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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여자축구 유럽진출 1호 차연희, "더이상 눈물짓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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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여자축구 유럽진출 1호 차연희, "더이상 눈물짓지 않으려면?"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5.26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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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월드컵 후배들에게 보내는 메시지..."WK리그 발전·후배들 해외진출 절호의 기회"

[300자 Tip!] 한국 여자축구가 국가대표팀을 구성하며 본격 출범한지 올해로 25년이 됐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한국 여자축구는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 같은 세계적인 스타를 탄생시켰다. 그런데 2000년대 또 다른 스타가 있었다. 빠른 발과 저돌적인 플레이로 한국 여자축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던, 유럽진출 1호 차연희(29·이천 대교)다. 지금은 부상으로 대표팀에 함께 하지 못하지만 12년 만에 여자 월드컵에 도전하는 후배들을 뿌듯하게 지켜보며 응원하는 그를 대교 클럽하우스가 있는 경기도 시흥시에서 만났다.

▲ 차연희는 한국 여자축구 사상 최초로 유럽에 진출한 선수다. 캐나다 여자월드컵에는 함께 뛰지 못하지만 한국 여자축구를 위해 후배들을 열렬히 응원한다.

[시흥=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사진기자는 클럽하우스에서 나오는 차연희를 보고 경악했다. 오른쪽 무릎에 반깁스를 하고 나타난 것이다. 인터뷰 당일 오전 "전날 WK리그 경기 도중 태클을 당해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단순한 타박상인줄만 알았다. 무릎 후방 십자인대를 다쳐 3개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연희는 "축구선수라면 늘 부상은 있는 법인데요"라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옆에 있던 트레이너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차연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 여자축구의 특급스타다. 한국 여자축구가 북한을 상대로 유일하게 이겼던 2005년 8월 여자 동아시아연맹컵 당시 대표팀 멤버였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한국 여자축구의 첫 메달(동) 획득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또 박희영(29·화천 KSPO)과 함께 2009년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고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아마 오랜 여자축구 팬이라면 '지소연 이전에 차연희가 있었다'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지소연이 잉글랜드 무대에서 최고의 선수로 올라서기 전에 이미 차연희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차연희는 새달 개막하는 캐나다 여자월드컵에 함께 하지 못한다. 크고 작은 부상 떄문에 2013년 여자 동아시안컵 이후 대표팀에서 멀어졌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도 재활 치료 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다.

▲ 차연희의 머리 속에는 온통 축구뿐이다.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미국으로 출국, 캐나다 여자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자신은 국내에 남아 있지만 "후배들이 브라질, 코스타리카, 스페인을 맞아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지가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고 말한다.

◆ 브라질전만 잘 치르면 탄탄대로, 분위기가 관건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미국으로 출국했지만 차연희는 국내에서 후배들을 응원한다. 선수라면 욕심이 날 여자월드컵에 나가지 못하는 처지이지만 차연희는 전혀 개의치 않고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WK리그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후배들의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번 여자월드컵 성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두 16강은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워낙 크잖아요. 후배들은 출정식부터 엄청 긴장했을 거예요. 아시아 팀을 상대하는 것과 세계 무대의 도전은 전혀 달라요. 길을 걷다가 우리보다 키가 크고 체격이 뛰어난 선수들이 지나가는 것만 봐도 주눅이 든다니까요. 그래도 이제 후배들도 국제 경험을 많이 축적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첫 경기 상대가 2007년 준우승국 브라질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이미 2003년 월드컵 본선에서도 한 차례 맞붙어 0-3으로 졌다.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나 자칫 자신감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남자도 마찬가지지만 여자선수들은 분위기에 따라 경기력이 크게 달라지거든요. 게다가 브라질에서 최고 스타인 마르타는 기량이 더 올라왔더라구요. 이기면 좋겠지만 비기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거예요. 브라질전만 잘 치르면 코스타리카전이나 스페인전은 문제없을 겁니다. 다만 코스타리카나 스페인은 A매치를 자주 치르기 떄문에 경험에서는 결코 우리에 뒤지지 않을 거예요. 만만히 보면 안됩니다."

차연희에게 여자 월드컵 본선 진출의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2003년 미국 월드컵 본선 진출 때는 대표팀의 연습생 신분이라 대회에 나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2007년과 2011년 대회 아시아지역 예선전은 아쉬운 실패만 맛봤다.

▲ 차연희는 대표팀에서 뛰면서 해외 구단 관계자의 눈에 들어 독일 분데스리가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아직 세계 여자축구는 남자처럼 이적 시스템이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대표팀 활약에 따라 해외 진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차연희의 설명이다. 그렇기에 이번 여자월드컵은 한국 선수들이 해외리그로 나갈 수 있는 기회다.

◆ "얘들아, 해외 진출하고 싶으면 월드컵에 집중해"

차연희는 세 차례의 월드컵 출전 기회를 놓쳤지만 쉽게 오는 것이 아닌만큼 후배들에게 12년만에 맞은 기회를 제대로 잡으라고 말한다. 여자 월드컵이 전세계 여자축구에서 가장 큰 대회이다보니 에이전트나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탐색하고 발굴하기도 한다. 해외 진출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이번 월드컵이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 차연희의 설명이다.

"저도 대표팀에서 열심히 뛰다가 눈에 띄어 분데스리가에 간 경우거든요. 여자는 남자처럼 이적 시스템이 명확하지 않아서 대표팀 경기를 통해 영입 제의를 받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알기로는 심서연(26), 전민경(30·이상 대교), 조소현(27), 전가을(27·이상 인천 현대제철) 등 해외 리그로 나가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이번이 정말 기회거든요. 해외에 나가고 싶으면 월드컵에 집중해야죠."

