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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해설가 방상아가 보는 '포스트 연아 시대'의 미래(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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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해설가 방상아가 보는 '포스트 연아 시대'의 미래(下)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4.16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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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지원시스템 갖춰야 할 때…평창보다 '포스트 평창'이 더 기대"

[잠실=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방상아 해설위원은 1987년 동계유니버시아드를 마치고 나서 대표선수에서 물러났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이듬해에는 현역 생활을 끝냈다. 그리고 곧바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목동아이스링크에서 1989년 12월부터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지도한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이제 피겨는 '왜 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종목이 됐다.

◆ 자신이 느꼈던 설움과 아쉬움, 물려주고 싶지 않아 시작한 지도자

"제대로 된 지도자가 되고 싶었어요. 목동이나 잠실, 과천 등 많은 링크가 생겨 환경적인 여건이 좀 나아진 상황에서 제가 느겼던 설움이나 아쉬움을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아요. 제가 여러 설움을 받았던 시대를 지내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설움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주고 싶었죠. 나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해요."

지도자로 일하면서 한 아이가 피겨스케이팅을 무척 잘 탄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데 트리플 점프를 뛴다는 얘기가 나왔다. 어떤 선수인지 궁금했다. 바로 김연아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겨우 초등학생인데 벌써 트리플 점프를 완벽하게 뛴다는 얘기가 들려왔어요. 어떤 선수인지 너무나 궁금해서 대회에 출전한 김연아의 경기를 주목했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이 빨라 재능이 풍부했고 한번 배우면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엄청났어요. 여기에 외모도 뛰어났기 때문에 범상한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했죠."

▲ 방상아 해설위원은 198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한 뒤 곧바로 대표에서 은퇴했다. 이듬해 1988년에는 현역에서 완전히 물러났고 곧바로 지도자가 됐다. 자신이 선수로 뛰면서 받았던 설움과 아쉬움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한국 피겨는 김연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하느냐"는 말을 들었던 설움 많은 종목이었지만 지금은 '피겨 맘'이 생길 정도로 조금만 재능이 보이면 부모들이 앞다퉈 피겨를 가르친다.

"한국 피겨 문화가 이렇게 좋아진 것은 역시 김연아 덕분이라고 봐야죠. 링크가 많이 생긴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였고 그만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죠. 그 과정에서 나온 선수가 바로 김연아예요. 링크가 생기면서 한국 빙상 저변이 확대됐고 그 결과 김연아가 피겨 문화를 변화시켰다고 봐야죠."

1970~1980년대에 피겨스케이팅을 하면서 설움을 받았던 세대로서 후배들에게 어려움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노력이 김연아라는 결실을 만들어낸 것이다. 방상아 위원이 김연아를 직접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방상아 위원 세대들이 지도자가 되면서 한국 피겨를 이끌어왔던 것이다.

◆ 김연아 은퇴 뒤 뒷걸음질? 우리 실력 위치로 돌아온거죠

김연아 은퇴 뒤 한국 피겨는 다시 뒷걸음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를 제패하며 '여왕'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김연아에 필적할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상아 위원은 손사래를 친다.

"피겨스케이팅을 보는 눈이 김연아에 맞춰지면서 한꺼번에 올라갔기 때문이지, 사실 한국 피겨 수준은 그렇지 못해요. 김연아가 재능이 있었고 노력이 있었기에 '개천에서 용 나는' 식으로 나왔다는 것이지, 아직 한국 피겨의 수준은 세계에 미치지 못해요. 다른 종목도 그렇지만 피겨스케이팅은 그렇게 쉬운 종목이 아니에요. 미국이나 러시아, 일본 선수층이 아무리 두꺼워도 김연아 한 명을 제대로 이기지 못했듯이 어떤 선수가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낼지 알 수가 없어요."

▲ 방상아 해설위원은 김연아로 인해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문화가 발전했지만 수준까지 올라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박소연, 김해진의 선전이 있지만 그 뒤 후배들의 기량이 더욱 발전하고 있어 평창 이후가 더 기대된다고 한다.

현재 박소연과 김해진이 '포스트 김연아'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연아와 함께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고 3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방상아 위원은 이들보다 그 다음 세대에 더욱 기대를 걸고 있다.

"박소연과 김해진이 '연아 키즈 1세대'라고 볼 수 있고 1.5세대와 2세대에 좋은 선수들이 더 많이 있어요. 김해진과 박소연 모두 열심히 해서 메달에 도전할 수 있는 재목이라고 하지만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아요.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세계적으로 많기 때문에 메달까지 바라보려면 더 많은 지원과 노력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제가 기대하는 것은 톱10, 나아가서 톱5까지만 해준다면 그 밑의 어린 선수들이 박소연, 김해진을 보면서 자신감을 갖고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지금 한국 피겨가 평창에서 메달을 노린다는 것은 제 의견으로는 좀 큰 욕심 같아요. 물론 되면 좋죠."

