했듯, 기대하지 않으면 더욱 큰 감상을 얻을 수 있을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다.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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