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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감독 하정우 "'허삼관', 배우로서 매너리즘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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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감독 하정우 "'허삼관', 배우로서 매너리즘 깼다"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5.01.16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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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영화 어떠셨어요? 저는 '허삼관'을 1000번 넘게 봐서 감각이 마비가 된 상태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죠."

하정우가 직접 연출하고 주연한 영화 '허삼관'을 들고 돌아왔다. 감독으로서의 연출은 2013년 개봉한 '롤러코스터' 이후 두 번째다. "아직 '하정우 감독'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하정우는 "'롤러코스터'가 내 작가주의라면 '허삼관'은 상업적인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처럼 영화를 관통하는 중심 코드, 참여인원 수, 제작비 등 다양한 방면에서 두 영화는 차이가 있다.

"'롤러코스터' 때는 저예산영화, 연극배우 출연진 등에서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죠(웃음). 제작비 면에서 '허삼관'과 '롤러코스터'는 14배 정도 차이가 나요. 책임과 부담감이 커졌죠. '내 생각이 이 영화 색깔에 맞을까'라는 의심과 고민을 좀 더 하게 됐어요."

신인 감독의 마음가짐으로 마음이 '쫄깃'하다는 그에게 '허삼관'의 제작기를 들었다.

 

[스포츠Q 글 오소영 · 사진 이상민 기자] 영화 '허삼관'은 중국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다. 가진 것 없지만 행복한 남자 허삼관이, 11년간 남의 자식을 키우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매혈'은 돈을 벌기 위해 허삼관이 피를 팔기 때문에 붙여진 제목이다.

◆ '허삼관' 택한 이유? '병맛'과 '보편성' 끌렸죠

하정우의 감독으로서의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가 보여주듯 그는 소소한 말장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재미를 느낀다. 소위 '병맛' 코드가 '허삼관 매혈기'에도 들어있는 것이다. 하정우는 "원작인 위화의 문체가 주는 그러한 코드 때문에 영화로의 연출을 선택한 것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체'와 '캐릭터의 솔직하고 즉각적인 반응'은 그가 '허삼관 매혈기'의 연출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원작의 재미를 영상으로 옮겨놓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소설의 캐릭터, 대사, 상황들이 영화로 옮겨졌을 때 그 재미를 고스란히 가지고 가느냐, 그건 아니더라고요. 위화의 문체가 주는 원래의 재미와 특성을 지키고 싶어서, 리허설 촬영과 대본 리딩을 하면서 어떻게 재미를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극중 '말장난' 대사 패턴을 제 코드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제가 첨가한 것이라기보다는 원작에서의 대사가 원래 그렇게 나와요."

 

배경을 1950년대의 충남 공주로 옮겨오고, 소설에서는 아들을 구하는 과정이 훨씬 길지만 영화에서는 3일 정도로 압축했다. 원작에서 살리고 싶었던 점은 '보편성'이었다.

"결국은 보편적인 이야기가 가장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갈등 요소가 보편적이듯, '허삼관 매혈기' 원작에도 그 힘이 있다고 봤어요. 요즘엔 자극적이고 '막장의 끝'을 보여주는 드라마들이 많죠. 하지만 저는 좀 더 간이 덜 돼 있고 소소하고 수수해도 꼭 필요한 걸 원했어요. 카메라 숏 구성, 음악, 미술 같은 부분도 오가닉(organic)하고 클래식하게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영화의 메시지는 '사소함의 소중함'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중요하게 쓰인 소재 중 하나가 음식 '고기 왕만두'다. 허삼관은 결혼 전 옥란과 만남을 가지면서 만두를 먹고, 아들 삼형제는 주린 배를 움켜쥐며 먹고 싶은 음식으로 이 만두를 떠올린다.

"사소한 것에 대해서 다시금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저는 겨울 군번이라 굉장히 추울 때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햇빛이 고마운 존재인 걸 새삼 알게 됐거든요. 이처럼 배고팠던 시절, 아이들에게 가장 큰 로망은 만두인 거죠."

◆ 공들인 '삼형제 캐스팅', '부성애'만큼 허삼관의 '성장기' 소중하죠

감독 하정우의 캐스팅 기준은 뭘까? 그는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답을 했다.

"외적 싱크로율이 아무리 높더라도 연기를 못 하면 가짜처럼 보여요. 그런데 연기를 잘하면 외모까지 예쁘고 잘생겨 보이죠."

'허삼관'의 캐스팅 중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허삼관의 아들 삼형제의 캐스팅이었다. 일락(남다름 분), 이락(노강민 분), 삼락(전현석 분)을 찾는 데 5개월을 투자했다.