이와 함께 학부모들이 대부분을 부담하는 한국 피겨의 문화도 바뀌어야 더욱 많은 선수들이 발굴될 것이라는 의견도 함께 제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피겨스케이팅이 아직 다른 빙상 종목에 비해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의견을 내놓곤 해요. 사실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제 사견을 밝혀보자면 학부모들이 자녀를 선수로 키우기 위해 오랫 동안 투자를 하는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재능있는 선수들이 발굴되면 이를 연맹에서 맡아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죠."

▲ 방상아 해설위원은 피겨가 생활체육으로도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학교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엘리트 체육, 학교체육, 생활체육이 모두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 선수·지도자에서 해설위원까지, 개척자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그의 또 다른 직함은 해설위원이다. 2000년 주니어 세계선수권을 통해 해설위원으로 데뷔하기 전까지만 해도 피겨스케이팅은 명절에 특집 편성됐을 뿐 대회를 중계한 적이 많지 않았다. 피겨만 했던 그에게 해설위원은 또 다른 도전 영역이었다. 피겨 전문 해설위원이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롤 모델'으로 삼을만한 사람도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스타일을 스스로 만들어야만 했다.

"처음에 비판도 많이 받았고 욕도 많이 먹었어요. 가장 많이 들었던 비판 가운데 하나가 외국은 선수들의 아름다운 연기에 한껏 칭찬하는데 왜 저를 비롯한 한국의 많은 해설위원들은 기술과 점프에만 집중하냐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문화 차이라고 봐요. 외국은 칭찬이라는 것이 조금 더 일상적이죠. '판타스틱', '어메이징' 등의 단어를 거리낌없이 써요. 그런데 제가 해설을 하면서 '오, 놀라워요', '환상적이네요' 등의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너무 오글거리더라구요. 그래도 제 나름대로 한껏 칭찬한 멘트를 썼는데 표현력이 부족했던 것은 인정해요. 처음에 저도 칭찬을 많이 하는 멘트를 쓰자고 했지만 잘 안됐기 때문에 제 스타일대로 밀고 나갔어요."

온갖 비판에 '내가 왜 이런 지탄을 받으면서 해설위원을 해야 하나'하는 회의가 많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과 함께 해설위원으로 일했던 선후배가 있었지만 지금은 방상아 위원만 남았고 이제 아이콘이 됐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명예회복을 하고 싶었어요. 그만 두는 것은 쉽지만 포기한다면 제 인생의 큰 오점이 될 것 같았아요. 그만두더라도 명예롭게 은퇴하자는 생각을 하면서 견뎠어요. 지금은 나름 피겨 해설을 개척했다고 자부해요. 앞으로 해설을 그만 두더라도 저보다 더 나은 분들이 나오실 것이라고 봐요. 저는 김연아라는 훌륭한 선수와 함께 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이 있었죠. 그런 보람도 없었으면 제가 너무 속상하잖아요.(웃음)"

▲ 방상아 해설위원은 잠실 등에서 아이들을 지도함과 동시에 피겨 해설의 지평을 새롭게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피겨선수로 개척자였던 그는 이제 피겨해설의 개척자가 됐다.

현재 방상아 위원은 어린 선수들과 성인, 대학생들 대상으로도 피겨스케이팅을 가르치고 있다. 성인이나 대학생은 모두 처음 피겨스케이팅을 접하는 수준이다. 사실 시작하기엔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러나 늦었다는 기준은 엘리트 선수다. 생활체육으로는 나이가 들어도 피겨스케이팅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생활체육으로 피겨를 가르쳐보면서 가장 느낀 것은 학교체육이 제가 학교에 다녔을 때와 달라진 것도 없고 발전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학교체육이 발전해야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이 동시에 발전할텐데 그러질 못하는 환경이 안타까워요. 그런데 학교체육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모르는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제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피겨를 가르치면서,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체력이 중요한 것을 잘 아는 현명한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느껴요. 제가 가르치는 피겨스케이팅이 나름 인기 강의랍니다."

[취재후기] 현재 한국에는 비인기 종목이 너무나 많다. 비활성화 종목의 설움을 이겨내면서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키고 노력하는 선수들도 있다. 이런 모든 선수들이 각 종목의 개척자다. 지금 인기를 얻고 있는 종목도 비인기 종목이었을 당시 개척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선수들, 그리고 피겨스케이팅을 좋아하는 팬들 모두 온갖 설움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던 개척자를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방상아 위원은 겸손했다. 그저 자신의 길을 걸어왔더니 어느새 자신이 개척자의 위치에 왔다는 것이다. 그래도 남들과 다른, 그리고 어려운 길을 걸어왔던 그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SQ스페셜] 개척자 방상아 피겨사랑 40년, '가지 않는 길' 간다는 것은?(上)으로 돌아가시려면.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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