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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빅보이' 이대호가 일본야구 레전드로 남기 위한 5가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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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빅보이' 이대호가 일본야구 레전드로 남기 위한 5가지 조건
  • 류수근
  • 승인 2015.04.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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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류수근 편집국장] 지난달 28일 ‘2015 KBO리그’가 스타트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10개 구단 시대를 맞아 관중 840만의 벅찬 희망을 안고 돛을 올렸다. 그 하루 전, ‘야구 왕국’으로 불리는 이웃나라 일본의 프로야구도 정규시즌의 장기 레이스에 돌입했다.

올해 일본에서는 세 명의 한국인 선수가 활약한다. 한신 타이거스의 오승환(33)이 2년 연속 센트럴리그 구원왕에 도전하고, 지난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4번 타자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끈 이대호(33)는 타선의 핵으로서 위상 굳히기에 나선다. 여기에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던 선발투수 이대은(26)이 지바롯데 마린스의 유니폼을 입고 퍼시픽리그에 가세했다.

올해 ‘삼총사’의 고른 선전을 기대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이대호 선수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필자가 ‘Q생각’을 이대호로 시작하는 이유는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한국프로야구 출신 타자’로 일본 야구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왔으면 하는 숙원이 그것이다.

▲ '빅보이' 이대호는 지난해까지 일본 진출 후 줄곧 팀 공격의 중심에서 활약하며 팀 우승을 이끄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홈런과 타점, 득점권 타율 등 결정력 면에서는 보완할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일러스트= 스포츠Q 신동수]

#01 한국 프로야구 출신 타자들의 일본 진출 '흑역사'

“역시 훌륭한 선수네요. 한국에 돌아가니 참 잘하네요. 역시 타국에서 심적인 부담이 컸던가 봅니다.” 예전에 일본 기자들로부터 몇 차롄가 이같은 인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아무래도 한일 야구 스타일이 다른 데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겠죠”라고 답하면서도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 프로야구 출신 선수들이 일본 무대에 진출한 것은 1996년 주니치 드래건스 유니폼을 입은 선동열(당시 해태)부터였다. 이후 이종범, 이상훈, 구대성, 정민태, 정민철, 이승엽, 김태균, 이병규, 이범호, 임창용에 이어 오승환, 이대호로 이어졌다. 이중 선동열, 이상훈, 구대성, 정민태, 정민철, 임창용, 오승환은 투수고, 이종범, 이승엽, 김태균, 이병규, 이범호, 이대호는 타자다.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에서는 내로라하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돌아온 선수는 다섯 손가락도 못 채울 정도다.

이들 중 가장 뚜렷한 활약을 펼친 인물은 단연 선동열이었다. ‘주니치의 수호신’으로 활약한 선동열은 99시즌에 이상훈과 필승 구원조를 이뤄 주니치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그는 마운드에서는 물론 불펜에서도 리더이자 정신적인 멘토였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뒤늦게 건너갔지만 ‘언터처블 카리스마’를 앞세워 한국 출신 투수의 위력을 맹렬히 떨쳤다.

일본 언론들은 ‘역대 최강 외국인투수 랭킹’을 꼽을 때 선동열의 이름을 어떤 식으로든 빼놓지 않는다. 선동열 이후에도 야쿠르트의 임창용, 한신의 오승환이 한국 프로야구 출신 투수의 성공 계보를 잇고 있다.

 이승엽과 이대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거포이자 일본 진출 선후배 타자다. 사진은 둘이 지난해 12월 2014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 [사진= 스포츠Q DB]

하지만 타자들의 성공스토리를 꼽으려면 도통 망설여진다. 요즘 유행어로 '흑역사'다. 주니치에서 뛰었던 이종범은 진출 초반 ‘바람의 아들’ 돌풍을 일으켰지만 경기 도중 상대 투수의 몸 맞는 볼에 팔꿈치 골절상을 당한 이후에는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2004년 지바롯데로 건너간 이승엽은 그 이듬해부터 세 시즌동안 매년 30홈런 이상을 치고 요미우리의 4번 타자로까지 활약하며 기대를 한껏 부풀렸지만 그후 왠지 급전직하,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이승엽에게는 ‘유종의 미’가 새삼 그리웠다. 이외에 이병규, 김태균, 이범호는 한국내 명성이 부끄러울 정도의 희미한 자취만 남기고 조용히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02 빅보이, ‘A플러스’ 향해 한 단계 더 도약할 때