"극중 첫째는 다른 사람의 아들이고 둘째, 셋째는 제 아들이죠. 일락이는 하지원 씨와 웃는 모습이 닮았고 피부가 희어요. 둘째, 셋째는 제 느낌이 있죠.(웃음) 아이들이 영화 촬영을 좀 더 편안하게 여길 수 있게 굉장히 자주 봤어요. 지도 선생님이 아이들과 일주일 중 3~4일 정도 만나고, 대본 리딩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했죠. 가장 신경썼던 부분이에요."

특히 출연 분량이 가장 많은 첫째 일락 역 남다름에 대해 하정우는 "'식스센스', 'A.I.' 등에 출연한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느낌이 난다"고 했다.

 

'허삼관'에서 부각되는 것은 '부성애'다. 허삼관은 극의 중반까지는 철없는 남자로 나온다. 하정우는 극중 애착이 가는 장면 중 하나로 첫째 아들 일락에게 자신을 아버지 아닌 '아저씨'라고 부르게 하는 장면을 꼽았다.

"되게 치사하잖아요. 삼관이가 자신의 화를 표출할 수 있는 건 일락이에게 그렇게 쪼잔하고 치사하게 하는 것뿐이에요. 하소용의 멱살도 못 잡는 사람이니까요.(웃음)"

철없던 허삼관은 아들을 위해 피를 팔며, 진정한 아버지가 돼 간다. 점차 한 아버지, 사람으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인 셈이다.

"세 아들의 아버지라기보다 허삼관, 그 개인, 남자, 사람에 집중하고 싶었던 부분도 있어요. 물론 아버지가 돼 가는 과정이지만, 한 남자의 성장기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 감독 하정우의 성장 "'허삼관', 초심 안겨준 것만으로도 성공"

이쯤에서 의문을 던져볼 수 있다. 하정우는 왜 영화를 만들까? 그 시작은 연출을 해보자는 욕심보다는, '배우로서의 매너리즘'이었다.

"배우로서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가 있었어요. 스스로 교만에 빠진 적도 있었고, 내 원래의 신념에 따르는 것이 아닌, 어딘가에 타협하면서 연기력 또한 뒤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름의 위기의식이 생겼고, '내가 직접 감독이 돼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롤러코스터'를 만들게 됐어요."

 

'롤러코스터'를 통해 감독으로서 데뷔했다면, 이번 '허삼관'에서 얻은 것은 '초심'이다.

"'허삼관'을 준비하며 작은 것에 감사하는 걸 배웠어요. 10년 전 배우로 데뷔했을 때의 마음으로 작업에 참여했어요. 배우와 감독을 떠나 한 사람으로서, 보다 더 솔직하게 스태프들과 배우들을 대했죠. '허삼관'은 내 삶의 초심에 대해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 같아 성공적이라고 생각해요."

감독과 배우를 함께 맡으며 가장 크게 신경 쓴 부분은 영화를 찍기 전 거치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였다. 촬영장에서는 배우 하정우로서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촬영장에서 '오늘을 재밌게만 보낼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많이 했어요. 이게 하루하루 쌓이니 실제로 촬영장이 재밌었고요. 이런 절실한 마음으로 인생을 산다면 영화를 준비, 촬영할 때처럼 내 일상적인 삶 역시 좋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정우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느낀 것이 중요한 깨달음이었다"고 했다.

"감독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면서, 영화 작업은 개인의 재능만으로 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됐거든요. 배우 캐스팅, 촬영, 후반 작업, 홍보, 개봉까지 소화해야 하고, 예측할 수 없는 대중을 상대로 영화를 만들죠. 이때 개인의 재능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보다는 정성과 노력만이 영화를 만들 수 있단 걸 알게 된 거죠."

많은 사람들이 하정우에게 '열심히 산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많은 계획과 영화와 함께 하는 날이 남아 있다. 나중의 목표는 나이가 들어서도 영화를 계속하는 것으로, 지금 깨달은 초심은 이 목표에 보다 가까이 가도록 그를 도울 것이다.

"'영화 실버타운' 어떤가요? 60살을 넘어서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우디 앨런처럼 할아버지가 돼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와 지금 활동중인 배우들도 그때는 다들 노인이 되겠죠. 그때도 지금처럼 활동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꿈, 희망,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요."

 

[취재후기] '영화 실버타운'까지 가는 과정에는, 또다른 많은 목표들이 있다. 가장 가까운 목표는 '2004년 이후 처음 갖는 긴 휴식'을 재밌게 보내는 것.

"영화 '암살' 촬영 끝내고 '아가씨' 촬영을 5월말에 들어가요. 3개월 휴식이 생기는데, 이때 아주 재밌게 노는 게 목표예요. 어떻게 놀지는 지금부터 고민해봐야죠. 이 3개월을 놀 생각만으로 지금껏 버텼거든요."

재미와 휴식은 그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좋은 영화인'이 되는 것에 한 걸음 가까이 가도록 돕는다. '허삼관'의 개봉과 놀 계획을 앞두고 설레는 그가 부러워지며 나 또한 개인적인 '노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계획이 고개를 들었다.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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