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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운조루 쌀독의 타인능해가 생각나는 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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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운조루 쌀독의 타인능해가 생각나는 연말
  • 이두영 기자
  • 승인 2020.12.1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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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이두영 기자] 최근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는 계속 오르고 빚을 내서 집을 사는 풍조가 식지 않고 있다. 구입 목적을 주거가 아니라 재산 형성이나 투기로 생각하는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무주택 가구는 888만 6,922 가구로 집계됐다. 그중 서울은 절반에 가까운 48.6%가 무주택 가구였다. 집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집을 10채 이상 가진 가구가 무려 4만4,000가구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뚜렷한 양극화 현상이다.

다주택 보유자 또는 9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 소유자가 취득세,임대료 등을 제대로 내지 않거나 부모가 자식에게 편법으로 증여했다는 따위의 소식은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최근 국세청이 적발한 올해 탈세 혐의자는 1,543명이며 추징이 완료된 금액만도 1,200억 원이 넘는다.

운조루. [스포츠Q DB사진]
운조루. [스포츠Q DB사진]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실제 프랑스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 말은 상류층 또는 부자들이 사회 전체에 대해 지녀야 할 도리, 도덕적 책무를 대변한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8월 모교인 전북 김제 백석초등학교에 10억 원을 기부한 것을 비롯해 4차례에 걸쳐 전 재산에 가까운 25억 원을 사회에 희사했다.

그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본인과 가족만 잘살려고 발버둥을 쳐서는 사회가 선진화되지 못 한다고 지적하며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1조 9,000억원을 기부하고 투자가 워런 버핏이 전 재산 기부를 실천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과 경제적 양극화 심화로 서민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운조루 창업주의 인간 정신이 떠오른다.

운조루 쌀뒤주. [스포츠Q DB사진]
운조루 쌀뒤주. [스포츠Q DB사진]

 

운조루는 지리산 남쪽 자락인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양반가옥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집으로 유명하다.

이 한옥은 조선 영조 때 낙안군수를 지낸 류이주가 지었다. 이곳은 바위가 많고 척박해서 본디 집을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금환락지(金環落地) 즉, 금가락지가 떨어진 길지로 여겨지는 땅을 고르고 만져 78칸 규모로 집을 짓고 중국 도연명의 시 '거래사사'에서 구름운(雲), 새조(鳥)를 따서 운조루라 명명했다.

이 집 사람들은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통하는 헛간에는 쌀 세 가마니가 들어가는 원통형 쌀독이 있었다. 창업주 류이주는 굶주린 이웃들이 집주인 눈치를 보지 않고 쌀을 퍼 가도록 뒤주의 쌀이 나오는 구멍에 ‘타인도 열 수 있다’라는 뜻의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표기해 두고, 부엌일을 하는 아랫사람들에게 쌀이 떨어지면 채워 놓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밥 짓는 연기가 높이 퍼져 나가지 않도록 굴뚝은 낮게 설치했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이웃들이 울적해 하지 않도록 한 배려였다.

운조루 사람들은 농사가 잘되든 흉년이 들든 이웃과 함께했다. 풍년이 든 시절에는 곡식을 나눠 먹었고 기상 이변이나 난리 등으로 농사가 안됐을 때는 소나무 껍질 따위를 함께 삶아 먹으며 공존을 모색했다.

이런 베풂 덕분인지 운조루는 동학농민운동, 여수순천 10.19사건, 6.25전쟁 등 큰 난리를 겪으면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았다.

운조루는 사랑채 누각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집 전체를 나타내는 명칭이기도 하다. 마당과 담장, 뜰이 어우러져 풍기는 분위기는 언제나 예스럽다.

운조루 대문. [스포츠Q DB사진]
봄날 운조루 방문객들이 해설사 설명을 듣고 있다. [스포츠Q DB사진]

 

눈 내리는 겨울이면 장독대에 멋진 설경이 펼쳐지고 봄이면 동백꽃,산수유꽃,백합꽃 등이 피어 시심을 불러일으킨다.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활용한 연지에는 여름마다 연꽃이 동동 피어나 여행자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나 혼자만 잘살려는 이기심을 버리고 공동체가 함께 번영해야 한다는 정신이 깃든 곳이기에 사철 바뀌는 풍경이 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0~2019년 고소득 사업자 7,760명이 세금신고 때 고의로 누락시킨 금액은 10조원에 이른다. 모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가 세금 약 800억원을 탈루했다가 국세청 조사를 받기도 했다.

자기 이익만 챙기는 것은 큰 부자뿐만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유튜버 7명이 소득세 45억원을 탈루했다가 당국에 적발됐다. 체납 세금 1억 6,000만원을 안 내려고 위장이혼까지 했다가 당국에 적발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운조루에 여행 한번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섬진강변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고택이 전쟁과 난리 속에서도 건재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알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서민이야 죽어나든 말든 ‘나만 잘살면 그만이고 내가 벌어놓은 재산을 내 자식에게 물려준다는데 왜 높은 세금을 매기느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들. 그들의 생각이 그리 옳지 않다는 생각을 깨달을 때 이 사회가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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