이대호는 올해로 일본프로야구 4년째를 맞이했다. 오릭스 중심타선에서 2년을 보낸 뒤 지난해부터 소프트뱅크의 일원이 됐다. 이적 첫해 당당히 4번 타자로 소속 팀을 퍼시픽리그 우승에 이어 일본시리즈 패권으로 이끌었다.

지난 3년간의 일본 생활은 일단 ‘A’ 학점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활약상만으로는 일본 프로야구사에 우뚝 솟은 외국인타자의 반열과는 거리가 있다. 격이 다른 ‘A플러스’를 얻기 위해서는 ‘대체불능의 카리스마’를 창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과감하게 도약할 수 있는 추동력이 필요하다.

#03 일본 프로야구사를 다시 쓴 외국인타자 레전드들

일본야구전문지 슈칸베이스볼이 지난 2013년 4월에 뽑은 ‘역대 최강 외국인타자’ 특집을 뒤져보았다. 일본 프로구단의 타격 코치들과 야구해설자들에게 설문을 구한 결과를 토대로 순위를 매긴 자료였다.

랜디 바스가 1위로 꼽혔고, 알렉스 라미레스와 알렉스 카브레라가 그 뒤를 이었다. 4, 5위는 터피 로즈와 로버트 로즈였다. 이들의 면면을 훑어보면 최정상급 외국인타자들의 소질과 자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터다.

1983년부터 6년간 한신 타이거스에 몸담았던 왼손타자 랜디 바스는 85, 86시즌 2년 연속 타격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고, 6년간 743안타 202홈런 486타점, 타율 0.337을 기록했다. 정말 '핫'한 플레이어였다. 85년 일본시리즈에서는 3경기 연속 홈런포를 가동하며 한신에 21년만의 리그 우승을 안겨줬다. 86년에 달성한 일본프로야구 사상 한 시즌 최고 타율(0.389)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 2004년 일본 오사카돔 내부 전경이다. 필자가 지바롯데 이승엽 선수를 전담 취재하던 시절 찍은 사진이다. 당시 오사카돔은 나중에 오릭스에 통합된 긴테쓰 버펄로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미국 출신 거포 터피 로즈의 활약상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알렉스 라미레스와 알렉스 카브레라는 나란히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라미레스는 야쿠르트와 요미우리 등에서 13년간 2017안타 379홈런 1272타점, 타율 0.301을 마크했다. 2013년 외국인 선수 최초로 일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으며, 2010년 49홈런을 포함해 3차례나 시즌 40홈런 고지에 도달했다. 홈런왕은 2회. 라미레스는 그라운드의 어릿광대였다. 역동적인 플레이는 물론 개그맨 뺨치는 유머와 분장술로 팬들을 울리고 웃겼다.

#04 가공할 도끼타법, 통산 464홈런, 한 시즌 153타점의 괴물들

같은 나라 출신이지만 카브레라는 스타일이 180도 달랐다. ‘못먹어도 고!’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도끼자루를 휘두르는 듯한 괴력의 스윙으로 투수를 얼게 했다. 세이부를 시작으로 12년 동안 1368안타 357홈런 949타점 타율 0.303을 마크했다. 한때 이승엽과 자주 비교되던 타자였다. 2002년에는 긴테쓰의 터피 로즈와 함께 시즌 55홈런을 치는 등 2년 연속 50홈런을 맛봤고, 2001년부터 3년 동안에만 무려 154개의 홈런을 날렸다.