차연희는 비록 월드컵 본선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역시 대표팀에서 맹활약해 해외 진출의 기회를 잡았다. 2008년 11월 미국 전지훈련 때 미국대표팀과 평가전을 치르면서 미국, 독일 클럽 관계자들의 제의를 받았다. 이전부터 해외 진출의 꿈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가겠다고 했다. 이듬해 바트 노이에나르로 박희영과 입단하면서 한국 여자선수 사상 처음으로 유럽진출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이적 절차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아서 2개월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어요. 훈련 때도 많이 힘들었어요. 국내에서는 저보다 빠른 선수가 없었는데 독일에서는 제가 그냥 평균 속도더라구요. 하지만 한두 달 훈련을 받으면서 독일축구에 많이 익숙해지고 공격 포인트도 올리고 했어요."

차연희는 자신도 경험이 있는 만큼 후배들의 해외 진출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지)소연이도 일본에 가기 전에 독일에서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금 잉글랜드에서 잘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유럽으로 직행하는 편이 더 좋았다고 봐요. 유럽에서 제의를 해왔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거죠. 우리 선수들도 유럽에서 제의를 받으면 적극적으로 도전했으면 해요."

▲ 차연희도 WK리그 경기 도중 후방 십자인대를 다쳐 3개월 동안 재활해야 한다. 자기자신도 수많은 잔부상 등으로 힘든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여민지의 마음을 잘 안다고 했다.

◆ "민지야, 울지마 일어나 부활할거야"

월드컵 후배들에 대한 얘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대표팀 출국 전 인사하러 가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했다.

"사실 대표팀이 떠나기 전에 파주 NFC에 가서 후배들을 격려해주려고 했는데 부상 때문에 가지 못했어요. 캐나다 가서 정말 잘했으면 좋겠어요. 거듭 말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한국 여자축구에 있어 정말 좋은 기회거든요. 아마 선수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긴장도 하고 기대도 할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비록 몸은 국내에 있지만 마음은 선수들과 함께 할 거예요."

출정 직전 부상으로 낙마한 여민지(22·대전 스포츠토토)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동병상련의 심정이 됐다. 자신도 잔부상이나 신종플루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대표팀에서 꿈을 완전히 이루지 못한 경력이 있어서 그 심정이 너무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지금 누가 얘기해도 민지를 위로해줄 수 없다고 봐요. 저도 겪어봤으니 잘 알죠. 하지만 아직 어리니까 또 다음 기회가 있을 거예요. 출정식날 스포츠토토와 경기를 치렀는데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해 여민지의 부상으로 다시 대표팀에 발탁된) 박희영(24·스포츠토토)도 얼굴이 좋지 않더라구요. 대표팀에서 떨어졌다가 동료의 부상 때문에 다시 발탁됐으니 마음이 좋을리 없죠. 어쨌든 이런 기회도 쉽지 않은데 다치지 않고 열심히 훈련했던 것을 월드컵에서 발휘했으면 좋겠네요."

또 차연희는 출정식에서 전가을이 눈물을 보이며 "대한민국에서 여자축구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이 외롭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동의했다.

"WK리그는 상당히 외로운 싸움이에요. 선수 지인이나 가족, 친척, 친구들만 와서 보기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어요. 그나마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로 선전하고 최근 러시아와 평가전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 팬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월드컵이 더 중요해요. 좋은 경기력으로 원했던 목표를 달성한다면 팬들도 늘어나고 선수들도 외롭다고 눈물 짓는 일도 없을 거예요."

▲ 차연희는 여민지의 부상 탈락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 역시 수많은 부상으로 굴곡이 많았다. 지금도 WK리그 경기 도중 후방 십자인대를 다쳐 3개월 정도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 자신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지만 여민지에게 더욱 힘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언론의 관심도 함께 당부했다. 관중도 거의 없는 텅 빈 경기장이지만 미디어가 자주 WK리그를 찾아와 관심을 보여준다면 팬들이 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대교 경기가 있을 때면 언제나 혼자 북을 치며 응원을 하는 팬이 계세요. '붉은 악마'부터 시작해서 정말 축구를 사랑하는 분이에요. 그렇게 저희들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주는 팬들 한 분, 한 분이 저희들에게는 정말 소중해요. 우리 선수들과 홀로 응원하는 팬들이 외롭지 않게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여주시면 좋겠어요. 그럼 가을이처럼 눈물을 흘릴 일도 없을 거고 우리도 조금 더 힘을 내서 뛸 수 있을 것 같아요."

[취재후기]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이 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하며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도약했듯 여자축구 역시 차연희의 해외 진출 등으로 지소연, 여민지 등 쟁쟁한 후배들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불현듯 한국 축구와 차(車)씨의 궁합이 잘 들어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교롭게도 차범근 감독과 차연희 모두 빠른 발과 저돌적인 플레이를 특징으로 갖고 있어 많은 점이 닮았다. 차연희가 훗날 여자축구의 차범근 감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취재 당일은 전주에서 전북 현대와 베이징 궈안(중국)의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이 벌어지는 날이었다. 차연희는 이미 한국에서 벌어지는 축구 스케줄을 줄줄 꿰고 있었다. "아이 참, 몸만 이러지 않으면 경기를 보러 갈텐데. 우리 집 가는 방향이거든요"라며 아쉬워했다. 머리 속에 축구 외에는 없는 것도 차범근 감독과 닮은 것 같다.

▲ 차연희는 한국 여자축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텅 빈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홀로 목이 터져라 응원 구호를 외치는 팬들이 더이상 외롭지 않도록 언론과 많은 사람들이 더 여자축구로 눈을 돌려주기를 희망한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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