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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한국의 애보트' 꿈꾸는 김성민 '한손, 한발의 기적'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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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한국의 애보트' 꿈꾸는 김성민 '한손, 한발의 기적' (上)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4.20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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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구 주니어야구단 선수 김성민...계단서 굴러 왼손-왼발 못써, 아버지 잃은 뒤 야구로 시련 극복

[300자 Tip!] 야구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포털사이트 중계창 동시접속자 수가 30만명에 육박하기도 한다. 주변에서 스스로를 둘째가라면 서러운 ‘야구광’이라 자처하는 이들이 많다. 선수들의 성적, 스토리를 꿰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감독의 전략, 배터리의 공배합, 수비 전술 등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지적할만큼 눈높이가 높은 이들이 많다. 직접 야구를 하는 이들이 25만명을 넘어섰다는 자료도 있다. 지금부터 야구와 사랑에 빠졌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야구에 미친 학생선수 한 명을 소개하려 한다. 한 손으로 치고 한 손으로 받는 용인 수지구 주니어야구단 선수 김성민(15)이다.

[용인=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경기도 용인 수지구에 자리한 신촌중학교. 김성민이 다니는 학교다. 그는 매년 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에 ‘야구선수’라고 적는다. 왼손, 왼다리를 사용할 수 없어도 그렇게 쓴다.

▲ 신생아 때 계단에서 떨어진 김성민은 사고로 우측 뇌를 다쳐 왼손과 왼다리를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를 한다.

야구팬이라면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48)를 보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오른손이 없었던 그는 투구 직후 오른쪽 팔목에 끼었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걸쳤던 글러브를 재빨리 왼손으로 옮기는 방법으로 198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다.

첫 해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소속으로 12승을 거두며 아메리칸리그 신인상 투표에서 5위를 차지한 그는 1991년 18승11패, 평균자책점 2.89로 사이영상 투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993년 9월 4일에는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통산 87승. 그는 감동을 던졌다.

김성민은 애보트보다 훨씬 열악한 신체조건을 갖고 있다.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고 공을 받은 후 그대로 공을 던진다. 타석에서도 한 손만을 사용하기에 있는 힘껏 방망이를 휘둘러도 멀리 뻗는 타구가 나올 수 없다. 땅볼 타구가 나오면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린다.

▲ 성민이는 인공뼈인 왼쪽 다리를 이끌고도 빠르게 달릴 수 있다.

◆ 뇌병변 장애, 아버지와 이별... 야구로 이겨낸 시련 

“사고로 우측 뇌 손상을 받아 두개골이 조각조각 깨졌죠. 뇌출혈로 머리가 하나 더 생겼다고 보면 돼요. 생후 24개월이 지나야 뇌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기적같이 다시 살아났죠. 하지만 왼손과 왼발에 편마비가 왔어요."

어머니 송달미(39) 씨의 설명이다. 김성민은 신생아 때 계단서 구르는 사고로 왼손과 왼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다. 뇌병변 장애. 팔, 다리 기능 저하로 앉고 서고 걷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는다. 머리 반쪽과 왼발은 인공뼈다.

시신경 마비에 영향을 받아 한쪽 눈의 시력도 좋지 않다. 뇌 손상을 당해 뇌전증 증세도 있다. 잠시 동안 기억을 잃으면 엄마에게 시간, 날짜, 요일,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한다. 요즘엔 감기까지 걸렸다. 엄마는 아들이 빨리 지칠까 걱정이 많다.

아버지 고(故) 김동화 씨는 야구광이었다. 아들과 함께 늘 야구를 시청했고 경기가 있는 날이면 직접 관람에 나섰다. 한발 더 나아가 공 던지는 법까지 가르쳤다. 아들의 왼손이 없는 건, 다리가 불편한 건 장애물일 뿐이었다. 부자는 캐치볼을 시작했다.

▲ 김성민은 한팔로 타격한다. 외야 멀리까지 타구를 보낼 순 없지만 공을 맞추는 솜씨 하나만큼은 제법이다.

김성민은 “처음에는 나도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빠로부터 애보트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어 공을 잡았다”며 “토스하듯 던지니 재미가 없더라. 연구를 많이 해 탄생한 나름 과학적인 폼이다. 5개월이 지나니까 캐치볼이 되더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을 뒤져 용인 수지구 주니어야구단을 찾았고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그렇게 김성민은 2010년부터 불가능이라 여겼던 영역에 도전하게 됐다. 그런데 2013년 1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었다.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낙담한 성민이를 지탱한 건 오직 하나, 야구였다.

◆ 야구밖에 모르는 바보, “시구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유격수, 3루수만 힘들 뿐 다른 포지션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성민이는 정말이지 야구밖에 모른다. 걸그룹도, 게임에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야구다. 최근의 낙은 KIA 타이거즈의 선전이다. 선수들 성적을 줄줄이 읊는다. 가장 큰 걱정이 “KIA가 연패에 빠지는 것”과 “감기 걸려서 야구를 못하게 되는 것”이란다.

▲ 김성민과 어머니 송달미 씨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숨졌지만 성민이는 야구로 시련을 이겨냈다.

“야구를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됐어요. 이젠 공 던지고 치는 게 되니까... 사실 저 어릴 때 했던 운동들은 혼자 해도 되는 운동들이었거든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왕따도 당하고 친구들이 많이 괴롭혔는데 야구라는 운동을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게 됐어요. 여럿이 함께해야 하는 운동이니까 더 많이 어울리고 학교에서도 야구 이야기를 많이 하면 친구들이 관심을 가져주니까 좋아요. 높고 큰 타구는 날리지 못하지만 부상당하지 않고 끝까지 대회를 잘 마치고 싶어요.”

KIA 선수들의 성적을 줄줄이 나열한다. 김성민이 달고 있는 21번은 윤석민이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낸 2011년 달았던 등번호다. 김성민은 “요즘엔 최희섭이 다시 잘 해서 정말 좋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시구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려요. 엄청 설레요. 학교 선생님들은 시험 날짜와 겹쳐 걱정하시는 것 같은데 이런 기회가 언제 오겠어요.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광주 가서 던져야죠.”

▲ 김성민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터뷰 내내 웃음꽃이 피었다.

한국리틀야구연맹 박원준 기획홍보이사로부터 김성민의 사연을 들은 KIA 타이거즈는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리는 한화와 3연전 중 하루를 택해 김성민이 시구할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김성민은 매주 토, 일요일 오전 8시부터 2시간씩 훈련을 한다. 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함께 또 배팅장에 간다. 송 씨는 “도서관 가서도 책을 빌리면 죄다 야구 관련 서적”이라며 “나보다 야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SQ스페셜] 발가락에 뽀뽀해주는 엄마 "매 순간이 전율, 아들이 존경스럽다" (下)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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