터피 로즈와 로버트 로즈는 미국 출신이다. 유연하고 다재다능한 파워를 자랑했다. 터피는 1996년부터 긴테쓰, 요미우리 등에서 13년간 1792안타 464홈런 1269타점, 타율 0.286의 성적을 남겼다. 464홈런은 외국인타자 개인통산 최다 홈런 기록. 카브레라와 함께 퍼시픽리그 공동 홈런왕(55)에 오르는 등 4차례나 홈런킹에 등극했다. 7시즌이나 40홈런을 넘었다. 100타점 이상 시즌이 6번이나 됐고 타점왕 3회를 차지했다.

로버트는 요코하마(DeNA의 전신) 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8년간 타점왕 2회, 최다안타 2회, 최고출루율 1회, 최다결승타점 1회를 기록했으며, 98년 ‘기관총 타선’ 요코하마의 핵으로서 리그 우승과 시리즈 제패를 이끌었다. 99년에는 192안타 37홈런 153타점 타율 0.369라는 경이로운 배팅쇼를 펼쳤다. 명 2루수로도 이름을 날렸고 젊은 타자들에게는 멘토로 통했다.

▲ 이대호는 체중까지 감량하며 2015시즌 신체적 코어를 강화했다. 사진은 지난 2월 27일 야후 오크돔에서 열린 삼성과 연습경기에서 류중일 삼성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대호의 모습. 그의 밝은 표정에 올시즌의 자신감이 보이는 듯하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05 레전드들을 관통하는 다섯 가지 조건들

이들의 기록을 보면 외국인타자 레전드 그룹의 기준선이 보인다. 시즌 30홈런과 100타점, 3할 타율이 그 선이다. 이들은 이 선을 제집처럼 넘나들곤 했다. 이 선은 끝선이 아니라 밑선이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도 차원이 달랐다. 전성기 때는 모두 1점대 전후였다. 바스는 6년 평균 1.078(최고 시즌 1.258), 라미레스는 13년 평균 0.858(최고 0.990)을 기록했다. 카브레라는 12년간 평균 0.990(최고 1.223)이었고, 터피 로즈는 13년 평균 0.940(최고 1.083), 로버트 로즈는 8년 평균 0.933(최고 1.093)이었다.

이들의 활약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타석에서의 호쾌한 타격과 장타력이다. 너나할 것없이 상대 투수에게 공포감을 줬다. 둘째는 승부사 기질이다. 평소보다도 필요한 순간에 결정타를 터뜨리며 더 강한 광채를 발하곤 했다. 그래서 타점들이 많다.

셋째는 팀내 친화력이다. 성격이 밝고 동료들과 잘 섞이는 것은 물론 리더십도 돋보였다. 넷째는 우승청부사 기질이다. 한결같이 중심타선에 서서 팀의 우승을 이끄는데 앞장섰다. 마지막으로 ‘꾸준함’이다. 한두 해 반짝한 것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팬들은 그들이 떠난 후에도 미련이 남았다.

#06 3할 타율은 고무적, 결정력과 파괴력은 부족

이대호의 지난 3년간 성적을 잠시 살펴보자. 오릭스 첫해인 2012시즌은 24홈런 91타점에 타율은 0.286, OPS는 0.846이었고, 2013년은 24홈런 91타점 타율 0.303 OPS 0.878이었다. 2012년에는 퍼시픽리그 타점왕에도 올랐다.

소프트뱅크에 이적한 첫해인 지난해는 타율은 3할을 기록했지만 홈런과 타점은 각각 19개와 68개로 줄었고 OPS도 0.816으로 떨어졌다. 특히 득점권 타율은 0.244에 그쳤다.

하지만 이대호는 4번 타자로 소프트뱅크의 리그 우승과 시리즈 제패를 이끌었고, 동료들과의 친화력도 문제가 없었다. 단, 팀 리더격의 존재로서 위상을 논하기에는 아직 일러 보인다.

팀 우승과 3할 타율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직 레전드 그룹의 기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워낙 특출 난 선수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대호가 레전드 반열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지금 보다 훨씬 더 매섭고 강력해져야 한다.

이대호는 한국 롯데 시절에는 한 시즌에 44개의 홈런을 쏘고 1점대 OPS를 두 시즌이나 기록했으며 100타점 이상을 3차례나 기록하는 등 배팅의 파괴력이나 해결사다운 결정력에서도 손색이 없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일본에서의 3년간 수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07 몸쪽 공에 대한 강력한 스윙으로 투수 압도해야

무엇이 일본에서 이대호의 타격을 작게 만들었을까? 스포츠Q 야구 편집위원인 박용진 전 감독은 “덩치가 있어서 몸쪽 공에 반응이 늦은 점도 있지만 약점을 집중 공략하는 일본 야구 스타일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특히 일본 투수들은 떨어지는 변화구와 유인구 구사에 능하다. 한국 타자들이 고전하는 이유다. 여기에다 한국 타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경계심과 심리적 부담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어떻게 하면 일본 투수들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을까? 박 감독은 이대호 선수가 “좀 더 체계적인 훈련과 치밀한 분석 능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특히 포크볼에 대한 대처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일본 투수에 대한 정교한 사전준비와 부단한 훈련뿐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타석에서 자신감을 잃지 말고 여유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감독은 또 “상대 투수에게 위압적인 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몸쪽 공에 강한 스윙 메커니즘을 찾아내야 한다. 타격 시 팔을 몸쪽에 붙이고 축족인 오른발을 중심으로 허리와 하반신을 이용해 팽이를 돌리듯 강하고 빠른 스윙을 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스윙스피드와 임팩트의 파괴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08 5번 타순에서 출발, 그러나 2015시즌은 시작에 불과

올해부터 소프트뱅크 사령탑은 타자 출신인 아키야마 고지에서 투수 출신인 구도 기미야스 감독으로 바뀌었다. 구도 감독은 이대호를 시범경기부터 5번 타순으로 내렸다. 감독의 스타일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4번에서 5번으로 바뀐 타순은 ‘평가의 하락’을 의미한다.

슈칸베이스볼 최신호에 따르면 구도 감독은 팀 전략의 키워드를 ‘합리화’와 ‘효율화’라고 선언했다. 이대호를 5번에 배치한 것도 그런 구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3,4,5번’의 순서가 “고정된 건 아니다”고 여지를 뒀다. “어떤 타순에서 최고의 기능을 하는지”에 따라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야구에서 3번 타자의 가치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4번타자는 자존감의 표상이다. 결국 얼마나 빨리 그리고 확실히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느냐가 열쇠다. 그러면 언제든 4번 자리는 되찾을 수 있다.

이대호는 소프트뱅크 유니폼을 처음 입은 지난해에는 시즌 개막 후 14경기째인 4월 13일, 58번째 타석에서야 비로소 첫 홈런의 맛을 봤다. 하지만 올해는 시범경기에서 4경기만인 지난 31일 오릭스전에서 첫 손맛을 보는 등 일찌감치 시동을 걸었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대호는 올시즌을 앞두고 몸무게도 10kg 감량했고 올해는 “성적으로 보여 주겠다”며 남다른 각오도 다졌다.

다시 한 번 이대호 선수에게 필자의 '희망 레터'를 띄워 본다. '시작과 끝이 한결같은 선수, 타석에서 압도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는 타자가 되어 달라'고. 그래서 '한국 출신 타자의 자존심을 꼭 세워달라'고 말이다.

<편집자주> 필자는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야구부 차장, 연예부장을, 스포츠서울닷컴에서 편집국장을 거치면서 스포츠와 대중문화를 두루두루 취재했다. 특히 두 차례에 걸쳐 4년간 근무한 일본특파원 시절에는 주니치의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 요미우리의 조성민 정민태 정민철, 오릭스의 구대성, 지바롯데의 이승엽 등을 전담 마크하며 한국 선수들의 성공과 좌절은 물론, 일본 야구의 겉과 속을 찬찬히 지켜봤다. 현재 스포츠Q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ryus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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